12화-이변의 시작(2)
12화-이변의 시작(2)
깊은 숲속의 습지. 이곳에 놈이 살고 있다. 마치 인간의 얼굴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마수 거북 인두귀.
놈은 이 습지의 제왕이었다. 가장 강해서 모든 적들을 죽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 습지에 사는 그 어떤 마수들도 성체가 된 인두귀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견 성공.]
그런 인두귀에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들이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놈은 처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은 마족들도 신경을 꺼 버린 곳,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이들이 거의 없다 보니 성격 자체가 오만하고 느긋한 편이었다.
“너무 징그럽게 생겼잖아.”
[놈이 우리를 경계합니다. 하지만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게 인두귀의 사진을 보여 준 마왕은 습지 밖으로 모습을 반쯤 드러내고 자신의 병사들을 경계하는 인두귀를 향해 전력을 전개시켰다.
“꽤 커 보이는데.”
[맞습니다. 거칠게 저항하는 인두귀를 강제로 둥지까지 끌고 가는 건 불가능. 적어도 저항 불가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두귀 성체의 크기는 어지간한 대형 승합차 수준이며 몸무게 역시 어마어마하게 나간다. 현재 마왕군이 보유한 병력으로 마수들 중에서도 대형종에 속하는 인두귀를 힘으로 제압할 존재는 없었다.
따라서 마왕은 다른 계책을 내어야 했다.
[독을 쓰겠습니다. 습지가 다른 웅덩이와 분리되어 있고 그 크기가 그리 크지 않으니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바로 인두귀가 들어있는 습지 전체를 독으로 물들여 인두귀를 포함한 모든 생물들을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마수인 긴꼬리전갈과 대형늪지두꺼비 등 독을 지닌 생물들의 독을 합성 배합하여 개발한 독입니다. 신경독의 일종으로 체내에 침투하여 적을 그 즉시 즉사시킵니다]
“허.”
마왕이 짠 계획은 그도 혀를 찰 정도였다. 벌써 숲의 일부를 초토화시키며 일대의 생물들을 절멸시키고 있는 마왕이 습득하는 생물들의 데이터는 갈수록 늘어났다.
독을 지닌 생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로 무리 짓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기상천외한 능력으로 몸을 지키려 해도 마왕은 끝끝내 그것을 돌파하고 잡아먹으며 그 데이터를 축적시켰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다른 마수들을 잡는 데 적극적으로 써먹었다.
[예상대로라면 손실 없이 인두귀를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왕군 가운데에서 마수 개미ㆍ베타가 기어 나왔다. 마수 개미ㆍ베타는 체내에 산성 체액을 저장할 수 있던 특수한 구조를 가지고 있던 개체. 그것을 이용해 배에 고농도의 나노가 든 점액을 담아 둥지와 떨어진 곳에 둥지를 만들거나 상처 입은 병사의 몸에 나노를 보충하는 데 쓰였다.
지금 그 개체의 배 안에는 지금까지 습득한 데이터로 만든 가장 강력한 독이 가득 들어 있는 상태였다.
[독약 배출.]
마수 개미ㆍ베타는 그것을 습지에 쏟아 내기 시작했다. 가득 부풀었던 배가 쪼그라드니 입을 통해 짙은 검은색 무언가가 주륵주륵 습지 내부로 쏟아졌다.
인두귀는 당연히 저런 행위가 자신을 죽이기 위한 것인지 몰라 경계만 할뿐 얼굴의 반을 물에 담근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
하지만 반응은 즉각적이다. 인두귀는 순간, 자신의 몸이 점차 굳어 가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화들짝 놀라 물에서 얼굴을 빼냈지만, 이미 물를 타고 눈을 포함한 점막과 입을 통해 침투한 신경독은 인두귀의 몸을 해치고 있었다.
[마무리 짓도록.]
물론 저 거대한 몸집의 마수 거북이 자기도 모르게 섭취한 극미량의 독으로 제압될 리는 만무.
보다 확실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왕은 함께 파견한 오크ㆍ알파가 든 무기들에 이 독을 묻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투창 자세를 잡았다. 몸이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인두귀는, 훤히 드러난 목과 다리 등을 자랑하는 갑옷 속에 미처 숨기지 못했다.
***
[인두귀를 제압하여 현재 둥지로 수송하고 있습니다.]
“힘들 텐데?”
[운송을 상정하여 힘이 좋은 삼각뿔소ㆍ알파까지 동원했지만, 과연 소모되는 양분의 양이 많습니다.]
박스디는 단단한 갑주를 얻기 위해 사냥하기로 한, 사람 얼굴을 한 괴물 거북이 인두귀를 잡았다며 보고를 보내 왔다.
함께 보내준 사진을 보니 확실히 쉽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거북의 시체를 미리 준비한 밧줄로 묶어서 끌고 가고 있는데, 삼각뿔소라 불리는 대형 승합차 수준의 병사까지 동원했는데도 힘이 많이 들어 보였다.
“네 본체가 있다는 하이브와 촉수든 육벽이든 하나로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게 유일한 단점으로 보여.”
[둥지 자체의 크기를 더욱 키우고 키운다면 해결될 문제라 생각합니다.]
원거리에 둥지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어쨌든 촉수를 통해 하이브의 본체와 신경이 연결되어야 박스디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에 비해 신경체 그 자체인 둥지는 너무 고등한 체계를 갖추고 있어 그래야만 한다는 게 박스디의 설명이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박스디는 둥지 자체의 크기를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미궁을 벗어나 그 주변, 그 일대 너머에까지 육벽과 촉수와 점액으로 된 둥지를 펼친다면 이런 문제는 덜하니까.
“단단한 갑주도 얻었고 데이터도 많아져서 운용 가능한 병종들의 숫자도 늘어났지. 이제 계획대로 진행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저희는 멈추지 않습니다. 망설이지도 않습니다. 정복, 그리고 지배. 오직 그것을 위해 계속해서 진화합니다. 그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박스디는 고블린들과 싸우고 인두귀를 사냥하는 사이 동시에 다른 수십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다.
철저한 계산에 따라 연계되는 사냥, 수집, 생산의 사이클.
지성도 가지고 주술이라는 특별한 힘을 쓰며 집단으로 살던 고블린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물며 짐승이나 마찬가지인 마수들이 박스디의 군단을 당해낼 수 있을 리 없다.
박스디의 군단은 한때 목숨을 위협했던 마수 개미들의 둥지를 역으로 쳐들어가 여왕을 죽이고 그들의 씨를 말렸다.
감히 마왕군을 사냥감으로 보고 사냥하려던 포식자들은 역으로 포식당해 양분과 데이터가 되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솟은 마계의 나무들도, 독을 품은 다른 식물들도 소화 능력을 갖춘 박스디의 손에 하나둘 절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도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빨라진다. 그것이 박스디가 만들어 낸 마왕군의 강점이었으니까.
“계속 진행해 봐. 근데 네가 얼마나 강해진 건지 잘 모르겠네.”
[데이터가 부족함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막상 빠르게 강해지고 있지만, 막상 그게 뭔가 와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 몇 장과 박스디의 보고만으로 들어서 그런가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여서 승리해도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진정 박스디의 마왕군이 강한 것인지 알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데이터를 쌓으려 합니다]
박스디는 앞으로도 계속 전쟁을 치룰 것임을 선언했다. 박스디에게 전쟁이란 스스로의 약점을 찾아내고, 더 강해질 구실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으니까.
전쟁을 치룰 수록 더 강해지고, 더 많아진다.
“그래. 계속 해 봐. 나 이제 슬슬 자야 해서.”
그날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박스디와 함께 보냈다. 다만 1분 1초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박스디와 달리 나는 꾸준히 휴식을 취해 줘야 했다.
곧 박스디의 목소리가 끊기고 내 휴대폰도 조용해졌다. 어차피 진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먼저 말을 거니까.
나는 곧바로 자지는 않고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신약 개발?”
뉴스 하나를 발견한 게 그때였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불치병이었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했다는 내용.
분명 여기까지만 보면 흔하디 흔한 기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터치해 본 기사의 내용은 조금 달랐다.
‘제약 회사에서는 그 어떠한 과정도 공개하지 않았고 그저 실험만 진행했을 뿐이다. 일부 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기적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지만 진실은 오직 회사만이 알고 있다.’
다름 아닌 그 신약의 성분과 구조 때문에 논란이 된 것이다. 제약 회사는 그 어떠한 것도 공개하지 않고 실험 결과만 보여 주며 즉발적이고 효과적인 약의 효과를 입증했다.
‘기적.’
그 기적이라는 단어가 내 정신을 아른거리게 만들었다. 박스디와의 만남, 아니 정확하게는 박스디가 그쪽 세상의 마왕이 된 것은 과연 기적인가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뭔 상관이냐.’
물론 길고 깊게 생각하진 않았다. 나는 일개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박스디가 고생하는 건 결국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기적이라고 해 봐야 내게는 내가 가진 인공지능이 조금 똑똑해지고 빠릿해진 것뿐, 나머지 것에는 그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정찰은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반경 200km 이상을 탐색하였고 둥지로부터 40km 이상 떨어진 곳에, 두 번째 고블린들의 부락을 발견해 기억해둔 상태입니다]
“평범한 고블린들인가? 그 상태는? 숫자는? 이번에도 주술을 쓰는 놈이 있나?”
[비행 정찰을 통해 보다 자세한 것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양치를 하던 나는 박스디의 보고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이곳에 살아가던 고블린들을 발견한 것이다.
[새롭게 조합하고 정비한 병력들을 투입할 기회입니다.]
박스디는 오히려 그 전쟁을 반겼다. 데이터도 데이터지만 잘만하면 양질의 먹이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마왕군은 지겹게 동물들을 쫓고 숲 내부 자원도 거덜 내고 있지만 역시 가장 좋은 점은 전쟁을 통해 적군을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미 한번 고블린들과의 전쟁을 치룬 박스디는 이미 놈들에 대한 분석을 완벽히 끝내놓은 상태였다. 새롭게 측정한 전투력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란 소리다.
[규모가 전에 비해 큽니다. 적어도 400개체 이상. 부락의 크기도 그만큼 크며 무장한 이들도 수십 이상 보입니다. 주술사 같은 이들의 규모는 잘 모르겠습니다.]
“쉽지 않아 보여. 하지만 이번에 얻은 것들을 이용해 새롭게 개량한 이들이라면 모르겠는데?”
박스디는 스스로도 자신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측정할 수 있다. 지난 번, 저들과 같은 고블린들과 싸우고 보완한 새로운 군단. 그들이 박스디의 명령에 맞춰 움직인다.
그들이 어떤 개조를 받아 직전보다도 더 강해지고 더 진화했는지 그 모든 기록도 내가 가지고 있다.
미궁 너머까지 처음으로 세력을 확장한 날과 비교하면 확실히 지금은 거대하고 강한 집단이 된 것이다. 그것도 채 며칠 안 되는 사이에 자신들의 몸과 기능들을 갈아 끼울 수 있는 그런 집단이.
[오늘 밤 공격을 실행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관측된 고블린들의 숫자 489개체, 족장급 3개체 이상, 전사급 125개체 이상, 68% 가까이 무장할 수 있는 무장, 목책과 함정 등의 방어 시설등을 돌파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아군······ 병력은?”
박스디의 보고를 들으니 적들은 500에 가까웠다. 보내 준 사진을 보니 그 규모가 더 잘 보인다.
[아군 병력은 총 300개체입니다. 오크ㆍ알파 30기, 달빛삼눈늑대ㆍ알파 100기, 삼각뿔소ㆍ알파 3기, 기간티스 스콜피온ㆍ알파 25기, 타란탈라스ㆍ알파 50기······.]
하지만 이어지는 아군의 구성도 만만찮다. 다양한 병종이 뒤섞인, 평균적인 덩치도 고블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병사들이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돌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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