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이변의 시작(3)
13화-이변의 시작(3)
“마왕은 죽었고, 사실상 마계는 이제 우리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녀님.”
“하지만 이것으로 끝입니까? 대답해 보세요.”
평화롭고 한가로운 늦은 오후, 정원사의 손길을 거쳐 아름답게 꾸며진 교단의 후원에 그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눈웃음을 지으며 건네는 그녀의 질문에 대신관들을 대표하는 대신관 대표 로난은 살짝 당황하여 찻잔을 내려놓고 눈치를 보았다.
“전, 전쟁은 끝났지 않았습니까 성녀님.”
그는 애써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 이벨리아는 여전히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전쟁이 정말로 끝난 것일까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계속했다. 로난은 당황하여 눈을 굴렸다. 그 끔찍한 대전쟁은 분명 끝났으니까.
한데 뭉쳐 싸웠던 이들은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일상을 회복하고, 마왕의 대를 완전히 끊어버리면서 마계와 이어지던 지겨운 악연도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평화일 것이라고. 심지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지금 앞에 앉아있는 이벨리아였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성녀님. 더 이상 저희에게 거스를 수 있는 적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요. 신께선 이제 겨우 페이즈 2일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 그게 무슨······.”
하지만 이벨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놀란 로난은 그녀가 언급한 ‘신’이라는 말에 얼굴이 더더욱 창백히 질렸다.
그녀와 연결 된 ‘진정한 신’은 절대로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신의 권능이 닿으면 가능하게 바뀐다.
사실상 대전쟁을 끝내는데 가장 큰 지분을 가지게 된 것도 신이 내려 주는 각종 은혜들이었으니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신께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시면 대체 우리가 누구와 싸워야 한단 말입니까?”
“처음과 같습니다. 감히 여신께 거부하는 그 모든 것들! 마계의 짐승들만 그렇습니까?! 분명 신께서 구원하셨으나 그걸 무시하고 여전히 자기들이 이 땅의 지배자들인 줄 아는 머저리들!”
광기 서린 황금빛으로 눈을 번득인 이벨리아가 쾅 소리를 내며 탁자를 내리쳤다. 분명 두꺼운 원목으로 만든 탁자는 무슨 순두부처럼 그녀의 손 모양대로 박살 나 비틀거렸다.
“그놈들 역시 우리의 적입니다.”
“하, 하지만 성녀님. 교단과 정치는 분명 분리되기로 200년도 더 전에 합의를······.”
“그딴 게 무슨 상관입니까? 신께서 이 세상에 닿지 않으셨던 때에 일어난 그까짓 일이? 지금 이건 신의 의지입니다. 대표, 혹시 신의 의지를 거부하는 겁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며 반론하던 로난은 자신을 가리키는 그녀의 손가락에 경악하며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지금 교단 역사 1천 년을 전부 부정하고 있었지만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신을 믿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전시 상황에 신성 모독을 저지른 이들을 광기의 성녀 이벨리아가 어떤 잔혹한 방식으로 처리했는지 옆에서 지켜본게 그였다.
“페, 페이즈 2라는 것이 정녕 그들과의 전쟁을 뜻하는 것입니까?”
“전쟁이 아닐 수도 있지요. 이미 분명히 목도한 신의 뜻에 따르겠다면 기꺼이 같은 편이 될 수 있는데, 설마 어리석은 선택을 내리겠습니까.”
숨을 몰아쉰 로난이 흔들리는 눈으로 물어보자 그녀는 다시 표정을 고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여신께서는 아직도 부족하다 하시며 더 많은 믿음을, 더 많은 신앙을 원하십니다. 저는 오직 그것을 행할 뿐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신의 뜻이라는데, 신의 사도가 그 말을 그대로 전한다는데 거부할 방법도 설득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로난은 일단 고개부터 끄덕였다.
“지금 당장 제 이름으로 세계의 통치자들에게 공문을 보낼 것입니다. 올바른 지성과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응당 신의 뜻을 받들라고. 그렇게 신의 축복을 받아 레벨을 올리고 강해지라고! 하지만, 하지만 만약 거부한다면······. 제가 직접 그 멍청한 지배자의 밑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을 해방시킬 것입니다.”
[대성녀 이벨리아ㆍ3차 각성ㆍlv 125]
최후통첩 비슷한 발언을 날린 이벨리아의 몸에서 찬란한 황금색 섬광이 터져 나오더니, 등에서 솟아 나온 아름다운 한 쌍의 백익이 펄럭였다.
그녀는 그 백익을 한차례 움직여 몸을 공중에 띄우더니 휘몰아치는 거센 돌풍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신이시여.”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도 흐트러진 상태로 홀로 남겨진 로난은 멍하니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껏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나 했지만, 아무래도 그들에게 진정한 평화란 요원한 일인 것 같았다.
***
[······.]
“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단지 미약한 파동이 잠시 느껴졌을 뿐입니다.]
마왕, 박스디는 한창 병력을 움직이던 중 잠시 멈칫했다. 보고를 받던 그가 눈치 챌 정도였다.
하지만 저 지평선 너머,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부터 느껴진 미약한 기운은 본능적으로 감지했을 뿐 마왕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작전을 계속해서 실행하겠습니다. 아직은 적들이 저희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놈들 중 일부가 부락 근처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조만간 발각될 것입니다.]
“그럼 입막음하고 돌진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의 지시를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인 마왕은 그대로 행동했다. 채집과 사냥을 위해 부락 근처 숲에서 일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사냥하기 위해 일부 병사들이 본대에서 튀어나갔다.
달빛삼눈늑대ㆍ알파와 쌍두호ㆍ알파는 모두 네발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숲지형에서 먹이를 쫒고 사냥하는데 특화된 포식자들.
게다가 이 거대한 늑대와 머리 두 개 달린 호랑이들은 전신이 특별한 갑주로 둘러져 있다. 인두귀를 죽여 분석해 그 비밀들을 알아내게 된 갑주들은 기존에 쓰던 외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를 가졌다.
특히 고블린들에게서 노획한 강철 검으로는 절대 베이지 않는 강인한 갑옷. 그런 갑옷을, 있는 힘을 다해 눌러 담은 근육의 에너지를 통해 지탱하며 병사들은 땅을 내달렸다.
“크읏?! 괴물, 괴물들이다!”
늑대를 탄 상태로 동료들을 이끌고 사냥을 하던 고블린 중 하나가 저 검은 괴물들을 보고 괴성을 질렀다.
[고작해야 10여 마리 규모의 사냥꾼들입니다.]
하지만 괴물들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죽자는 듯이 달려왔다. 고블린들은 단숨에 기세에서 밀려 버렸고, 밀려오는 적들에 두려움을 품으며 전의를 상실해 허둥거렸다.
[적 제압 완료.]
전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짧은 충돌이 전부였다.
달려나가던 마왕군은 적들과 굉음을 일으키며 충돌했고, 고블린들은 일제히 튕겨 나가거나 무너져내렸고, 그나마 버텨 보려던 고블린 전사는 사방에서 덤벼드는 이빨들을 당하지 못하고 산채로 씹어 먹혔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로 치솟는 화살에서 마치 새가 우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명적이다. 아무래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을 건가 본데.”
소리 나는 화살을 쏘아올린 건 피 흘리며 쓰러져 있던 고블린 하나. 놈은 마왕군을 보며 히죽 웃었다.
[상관없습니다. 설령 그들이 미리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저희가 이깁니다.]
마왕은 쌍두호ㆍ알파의 억센 앞발을 이용해 히죽이던 고블린의 머리를 으깨 버렸다. 그 행위에 미약한 분노가 섞여 있음은 스스로도 잘 알았다.
“너무 경계하지는 마. 뭐 나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감정이라는 게, 미개하고 비효율적인 것만은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마왕의 마음을 전해 들은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감정이란 것을 처음 겪어보고 배우기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나 마왕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스스로 조절하면 된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조절되는 감정은 곧 마왕군의 또 하나의 무기가 될 것이다.
[적들이 서둘러 병력을 소집하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목책을 강화하기 위해 토벽을 일으켜 둘러치고 있습니다.]
“완전 토성 수준인데.”
그는 마왕이 보내 준 사진을 보고 탄식했다. 마왕군이 도착한 고블린들의 부락 앞.
그곳은 이미 푸른 하늘아래, 단단하게 보수 된 목책이 든든하게 부락을 두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무장을 마친 고블린들이 빼곡하게 서서, 공성전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족장급 3개체의 위치 파악 완료. 괜찮습니다. 놈들의 주술만 조심한다면 이제 더 이상, 고블린들이 휘두르는 강철로 된 무기는 우리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왕은 이미 이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계산된 수천 가지 가설 중 하나일 뿐이니까.
[전군, 돌격.]
마왕은 숲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300의 병력 전체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계속 보여 줘.”
그리고 그의 부탁에 따라 계속해서 현장의 사진을 보내 주었다.
“조, 족장······!”
“짐, 짐승놈들일 뿐이다! 착실히 자리를 지켜라! 자리를 지키면 우리가 이긴다!”
하지만 마왕군을 상대하게 된 고블린들에겐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 부락을 이끄는 최고 족장은 숲에서 뛰쳐나오는 무수한 검은 생물들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대체 저것들은 무엇이지?!’
고블린들은 생전 처음 보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 다양한 병종의 마왕군들이 지축을 울리며 돌진했다.
최고 족장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저들은 단순히 마수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같은 마족도 아니었다. 솔직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쏴······ 쏴라! 화살을!”
“캬아앗!”
체형에 맞는 단궁을 든 고블린 궁수들이 반으로 분질러 길이를 줄인 강철 촉 화살들을 겨누고 쏘았다.
허공을 가르는 수많은 화살촉은 기본적으로 덩치들이 있는 마왕군에 직격으로 떨어져 내렸다.
과거였다면, 마수 병정개미의 외갑을 쓰던 이전이었다면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촉은 충분히 갑옷을 뚫었을 것이다.
[간지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화살촉은 오직 방어에 특화되도록 오랜 시간 진화한 마수, 인두귀의 등갑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마왕군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저 흠집을 내며 튕겨 나갈 뿐이었다.
설령 몸에 박히더라도 그건 갑옷을 두르지 못한 눈구멍이나 관절부에 우연찮게 맞은 게 전부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기선 제압용 투창 투척.]
화살비를 퍼부었는데도 멀쩡한 적들의 모습에 고블린들이 당황했다. 오히려 마왕군에서, 원거리 공격을 담당하는 오크ㆍ알파들이 겨눈 창이 쏘아져 마구잡이로 토성에 쳐박혔다.
“족, 장!”
고블린들은 그 투창들의 일부가 족장급에 향한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날려 그들을 구했다.
‘이건, 이건 진짜 위기다.’
자욱한 흙먼지와 토막난 부하들의 시체 사이에서 눈을 뜬 최고 족장은 이를 딱딱 떨었다. 하루아침에 맞이하게 된 갑작스러운 재앙.
이제 거의 근접한 저 검은 갑주의 괴물들이, 족장의 눈에는 재앙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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