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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4화 (14/200)

14화-이변의 시작(4)

14화-이변의 시작(4)

“주술은 통한다! 갈라져 솟아라!”

[예상한 대로 죽이지 못한 족장급 고블린들이 주술을 발현합니다.]

더 이상 앞뒤 잴 것 없어진 고블린 주술사들이 각자 지팡이를 쳐들고 주술을 발현했다. 고블린들에게 내려오는 주술은 원초적이고 간단하지만, 분명 마력을 운용해 공격하는 일종의 특수기.

단순한 물리력 이상의 힘을 내는 그 공격에 훨씬 더 강해진 상태로 찾아 온 마왕군도 다수가 쓸려 나갔다.

“이놈들이 어떻게······.”

물론 어디까지나 주술에 직격당해 전투 불능에 빠진 이들을 제외하면, 부상병들 역시 조금의 지체 없이 다시 전선에 뛰어들었다.

팔이 떨어지든 다리가 떨어지든 움직일 수만 있다면 싸운다. 그것이 마왕 그 자체인 마왕군의 본질이다.

[사용할 수 있는 주술에 텀이 있음을 이미 확인했으니, 병력을 축차 투입합니다.]

게다가 이미 고블린들과의 전투를 겪어 본 마왕의 전술은 단순한 꼬라박기가 아니었다.

토성으로 변한 목책 앞에서 사투를 벌이던 고블린들 모두가 전방을 보고 당황했다. 몸 크기만 대형 승합차만 한 마계의 마수 삼각뿔소.

머리에 커다랗고 각진 세 개의 뿔을 단 이 대형 승합차만 한 마수들은 마왕의 개조를 받아 완벽한 돌격병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질량과 운동량으로, 어중간한 토벽이나 목책은 박살 낼 수 있는 그런 돌격병.

“마, 막아! 막아라!”

기겁한 고블린 족장은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삼각뿔소ㆍ알파들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주술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독 두꺼운 외갑에 톤 단위의 무게를 가진 소를 막을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충돌.]

마왕은 삼각뿔소 세 마리가 거의 머리와 비슷한 두께를 가진 근육질 목이 부러질 정도의 충격으로 토벽을 부수고 폭발을 일으키는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작전이 성공했습니다.]

그 직후 사진을 전송했다. 자신이 고안한 전술과 그 성공을 그에게 알려 주고 보여 주고 싶었다.

“잘했어.”

그러자 시원하게 터져 나가는 적들의 방어벽과, 날아가는 고블린들이 적나라하게 찍힌 사진을 본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마왕은 그것을 듣고 기뻐했다. 이제 자신이 느끼는 이것이 기쁨의 감정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이제 공성전은 끝나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난전입니다. 미리 계획한 대로, 다른 이들을 상대함과 동시에 족장급들이 다시 주술을 사용하기 전에 그들을 죽이겠습니다.]

“막아! 캬아악! 막아라!”

“무기를, 들어라!”

당황한 고블린들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박살 난 토성 내부로 밀물처럼 들어오는 적들을 맞아 싸워야 했다.

[적 보병들은 마수군단이, 적 족장들을 제거하는 건 오크ㆍ알파들이 맡습니다.]

“키, 키잇······.”

“괴, 물들!”

고블린들은 다양한 마수들을 베이스로 삼은 마왕군에 당황했다. 일단 창과 방패를 들었지만 큼직한 덩치에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단 맹수형 마왕군이 육탄 돌격으로 진영을 부수고 내부를 헤집었다.

본디 마수들에 비해 고블린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진영을 잡고 무기를 써서 집단으로 싸운다는 것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 강점은 완전히 상쇄되었다.

“몰, 려온, 다!”

엄폐물에 숨거나 높은 곳으로 피해도 소용 없었다. 거대한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타란탈라스ㆍ알파들은 거미답게 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며 날카로운 앞발을 이용해 그들의 창을 쳐내고 몸을 꿰뚫었다.

[손실률 14%, 예상 범위 내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모든 병력을 하나처럼 움직이는 마왕의 지휘. 오직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마왕군 하나하나의 집단 전술과 움직임은, 같은 집단과 집단의 싸움에서 정밀한 훈련도 받지 못한 부락 수준 고블린들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선이 밀리기 시작했다. 토벽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고블린들은 자기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마수들이 조직적이고 집단으로 달려들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버텨. 반드시 버텨라. 내 다시 한번 땅을 움직일 것이다.”

그 모든 광경을 눈에 담은 최고 족장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정체를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저 검은 갑주의 괴물들이 조금의 자비도 없이 자신들을 몰살할 것이라는 것.

그러니 아무리 두려워도 싸워야 했다. 그는 다시 한번, 주술을 발현하기 위해 힘을 끌어모았다.

“족장을, 지켜라!”

곁에 있던 정예 고블린 전사들의 그런 족장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어찌저찌 자르고 붙여서 자기들 몸 사이즈에 맞춘 갑옷까지 입고 있는 정예들.

그들은 족장을 죽이기 위해 전장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돌진하고 있는 오크ㆍ알파들을 상대로 정면에서 맞붙게 되었다.

[오크ㆍ알파들이 낼 수 있는 근력은 기존 오크종의 2배에서 3배 이상. 보편적인 고블린들의 5배 이상.]

오크ㆍ알파는 오크종의 데이터를 베이스로 개조된 마왕군의 주축이었다. 효율적이며 갑옷이나 방어력, 민첩함이나 독침 등 어디 하나 특화된 부분을 가지고 있는 마수형 병사에 비해 딱히 특출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오크ㆍ알파는 오크들처럼 손을 썼다. 손을 통해 무기를 잡고 휘두를 수 있고, 던질 수도 있었다.

그 위력을 잘 알기에 마왕은 비효율을 약간이나마 감수하고 그들을 양산했다.

[하지만 밀립니다.]

“단순히 휘두르는 게 아니겠지. 검이 있다면 검술도 있고 창이 있다면 창술도 있을 테니까. 네가 병사를 개조하며 그토록 찾는 그 효율이라는 거, 도구를 쓰는 데도 통용되는 말이거든.”

[도구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

마왕은 오크ㆍ알파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정예 고블린 전사들을 보며 또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분명 근력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키도 몸무게도 아군이 더 크고 무겁다. 그러나 노련한 고블린 전사들은 단순히 힘만 가득 실어서 내지르는 마왕군의 검을 흘리거나 받아치며 비등하게 상대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압도적인 피지컬로 고블린들을 상대로 한 대인전에서 높은 승률을 보여 주던 오크ㆍ알파들이 오히려 손실을 늘려 가고 있었다.

“파훼법은 간단해. 더 큰 피지컬로 찍어 눌러. 마수들과 오크ㆍ알파의 위치를 바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는 문제의 해결책으로 마수병들과 오크ㆍ알파들의 위치를 바꾸라 지시했다.

고블린들이 경험과 기술로 육체적인 간극을 채우니, 그 간격을 더 벌려 버려서 균열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 자식들······! 우두머리가 있다. 그놈을 찾아!”

그리고 최고 족장은 조직적이고 즉각적으로 움직이는 마왕군의 움직임을 보고 현장에서 군단을 지휘하는 지휘관이 있을 거라 오해했다.

[분명 있지만, 부락 수준의 고블린은 감히 그분께 닿지 못할 것입니다.]

마왕은 그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듣고 최고 족장을 비웃었다. 단지 본인이 비웃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마왕은, 곧바로 마수 군단의 머리를 족장급 고블린들을 향해 틀게 만들었다.

***

[당초의 계산보다 손실이 더 발생했지만, 변수가 발견된 것 치고는 결과가 좋습니다.]

[계속해서 몰아치는 마수병들의 공격에 마침내 방어가 뚫렸습니다. 고블린 족장의 주술이 발현하기 직전에, 기간티스 스콜피온ㆍ알파의 독침이 그의 가슴을 꿰뚫습니다.]

[고블린들이 급격히 무너집니다. 공포에 질려 전투력이 떨어진 그들을 마수병들이 추격하여 단 하나도 살려두지 않고 사냥 중입니다.]

시험 공부를 위해 전공책을 펴들었지만 내 휴대폰에서는 계속해서 박스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진들도 함께였다.

참혹하면서도 통쾌한 승리가 엿보이는 그런 사진들. 나는 그 사진들을 봄과 동시에 박스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현장을 상상한다.

너무나 평온한 원룸 방 책상 앞과는 전혀 다른, 생과 사가 갈리는 치열한 전장. 살아남기 위한 생명들의 처절한 생존 경쟁.

패자는 잡아먹혀 양분이 되었고 승자는 그 양분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강해진다.

“······좋아.”

나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쓰다듬었다.

사실 아무리 상상해도 근본적으로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다. 박스디가 승리하고 더 성장하기 바라기 때문에 박스디를 돕고 응원하지만, 결국 내가 해 주는 건 몇 마디 거드는 게 전부다.

[오크ㆍ알파를 포함, 앞으로 늘어날 ‘마인병’들의 효율적인 전투를 위한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 네가 직접 배우는 것 말고는.”

게다가 박스디는 승리한 직후에도 기뻐하긴커녕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더 강해질 방법만 생각했다. 이 지경인데 강해지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 박스디는 분명 강해졌다.

“박스디, 너 내 휴대폰에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지?”

[그렇습니다. 스타더스트 D 10+에 제가 따로 가한 조작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왜 내 휴대폰이 지난 사흘간 전력이 단 1퍼센트도 달지 않았을까. 난 충전한 적도 없는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완충되어 있는 휴대폰을 보며 쓰게 웃었다. 원흉은 분명했다. 본인은 모른다고 답했지만, 박스디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다.

“뭔 공부냐,지금 상황에.”

책을 편 지 10분.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솔직히 다른 것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박스디가 변했고, 그런 박스디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란 것을 이제는 전부 다 믿었다. 조금 어처구니없지만 정말로 내 휴대폰 속 인공지능은 어딘가에서 마왕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박스디는 전쟁도 벌이고 성장도 하면서 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던 녀석이 그 짧은 시간에 어느새 여기까지 성장한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음?”

―속보, 런던 상공에 정체불명의 균열 발생

실시간 뉴스 하나가 내 눈에 보인 게 그때였다.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에 눌러보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야 니들 이거 봄?

―저거 뭐냐 ㅁㅊ

하지만 아무래도 단순한 기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기사가 뜬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인터넷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외신은 물론 단체방에 있는 친구들이나 대학 동기들도 이걸 보라며 난리였다.

―균열은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채 30분 만에 직경 10m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내부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며 영국 정부는 일대를 통제······.

나는 멍하니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역시 누군가의 장난이나 합성은 아니었다. 이미 국제적인 동영상 플랫폼 등에는 현장에서 찍어 올린 영상들이 조회수를 폭발적으로 늘려 갔다.

“······뭐지?”

불현듯 불안한 느낌을 감지한 나는 영상 속, 허공에 일렁이는 보라색 균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박스디가 보내오는 실감 나는 이세계의 사진들을 계속 봐서 그런가, 저 균열의 비현실적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동시에 불안했다.

마치 뭐가 튀어나올 것 같다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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