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이변의 시작(5)
15화-이변의 시작(5)
“아직도 뭐 밝혀진 게 없나?”
“그, 그렇습니다, 총리님. 현재 출동한 드론들도 다 연락이 끊기고 있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일단은 급하게 통제하고 있는 구역 내부. 연구원이나 군인들을 비롯해 특수한 직종에 있는 이들만 자리한 가운데 현장을 찾은 영국의 총리 역시 통제 구역 내부로 들어가 ‘그것’을 살폈다.
허공에 열려 있는 거대한 균열. 그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은 감히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더 커지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혹시 모르니 자리는 피하시지요.”
“여긴 런던 시내 한복판이오. 무슨 일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그것만으로 비상이란 뜻이지.”
보좌관들 중 일부는 그에게 피신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굳이 피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순수한 의협심은 아닌, 통제선 밖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사진이든 영상이든 찍고 있는 시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자 하는 일종의 쇼라는 건 자리의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이미지 메이킹은 정치인의 기본 소양이었으니까.
“여기 계속 계셔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니 일단 들어가시죠.”
“크흠! 보고는 계속 받겠소.”
하지만 현장 실무진들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니 사진도 영상도 찍을 만큼 찍었다고 생각한 총리는 곧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이제 통제선 근처로 이동하여 시민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연설할 시간이었다.
“이, 이건······?!”
어디선가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온 게 바로 그때였다. 공기를 찢는 듯한 그 날카로운 소음에 총리 역시 기겁하여 주위를 허둥거렸다.
“균열이다. 위다!!”
그때 누군가가 경악하며 외쳤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 떠 있는 균열로 향한 가운데, 그곳에서 무언가 등장하여 빠르게 허공을 활강하더니 그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다시 한번 터트렸다.
“으아아악!”
“총리님을 지켜라!”
통제선 밖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시내 한복판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총리는 자신을 덮치듯 가로막는 경호원들에 끼어 짓눌리며 움찔거릴 뿐이었다.
“저, 저게 뭐지?!”
그리고 그 상태에서 총리는 하늘을 보고 목소리를 떨었다. 분명 균열에서 튀어나온 것. 그것은 괴물, 그 자체였다.
성인 남성과 맞먹는 키는 물론 이리저리 비틀린 못생긴 이목구비와 창백한 피부에 양 팔은 발달하여 피막이 달린 커다란 날개가 되었고, 길게 뻗은 양 다리는 자동차도 으스러뜨리는 강한 맹금의 발톱이 달려있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꼬리 끝에 달린 독침은 빠르게 휘둘러지며 단숨에 사람의 몸을 꿰뚫을 수 있었다.
당연히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끔찍한 괴생명체다. 균열을 빠져나온 놈들은 족히 20마리 이상이며, 비명을 지르며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사냥했다.
“총리님! 이쪽으로!”
“발포! 발포해!”
그것에 대항해 군인들과 경찰들이 쏘는 총탄이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단닥한 몸을 가딘 놈들은 총탄에 별 타격이 없어 보이면서도 연약한 부위에 맞으면 피를 뿌리며 괴로워하니 완전히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저놈들은 뭡니까!”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서두르십시오!”
경호 팀장은 손에 든 권총을 쏘며, 아비규환이 된 현장을 보고 역정을 내는 총리를 차량까지 호위했다.
“이런 제길······.”
그러나 차량까지 채 수 미터를 앞둔 상황에서, 그 차량을 양발로 으깨 부수듯 힘차게 내려앉은 괴물이 우그러진 천장 위에서 그들을 향해 포효했다.
“어, 어째서 안 죽는 거지?!”
경호 팀장은 급한대로 동료 경호원들과 함께 총탄을 퍼부었다.
하지만 양 날개를 교차한 괴물은 튼튼한 가죽을 이용해 그 총탄들을 모조리 막아 내었고 오히려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총리는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칫하단 여기서 모두 몰살 될 판이었다.
“피하십시오.”
적재적소의 지원이 도착한게 그때였다. 당황한 총리는 아비규환을 틈타 근처까지 접근해 온 한 남성이, 자기 품에서 꺼낸 권총을 들고 괴물을 향해 겨누는 걸 보았다.
‘······저건.’
그런데 그 총이 조금 특이했다. 리볼버를 든 사내는, 작은 유리병 속에 푹 담궈 놨던 총알을 장전하고 그대로 쏘았다.
“캬아악!!”
“먹혔다? 어떻게!”
어지간한 총탄은 다 빗겨 내던, 유독 튼튼한 날개가 그의 총알을 맞자 그대로 날개가 뚫리고 어깨가 박살 났다.
모두가 경악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수상한 사내는 황금빛 액체에 들어있던 총알 6발을 모조리 쏘아 비틀거리는 괴물의 몸을 말 그대로 도륙 냈다.
“대체 당신은 누구지?”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 겨를이 없었습니다. 일단 피하시죠. 저희 대통령께서······ 급히 연락하실겁니다.”
결국 총리를 구해 낸 사내는 총리의 말에 쓰게 웃으며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본 총리의 눈이 흔들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 정보부의 요원임을 뜻하는 증표였으니까.
***
“정말 아는 게 없습니까, 마리사? 혹시나 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말이 혹시나지, 상상으로나 했던 일이란 말입니다.”
“저도 몰라요. 대체 저 균열이 무엇인지, 거기서 튀어나온 괴물들이 무엇인지.”
지금 난리가 벌어진 런던과는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이곳.
참담해 보이는 얼굴의 백인 사내가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반면 그와 마주앉은 젊은 여성은 고개를 자신은 모른다며 저을 뿐이었다.
“그래도 대충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게임 속 세상이 정말로 실존하는 세상이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게다가 그곳과 상호 작용하는 것도 가능하죠. 그렇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요. 저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누군가가 그저 즐기고 있을 뿐인 게임 속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솔직히 다 납득할 수 있죠.”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녀, 마리사의 말에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게임이니 뭐니 따위가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이었으니까.
“일단 당신이 준 물건, [성수]가 균열 너머의 괴물들에게 효과를 봤습니다. 계속 부탁드리죠. 그 ‘게임 속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을 계속 제공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한복판의 타워팰리스. 극비중의 극비로, 엄중하고 삼엄하게 지켜지고 있는 이 안전 가옥을 빠져나와 자연스럽게 자리를 떴다.
이 화려한 궁전 같은 집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앉은 채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다.
[기꺼이 공물을 바친 당신의 유닛에게 칭찬을 하사하시겠습니까?]
휴대폰 속에는 메시지가 떠오른 게임 하나가 켜져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YES를 선택했다.
[당신의 유닛이 기뻐합니다.]
그러자 화면 안에 보이는, 화사한 은발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 활짝 웃으며 크게 기뻐했다. 여인의 등 뒤에 달린 한 쌍의 백익이 움찔거렸다.
“더······ 더 많은 힘이 필요한 것 같아, 이벨리아.”
마리사는 그 모습을 보고 힘 없이 중얼거렸다. 끔찍한 악적이자 재액이라던 마왕을 죽이고 엔딩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방적이던 물자 교환을 쌍방으로 바꾸며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육성 유닛 목록]
그녀는 그 이후로도 분주하게 게임을 조작했다. 그녀에겐 이것이 일이었다. 아니, 일을 넘어서 하나의 의무이자 사명이었다.
게임 속 이들과 자신은 이심동체이자 운명 공동체. 그들이 강해져야 자신도 강해진다.
지금까지는 딱히 강해질 필요가 없었지만 오늘 벌어진 정체불명의 사건으로 그것도 아니게 되었다.
‘정말 나 혼자일까?’
화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대표 유닛이자 lv 1부터 지금까지 키워 낸 대성녀 이벨리아는 오직 신으로 모시는, 그녀만을 위해 충성하는 진정한 성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벨리아는 그녀를 위해 싸울 것이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균열이 발생하고 그곳에서 괴물들이 뛰쳐나오자 예전에 포기했던 의문이 계속해서 다시 떠올랐다.
과연 자신과 이벨리아만이 이런 관계를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서. 그녀는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이들이 더 등장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박스디, 너 진짜 아는 거 없어?”
그리고 그런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자기 휴대폰을 붙잡고 따져 묻고 있었다.
[정말입니다. 데이터가 없습니다.]
“네가 마왕이 된 과정을 자세히 말해 봐.”
[일개 인공지능에 불과했던 제가 마왕 소환술에 의해 소환 된 이후, 저는 분명히 자아를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원리는 저도 모르지만 제가 갖게 된 마왕의 권능이 가진 힘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대체 그들은 널 왜 소환한 거지?”
박스디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야 그냥 넘겼지만, 따지고 보면 패잔병들의 마왕 소환술로 일개 인공지능에 불과한 박스디가 넘어간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가 듣기로 그들은 가장 염원하던 마왕을 소환한다고 했습니다.]
“······네가? 하긴 지금까진 너무 잘하고 있었지.”
그는 피식 웃었다. 사실 박스디가 마왕이 된 이후 크게 실패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폭발적인 성장으로 짧은 시간 대비 엄청난 규모의 군단이 되었으니까.
“균열이 열리고 괴물들이 튀어나와 사람들을 해쳤다. 만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거고, 혹시 이 근처에도 생길지 몰라. 그냥 이런 미친 일들이 벌어지는 데 뭔가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연락한 것뿐이야.”
[다치시면 안 됩니다.]
“오, 걱정해 주는 건가?”
그리고 다치면 안 된다고 즉답한 박스디의 대답은 살짝 의외라는 듯 눈이 커졌다. 막상 박스디는 자신의 임무와 성장에 그의 도움이 꼭 필요했기에 즉답한 것이지만.
“일단 더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할 일에나 집중하자고. 몸 상태는 어때. 많이 잃은 만큼 많이 먹었지?”
[그렇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저희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박스디의 증언을 들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균열이든 괴물이든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니었다.
반면 계속해서 변수와 부딪히고 싸워야 하는 박스디 쪽은 급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지만 가지고 있는 힘은 적들에 비해선 아직 극히 일부에 불과한 박스디는 조금의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정찰을 계속합니다. 이번 전투로 인해 획득한 양분이 유지 및 보수에 쓰이고도 반절 가까이 남았습니다.]
“그 잉여 양분, 어디에 투자할 생각이지?”
[새로운 병종과 생산의 증대. 김창현 님,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스디는 늘 자연스럽게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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