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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6화 (16/200)

16화-대격변(1)

16화-대격변(1)

“문제라고? 문제가 뭔데.”

[제 연산력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안 그래도 심란한데 박스디는 세상 침통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순간 연산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건가?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연동이······.”

[더 이상 기계의 성능은 제 연산력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현재 제 연산력을 담당하는 것은 하이브 그 자체로, 하이브의 덩치가 커지면 당연히 제 연산력도 증가합니다. 하지만 현재 폭증하는 수요가 하이브의 연산력을 뛰어넘기 직전입니다.]

“일종의 과부하가 걸렸다는 건가.”

나는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 박스디의 말을 이해했다. 현재 박스디는 신경체 역할을 하는 나노들이 모여서 만든 하이브, 즉 둥지를 자신의 뇌처럼 쓰고 있다.

하지만 박스디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통제한다. 작은 일꾼 하나부터 전투를 치루는 전투병은 물론 병력을 생산하는 생산장과 소화장까지.

병사의 몸 하나 움직이는데 박스디의 연산이 필요하다. 마왕군 전체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필요하게 되는 연산량은 급증할게 뻔했다.

“스스로 생각해 본 해결 방법은?”

[과거, 효율을 위해 하이브에서 생산장과 소화장을 분리하였듯 이번에도 오직 연산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을 중추신경인 하이브에서 분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스스로 생각해 보진 않았느냐며 내가 물어보자 박스디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내어놓았다.

“뇌, 를 만들겠다고 들리는데.”

[그렇습니다. 획득한 데이터를 최대한 조합하여 가장 좋은 효율을 가진 뇌를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곧 뇌를 만들겠다는 소리였다. 딱히 이상한 판단은 아니었다. 하이브보다 더 발달한 신경체를, 그 무엇도 소화시키는 소화장과 버섯과 동물의 번식 방법을 차용한 생산장처럼 생물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니까.

[혹시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질문드립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연산 능력 자체를 키우는 것. 즉 뇌를 만드는 게 맞겠지. 하지만 조금 더 효율적으로 간다라······. 그 뇌, 만드는 김에 몇 개 더 만들면 안 되나?”

박스디는 최대한 많은 조언을 듣고 싶은 모양이기에 나는 일단 머리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었다.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일종의 보조 뇌를 만드는 것으로, 특히 현장에 나가 있는 병사들의 지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뇌를 만들자는 뜻이었다.

“뇌의 역할도 분담하는 거지. 그러면 부담이 더 줄어들 테니까. 현장의 뇌는 병력 지휘만 맡는 식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박스디는 불가능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거절도 하지 않는다. 그저 계산하고 예상하여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배우고 모방했다.

[기존의 병력 중 일부에 뇌를 심어 현장 지휘 개체로 활용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그저 믿어 줄 뿐이다. 박스디는 어딘지도 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싸운다.

본래 나는 그것을 재미난 유흥으로 즐기고 있었을 뿐. 하지만 세상은 갑작스레 변하고 있었다.

―속보, 경기도에 균열 등장······ 세계 8번째.

나는 뉴스 속보를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변수는 지금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게다가 단순한 변수도 아니었다. 무려 사람을 해치는 끔찍한 괴물들을 뱉어 내는 변수였다.

그 괴물들의 모양새는 박스디가 보내 주는 마계의 마수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기괴하다.

문득, 박스디가 보낸 사진에 찍혀 있던 고블린들의 경악한 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박스디의 마왕군을 보고 그렇게 놀란 것이다.

그 고블린들에 나는 나를 비롯한 지구인들을 투영해 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나타난 이형의 적들에 경악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런 모습들.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 이 세상의 박스디는 누구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

“북쪽 숲의 부족들이 연락이 끊겼다?”

“크륵, 그렇, 다 족장. 사냥에서도, 마주치지 못했다.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부락을 이끄는 고블린 족장은 보고하는 전사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도 못한 요상한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부름에 응하기 싫어 우리를 무시하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교역을 위해서 우리끼리의 연대는 필수적인데.’

그는 얼굴을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반질거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본래 지금 연락이 끊긴 부족을 포함해 일대의 ‘그린 스킨’은 일종의 연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연대는 같은 초록색 피부를 가진 여러 고블린 부족들이 뭉쳐 만들어진 연합체로, 일대는 물론 고블린종 전체의 지배자가 된 고블린 왕 안드라스와도 중요한 관계를 맺은 하나의 세력이다.

열등하던 이전에야 제대로 뭉치지도 못하고 그저 상위 마족들의 소모품으로 쓰이던 게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들이 없다면 더 이상 북쪽 숲에서 약초를 구할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없다면 외부의 물자를 구할 수 없다. 강철도, 씨받이도! 절대 우리를 배신할 수 있을 리가······.”

“키이이! 라쿠 족장! 큰일!”

의문에 빠진 그에게 다급한 소식이 더 들려온 게 그때였다. 그는 급히 늑대를 타고 도착한 타 부족의 사자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게 무슨 소리냐? 북쪽 숲 부족들이 전멸한 것 같다니?!”

“그 말, 사실. 직접 확인한 것. 생존자, 없음.”

사자는 북쪽 숲 부족들이 전멸했으며 박살난 집기등이 남아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고 했지만 핏자국만 가득할 뿐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크게 당황한 족장, 라쿠는 믿을 수 없어 눈만 꿈벅거렸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기 부하들의 증언도 있었으니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부락 2개가, 수백에 달하는 고블린들이 증발했다는 뜻이었다.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아느냐?!”

“모름, 다만 우리 족장은, 흔적들을 보고 큰 전쟁이 있었다고 말했음.”

“전쟁이라고?”

라쿠의 얼굴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이 일대에 이제 그들과 전쟁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과거에는 무리를 짓는 마수들과도 사활을 건 다툼을 했던 것이 고블린들이지만, 지금은 이제 마수 따위는 그들과 전쟁을 벌일 급이 되지 못했다.

순간 라쿠의 머리에 몇몇 부족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다른 부족들이 굳이 같은 고블린과 싸울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세력? 아니면······.’

곁에 있는 다른 고블린들보다는 빠르게 돌아가는 라쿠의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빠르게 돌았다.

그 과정에서 이웃한 다른 영주의 영지나, 영주 그 자체인 고블린 왕에게도 의심의 화살이 돌아갔다.

“키힛, 다른 족장들에게 연락?”

“연락해라. 반드시 진실을 알아야겠다.”

“왕, 에게도 연락?”

“······아니, 그들에게는 이야기하지 마라.”

족장 라쿠는 부하들을 시켜 주변 부족들에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고블린 왕에게로의 연락은 굳이 하지 않았다.

라쿠는 고블린 왕을 경계했다.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마왕을 죽여, 다른 고블린들도 해방시킨 영웅이지만 그뿐이었다.

지금도 그들을 아래로 보며 언제든 부릴 수 있는 일꾼 취급하는 판이다. 그덕에 어떤 명분을 주든 이 일대에 개입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괜히 소문이 돌지 않게 빠르게 해결하는 수밖에.’

그래서 라쿠는 주변 부족들을 소집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자신들 선에서 알아보고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고블린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누군가가 자신들의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정말 조금도 쉬지 않고 정찰병들을 운용한 마왕은 이미 고블린 부락들과 그들의 연결점을 깨닫고 철저히 움직임을 분석하는 중이었다.

“고블린들이 서로 연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부족들이 모인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족들끼리 교류하며 물자와 자원을 거래하고, 그렇게 모인 자원은 다른 지역으로까지 흘러갑니다. 추정되는 규모만 1만 이상. 심지어 최근 계속 증식하고 있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마왕은 자신이 알아낸 것을 보고했다. 지금까지 관찰한 움직임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지만 상당히 정확한 분석이었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이 최근 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전멸시킨 두 개 부락 역시 그들의 일부였으며, 전멸 사실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놈들이 하나로 뭉쳐서 수색하기 시작한다면 네 정체를 알아내는 건 금방이겠지. 차라리 먼저 공격해서 최대한 줄여 놓는 게 낫지 않나?”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그는 마왕에게 먼저 움직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고블린 부족들이 이변을 감지하고 하나로 뭉쳐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는 걸 두고 보느니 뭉치기 전에 먼저 공격해서 최대한 힘을 빼 놓는 것이 목적이었다.

“최대한 운용 가능한 병력이 지금 얼마지?”

[단순 계산으로 3천. 그중 전투병은 1천이며 총력전에 들어간다면 3배의 병력을 집중 생산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결과로만 보면 1천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는 마왕이 보내 준, 하늘을 나는 정찰병의 시선으로 본 일대의 사진들을 보며 서북쪽과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부락들을 가리켰다.

“동시 타격하는 게 어때. 우리는 놈들에 대해 알아. 하지만 놈들은 우리에 대해 모르지. 놈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혼란에 빠질수록 우리에겐 더 유리해져.”

[맞습니다.]

마왕은 그의 계획을 듣고 늘 그렇듯 계산에 들어갔다. 가진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 성공확률을 계산하고 변수를 체크한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계산은 금방 끝난다. 마계의 척박한 북쪽에 치우친 고블린들의 영토에서도, 유독 북쪽에 모여있는 그린 스킨들의 부족 연합과의 전쟁이 계획되는 순간이었다.

[병력을 나누겠습니다. 적의 규모와 근처 부족과의 연대, 그리고 저희의 정체를 최대한 숨겨 혼동을 주기 위한 최적의 구성으로.]

마왕은 휴면 상태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을 일깨웠다. 꾸준히,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는 마왕군은 순수 전투를 위해 생산된 전투병만 천 단위를 넘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 마왕군은 특별한 고블린들을 제외하면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고블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생물체. 덩치 큰 마수형 마왕군 하나를 잡으려면 강철로 무장한 고블린 대여섯이 필요하니 그들이 뭉치지만 않는다면 수적인 우위도 사실상 마왕군이 가졌다.

[현재 저희가 공격하고자 하는 이들은 ‘진짜’가 아닙니다. 마왕을 배신하고 사악한 힘을 손에 넣은 배신자의 세력은, 현재 왕으로 추대되어 영지 중앙에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강해지는 수밖에. 더 싸우고, 더 먹어치워서.”

이 모든 과정은 마왕에게는 하나의 관문에 불과했다. 저 고블린들은 결국 자신의 신념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 먹어치울 양분.

그 양분을 바탕으로 마왕군은 더욱 진화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그 진화와 성장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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