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2화 (22/200)

22화-대격변(7)

22화-대격변(7)

‘이게 대체 무슨?’

나는 순간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멀쩡히 잘 굴러가던, 평소와 같았던 일상이 파괴된 이 순간을.

하지만 현실은 명확하다. 지금 나는 수업을 듣기 위해 대기하다 떨어진 대피 명령에 대피하던 중 괴물에게 습격당했다.

박스디와 마찬가지로 상상도 착각도 아니다. 엄연히 실존하는 괴물이다. 그리고 놈은 지금, 어째서인지 나를 죽이려 한다.

어째서인지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돕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존재에게 도움을 외치고 싶었다.

“으아악!”

그 순간 거센 충격이 터져나오며 나까지 휩쓸었다. 눈을 질끈 감고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괴물에게 죽임당하는 일은 없었다.

“야, 너 괜찮냐?”

나와 마찬가지로 패닉에 빠진 친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흔들었다.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도블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저게 뭐야.”

“몰라, 미친! 빨리 튀자!”

나는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친구가 팔을 잡아끄는 그 순간에도, 나는 저 희뿌연 괴물과 대놓고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놈들은 특별한 괴물이었습니다. 총알도, 포탄도 통하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화염이나 충격파는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습니다만.”

“40명 가량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그날 저녁,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유언비어를 단속하기 위해 생중계로 기자 회견을 가졌다.

군인들을 포함 사상자 40여 명. 그동안 나름 잘 대비해 온 게이트에서 기어 나오는 괴물들에 의해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이번에 발생한 사고는 적들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었습니다. 아군의 화력이나 대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사시를 대비한 새로운 매뉴얼을 구축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의 대변인은 괴물들을 처리하지 못한 군을 옹호했다. 적들에게 기존의 화기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이것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다.

“대체 총도 포탄도 통하지 않던 괴물들을 처리한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그것을 대놓고 질문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대변인의 입으로 향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오늘 ‘그들 중 하나’에게 목숨을 구원 받은 게 바로 나였다.

하지만 대변인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논의 중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대체 어떻게 싸웠는지 전부 알아본 이후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정부는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당장은 정보를 감추었다. 그러자 당연히 불만과 함께 아우성이 터져나왔고 나는 그냥 거기서 방송을 껐다.

인터넷도 난리였다. 특출난 무력을 갖추고 괴물들과 싸우는 특별한 사람들의 등장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니, 딱히. 그냥 평범하고 가벼운 일일 뿐이야.”

박스디가 뭔가 눈치라도 챈듯 먼저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굳이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신경만 쓰이지 의미는 없으니까.

“준비는 잘 돼 가는 것 같은데.”

[놈들이 행군하고 있습니다. 그 본대를 유인하여, 미리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끌어드리겠습니다.]

이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화면 속에서 무수한 숫자의 군단병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마치 석상처럼 굳어서는 양분을 최대한 비축하며 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박스디가 보여 주는 마왕군의 위세는 확실히 대단했다. 저 압도적인 군세가 내 곁에도 있다면, 어쩌면 오늘 같은 일이 또 벌어져도 안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힘 싸움으로 한 번에 밀어 버릴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방에서 공격하여, 그들의 주력을 단번에 부수고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기본적인 계획입니다.]

박스디는 강한 돌진력과 그에 걸맞는 파괴력을 가진 대형 병사들을 군데군데 섞어두어 적들의 진형을 부수고 난전을 유도할 생각이었다.

적들은 분명 하나의 군대. 하나로 뭉치면 뭉칠수록 강하니 처음부터 뭉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상되는 전투 시기는?”

[그들의 진군 경로가 그대로라 가정한다면 첫 조우에 11시간을 예상합니다. 그들에게 미끼를 던져 놓고, 전장으로 유인할 것입니다]

“11시간?”

나는 슬쩍 달력을 보았다. 금방 진압되긴 했다지만 오늘 그 난리가 나고 사상자까지 나왔는데 학교가 멀쩡히 굴러갈 리가 없다.

11시간 뒤면 아침나절이긴 하지만, 계속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

“마신께서 신탁을 내리신 겁니까?”

[비슷합니다. 제가 구상하고 계산한 계획을 그분께서도 좋다고 하셨으니까.]

“오오······.”

유리아는 그가 마왕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턱이 없다. 그저 마왕의 말을 바탕으로 몇 가지 유추하는 게 전부였다.

덕분에 유리아는 마왕이 언급한 그의 지시나 그의 계획등을 들으며 그가 아직 미숙한 마왕을 진두지휘하여 여기까지 성장시킨 뛰어난 지략가이자 설계자라고 오해했다.

[유리아, 당신은 중심부에 대기하세요. 혹시라도 급한 힘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곳으로 파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왕군의 일원이 된 유리아 역시 임무를 하달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임무를 받고 그녀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살아남고, 복수해야 해.’

마왕과의 접촉은 우연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 이후의 행보는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그녀는 힘을, 복수를 원했다. 그것은 마왕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운명을 걷고자 하는 두 존재는 서로를 위해 하나가 되어 싸우기로 결정했다.

마왕에게 마계의 영주들은 치가 떨리는 배신자들이며 유리아에게는 자신의 원수들과 편을 먹은 동맹이다. 증오심을 불태울 적절한 대상이란 뜻이었다.

‘전공이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싸우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제 마왕에 대해 잘 알게 된 유리아는 마왕이 어떤 존재인지 파악한 상태다. 마왕은 철저하고 냉정하다. 오직 효율만으로 이 거대한 군단을 지휘하며, 비효율적인 부분은 가차없이 버리거나 개조했다.

그러니 마왕에게 쓸모를 증명하고 그만큼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성과가 반드시 필요했다.

[놈들이 사정권에 돌입했습니다.]

거의 동시에 행군하던 적들이 근접해 왔다. 유리아에게는 이 전쟁이 기회였기에, 그녀는 어서 움직이길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대기했다.

[놈들이 완전히 선 안으로 넘어온바, 이제 유인 부대를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상대의 움직임을 정찰하던 마왕은, 계산대로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인 부대 행동 개시.]

“음?”

본대와는 조금 더 빠르게 행동하며 고블린 군대의 정찰병들을 지휘하는 정찰대장은, 습격을 당해 초토화된 부락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 멀리서 후다닥 도망가는 것 같은 작달막한 형체들. 순간 정찰대장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갈색오크! 대체 저놈들이 어째서?!’

비록 거리가 좀 멀고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오크종 중 하나인 갈색오크가 분명했다.

‘설마 저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인가!’

정찰대장은 이를 갈았다. 같은 마족이라지만 사실 결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마왕의 지배하에서 마족의 주류 중 하나였던 오크종에게 고블린종은 괴롭히기 좋은 호구들이었을 뿐.

배신 이후에도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이제 더 이상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은 없게 조약을 맺었지만, 정찰대장은 그것이 말로만 정해진 규칙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간다! 사악한 오크 놈들이 기어코 일을 저지른 게 뻔하다!”

그는 정찰을 완료했다 생각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계획은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근처 나무 위에 앉아있던 작은 새 한 마리가 전부 다 지켜보고 있었다. 보통 새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온갖 생물들의 시신경을 조합해 시각을 극대화한 조금 특별한 새였다.

“설마 오크 놈들이! 이 잡것들이 감히!”

“그럴 리가. 갈색오크들이 어째서 이곳까지.”

정찰대장의 보고는 단번에 본대의 지휘부까지 전달되었다.

부족 연합을 이끄는 부족장 라쿠는 분기탱천하여 길길이 날뛰었지만, 중앙에서 파견된 고블린 기사들의 단장 로치는 당황했다.

영주들끼리 맺은 영토 불가침 조약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가 이상하오. 오크 놈들은 오만하고 멍청하지! 또한 웃는 낯으로 칼을 찌를 수 있는 뻔뻔한 놈들이오. 우릴 배신한 게 틀림없소!”

“아무리 그래도······ 하.”

하지만 로치는 차마 라쿠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직접 본 정찰병의 말을 믿는 게 얼굴도 모를 상대를 밑는 것보다는 낫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왕께서 명령하셔야 하는데.”

“그러다 놈들이 경계를 넘어서 도망치면! 최대한 빨리 진군해서 최소한 우리 영토를 침범한 놈들만이라도 잡아야 하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일단 우리 영역 내부에 침투한 놈들만이라도 잡아야겠군.”

결국 라쿠와 로치는 영역 내에 들어 온 적들만이라도 잡자고 합의했다.

“서둘러라!”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더 서둘러야 했다. 수천에 달하는 고블린 군단이 크게 3개의 덩어리로 나누어져 행군 속도를 높였다.

“저기! 저놈들이다!”

최선두가 마침내 적들을 발견한 것이 그날 저녁이었다. 병사들을 지휘하던 라쿠는 저 멀리 보이는 평원에서, 한 무리의 오크들이 숲을 향해 꽁무니를 빼는 모습을 보고 이를 갈았다.

“쫓을 것인가?”

“당연한 소리를! 전군 돌격! 저 숲에 놈들이 숨어있을 것이다! 고블린의 무서움을 보여 줘라!”

라쿠는 그 즉시 병력들에 돌격 명령을 내렸다. 비록 지쳐 있긴 했지만 적은 기껏해야 수백에 불과할 것이다.

고블린에게도 마력이 허락된 이 시대, 라쿠는 오크와 고블린 하나의 전투력 격차는 그리 크지 않다고 믿고 있었다.

“가자!”

라쿠는 심지어 본인도 직접 늑대에 올라타서 전장으로 나섰다. 분명 육체적으로 더 앞서있는 오크들을 수월하게 상대하기 위하서는 자신이 익힌 주술의 힘이 필요할 테니까.

“으응?!”

하지만, 그렇게 수천의 군세와 함께 전방으로 향한 라쿠가 돌입한 숲 속에서 본것은 짜증나는 오크들이 아니었다.

“이, 이것들은 뭐냐.”

아니 분명 오크들도 있기는 했다. 단지 그 오크들마저도 보통과는 조금 달랐을 뿐. 텅 빈 눈동자와 조금의 감정도 보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석상 같았다.

게다가 백여 마리에 달하는 오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사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다양한 마수의 생김새를 닮았으나 기형적인 뒤틀림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마치 기암괴석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어둑한 숲에 내려앉은 뿌연 안개와 시너지를 일으켜 그 괴이한 모습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압박감이 고블린들을 짓눌렀다.

“키, 키이······.”

라쿠조차 마른침을 삼킬 정도니 일반 병사들은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벌써부터 허둥거리고 혼란에 빠졌다.

[전군.]

그리고 그 순간. 우두커니 서 있던 이 검은 갑주의 괴물들이 휴면 상태에서 깨어났다.

[공격.]

동시에 불빛이 들어오듯 서서히 일렁이는 붉은 안광이 갑주의 틈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