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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5화 (25/200)

25화-대격변(10)

25화-대격변(10)

갑작스럽게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 모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라냐? 왜 하루아침에 세상이 헌터물로 변한 거냐고.”

“그걸 나한테 말해 봤자 난 모르지.”

나는 친구의 말에 피식 웃었다. 내로라하는 세계의 권력자들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 헛소리들이나 해대는데 일개 학생인 내가 뭐 아는 게 있을 리가.

“그래도 당장 망할 것 럼 굴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야.”

“······그렇지. 지금 당장은.”

군대가 막지 못한, 그 몸이 영체로 된 특별한 괴물들이 처음 등장해 사람들을 해칠 때만 해도 혼돈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종말론자들이 날뛰기 시작하고 사람들 역시 아는 게 전혀 없는 정부의 모습에 크게 불안에 떨었다.

그런 혼돈을 막아 준 것이 그들이었다. 자신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며, 괴물들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부여받았다는 각성자들.

우리나라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었다. 전 세계에 골고루 등장한 각성자들은 인간을 초월한 힘과 특수한 이능력으로 균열을 열고 나오는 괴물들과 싸웠다.

“대체 그 시스템이라는 게 뭐지? 이수연이 인터뷰에서 분명 그렇게 말했잖아. 자신들은 시스템이 부여해 주는 임무들을 클리어하고 힘을 강화할 수 있다고. 그게 뭐야. 무슨······ 무슨 게임 같잖아.”

“우리가 알 방법은 없지.”

친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각성자 이수연. 그녀는 우리와 동갑인 젊은 여성이다. 직전까지는 평범한 인턴 사원이었다는 그녀는 시스템의 선택을 받아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가 언급한 시스템의 기능들은 실로 놀랍다. 육체의 능력치를 올려 주고, 보상을 걸고 임무를 부여하고, 던전이란 곳에서 적들과 싸우게도 한다.

그리고 결국 그 목적은 각성자들의 성장이니 친구의 말대로 정말 게임 같은 요소들, 그 탓에 괴물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을 각성시킨 시스템을 괴물들과 한패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와는 관련 없는 일이겠지.’

괜히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최근 세상에 불어닥친 대격변이 나와, 그리고 내 휴대폰 속 존재와는 관련 없다고 믿었다.

“학교 다시 정상화되려면 다음 주는 되야 한다니까, 그때 보자.”

“그래.”

친구와의 통화는 거기서 끝났다. 말대로 당분간은 집에 있을 팔자였다. 여기저기 파손되고 사람도 상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학교가 일주일간 아예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들었지, 박스디?”

[각성자들의 등장과 함께하는 시스템이 마치 그들을 육성하려는 것 같다라는 추측은 상당히 흥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나의 통화는 끝나지 않았다. 친구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그 내용을 듣고 있던 박스디가 답을 해 왔다.

[현재 고블린 기사단장 로치를 심문하여 획득한 정보들에서, 김창현 님이 언급하신 ‘게임 시스템’과 유사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으······ 어쩔 수 없지. 화면 보여 줘.”

이어지는 박스디의 보고에 질색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박스디에게 화면을 보여 달라 요청했다. 곧 전환된 화면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사로잡았던 적 고블린 기사를 심문하고 있는 박스디의 모습이었다.

“크으윽······. 끄아아아악!!”

동시에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서둘러 휴대폰 볼륨을 낮출 정도였다.

박스디가 진행하고 있는 ‘심문’. 그것은 곧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빼내겠다는 뜻으로, 박스디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저 고블린이 원하는 답을 토설할 때까지 고문했다.

“네게 저 아이디어를 제공한게 유리아라고?”

[그렇습니다. 유리아가 제게 포로로 잡은 적에게서 정보를 캐낼 수 있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구석에 있는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박스디에게 고문 행위에 대해 알려준 주제에 본인도 박스디의 무차별하고 무자비한 고문에 질려 버려 자리를 피한 것이다.

“다, 다 말했다. 다 말했다! 진짜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는 성녀 측과 모든 연결이 끊어졌다!”

[정말 그게 전부입니까?]

“진짜라고! 아아아악!!”

[심박, 뇌파, 신경의 움직임 모두 진실을 토설할 때와 일치. 진실로 판정하겠습니다.]

박스디는 하이브 내부에서, 촉수에 휘감겨 있는 고블린의 육체를 읽어 내어 고문 행위 동안 쌓은 데이터를 이용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가려내는 탐지까지 실시했다.

눈까지 촉수에 가려져 있던 고블린은 온몸을 경련하며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었지만, 박스디는 각성 약물이라며 신경계에 끔찍한 고통을 가하는 약물을 주입해 강제로 의식을 깨웠다.

무섭긴 무섭다. 고문을 실행하는 대상이 인공지능이라는 점이 더욱더.

[현재까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빛의 신의 가호를 받은 성녀 이벨리아는 신의 힘을 주변에 나누어 주고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심지어 그 힘은 마계의 배신자들마저 유혹하였고, 끝내 마왕을 배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이······ 레벨이라고.”

박스디의 보고를 받는 나는 침음했다. 기적 그 자체라던 성녀의 힘. 그것은 어째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경험치를 쌓고 레벨이 오르면 강해진다. 심지어 이것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성녀가 ‘뿌리고’ 다녔던 힘은 바로 이것이었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레벨을 올려서 강해지는 것 보다도, 저희는 학습과 진화를 통해 더 빠르고 쉽게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냥 조금 근본적인 생각을 해 본 것뿐이지.”

내 목소리가 좀 어두워서 오해를 한 것인지 박스디가 먼저 나서서 자신을 믿으라고 어필했다. 그 말에 쓰게 웃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박스디를 믿는다. 그 성장 속도도, 전투력도 모두 다.

“지금까지 들었던 증언들로 생각해 봐. 성녀 이벨리아가, 아니, 빛의 신이 해 왔던 일들. 캐릭터를 육성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계를 클리어해 가고······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아. 그리고 결국 마왕을 죽이고 목적을 이루었지.”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게임 속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의미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솔직히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은 이상하진 않으니까.”

고블린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현재 인간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발생했다고 했다. 성녀가,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던가. 아마 그것도 그녀가 주장하는 신의 뜻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 설령 그렇다 쳐도 바뀌는 건 없잖아.”

나는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만약 정말 박스디가 있는 저 세상이 누군가의 게임 속이라면 박스디와 마왕군은 치명적인 버그 그 자체. 그렇다면 서로 충돌하는 걸 피하는 건 불가능.

박스디 역시 버그로 태어난 이상 철저히 이 세상을 먹어치울 것이다. 싸울 수밖에 없고, 짓밟을 수밖에 없다.

***

“여신이시여. 감히 저희의 뜻을 거스르는 놈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그 버러지들을 죽여 세상에 올바른 빛이 내려오게 만들겠습니다.”

성녀 이벨리아. 백익을 펼치며 땅에 내려앉은 그녀는 대신전의 제단에 손에 들고 온 ‘그것들’을 내던지고 경건히 무릎을 꿇어 기도를 올렸다.

그녀가 던진 것들은 모두 사람의 머리였다. 그것도 굉장히 끔찍한 표정을 지으며 절단된 머리다. 그들 모두, 그녀가 선포한 전쟁에 반대하는 적국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거슬리는 장애물들이 많지만······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로 된 돔의 천장 통해 하늘을 우러러보는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신성의 빛]

“아아······ 여신이시여.”

그러자 마치 그녀의 기도에 답이라도 한다는 듯, 일순간 하늘에서 쏟아진 황금빛 빛이 그녀의 몸에 들어오며 그녀의 힘을 강화시켰다.

[대성녀 이벨리아ㆍ4차 각성ㆍlv 130]

이번 전쟁을 통해 130레벨을 달성한 그녀는 다시 한번 여신의 가호를 받아 한 단계 더 진화한다.

희열과 기쁨으로 몸을 떤 그녀의 몸이 찬란한 황금빛과 함께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더니 그 등에서 빛나는 백익이 한 쌍 더 튀어 나왔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라 엎드려 그 경건함과 신성함에 두려워하고 경외를 보낼, 실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이 대신전의 제단 앞을 가득 채웠다.

“······.”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액정 너머로 바라보고 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동안 모은 재화를 투자하여 이벨리아의 4차 각성을 성공시킨 마리사 가렛. 자신의 집에 있던 마리사는, 자신이 보유한 유닛들 중 가장 강력한 유닛인 이벨리아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표정이 좋군요. ‘일’은 잘 풀린 겁니까?”

“이벨리아는 지지 않아요. 당연히 잘 끝났죠.”

“그거 다행이군요.”

휴대폰을 집어넣은 마리사는 기다리고 있던 사내를 만났다. 평소에도 그녀의 케어를 맡고 있는, 정부에서 파견된 그는 지금은 꽤 급해 보였다.

“무슨 일 있나요? 최근 일이 잘 안 풀린다던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설령 트러블이 있다 쳐도 저희는 사정이 좀 낫지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마리사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 대답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애초에 실제로도 그들은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마리사의 존재를 통해 이미 이변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균열과 괴물, 각성자들에 대응하는 것 역시 그녀의 사례를 이용해 빠르게 적응하고 움직였다.

“당신들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이 지구가, 이벨리아가 살고 있는 크리스티아 대륙 같은 게임의 배경이 되었다고?”

“뭐,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가능성이죠.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각성자들의 증언이 나올수록 오히려 더 가능성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꽤 충격적인 내용인데도 그는 마리사의 추측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게임이 되었다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플레이어의 유닛들은 당연히······.”

“각성자들이겠지요. 적은 균열에서 나오는 괴물들일 것이고. 그렇다면 저희들은 당연히 그 플레이어의 아군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아예 거기서 더 나아가서 ‘시스템’을 조종하는 미지의 플레이어가 있음을 확신하고 그 존재와 동맹을 맺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마리사는 그것을 듣고 살짝 움찔했다. 만약 게임 초기에 이벨리아 주변의 인물들이 대뜸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왔다면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 조금 신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그녀는 그들을 말리려 했다. 플레이어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오는지 이미 본인은 전부 겪었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상부는 작전 실행을 결단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결정을 내렸고, 행동에 나섰다. 게임 속에서야 빛의 여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전지전능한 존재지만 현실에서는 일개 여인에 불과한 마리사로서는 차마 그들을 강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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