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변수 덩어리(1)
26화-변수 덩어리(1)
[정보는 얻을 만큼 얻었습니다. 이제 다시 활동을 개시합니다]
“우리 정체가 더 퍼지기 전에, 그들이 우리를 더 경계하기 전에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지.”
계속되는 고문, 고블린 기사단장은 정말로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다 토설했다. 그리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소화장으로 직행해 양분과 마력이 되었다.
[과연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농도의 마력을 품고 있습니다.]
박스디는 특별한 힘을 지닌 고블린 단장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은 마력을 가지고 있다 언급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우리는 그 마력들을 하이브에 쌓아두기만 할 뿐 활용할 방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
[마력을 담을 수 있는 육체를 만들어 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제 능력 밖에 있는 일입니다.]
박스디 본인도 기껏 마법을 쓸 줄 알게 되었는데 막상 그것을 활용할 육체를 만들지 못하게 된 게 답답한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몇 십 마리 수준이었고, 레벨을 올린 적은 하나뿐이었지. 하지만 우리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고블린 왕 안드라스가 다스리는 이들은 수천이 넘어가고, 레벨을 올린 심복들도 다수라며.”
[지금 당장은, 마력의 도움 없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성장과 진화에 특화된 본인의 능력에 꽤 자부심이 있던 박스디는 일단 마력을 쓰지 않고 그들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 말했다.
나야 아는 게 적으니 그냥 지켜볼 뿐이지만 과연 그것이 쉬울지, 그것은 장담할 수 없었다.
“유리아는 본래 마법사였고, 덕분에 원래 마력을 다룰 줄 알았지만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지. 이런 이들을 늘리면 어때.”
[······.]
함께 머리를 굴리던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 내었다.
마왕군이 정말로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비록 단 한 개체긴 하지만 마력을, 마법을 다룰 수 있는 개체가 있었다.
본래 인간이었다가 우리에게 합류한 마법사 유리아. 만약 그녀 같은 전향자들을 이용한다면 이론상 마왕군도 마력을 쓸 수 있는 다수의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다.
[그건 싫습니다.]
“엉?”
그러나 이어지는 박스디의 대답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
[유리아와 같이 자신의 자아를 가진 유닛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왕은 자기 혼자 중얼거렸다. 그에게는 효율이니 통제의 용이성이니 떠들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단지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몰라서 혼동이 올 정도였다.
[관심이······ 분산됩니다.]
마왕은 현재 양분을 보충하면서 쉬고 있는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유리아가 합류한 이후 얻은 지식과 상식 등이 적지 않다.
마법에 대한 지식은 물론 한때 인간이었던 그녀는 마왕이 미처 파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알려 줄 수 있었다.
그 덕분인가, 그는 유리아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녀가 하는 이세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둘 사이를 연결해 주는 마왕에겐 어째서인지 그것이 자꾸 신경 쓰였다. 분명 아무것도 아닌 행위일 텐데도.
그 내면에는, 두 ‘인간의’ 소통에 근본적으로 그 본질이 다른 자신이 소외받는다는 불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해서, 유리아 당신에게 직접 묻고자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
마왕은 그것을 대놓고 유리아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에게 물을 수는 없었으니까.
휴식을 취하고 일어난 그녀는, 상식을 벗어난 마왕의 태도에 순간 사고가 정지해 얼어 버렸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런 감정을 느꼈다 한들 그것을 왜 당사자인 자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인지.
‘마왕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유리아는 가까스로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가 보기에 마왕은 굉장히 특이한 존재였다. 인간을 떠나서 다른 마족들과도 상이했다. 잔혹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인형 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지금 같은 순간에는 자신의 감정을 대놓고 티내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그 추측이 맞습니다. 나는 감정을 학습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아, 감정을 학습······.”
이해하기 힘들어도 대충 융통성을 발휘해 억지로 이해하려 애썼다. 그게 인간이 가진 장점 중 하나였으니까.
“어, 아무래도 마왕께서 느끼신 감정은 그······ 질투 같습니다.”
‘이게 맞아?’
당황한 유리아는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는 상태로 일단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왕에게 직접 들은 마왕의 감정은 자신과 마신 사이를 오해한 것에서 비롯한 질투가 틀림없었으니까.
[질투라. 별로 쓸모 있는 감정은 아닙니다.]
“보통 감정에 쓸모를 따지진 않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고 많은 데이터와 경험을 학습할수록 자신이 여러 감정들을 하나씩 일깨워 간다는 것을 알고 있던 마왕은 질투라는 감정에는 시큰둥했다. 본능적으로 분석하여 감정의 쓸모를 찾아 본 탓이었다.
“아무튼 마왕께서 신경 쓰이시는 것은 단순한 감정에 불과하니 만약 마왕께서 결단을 내리신다면, 무시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효율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지만, 과연 이것을 무시하고 계속 신경 쓰는 것이 효율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유리아는 마왕에게 감정은 무시해도 된다며 자신 같은 ‘전향자’들을 만드는 것에 긍정적인 의견을 표출했지만 마왕은 달랐다. 감정에 소모되는 에너지마저 효율을 계산한 것이다.
[기각.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끙······.”
‘정중하고 철두철미한 어른 같은 어린아이와 대화하는 것 같네.’
결국 전향자 생산 계획을 기각한 마왕의 태도에 유리아는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그분과의 연결을 더 활성화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유리아는 화제를 돌렸다. 이것은 전쟁 이전부터 서로 꾸준하게 대화하던 주제 중 하나였다.
바로 그와의 연결을 더욱 넓히는 것으로, 그저 서로의 목소리나 전달하던 수준에서 지금은 실시간으로 서로의 모습을 보고 살필 수 있다.
그러나 마왕도, 심지어 그 역시 이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까?]
마왕은 이미 그녀가 알려 준 모든 마법을 마스터한 자신이 모르는 것을 그녀가 알아냈다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저도 가능한지 아닌지 모릅니다. 일단 지금 제가 가진 마력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고, 기존의 마법적 지식으로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한 그런 차원의 이론이니까. 하지만, 저는 지난번 전투에 마왕께서 알려주신 마법의 진정한 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린 유리아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더니, 몸이 떨렸다. 아직도 그녀는 그 순간의 희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힘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꿨을 뿐이지만 기존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자신의 힘으로 적들을 몰아내던 그 순간을.
“이 세상에 오직 저희만이 가능한 새로운 체계의 마법. 연속 연산식을 사용한다면, 기존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마법들을 창조해 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게 알려 주십시오. 곧바로 적용하겠습니다.]
마왕은 그 즉시 유리아에게 그녀가 고안한 새로운 마법을 학습했다. 마왕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이 바로 학습.
마왕은 그 무엇이든 배울 수 있었다. 상대의 강점을 찾아내서 학습하고 그것을 역이용하거나 역설계해서 파훼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술.
유리아가 새롭게 눈뜬 이후 끙끙거리며 창조한 새로운 마법식들도 마왕은 결국 찰나의 순간 스캔하여 학습하고 완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
유리아는 새삼 그 학습 속도에 놀라고 이내 쓰게 웃었다. 이런 식이어서야 한 마법사가 수십 년을 쏟아서 깎은 마법식도 마왕은 한순간에 가져가서 개조하고 조합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거기서 오는 마법사로서의 허탈함이었다.
[이것으로 그분과 더 확실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유리아 당신은 이제부터 다른 병력들과 함께 나머지 작업을 해 주십시오. 그들이 다시금 군대를 보내기 전에 일대의 고블린들을 모조리 사냥하고, 세력을 넓혀 양분을 확보해야 합니다]
마왕은 다시 한번 진일보했지만 처음부터 이것만 매달리고 있지는 않았다. 유리아가 쉬고 있을 그 순간, 아니, 전쟁이 끝난 그 직후에도 마왕군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고블린들의 패전 소식이 널리 퍼지기 전에, 상황을 모르고 있을 다른 곳들을 공격해 최대한 이득을 보려는 생각이었다.
‘강하다.’
그 의미를 깨달은 유리아는 침음했다. 그녀가 몸담은 신ㆍ마왕군은 보편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들이었다.
지금은 수만 이상의 세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대다수가 오직 전투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 집단 전체가 프로그래밍된 인형이 되어 한 몸처럼 움직인다.
전쟁을 넘어서, 어느 한쪽을 전멸시킬 생존 경쟁 그 자체에 특화된 마왕군과 대결하는 쪽은 결코 평범한 전쟁 방식으로 이길 수 없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제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죠?”
[마법 전력이 가장 필요한 곳. 바로 이곳입니다.]
모든 전장의 상황을 관측하여 가장 효율적인 수를 계산한 마왕은 그녀에게 지식을 주입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그곳은 현재 마왕군이 공략하고자 하는 고블린 부락 중 한 곳.
“······땅고블린들이군요.”
유리아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구부정한 등과 단단한 근육, 갈색 피부를 가진 이들로 땅고블린이라 불리는 고블린종이었다.
마왕은 단단한 암반에 굴을 파고 부락을 만드는 그들을 함락시키기 위해 유리아의 마법이 필요하다 판단한 것이다.
“하, 하지만 거리가 상당히 멉니다. 제가 그곳까지 가려면 시간이······.”
[당신의 육체를 개조해 더 빠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다만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에 그녀가 당황하자, 마왕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생산장에서 뻗어 나온 촉수를 내밀었다.
“허억······.”
그 촉수들이 움찔거리는 그녀의 몸에 저항 없이 꽂혔다. 마왕군의 모든 신체는 세포형 마족 나노가 데이터에 따라 변형되어 만들어지는 것. 즉 마왕군의 강함은 체내에 얼마나 많은 나노가 들어 있냐로도 나눌 수 있다.
지금 이 작업은 순수한 나노를 대량으로 주입하여, 그녀의 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형태를 추가해 주는 것이다.
[이제 충분할 겁니다.]
“이, 이럴 수가.”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기겁하고 그 이질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녀의 몸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등에서 마치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오기 시작한 검은 무언가. 그리고 그 나뭇가지들에서 얇은 피막이 덮여 갔다.
[하늘을 날아간다면, 시간을 더욱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마왕은 거대한 한 쌍의 날개를 등에 단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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