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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7화 (27/200)

27화-변수 덩어리(2)

27화-변수 덩어리(2)

“방법을 찾았다고? 나와 더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그렇습니다.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데이터를 쌓아 나가다 보면 분명 더 개선할 수 있습니다.]

멍하니 화면을 보던 내게 박스디가 꽤 충격적인 소식을 말했다. 나름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금방 방법을 찾아 올 줄이야.

“그게 뭐지? 대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보는 것 이상의 소통을 할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원리를 짐작할 수 없는 저희의 연결을 일종의 통로 삼아, 제 힘의 일부를 그쪽에 투사하는 겁니다.]

박스디는 대강 원리를 설명해 주었다.

서버에 존재하며 내 휴대폰에 연결되어 있던 평범한 비서 인공지능이던 박스디가,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떨어져 나온 계기는 분명 전대 마왕의 패잔병들이 시도한 마왕 소환술.

마왕 소환술을 통해 그곳으로 가게 된 박스디는, 내 휴대폰과 일종의 연결 고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 연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져 있으며, 저는 습득한 마법적 지식으로 그 연결을 조작할 수 있는 툴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여 더 많은 개조와 연구를 반복한 것입니다]

“······한번 보여 줘. 솔직히 네 말만 듣고서는 잘 모르겠어.”

[제가, 이 세상의 물건 하나를 연결을 통해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뭐?”

이해하기 위해 애쓰던 내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 그 순간. 박스디는 예상치 못한 말로 나를 당황시켰다.

그쪽 세상의 물건을 내게 보낸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보시는 이 발광석을 보내겠습니다.]

화면을 바꾼 박스디는 내게 둥지 한가운데 보이는 자그마한 돌을 가리켰다. 자갈만 한 사이즈인 그 돌은, 미궁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히던 발광석.

박스디는 그것을 촉수로 똑 떼어 내어 화면에 들이밀었다.

“아, 아무 변화도 없······.”

움찔한 내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던 그 순간. 액정의 밝기가 점점 밝아지더니 이내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윽······.”

[계산식대로 전송에 성공했습니다.]

액정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가라앉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뜰 수 있게 된 나는 수평으로 들고 있던 그것을 보고 숨을 들이켰다.

“받았어. 네가 준 발광석.”

[그렇다면 완전한 성공입니다. 연결의 확장을 통한 물건의 전송 단계까지 도달하였습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마치 석영같이 생긴 이 이세계의 광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박스디.”

[예, 김창현 님.]

“이렇게 되면 나도 네게 뭔가 줄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연결은 쌍방입니다.]

발광석을 든 내 중얼거림에 박스디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그걸 들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도 왜 내가 굳이 이런 행동을 하는지 명확히 설명하긴 힘들었다. 그냥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마음. 물론 오직 효율만을 중시하는 박스디가 써먹지도 못할 이런 걸 받고 기뻐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가끔가다 보여 주는 모습을 보면 괜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해서.

[전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화면에서 다시 한번 섬광이 터져 나오며, 내가 보낸 물건이 이번에는 하이브 내부에 등장했다. 역시나 안 어울리긴 하다. 몇 년 전에 인형 뽑기로 뽑았던 작은 인형이, 검붉은 육벽과 진득한 점액이 번들거리는 하이브 내부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냥 시험 삼아서 보내 봤어.”

[쌍방 연결의 원활함까지 확인했으니 이제 이것을 바탕으로 더 보완해 나가면 됩니다.]

박스디가 다시 화면을 돌렸다. 등에 돋은 날개를 사용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유리아의 모습이다.

이렇게 새로 얻은 기능으로 내가 무엇을 보내 주어야 박스디에게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도, 나는 일단 화면들에 집중했다.

유리아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박스디는 수십 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

“도망, 지금 당장!”

“키이잇!”

이 일대는 고블린들이 영역권으로 삼고 있던 곳. 특히 이번에 거의 대부분의 전사들을 이끌고 출전했다 그대로 살해당한 라쿠의 부족이 있는 곳이다.

전장의 상황이 이제 막 전달되기 시작한 이곳에, 도망친 패잔병들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 적들이 있었다.

“비켜라, 이놈들아!”

그곳에 남아있던 고블린들은 질겁하여 결국 부락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라쿠에게 부락을 지키라고 명령받은 주술사 역시 자신이 앞장서서 도망쳤다.

“······.”

그런 고블린들의 뒤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 부락을 함락시키기 위해 몰려온 마왕군. 그 선두에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을 보자마자 부락을 버리고 도망치는 고블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크ㆍ알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이 받은 첫 번째 명령은 부대를 이끌고 저들을 추격하는 것이다. 비록 적들이 맞서지도 않고 다 내버린 채 도주하는 것은 하이브 마인드인 마왕에게 미리 전달받지 못했으나, ‘그것’에게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특별한 기관이 하나 더 있었다.

투구와 같이 단단한 머리 갑주 안에 보호받고 있는 큼직한 뇌. 이 뇌 안에 그동안 쌓은 경험 전부가 들어가 있다,

굳이 마왕과 직접 소통하여 명령을 받지 않더라도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판단하여, 적들을 추격해서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추격.]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것’은 자신이 지휘하는 병력을 모두 이끌고 도망치는 고블린들의 뒤를 추격했다.

“히이익!”

미친 듯이 도망치던 고블린 주술사는 뒤를 보고 경악했다. 마왕군이 어느새 바짝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두 다리로 뛰는 고블린들에 비해 마수의 형태를 하고 있는 병력이 다수인 마왕군은 거친 숲길을 제집처럼 가로지를 수 있었다.

“저리 꺼져라!”

패닉에 빠진 고블린 주술사가 주술을 발동했다. 그리고 동시에, 갑주의 틈에서 일렁이던 ‘그것’의 눈들이 번득였다.

그동안 마왕군 전체가 쌓아 온 모든 경험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 주술사를 상대하는 경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실제로 주술사를 상대한 것은 단 1번이지만, 공 받은 경험을 모두 더하면 주술사의 주술은 익숙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주술이 발동하는 즉시 양손에 꼬나쥔 검을 들고 땅을 박차고 허공을 가로질러 공중제비를 돌았다.

갈라지고 울렁이는 땅의 물결은 추격하던 마왕군 다수의 발과 다리를 으깨고 박살냈지만, 미리 허공에 도약했던 ‘그것’은 가뿐하게 고블린 주술사의 앞에 착지했다.

“이, 이 괴물 놈이 감히······.”

두 존재의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여러 개의 눈들에, 고블린 주술사의 눈이 흔들렸다.

분명 달랐다. 다른 마왕군과는 다른 빛이 그 안에 보였다.

“막아라, 막아!”

주술사는 자신의 주술이 다시 차오를 때까지, 휘하 전사들을 보내 ‘그것’을 막고자했다.

“으, 으아······.”

“죽, 죽어라!”

하지만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상태에서 기세까지 밀린 건 전사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다수의 전사들을 보고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던 ‘그것’은 양손에 쥔 검을 풍차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놈은 대체!’

주술사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과거, 무턱대고 휘두르기만 하던 검과는 다르다. 경험의 공유, 기억의 계승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마왕군의 검술은 이 짧은 순간에도 폭발적으로 진화해 갔다.

고블린 전사나 기사들이 대전쟁 같은 큼직한 전쟁 등을 거치고, 타 종족과의 교류를 통해 힘겹게 습득해 가던 그 기술들.

하지만 마왕군은 특유의 학습력으로 그것들 모두를 손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원하는 게 뭐냐! 대체 네놈들은 무엇을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찰나의 순간 모조리 제압당한 전사들의 시체를 보던 주술사는 허망하게 외쳤다. 이미 주변의 다른 고블린들도, 습격해 온 마왕군의 이빨과 발톱에 찢겨 나가는 중이었다.

“케흑.”

‘그것’은 소리 지르는 주술사의 머리를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짜리몽땅한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렸지만, 두개골에서 우지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억센 손은 풀리지 않았다.

[복, 수.]

“!!!”

머리에 흘러드는 강렬한 의지. 흐려지는 시야에 일렁이는 붉은 안광.

경악한 주술사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끅.”

동시에 두개골이 바스라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숨이 끊어진 주술사의 시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적들의 주력을 제압한 평원 전투 이후, 추가로 사살한 적 숫자 2059개체. 파괴한 부락의 개수는 6개소. 하지만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는 전투가 마무리되었지만, 모든 전장을 관장하는 마왕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사방으로 흩어져 적들을 공격하는 마왕군은 처참한 패배 이후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각개 공격하여 철저하게 그 힘을 빼놓고 자신들의 양분으로 치환시켰다.

고블린들의 부락에 임시로 만든 둥지들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양분을 흡수하고 병력을 생산했다. 이렇게 늘어나는 마왕군의 영토가 기존의 몇 배에 달했다.

“도착했습니다.”

유리아 역시 그 과정의 일부였다. 바람을 타고 활강하며 하늘을 가로지른 그녀는, 날개를 접고 땅에 착지했다.

[병력들을 지휘해서 적들의 방어선을 함락시키십시오]

마왕은 그녀에게 적들을 제압할 것을 명령했다. 고개를 든 유리아가 바라 본 곳은 거대한 암반을 파고 굴을 만든, 갈색 피부의 고블린들.

그들은 좁은 입구에 모여 철저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아군을 밀어넣을 수 있다면 어렵지 않다.’

유리아는 금방 계산을 마치고 그곳을 향해 다가가며 마법을 발동시켰다.

양 손에서 발동된 마법은 그녀가 기존에 익혔던 마법과 비교해 그 위력도, 속도도 다른 강력한 마법.

“역시.”

연달아 쏘아진 거대한 화염창들이 버티고 서 있던 땅고블린들을 폭사시키고 혼란에 빠트렸다.

유리아는 단숨에 방어선이 무너진 그들을 향해 마왕군을 돌진시켰다.

‘이제 부락 수준의 고블린들은 의미가 없어.’

유리아는 마왕군이 머리를 들이밀고 무작정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침음했다. 성장에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여기까지 온 마왕군의 성장은 이미 일개 변방 부족 따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유리아는 마계 영주가 직접 움직여도 막기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방어선이 붕괴한 땅고블린들의 둥지도 손쉽게 함락시키고 있습니다. 전멸 예상까지 2시간 12분.]

“그럼, 제 임무는 이걸로 끝입니까?”

[일단은 그렇지만 다시 전투를 준비해야 합니다. 소식을 들은 적 본대가, 다시 한번 군대를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이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마왕에게 휴식이란 개념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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