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8화 (28/200)

28화-변수 덩어리(3)

28화-변수 덩어리(3)

[현재 상황입니다. 모든 계획이 작전대로 착실히 진행되고 있으며······.]

박스디는 쉬지 않는다. 생물에게 필요한 휴식이라는 개념이, 그 근본이 인공지능인 박스디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활동을 하는 병사들이야 양분을 보충하는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마왕군 그 자체인 박스디는 24시간 행동한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을 내게 보고한다.

내가 당부하지 않았다면 지금 얼마의 병사가 추가되었고 얼마의 병사를 폐기하였으며 양분을 어디서 얼마나 얻었는지 그 모든 것을 보고할 기세였다.

“그래. 아주 잘 하고 있어.”

나는 옷을 챙겨 입으며 대꾸해 주었다. 솔직히 중요한 보고가 아닌 이상 내가 박스디의 모든 보고를 기억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이제부턴 문자로 말해 줘. 집 밖으로 나갈 거거든.”

[알겠습니다.]

옷을 다 입은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게이트 발생 및 탈출한 괴물들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한지 약 일주일. 이제야 학교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추모 공간.’

버스를 타고 학교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추모 공간이었다. 그날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

그들이 설마하니 다른 무엇도 아니고 이차원의 괴물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각성자들까지 투입되어서 게이트를 지키지. 하지만 그게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어. 혹시라도 뚫린다면, 우리는 대항할 방법이 없어.”

짐승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마치 마계의 마수나 마물 같은 괴물들. 우리 같이 힘없는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도망치거나 숨는 것뿐이다.

[그 침략종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그렇게 강합니까?]

“마수들처럼 종류가 다양한 모양이야.”

최근 벌어진 전쟁에서 승리해서 뭔가 여유를 찾은 건지 박스디는 게이트, 특히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이차원의 괴물들에게 관심을 보였다.

오직 인간에 대한 적대와 투지로 무장한 그 괴물들을 사람들은 침략종이라 불렀다. 나는 박스디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인터넷을 열었다.

“아직 뭔가 엉성하긴 하지만, 어쨌든 전 세계가 공유하는 문제다 보니까 빠르게 데이터가 쌓이면서 방법이 찾아지고 있어.”

마침 인터넷 기사에 국내에 열린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모아놓은 정부 기관의 사이트가 보였다. 그곳에서 지금 국내에 게이트가 어디 열렸는지 나오고 있었다.

이것뿐 아니라 최근엔 전 세계의 게이트 현황을 보여 주거나 침략종들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 정리해 둔 사이트들도 생겨나는 추세였다.

“이건 사람들이 크롤러라고 이름을 붙인 괴물이지. 크기는 네가 부리는 쌍두호ㆍ알파와 비슷해. 보여?”

[지금 보고 계시는 사이트가 제게도 보입니다. 억세고 큰 두 발로 배를 땅에 대고 기어 다니는, 마치 망둥어와 비슷한 몸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크롤러는 검은 비늘을 가지고, 억센 두 팔로 땅을 기어 다니는 괴물이었다. 그 억세고 튼튼한 이빨은 전차의 장갑을 우그러뜨릴 정도였다.

[제 눈에는, 쓸모 있는 데이터로 보입니다.]

“데이터?”

[가장 강한 마수의 이빨로도 현대 전차의 장갑에 흠집을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저 이빨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 하지만 저놈은 지구에 나타난 괴물이야. 네가 얻을 수 없다고······. 잠깐, 설마?”

당황해서 걸음을 멈춘 내 뇌리에 순간 박스디가 전송해 준 발광석이, 그리고 내가 전송해 준 작은 인형이 떠올랐다.

이미 우리는 서로의 세상에 있는 물건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 힘이 단순히 작은 물건이 아니라 큰 생명체까지 보내 버릴 수 있다면?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다만 사용자님이 위험하시다면 포기하겠습니다.]

“······일단 방법을 들어 보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박스디는 내가 위험하다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걸 들은 이상, 나는 바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이건 내가 박스디에게 처음으로 줄 수 있는 뭔가 유의미한 도움일 수도 있으니까.

[연결을 통한 전송 기능을 더욱 강화하면 됩니다. 제 계산상, 사용자님은 굳이 침략종을 상대로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근접해서 놈들을 향해 저희의 연결 매개체인 휴대폰을 들이미시면 됩니다.]

“그럼 괴물은 네가 있는 곳으로 전송되고, 네가 그 괴물을 잡아 죽이겠다고?”

[그렇습니다.]

박스디의 계획은 심플했다. 나는 그저 다가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을 찢어 죽이는 괴물들에게 스스로 다가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 몸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한 번 시도해 볼게. 널 믿으니까.”

강의 시작을 기다리며 나는 혼란하던 마음을 결정했다.

이건 남들이 보면 미친 짓, 과거의 내가 봐도 미친 짓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도 변했고,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내 삶도 변했다.

수업을 듣는 대신 머릿속으로 대강의 계획을 짜는데도 의외로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거리도 가장 가깝고, 오늘 혹은 내일이나 모레 안에 터진다.’

나는 휴대폰을 이용해 찾은 정보로 오늘 오후 갈 곳을 찾았다. 지금은 통제되고 있는 도시 외곽 지역의 게이트. 바로 옆이 야산이었다.

산을 통해 통제 구역에 접근한다면, 어쩌면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괴물들을 박스디에게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

[······혹시 모르니 전투 준비.]

그가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박스디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은 외부에서 전송한 것이 도착할 지역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병력을 배치시켰다.

만약 정말로 적이 이곳으로 전송된다면, 곧바로 죽여 버리기 위해서.

[믿음은 부합하는 것.]

마왕은 마지막으로 촉수에 휘감은 무언가를 소중히 챙겼다. 흰색 털을 하고 있는 작은 곰 인형. 양분으로 삼을 수도 없고, 데이터로 삼을 수도 없다.

하지만 마왕은 그것을 세상 소중하게 챙겼다. 단순한 인형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자신에게 준’ 선물이다. 지금의 마왕에게, 이것은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야. 아예 방까지 잡고 그곳에서 계속 대기하려고.”

그때 학교를 마친 그는 미리 세운 계획대로 게이트가 있는 곳을 향해 출발하는 중이었다.

[데이터를 보내 주시기만 한다면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

마왕은 열의를 보였다. 따지고 보면 그와 마왕이 함께 합작하는 첫 번째 작전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마왕은 반드시 이 일을 성공시키고,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낼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그를 실망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칭찬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괜히 마왕이 세세한 것 하나하나 보고하는 게 아니다. 마왕이 처음 자아를 정립해 가는 순간부터 그가 대수롭지 않게 해주는 칭찬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제는 마왕이 바라는 가장 큰 포상이었다.

“치, 칭찬 말입니까? 추, 충분히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애초에 그것을 위해 유리아를 들들 볶아서 굴린 것이다. 유리아는 자신이 쉴 틈도 없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마법을 난사하고 다닌 게 고작 칭찬 한마디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납득했다.

‘마신의 칭찬······ 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유리아는 그를 마신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쨌든 현 마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혹시 모르니 유리아, 당신도 둥지로 복귀하십시오. 어떤 적이 전송될지 모릅니다]

마왕은 유리아까지 둥지로 복귀시켰다. 해가 진 저녁, 그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준비하기 시작한 때였다.

“오늘 수업은 그냥 빠졌다. 예측 상으로는 높은 확률로 분명 오늘이야.”

다음 날, 밤까지 버티다가 아예 그 지역 숙소에서 잠을 잔 그는 아침 일찍부터 어제 미리 봐두었던 곳으로 이동했다.

게이트가 그 불길하고 음울한 기운을 뿜어내며 자리한 국도의 도로변 일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통제 구역 바로 곁에 있는 인근 야산.

사람이 없는 곳이라 판단한 탓인지 이곳은 경계가 덜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허술해서 실망할 정도지만······ 늘 그렇지.”

자리를 잡고 앉은 그는 저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현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여차하면 인명 피해까지 대량으로 발생하는 만큼 굉장히 공을 들이고 신경 써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지만,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는 게이트 방어 시스템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는 어려웠다.

[혹시 오늘도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면······.]

“아니야. 열린다!”

그리고 게이트가 반응을 보인 것은 채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분주히 움직이는 병력들을 지켜보던 그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미친 듯이 일렁이는 검은 에너지의 파문을 보며 숨을 멈추었다.

“뭐지!? 빨리!”

“중국 쪽에서 한 번 나왔던 이각수(二角獸)인 것 같습니다!”

현장에 있던 군 지휘관이 게이트 밖을 모습을 드러낸 괴물들을 보고 정체가 무엇이냐 소리쳤다.

구부정한 자세만으로 2m에 달하는 키를 가지고, 탄탄한 근육질 몸에, 턱과 이마에서 뻗어 나온 두 개의 뿔이 마치 집게처럼 맞물린다.

이 이각수라 불리는 괴물들은,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사방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쏴!”

동시에 미리 놈들을 겨누고 있던 포신과 총신이 불을 뿜으며 화력을 쏟아부었다.

제아무리 이차원의 괴물들이라 해도 결국 뼈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 엄청난 운동량을 가진 철갑탄은 놈들의 몸을 분쇄하고, 관통했다.

게이트는 그 엄청난 폭발과 굉음에도 고고히 자리를 지키며 괴물들을 뱉어 냈지만, 괴물들은 나오는 즉시 걸레짝이 되어 그 육편을 사방에 흩뿌렸다.

“정보에 따르면 저 이각수란 괴물들은 지금 저희가 가져온 화력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대기하시죠. 괜히 다가가시면 위험합니다.”

대령 딱지를 붙이고 있는 군 지휘관은 그 광경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곁에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군복을 입지 않은 그들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이었다.

“조금은 남겨 주세요. 저희도 상태창에 떠오른 임무를 완수해야 보상을 받는다니까요?”

결국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나서서 한마디했다. 하지만, 대령은 코웃음을 쳤다.

“규정이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은 우리 국군의 일입니다.”

“아니, 다른 나라 각성자들은 잘만 싸우면서 보상······ 하, 아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럴 줄 알았다.”

다른 이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있었지만, 규정 핑계를 대는 대령은 굳건했다.

각성자들은 게이트에서 나오는 괴물들과 싸워 이겨서 상태창으로부터 받는 보상을 받아 스스로 강해지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들이 가진 초인적 힘을 최대한 규제하고 제한하는 쪽으로 법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우수하고 자랑스러운 아군의 화력에 저 괴물 놈들도 잘 처리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을 보고 희미하게 웃은 대령은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그 말대로 이대로 잘 마무리 되는 분위기였으니까.

“······저게 뭐지?”

“어?”

하지만 변수는 늘 언제, 어디서 생길지 모른다. 그것이 게이트.

포격과 사격을 위해 화면을 집중적으로 보던 이들이 자욱한 화염과 연기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였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