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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29화 (29/200)

29화-변수 덩어리(4)

29화-변수 덩어리(4)

“포, 포격이 안 먹힌다!”

자욱한 연기 틈으로 이각수들이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계속해서 포탄을 퍼붓고, 총을 쏘는데도 놈들은 꿋꿋하게 밀고 나왔다.

놈들의 몸을 보호하는 것은 불그스름한 에너지막. 그리고 그 에너지를 몸에 두를 수 있게 하는 것은, 방금 전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 마리 촉수 괴물이었다.

큼직한 외눈을 달고 있는 이 촉수 괴물은 자신과 연결된 이각수들에게 군대의 화력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 방어막을 제공했다.

“으아아! 놈들이 돌진해 옵니다!”

더 이상 화염과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각수들이, 턱과 이마에 난 뿔로 이루어진 특유의 턱을 딱딱거리며 자리를 잡고 있던 군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악!”

“피해, 모두 도망쳐!”

군인들은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굉음과 충격파가 퍼져 나오며, 이각수들은 패닉에 빠진 군인들을 휘저으며 포효했다.

그리고 그 포효는 놈들 중 둘이 얼굴에 뻗은 턱을 사용해 전차를 부수고 무력화시키는 것에서 최고점을 맞았다.

“이게 대체······.”

“뭘 멍청히 서 있어! 뛰어!”

넋이 나간 대령은 지금이 실전인 것도 잊고 자기 부하들이 끔찍한 괴물들에 쓸려 나가는 걸 지켜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화를 낸 각성자 중 하나가 사람들을 일깨우고 자기가 먼저 방을 박차고 나갔다.

“우리도 가야 해.”

“우리도 맞으니까, 쓸데없이 포탄 쏘지 말고 얌전히 있으시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군대가 무너진 이상 이제 그들이 나서야 할 때였으니까. 물론 그 내면에는 단순한 사명감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저 외눈깔 문어 대가리를 잡아야 해!”

“하지만 이놈들, 너무······.”

각성자들이 도망치는 과정에서 학살당하는 군인들을 지키기 위해 전방으로 뛰었다.

“너무 세!”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당황했다.

여전히 몸에 붉은 기운을 두르고 있는 이각수들이 힘이 그들에게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고전하는 이들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큭······.”

이지연,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능력은 철괴, 말 그대로 육신의 내구도를 극한까지 강화하는 것.

그러나 그런 그녀도 이각수의 주먹에 맞아 아스팔트를 부수며 바닥을 굴렀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저놈이!’

바닥에서 일어난 그녀는 자신을 때려눕힌 이각수가 총을 버린 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한 군인을 쫓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그래서 그 즉시 몸을 일으켜 최대한 빠르게 달렸다. 이미 완전히 무너진 방어선에서, 공포심에 이성을 잃은 젊은 군인이 달리는 곳은 이 도로변 옆에 있던 야산.

이각수 역시 금방이라도 군인의 몸을 찢어 죽일 듯 턱을 딱딱거리더니 팔까지 써 가며 네 발로 땅을 달렸다.

“야!”

금방이라도 군인이 죽을까 다급해진 이지연은 급한 대로 소리라도 지르면서 놈의 관심을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아아아악!”

“안 돼!”

결국, 그 군인은 따라잡은 이후 뾰족한 손톱이 돋은 손을 휘두른 이각수에 의해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날아 비탈길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하늘에 반짝이는 붉은 선혈과 흩날리는 내장 조각들.

그것을 본 이지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을 봐 버린 것이다.

“이, 이 개자식아!”

분노한 그녀가 어설픈 주먹을 쥐고서는 군인을 살해한 이후 자신에게 덤벼드는 놈에게 같이 돌진했다.

서로의 공격이, 서로의 몸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그 와중에 힘이 더 센 건 여전히 붉은 기운을 몸에 두르고 있는 이각수였다. 그녀의 주먹은 놈을 쓰러트리지 못했고 놈의 손은 그녀에게 버티지 못할 강한 충격을 주었다.

다시 한번 발이 땅에서 떨어진 이지연은 몸으로 나무 하나를 부러뜨리더니 자욱한 먼지와 함께 흙바닥 속에 처박혀 꿈틀거렸다.

‘너무 약해.’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싸우고자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자신은 너무 약했다. 그 약함이 그녀는 너무나 저주스러웠다.

“크으······.”

뼈가 변형되어 장갑차의 표면도 긁어 낼 만큼 날카롭고 단단한 이각수의 턱이 그녀에게 들이밀어졌다. 아무리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어도 이렇게 대놓고 공략당하면 버틸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이지연은 고통을 눌러 참고 어떻게든 움직이려 애썼다.

“크아악!”

“으읏!”

그런데 어디선가 날아온 붉은 화염창이 괴물에게 적중하여 폭발해, 충격파와 화염을 흩뿌린 게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이지연은 뜨거운 열기와 연기에 눈도 못 뜨고 콜록거렸다. 일반인보다 발달한 감각에, 누군가 옆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 위험해요.”

그녀는 기침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쳤다. 그러나 그 폭발 이후 주변은 조용했다. 부스럭거리는 누군가의 인기척은 빠르게 멀어져 가고, 으르렁거리던 괴물의 울음소리와 숨소리는 마치 증발하듯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이럴 수가.’

그녀는 손을 저어 연기를 날려 보내며 가까스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 광경은 분명 충격적이었다.

‘어디 갔지?’

당황한 그녀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듬직한 덩치를 가진 이각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금 이곳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주변 풍경과, 그슬린 자국들. 그리고 여기저기 긁히고 삔 데다 흙먼지로 더러워진 자신뿐이었다.

분명 있었던 인기척도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없어진 상태였다.

***

“허억······ 헉······.”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희 병사들이 건방진 괴물을 처단하는 중입니다.]

“후우······.”

한쪽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 박스디가 뭐라 말하든,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계속해서 산길을 달렸다.

내 스스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 곳에서야 겨우 뜀박질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후들거리는 무릎을 붙잡았다.

[조금이나마 버티던 놈이 결국 아군의 협공에 단숨에 무너집니다. 몸에 두른 붉은 기운, 역시 마력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시전한 첫 일격도 마찬가지고, 유리아의 마법에는 단번에 뚫렸습니다.]

“어쨌든 성공한 거지? 하······.”

옆에 있던 바위에 걸터앉은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그 끔찍한 괴물을 공격하고 납치하는 일련의 과정은 자연스럽고 빠르게 벌어졌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이게 다 위기에 빠진 그 여자를 구하려고 급하게 나선 탓이다.

[개체명 이각수, 분해 중.]

화면 속에서 박스디는 벌써부터 괴물의 시체를 소화장에 던져 넣어 소화시키고 있었다. 분석이 끝나면, 침략종 이각수는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박스디의 데이터가 된다.

“그나저나 마력이라고?”

숨을 고른 나는 운동 부족 탓에 마구 후들거리는 다리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박스디가 직전에 꺼냈던 말을 기억하고 그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몸을 숨긴 상태로 현장을 다 지켜봤기에 뇌리에 선명하다. 듣도 보도 못한 해파리 같은 신종 괴물이 나와서는 군대의 화력을 버텨 내는 그 모습이.

비록 그놈의 버프를 받은 이각수도 박스디가 쓴 마법에는 타격을 크게 입고 비틀거렸지만, 애초에 마법은 박스디만 쓸 수 있다.

군대의 화력이 없으면 몇 안 되는 각성자들만으로 버텨야 하는데,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아직 각성자들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도 고작 며칠 전에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어쩌면, 그 괴물을 잡는다면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힌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마법 같은 체계를 사용하여 마력을 다루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었어. 다음 기회를 노리자.”

우리의 계획은 분명 멋지게 성공했지만 이게 한계였다. 여차하면 들킬 수도 있으니까.

“이제 집에 가야겠어. 죽겠다.”

[제 마법이 그쪽 세상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혹시 이것을 이용해 따로 계획하신 것이 있는지?]

“아니. 난 아무것도 안 해.”

다시 걷기 시작한 나는 박스디의 말에 쓰게 웃었다. 물론 박스디의 힘을 이용하면 유사 각성자처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 싫었다. 이번에 움직인 것도 박스디에게 쓸모 있는 선물을 주기 위함일 뿐이다.

이렇게 박스디에게 선물을 넘겨주는 게 아니라면, 굳이 그 끔찍한 괴물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

‘그 여자는 왜 그렇게 싸우려 한 걸까.’

문득 내가 얼결에 구하게 된 그 여자 각성자가 떠올랐다.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어째서 그런 끔찍한 괴물과 주먹다짐을 하려던 것이었는지.

각성자들은 괴물들과 싸우면 상태창을 통해 보상을 얻는다 들었는데, 그 보상이 정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연 다른 세상의 생물이라 그런지, 그 구조 데이터를 해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완전히 해독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걸 써서 뭘 얻을 수 있지?”

[가장 쓸모 있을 기관은 바로 뿔로 된 놈들의 턱입니다. 그 특성상 일정 두께 이상이 필요해 만능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아군의 방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버스를 타고 집에 터덜터덜 도착한 시점, 박스디는 먹어치운 이각수의 데이터를 완전히 해석했다고 전해 왔다.

[이번에 진행하려 하는 베타 프로젝트에 접목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길 수 있는 건가?”

[아직 미지수입니다.]

박스디는 원래 살던 고블린들을 수천 이상 학살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중앙에서 파견했다는 이들도 있다.

고블린 종을 다스린다는 고블린 왕. 그놈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대규모의 병력을 다시 보내려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

박스디는 그것에 대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대한 자원을 비축해 병력의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베타 프로젝트는 베이스가 되었던 생물체를 한번 개조해 마왕군으로 만든 알파들을 다시 한번 개조해 더 강한 개체로 만드는 프로젝트.

나는 박스디가 예시로 보여 준 오크ㆍ베타의 모습을 다시 살펴보았다.

큰 모습은 기존과 다르지 않지만, 데이터를 착실히 쌓아 성장한 박스디의 개조 능력이 그대로 발휘되어 있다.

분명 같은 오크ㆍ베타지만 어떤 이들은 4개의 팔을 달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꼬리를 달고 있었으며, 활강이 가능한 피막을 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내게 말한 대로 마력을 사용하는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박스디는 최대한 방법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제 저 프로젝트에 내가 넣어 준 이각수의 데이터까지 쓰인다. 드디어 유의미한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탁 놓였다.

“한번 계속 찾아볼게. 게이트 출현 빈도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다른 괴물들을 넣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힘든 것도 잊고 다시 인터넷을 뒤졌다. 박스디에게 넣어 줄 새로운 데이터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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