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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0화 (30/200)

30화-변수 덩어리(5)

30화-변수 덩어리(5)

“정체불명의 괴물, 이라 했나?”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패잔병들의 말에 따르면 놈들은 검은 갑옷을 입은 괴물들로 그 모습은 수많은 마수들이 뒤섞인 것 같은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다 했습니다!”

“내가 듣기로 분명 갈색오크 놈들을 봤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라니!”

얼굴을 구긴 고블린 왕 안드라스가 옥좌의 손잡이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아군이 패하고 귀중한 심복인 로치도 죽었다. 그리고 그 범인이 오크들이란 보고까지 들었기 때문이다.

“오크들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아군과 전투를 벌인 건 그 괴물들이 맞다고 했습니다.”

“큭······. 설마 오크 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인가?”

안드라스는 이를 갈았다. 해방 이전에도 오크종은 고블린종과 비교할 수 없는 마족의 주류. 72 영주 중 무려 9명이 오크종일 정도다.

이렇게 기본값이 다르니 해방 이후에도 그들이 더 강하다는 사실은, 자존심 강한 안드라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 놈들이 그런 괴물들을 다룰 수 있다는 소리는······.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왕이시여.”

“뭘 묻는가! 놈들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 적이다! 명분은 우리에게 있으니 지금 당장 군대를 모아라!”

안드라스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72 영주가 마계를 72개의 영지로 갈라먹은 이후 서로 대규모의 군대를 움직이면 눈치를 주는 것이 관례로 굳었지만 그렇다고 명백히 피해를 입었는데 무시하는 건 더 말이 안 되니까.

“보고하라, 루카! 우리가 지금 당장 얼마나 많은 병사들을 동원할 수 있는지!”

“10만. 10만입니다, 왕이시여.”

심복이 보고한 고블린 군대 10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었으며 심지어 이것도 전부가 아니었다. 사방에 흩어져 살아가는 부락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면 족히 몇 배는 더 뽑아낼 수 있었다.

“보고에 따르면 그 검은 괴물들도 끽해야 수 천. 그러니 10만이면 충분하다. 압도적인 숫자의 정예를 보내 단숨에 짓밟고 꿍꿍이를 꾸미는 놈들에게 경고할 것이다.”

안드라스의 눈이 번득였다. 이 10만의 병력은 대전쟁 시절부터 이어진, 그가 직접 다스리는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대다수의 병력이자 고블린 왕국의 주력.

상대가 무슨 짓을 하든 힘으로 짓밟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정체 불명의 괴물들이 영지 북부를 침략해 수천의 백성들을 해쳤으니 군대를 동원해 밀어내겠다?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붙었습니다.”

고블린 왕국 바로 옆에 있는 거친 황무지의 주인, 웨어울프 대족장. 그는 안드라스의 연락을 받고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고블린놈. 무슨 짓을 했기에 공격이나 당한단 말인가.”

“슬쩍 들은 첩보에 의하면 갈색오크 놈들과 엮여있는 것 같습니다만.”

“······오크 놈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다만 또다른 이웃이기도 한 오크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이 굳었다. 경쟁하는 이웃 영주가 내치에서 삽질을 하는 것과, 영주끼리 시비가 붙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기껏 마왕을 죽이고 전쟁을 끝낸 주제에 자칫 잘못하면 내전으로 번질 수 있기에, 72 영주는 처음부터 서로의 권역을 존중하기로 강하게 합의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우리는 좋은 것 아닌가.”

그렇기에 영주들은 내심 다른 영주들이 알아서 자멸하길 바랬다. 자기들끼리 선을 넘어서 싸워 망하면 더할 나위 없었다. 망해 버린 땅을 먹어치울 수 있을테니까.

“무시합니까?”

“그 군대가 우리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면 굳이 나설 필요 없지. 텅 비어 버린 놈의 본진이 탐나긴 하지만 다른 놈들에게 심판이라는 명분을 줄 수는 없으니 구경이나 하는 수밖에.”

이를 드러내고 히죽거린 이 늑대는 가만히 있을 것을 천명했다.

그리고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인접한 모든 영주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덕분에, 고블린들은 그 어떤 방해도 지원도 없이 미지의 적들과 싸우게 되었다.

***

[고블린 대병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변방 부락을 긁어모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지휘부는 대전쟁을 겪은 고블린 왕의 정예 부대입니다.]

“그, 그 숫자가 어떻게 됩니까?”

[현재 관측된 바로는 5만 정도지만, 그 뒤에 그만큼 더 있으니 최소 10만을 보고 있습니다.]

“시, 십만!”

북쪽 숲을 빠져나와 그 영역을 북부 전역으로 확대한 마왕은 그만큼 더 먼 곳까지 정찰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본거지를 벗어나 평지를 가로지르기 시작한 대병력을 관측한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왕에게 고블린 군단의 숫자를 전해들은 유리아는 기겁했다.

대전쟁이 끝나고 마왕의 지배에서 해방된 것도 모자라 각자 땅을 나눠먹고 나름의 교류와 발전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마족들의 성장세는 결코 약하지 않았으니.

[아군은 현재 4만 6천 개체가 전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총력전에 들어가면 최대 25만까지 숫자를 늘릴 수 있습니다.]

정작 마왕은 늘 그렇듯 평온한 상태로 계산만 열심히 돌릴 뿐이었다.

“5만······! 그, 그럼 충분히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총력전에 돌입하는 순간 우리 역시 손해를 크게 봅니다.]

유리아는 압도적인 숫자에 혀를 내둘렀지만 마왕은 그녀의 희망을 부정했다. 총력전으로 마왕군의 모든 역량을 병력 생산에만 집중해 최대한 뽑아낸 숫자 25만은 현재 마왕이 구축한 지휘 체계의 연산력으로 지휘할 수 있는 최대의 숫자.

하지만 일정 수치를 넘어가는 순간 양분 공급과 생산, 순환의 고리가 완전히 깨져 버린다. 마왕군은 재생산을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먹어치운 자리에는 둥지만 남을 뿐, 살아 숨 쉬는 것은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과하게 병력을 생산하면 균형이 무너져 황폐화와 양분 부족은 더욱 가속된다. 진화와 발전에 써야 할 양분조차 부족한 마왕군은, 결국 비대해진 몸을 감당하지 못해 말라죽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우리는 적의 반절 수준뿐인 병력으로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싸워야 합니다.]

“놈들 중 다수는 주술과 무술을 다루는 정예들. 그들을 다수의 숫자로 찍어 누르지 못하면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아군의 강점을 이용한 전략, 전술을 통해서.]

마왕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기존의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적들의 한 방은 분명 강하다.

하지만 마왕은 적들과는 차별화 된 강점 역시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혹시 마신께서 신탁을 내리신 것인지.”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니 방법은 반드시 생깁니다.]

마왕은 조심스레 전하는 유리아의 말을 긍정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왕은 그와 소통하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당연히 그는 마왕이 이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돕겠다고 말했다.

‘역시.’

다만 그것을 살짝 오해한 유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믿음을 다졌다.

“그래서, 놈들과 정면 힘싸움은 피하고자 하는 네 선택은 무엇이지, 박스디?”

[전투가 아닌 전쟁. 저는 개념을 확장하려 합니다.]

“······좋은 방법인 것 같아.”

마왕은 성장한다.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그 성장은 더 가파르다. 그것이 인공지능이다. 특히 그 강점은 전투에서 크게 발휘되었다.

경험의 중복과 중첩. 현장에서 전투를 벌이는 마왕군의 움직임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이 이때문이다.

“지도를 보여 줘. 뭔가 생각날지도 몰라.”

하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분명 자신이 열세라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변수가 필요함을 깨달았으며 그 변수를 위해 대전제를 비튼다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다만 그 이후는 아직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으니, 그것을 위해 그가 나섰다.

인공지능을 도울 수 있는 인간의 뇌가 마왕군의 전략에 더해졌다.

물론 그의 뇌는 뛰어난 책략가도 세기의 천재도 아닌 평범한 일반인 수준의 뇌였지만 그것을 보조하는 마왕의 뇌는 찰나의 순간 가능성과 변수를 계산하여 그를 보좌했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간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던 마왕이 화면에 띄워 준 지도에는 일대의 지형은 물론 마왕군이 어디 어디에 배치되었고 적들은 어디 있는지도 다 보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마치 게임의 미니맵 같다고 판단 했다.

“후방을 교란하는 건 어때. 원래 진군하는 적 본대를 막으려면 본진 털기가 효율적이지.”

[적들의 본진에 얼마만큼의 전력이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차라리 그 인근의 다른 도시들을 공격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다.”

그는 하늘을 나는 비행종을 보유한 마왕군이 가진 기동력에 집중했다. 마왕의 보충이 더해지며 순식간에 적들을 타격할 수 있는 전략이 하나 만들어졌다.

“아예 본대 싸움을 피할 거면 땅으로도 가는 게 어때.”

심지어 먹지도, 마시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는 마왕군의 기동력은 지상에서도 우위였다.

후방 교란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마왕군은 10가지에 달하는 루트로 병력을 쪼개 적을 공격한다는 전략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면 본대의 힘이 더 밀리게 됩니다.]

“시간만 끄는 거지. 가능할 것 같은데······. 무엇보다 이건 진짜 게임이 아니잖아."

잘못된 선택이어도 결국 플레이어의 선택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게임.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게임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그는 인공지능인 마왕의 일부나 마찬가지인 마왕군은 그나마 게임의 유닛들처럼 움직이는 게 가능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적들은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원 넣는다고 병력이나 시설이 뿅 하고 튀어나오는 게임이 아니지. 놈들의 도시를 파괴하고 생산시설을 부수면 그것을 복구하는데도 힘이 소모되고 타격이 커.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우리는 둥지가 파괴되어도 다시 재생하면 그만이니까.“

전쟁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마왕군이 가진 강점은 상당히 강력하다. 그는 어쩌면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선 병력을 나누고 비행종들을 파견하겠습니다.]

하이브 마인드인 마왕을 중심으로 하나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마왕군은, 명령을 보내고 받는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마왕은 하늘을 나는 병사들을 따로 준비시켰다.

거대한 독수리를 베이스로 개조를 거친 마계 수리ㆍ베타는 오직 날기 위한 가벼운 몸을 가졌으며 날카로운 맹금류의 발톱을 단 자전거 크기의 괴수.

거기에 더해, 6개의 갈고리 발에 독침이 달린 꼬리를 가진 마수 잠자리ㆍ알파가 비행종의 주축이었다.

그동안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수 많은 생물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조합하여 만든 가장 효율적으로 강한 병사들.

물론 아직 진화의 여지는 수 없이 많다.

[출격.]

마왕은 그들을 출격시켰다. 수천에 달하는 생물체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아올라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하는 광경은 분명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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