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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1화 (31/200)

31화-균형의 붕괴(1)

31화-균형의 붕괴(1)

[놈들의 도시가 보입니다. 추정치 몇 만 이상의 인구를 보유한 대도시입니다.]

비행종들은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고도를 높여서 하늘을 날았다. 날짐승들의 습성과 본능을 적절히 차용하여, 일정한 편대를 이루며 균일하고 동일한 속도로 정확히 이동하는 그 모습은 어찌 보면 날짐승보다는 프로그래밍된 드론을 더 빼다 박았다.

“놈들은 자기네들 주변에서 10만이라는 적지 않은 숫자의 병력을 빼 갔어. 전력이 좀 약화되지 않았을까?”

[고블린종의 특성상 무의미한 계산 같습니다.]

마왕은 도시에 남은 병력의 전투력을 계산했다. 물론 절대적인 전투력은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계’에 살아가는 ‘마족’인 고블린종은 평범한 방식으로 전투력을 계산할 수 없다.

암수의 구분도, 성년기와 노년기의 구분도 없는 종족이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아성체 이후 성체가 된 고블린들은 성장이 빠르고 수명의 끝에서 찾아오는 노화의 속도는 더 빠른 편이다.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세대의 구성원이 젊고 팔팔한 상태로 전투에 동원될 수 있으니, 만약 도시에 얼마의 고블린들이 남아있다면 그 얼마 전부가 전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문제없습니다. 저희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피해를 주며 놈들의 이목을 끄는 교란작전. 지금 전력이면 충분합니다.]

적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마왕은 계획이 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다.

어차피 저 큼직한 도시를 함락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결국은 소모전이다. 그리고 서로 자원을 소모하며 처절하게 싸우는 소모전은, 마왕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것 중 하나였다.

[강습 준비.]

곧 비행종들이 일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이미 이쪽을 발견했는지 지상에 있던 고블린들은 화들짝 놀라 허둥거리고 있었다.

[강습.]

마왕은 망설임 없이 급강하하여 놈들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 즉시, 비행종들은 곧바로 머리를 처박고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하강했다.

“비, 비상! 비상!”

그들의 이름으로는 카르라고 불리는 고블린들의 도시, 마왕군 비행종들의 대규모 공습에 생전 처음으로 이런 공격을 받아 보는 고블린들이 기겁하여 호들갑을 떨었다.

“당장 왕께 연락하라!”

고블린 왕 안드라스의 총애를 받아 이 도시를 다스리는 일종의 시장이 된 붉은색 피부의 고블린 하나가 경악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피라든지 서큐버스라든지, 전대 마왕군과 싸울 때 하늘을 나는 적들과 싸워 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방어 석궁을 쏴라!”

급한 대로 도시 곳곳에 설치되었던 대형 발리스타에서 쏘아진 화살들이 허공을 가르고 마왕군을 향해 쇄도했다. 대전쟁 시절 외부에서 흘러든 발리스타를 모방한 것이기에 그 위력은 확실하다. 창에 맞먹는 화살에 갑각이 부서지며 관통당한 비행종들이 빠르게 지상으로 추락해나갔다.

모든 병종 중 가장 방어력이 약한 것이 비행종들이기에 희생을 감수한 돌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너, 너무 많······.”

그러나 마왕군이 방어 시설들에 비해 너무 많았다. 석궁에 맞아 조금 죽었다고 물러설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막아라!”

“키, 키힛······!”

결국 마왕군은 거의 모든 저항을 무시하고 지상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성벽을 지키던 이들도, 탑에 숨어 발리스타를 조작하던 이들도, 지상에서 달려가던 이들도 어쩌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모조리 휩쓸려 버렸다.

[전투 준비.]

“주, 주크 님!”

“이길 수 있다. 싸워라!”

[고블린 시장 주크ㆍ1차 각성ㆍlv 34]

발톱에 낚아채인 고블린 셋이 하늘 위에서 떨어져 박살 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주크는 부하들을 지휘하며 도시를 습격한 적들에 맞섰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시전하는 그의 주술은 분명 효과가 있어, 이곳으로 날아오던 적 셋을 일격에 처치했을 정도였다.

‘기회다. 이길 수 있다! 감히 내가 다스리는 이 도시를, 네놈들 같은 괴물 따위가 넘볼 수 있을 것 같으냐!’

터져나가는 적의 시체가 후두둑 떨어지는 그 순간.

눈을 부릅뜬 주크는 몸에 흘러드는 힘을 느끼고 이를 악물었다. 대전쟁이 끝난 이후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 희열의 감정이 다시금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다.

[적들의 저항이 꽤 거세지만, 계산 범위 내입니다.]

주크를 중심으로 뭉친 고블린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특히 구조물 내부에서 공격을 가하면, 마왕군은 그것을 돌파할 힘이 상당히 부족했다. 어쨌든 마왕군은 비행종만 동원했으니까.

[파괴에 들어갑니다.]

마왕은 계산대로 작전을 실행시켰다.

저항하는 적들을 최대한 몰아내고, 파괴할 수 있는 곳은 무조건 파괴했다. 암반 지대에서 돌을 그대로 깎아 만든 이 거대한 고블린 도시는 힘이 약한 비행종들로는 파괴조차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다.

암반 지대에 만들어진 도시긴 하지만 태울 수 있는 곳은 최대한 불을 지르고, 죽일 수 있는 이들은 최대한 죽였다. 돌을 들고 와서 떨어트려 밭을 엉망으로 만들고, 생활 집기는 부수며 우물 속에 시체를 던져 넣었다.

“이, 이 미친 괴물들이!”

이것이 정정당당히 붙는 단순한 전투가 아님을 깨달은 주크가 경악을 하며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처음부터 목적은 이것이었다는 듯이, 밖으로 나온 주크를 개무시하고 파괴 행위를 이어갔다.

“지켜. 반드시 지켜라!”

승리의 기쁨으로 물들었던 얼굴이 어느새 사색이 된 그는 어느새 와해되어 버린 병력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이제는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도시를 지키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놈들이 물러간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비행종들이 일순간 모든 행동을 멈추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당연히 다른 고블린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는 듯 함성을 질렀다. 뭘 모르는 입장에서는 도시를 점령하려던 괴물들이 끝내 실패하고 패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닥쳐라, 이 멍청한 놈들아! 네놈들 눈에는 저 괴물들이 정말로 이곳을 함락시키기 위해 쳐들어 온 것 같으냐?!”

“예?! 하, 하지만 그렇다면 저놈들이 대체 무엇을 위해서 쳐들어 왔다는 것입니까? 그리고 그게 진짜 목적이 아니었다면, 놈들을 조종하는 우두머리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까?”

“······그건!”

멍청한 부하들에게 역정을 내던 그는 역으로 들은 질문에 당황했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저놈들은 누가 봐도 야생의 짐승 같은 괴물들이었지만 막상 그 행동은 하나하나가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마치 지휘를 받는 군대처럼.

“어, 어쨌든 어서 왕께 전해라. 그리고 도시를 복구해라. 농사를 망쳤다면 이번 겨울을 보내는 것부터가 문제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그는 어서 고블린 왕 안드라스에게 이 일을 전하라 명령했다. 그래도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못 버틸 것도 아니었다.

***

“왕이시여! 지금 남부에서 땅을 달리는 괴물들 수백이······.”

“이곳 근처의 도시 카르가 수천에 달하는 괴물들에게 습격당했습니다!”

“지금 놈들이 강을 건넜습니다. 아무래도 쿠잔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그, 그만. 그만!”

고블린 왕 안드라스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헐레벌떡 달려 온 신하들이 가져온 소식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내용들로,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주요 도시들을 습격하며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왕이시여. 지금 사방을 공격하고 있는 적들은 검은 갑주를 입은 정체불명의 괴물들로, 아군의 병력 10만이 토벌하기 위해 진격하는 그 괴물들이 틀림 없습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우리를 기만하려는 것 아닌가! 우리 본대를 흔들려고!”

“하지만 무시한다면 다른 지역들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이래서는 저희가 계획한 성장 계획이 모두 어그러집니다.”

“크아악! 이 쓰레기들이!”

심복이 언급하는 ‘성장 계획’에 안드라스는 발작하듯 분노했다.

그는 다른 영주들을 뛰어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계획을 세우고 착실하게 그것을 이행했다. 오직 위대한 고블린들이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여 더 큰 힘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런데 지금 그 모든 것이 박살 날 판이었다.

“본대를······ 본대를 반으로 나누어라. 훗날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명심하도록. 우리의 진짜 적은 그 괴상한 괴물들 따위가 아니라 다른 영주놈들이라는 것을!”

결국 지킬 것도, 잃을 것도 더 많았던 안드라스는 당했다는 생각을 품으면서도 자신의 본대를 반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나눈 병력을 주요 길목에 배치해서 영토를 지키고 나머지는 직접 공격시켜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이 역시 한쪽을 만만히 보고 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적들의 본대가 나뉘기 시작합니다. 저희가 세운 가설 2―3의 내용대로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미리 위장한 정찰병들을 심어 둔 마왕의 눈에 전부 보이고 있었다.

[가설 1의 내용대로 그들이 공세를 접고 수비에 집중한다거나, 가설 3의 내용대로 아군의 기만책을 무시하고 한 점 돌파를 시전한다면 모를까, 여차하면 이 전쟁이 금방 끝날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반 토막 난 적의 본대를 역으로 제압하면 됩니다.]

자신이 펼친 전술에 대응하는 고블린들의 수준을 본 마왕은 승리 가능성이 더 올라갔다고 확신했다.

[대규모 회전을 준비하겠습니다.]

“진짜 이길 수 있는 거지?”

[습득한 데이터를 통한 시뮬레이션은 완벽합니다. 피해가 크겠지만 적들을 제압하고 다시금 병력을 생산해서 적들에게 피해를 누적시킨다면 승리입니다]

마왕은 거짓도, 과장도, 축소도 없이 오직 사실적인 계산값만 말했다.

레벨, 마력 수련이라는 고블린들의 특별한 힘을 알고 난 이후 철저히 대비하고 준비했다. 설령 고블린들이 더 거세게 저항해도 그 숫자가 반토막이 난 이상 밀어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신식 전력으로 무장한 베타 등급의 병사들이 선봉에 섭니다.]

기존보다 육중해 보이는 중갑을 두른 그들의 갑주가 심상치 않았다. 오염된 것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보라색을 띄고 있는 그들의 갑주는, 그가 넘겨준 침략종 이각수의 데이터까지 사용해 만든 최신의, 마계에서는 이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갑주.

일정 두께가 필요해 관절부를 포함해 전신을 두를 수는 없는 이 갑주는 그만큼의 강도와 방어력을 충분히 갖추었다.

“좋아······. 공격해.”

그는 확신하는 마왕을 믿었다.

별별 작전을 다 써 보긴 했지만 이 한 번의 싸움에 결국 승패가 갈리는 셈이다. 곧 마왕군 역시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적들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피하지 않습니다. 이길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모양입니다.]

고블린 본대는 마왕군을 보고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다른 곳 소식을 들은 상태였던 그들 역시, 이번 한 번이 승패를 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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