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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2화 (32/200)

32화-균형의 붕괴(2)

32화-균형의 붕괴(2)

‘숫자가 많긴 많군. 고작 기사단 하나 이끌고 나간 로치가 현지 부락민들을 모아서 싸웠다는데 질 만하다.’

고블린 총사령관 니엘그.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던 그는 가마에 앉아 전방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행군하는 자신들의 앞에 적들이 대놓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병종이 섞여 있어 측정이 힘들지만 그럼에도 족히 몇 만은 되어 보이는 적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숫자라면 로치 따위가 어쩔 수 없는 대병력이었으니까.

물론 니엘그는, 로치를 상대할 당시의 마왕군은 고작 수천에 불과했으며 지금 그들이 파견되어 이곳에 오는 겨우 며칠 사이에 마왕군의 숫자가 저만큼 불어난 것이란 것은 알지 못했다.

“근데 대체 저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란 말이냐? 듣자니 놈들의 일부로 보이는 짐승 수천이 후방을 사방팔방 공격하는 바람에 아군의 본대 절반이 그곳들을 지키기 위해 빠져야 했다.”

“대전쟁 기간 북쪽 숲에서 세력을 키워 온 마수들로 보입니다.”

“마수······라고?”

니엘그는 부하의 말에 혀를 찼다. 마수를 닮은 것 같으면서도 비틀려 있는, 그 기괴한 생김새들은 아무리 봐도 상식속의 마수들과는 확실히 달랐으니까.

물론 마수란 생물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상관없을 것이다. 우리가 저딴 놈들에게 질 리가 없으니까.”

고개를 저은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대를 뒤덮은 수 많은 병력들. 단순한 병력도 아니었다. 말단의 병사마저도 강철로 만든 중갑으로 무장한 최정예의 병사들이며 니엘그를 포함한 그 핵심들은 대전쟁에서 안드라스와 함께 싸운 특별한 이들이었다.

[고블린 사령관 니엘그ㆍ1차 각성ㆍlv 60]

안드라스와 10레벨 차이 나는 니엘그의 레벨이 그것을 증명했다.

“내 말이 틀리느냐. 우리는 강하다. 대전쟁에 직접 참여해 마왕군을 패퇴시키고 승리를 쟁취한 이들이다.”

넓다란 황무지에서 적들과 대치하게 된 그는 여유롭게 중얼거렸다. 그 여유는, 이미 수많은 전장을 겪어 본 경험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였다.

“위대한 고블린의 깃발을 들어라. 우리의 작은 발은 대지를 짓밟는 발걸음이고, 우리가 든 짧은 검은 적을 베어 낼 참격이 되며, 우리가 함께하는 돌진은 세상을 울릴 물결이 된다!”

가마에서 올라선 그의 말과 함께 사방에서 깃발이 올라갔다. 안드라스가 만든 고블린의 문장이 떡하니 박혀 있는 화려하고 높은 깃발들.

“저 짐승 놈들에게 알려 주어라. 누가, 이 땅의 주인인지.”

“나팔을 불어라.”

니엘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방에서 낮게 울리는 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펄럭이는 깃발과 함께 울려 퍼지는 그 고동 소리가 고블린들의 사기를 단단히 충전시켰다.

“고블린의 힘을 보여 주자. 전군 돌격!”

비록 현존하는 모든 고블린들이 진심으로 안드라스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각기 다른 생김새를 가진 고블린들 다수가 그 깃발을 보고 함께 울림을 느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고블린들의 협동과 통일. 안드라스의 지휘아래 하나가 된 고블린들이 대전쟁 이후 처음으로 그 폭발력을 드러내었다.

“놈들은 감히 대항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싸우는지도 모를 것이다.”

“휩쓸어 버려라!”

선두에 있던 보병들이 일제히 자세를 낮추자, 중간중간 섞여 있던 땅의 주술사들이 그들이 딛고 서 있던 암반 자체를 들어 버렸다.

그리고 고블린 수백을 태운 그 암반들은 마치 파도를 타는 서퍼의 서핑보드처럼 지면을 타고 흐르며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암반들이 무려 수십 개. 여차하면 이 거대한 땅덩어리로 그대로 뭉개 버릴 수도 있었다.

[당신의 증언이 정말이었군요, 유리아. 과연 저렇게 한다면 충돌 즉시 암반 위에 있는 고블린들을 상대하는 일종의 공성전이 되는 것이니.]

“그, 그렇지만 전에는 저렇게 크고 많지 않았는데······!”

[고블린들의 세대 교체 사이클은 빠르고 인구도 폭증했습니다 그만큼 전력이 느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기를 충전하고 정면으로 덤벼드는 고블린 군단. 그 모습을 본 마왕은 유리아의 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왕군을 지휘했다.

고블린들과는 달리 사기를 진작하거나 서로를 독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마왕군은 늘, 언제나 하던 대로 값이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움직일 뿐이다.

[힘으로 상대하지 말고 암반 위로 뛰어올라, 땅을 조종하는 적 주술사들을 공격하는 식으로.]

마왕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전투에 쓰일 전술을 찾아내고 시도했다. 넓은 판을 보는 전략적인 부분은 도움을 받는다지만, 전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순간순간의 판단이나 전술은 이제 스스로도 충분히 세울 수 있다고 자신한 덕이다.

[유리아, 당신이 비행종 편대와 함께 놈들을 교란하십시오.]

“······좋습니다.”

유리아 역시 출격했다. 결국 저 거대한 암반들을 움직이는 것은 합동으로 주술을 펼치는 주술사들. 그 주술사들만 괴롭히면 암반은 움직이지 못한다.

“키잇! 놈들이 온다!”

“싸워라!”

고블린들은 어떻게든 움직이는 암반 위로 침투하려는 마왕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유리아가 그중 노리는 것은 선두에 있는 이들.

비행종 몇과 함께 빠르게 하강한 그녀는, 피막에 쌓인 거대한 날개를 활짝 피고 고블린들을 향해 손을 겨누었다.

“인, 인간?!”

“인간······ 이 아니다?”

그녀의 얼굴을 본 고블린들이 당황했다. 거센 돌풍에 금발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얼굴은 그대로지만, 목 아래는 검은 갑주와 가죽에 덮인 괴물의 몸이었으니까.

“쏟아져라.”

그녀는 놈들을 향해 시전한 마법을 퍼부었다. 자신이 가진 마력을 극한의 효율로 쥐어짜 쏟아붇는 수십 발의 화염구는, 기겁한 고블린들의 머리 위에 그대로 쏟아졌다.

“캬아악!”

설마하니 마법 공격을 할까 싶어 대공 방어를 소홀히 한 주술사들 역시 그대로 휘말렸다. 덕분에 서핑 보드처럼 미끄러지던 암반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정지당해, 땅과 충돌하며 반으로 갈라졌다.

그 위에 있던 고블린들 다수가 넘어져 자기들끼리 눌러 죽이고 깔려 죽을 정도였다.

[적들의 돌격이 힘을 잃었습니다. 제 2타, 돌격.]

암반을 타고 돌격하던 고블린들이 서로 뒤엉켜 정지당한 직후, 마왕은 미리 준비했던 이들을 출격시켰다.

곧 지축을 울리는 마왕군의 돌격병들이 특유의 육중한 몸을 앞세워 미친듯이 달렸다.

“자리를······ 자리를 잡아라!”

암반 돌격이 실패로 돌아간 고블린들은 서둘러 다음 작전을 준비했다. 돌진해 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해 땅의 주술을 사용해 토벽을 쌓고, 바람과 불을 이용해 뜨거운 화염풍을 마왕군을 향해 쏘아 내었다.

[이각수의 갑각은 내화력 역시 상당합니다. 화염 공격은 무시하고 돌진하겠습니다.]

그러나 돌진해 오는 마왕군의 돌격병들은 감속하지 않았다. 삼각뿔소를 베이스로 삼은 삼각뿔소ㆍ베타는 커다란 머리에 돋은 3개의 뿔을 마치 창처럼 겨누고 그대로 고블린들의 토벽에 충돌했다.

“캬악!”

“토벽이······.”

급히 만든 토벽은 단숨에 부숴지고, 삼각뿔소의 뒤를 따라 쌍두호ㆍ베타가 알파에겐 없었던 전갈의 꼬리를 휘두르며 내부에 난입했다.

“싸워라!”

기겁한 주술사들의 명령에 전사와 기사들이 마왕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방어선을 구하지 못한 순간 이미 선두로 달리던 고블린들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에 포위당해 침몰해 갔다.

분명 고블린들이 걸친 중갑은 튼튼한 물건이다. 하지만 전차의 장갑도 긁어내는 이각수의 턱을 개조한 마왕군의 이빨과 발톱, 독침등은 그 중갑을 부수거나 뚫어 버렸다.

“······!”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니엘그가 가마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대로 가면 결말은 뻔하다.

“우리도 합류해야 한다. 서둘러라!”

[계획대로 놈들의 남은 부대도 움직입니다. 제 3타, 준비.]

다급히 본대를 지원하는 니엘그의 움직임에 맞춰 마왕도 차근차근 전쟁을 풀어 나갔다.

삼각뿔소 등 덩치 큰 돌격병들을 사용해 전열을 부수고 늑대나 호랑이 등 난전을 벌일 중소형 돌격병들을 투입해 난전을 벌였으니, 이제 그다음 차례다.

“크읏, 이것들은 또 뭐야!”

거대한 거미의 목을 베어 버린 고블린 기사 하나가 이를 악물고 휘두른 검을 회수했다.

돌격병들의 뒤를 따른 것은 이족보행을 하는 오크 혹은 고블린등을 베이스로 삼은 특수병.

특히 네 개의 팔에서 각각 하나씩 검을 들고 휘두르기 시작한 오크ㆍ베타의 공격에 크게 당황한 고블린 기사는 결국 피를 뿌리며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비록 오크ㆍ베타 역시 한쪽 팔을 깊게 베이긴 했지만, 마왕군에게 팔다리 하나 떨어지는 것 따위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부상이었다.

“물, 물러서지 마라. 싸워라! 긍지를 보여라!”

[전투 지속시 예상 손실률 89%, 그러나 적 전멸 확률 역시 90%.]

니엘그와 마왕, 두 지휘관의 판단과 결단이 충돌했다. 니엘그는 어떻게든 흔들리는 아군을 휘어잡고 버티게 만들기 위해서 무슨 수든 써야 했다. 하지만 마왕은 다르다. 그저 현황을 빠르게 분석해서 취약한 부분에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고, 과집중된 부분의 화력은 다른 곳으로 돌리는 등 오직 효율적인 전투에만 집중했다.

“그대로 가면 결국 양쪽 다 전멸한다는 거 아니야?!”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고블린종이 다시 이만큼의 세력을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년 이상, 하지만 저희는 약간의 여유를 가져도 10일이면 충분합니다.]

죽고 죽이는 끔찍한 전장이 계속되며 지켜보던 그가 계산 결과에 놀라 물었지만 마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서로 전멸해도, 자신이 복구가 더 빠르다는 계산 덕분이었다.

[본대는 이곳에서 전멸합니다.]

마왕은 자신의 병사들에게 끝까지 싸우다 죽으라는 명령을 태연하게 내렸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제대로 먹힐 리가 없는 명령.

그러나 신ㆍ마왕군은 다르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다. 영혼 없는 괴물들은 그저 명령대로 움직이는 기계부품일 뿐.

‘이것이 새로운 마왕군!’

고등한 자아를 가진 거의 유일한 개체인 유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지배하는 마왕의 명령에 식은땀을 흘렸다.

뇌는 그대로라 자아를 가졌지만 그 세포 하나하나는 마왕이 컨트롤하는 마족의 몸. 그녀는 왜 헌재의 마계 72 영주가 전대 마왕을 배신하고 지배력에서 벗어나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현 마왕의 힘은 고작 거스를 수 없게 만드는 고대 주문 수준이 아닌 전신의 세포 단위로 작용하는 일종의 절대 법칙.

마왕의 지배가 없다면 형체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세포 단위 마족 나노는 배신이라는 행위를 근본부터 차단하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이, 이건······ 이놈들이 감히!”

고블린 사령관 니엘그는 죽음을 불사하는 마왕군의 기세에 경악했다. 마치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는 것 같은 과격함과 돌파력.

하지만 언데드들처럼 불이나 신성에 약점을 보이는 것도 아니니 이미 늦어 버렸다. 고블린들은 이대로 싸우면서 서로 전멸하던가, 일방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도망치던가 밖에 없는 이지선다에 걸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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