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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3화 (33/200)

33화-균형의 붕괴(3)

33화-균형의 붕괴(3)

“뭉쳐라. 뭉쳐서 싸우면 충분하다!”

“주술사! 여기 지원이 필요······ 캬아악!”

아비규환, 그리고 아수라장. 마왕의 의도대로 마왕군은 철저하게 난전을 만들었다.

초월적인 연산력으로 모든 개체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마왕은, 난전이면 난전일수록 자신이 있었다.

물론 세부적인 연산까지는 부족하기에 그 움직임이 투박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난전에 빠져든 상대에 비하면 통제와 움직임이 매우 월등하니까.

이런 미친 짓이 만 단위가 넘어가는 와중에도 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요소요소에 심어진 지휘 개체들 덕분.

외형 자체는 다른 병력들과 다르지 않지만, 그들은 보호 받고 있는 뇌를 체내에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뇌를 사용하여 자신 휘하의 병력을 지휘하고 그것을 마왕과 연결하여 연산을 보조한다.

결국 마왕군의 지휘 체계는 수많은 뇌들이 마왕을 중심으로 하나로 이어진 일종의 네트워크.

바로 그것이 마족들은 상상도 못 할, 살아있는 생물로서는 불가능의 영역인 일체적 집단 전술을 가능하게 만드는 비밀이었다.

“키잇! 버텨! 버텨라!”

[고블린 기사단장 투루ㆍ1차 각성ㆍlv 35]

물론 고블린들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이들을 중심으로, 그들은 어떻게든 버티며 마왕군을 하나둘 쓰러트려 갔다.

“이놈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최전방에서 싸우던 고블린 기사 투루. 그는 마력으로 강화되어 푸르게 빛나는 자신의 검에 두동강이 나 쓰러진 오크ㆍ베타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질렸다는 듯 외쳤다.

반격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사실이다. 바닥에 쌓여가는 시체에는 고블린들의 시체만큼이나 마왕군의 시체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곁에 있던 동료가 죽으면 크게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고블린과 달리 마왕군은 오히려 자기 동료의 시체를 짓밟고 발판삼아 더 거세게 덤벼들었다.

“······그래. 그러면 어디 다 죽어 보아라!”

악에 받쳐 소리친 투루는 다시금 검을 휘둘러 덤벼들던 거대한 거미의 앞발을 쳐 내고 그 얼굴을 베었다.

대전쟁을 치루어 본 왕의 측근답게 이정도로 투지를 잃지 않았다. 용맹한 고블린 기사단장은 스스로가 희망이 되어 부하들을 이끌고 항전의 주축으로 활동했다.

“······.”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한 지휘 개체가 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오크ㆍ알파에서 오크ㆍ베타로 개조된 이름 없는 지휘 개체. 그것은 파견한 자신의 병력을 도륙 내는 투루의 모습을 보며, 손에 든 검을 움켜쥐었다.

본래 평범한 지휘 개체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지휘 개체라 해도 결국 수집된 데이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일종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수많은 경험을 축적해 온 ‘그것’은 달랐다. 절박하게 싸우는 투루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내면에 싹을 틔운 무언가 묘한 것을 감지했다.

‘분노.’

그것은 미약하고 어지러운, 일종의 감정이었다.

분노, 혹은 호승심. 마왕과 마찬가지로 마왕이 자신을 본따 만든 하위 프로그램에 해당하니 사실상 마왕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그것’ 역시 조금씩 변화를 맞아가는 것이었다.

“크윽······ 이놈이!?”

투루는 전장에 갑작스럽게 난입한 새로운 적의 등장에 당황했다. 4개의 팔에서 휘둘러지는 4개의 검격.

마력으로 강화한 신체와 검이 아니었다면 받아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르다.’

이미 오크ㆍ베타를 베어 죽인 투루는 찰나의 순간 수차례 겨룬 검격에서 상대의 움직임이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무엇보다 자신의 숨통을 노리는 그 공격들에서 다른 괴물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살의와 공격성을 감지했다.

“이제야 조금 괴물 같구나. 하지만, 고작 그정도로 되겠느냐!”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데도 차갑기 그지없던 인형들과 싸우는 것 같았던 투루는, 마침내 만난 대적자의 등장에 기뻐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오크ㆍ베타가 밀렸다. 아무리 육체를 강화하고 검술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 나가도 상대 역시 베테랑, 거기다 마력이라는 신비로운 힘을 1 대 1로 극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

결국 오크ㆍ베타는 투루의 검에 길게 베여 체액을 흩뿌렸다. 팔 4개 중 2개가 날아가고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자신을 비웃는 투루를 죽이기 위해 억지로 몸을 움직였지만 비틀거리는 게 한계였다.

“이걸로 끝이······ 이 놈들이!?”

하지만 그대로 마무리를 지으려던 투루는 사방에서 덤벼드는 다른 마왕군의 공격에 휩쓸려 밀려났다.

[부상 개체 급속 치유 프로그램 작동.]

그 이후 마왕군 측에서 거대한 배를 질질 끌고 다니는 거미 하나가 다가왔다. 그리고 거미는 입력된 값대로 부상당한 ‘그것’에게 입에서 토해낸 점액을 뿌려 주었다.

점액은 나노로 이루어진 농도 높은 물질. 투입된 새로운 나노들이 부상을 입은 체내에 침투하여 새로운 세포로 분열해 부상을 급격히 치유했다.

이 모든 과정은 마왕이 더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구축한 부상병 복구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재전투.]

마왕은 치유된 이들에게 재전투를 명령했다. 그것은 당연히 그 명령에 따랐다. 하지만 검은 갑각 속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눈들은, 지금도 투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아아······ 아아아! 이렇게 된 이상 답이 없다! 놈들을 전멸시켜라!”

“하, 하지만 사령관님! 그렇게 되면 아군의 피해가······.”

“그럼 저 미친 괴물들을 상대로 대책없이 후퇴하다 역으로 전멸당할 셈이냐! 일단 이기고 그 다음 후퇴하는 게 맞다!”

전장의 상황과 분위기를 보고 판단을 내린 총사령관 니엘그는 결국 이를 악물고 싸울 것을 명령했다.

비록 선택권은 그들에게 없지만 어찌저찌 싸워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기세도, 전술도 밀리지만 대규모 주술 한번에 적 수백을 한번에 폭사시키는 변칙적인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싸워라! 끝까지!”

결국 고블린들 역시 끝의 끝까지 싸울 것을 각오하고 싸웠다. 싸움과 죽음, 오직 그 두가지만 존재하는 처절한 전장.

[적들의 고급 병력들을 최대한 저격해야 합니다]

마왕은 어차피 전멸을 각오한 그 전장에서 마력을 다루는 적의 고급 병력들을 집요하게 저격했다.

사령관 니엘그 같이 중앙에서 보호받고 강하기까지 한 이들은 차마 건드리지 못했지만, 전방에서 싸우는 말단 병력들은 충분히 잡아먹는 게 가능했다.

마왕은 그것만 해도 자신이 이득이라 판단했다. 적들이 고블린 기사 하나를 키워 내는데 쓰이는 시간과 자원을 생각하면, 마왕군 몇은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이건······.”

[적 손실률 89%, 아군 손실률 95%.]

마침내 쉴 틈 없이 약 한나절 간 계속된 전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양측은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시체를 밟고 싸웠다. 서로 흘린 피가 대지를 적시다 못해 넘쳐날 정도였다.

죽은 이들이 살아남은 이들보다 아득하게 많아진 그 순간.

마력 탈진으로 골골대는 사령관 니엘그도, 지휘 개체 정도만 살아남은 마왕군도 잠시 전투를 멈추었다.

***

[이제 아군을 후퇴시키고, 새롭게 양성한 병력으로 다시금 놈들을 공격하겠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놈들이 막아낸다면.”

[그때는 2타, 3타, 4타까지 반복하면 됩니다]

박스디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평화롭다. 화면 가득히 펼쳐진 수북한 시체들 바라보던 나는 얼떨떨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거대한 집단과 집단이 부딪힌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못 이기겠지. 그들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

지금 우리의 본진은 거의 비어 있다. 그러나 나는 고블린들이 남은 병력들을 모조리 이끌고 역습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그랬다면 애초에 병력을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

[놈들이 병력을 수습하기 위해 급히 물러나고 있습니다. 곧바로 양분을 보충하겠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박스디는 수많은 일꾼들을 투입해 전장에 쌓인 시체들을 수거했다. 적의 시체든 아군의 시체든 그것마저 양분으로 삼겠다는 것이었다.

[병력이 복구되는 즉시, 적들의 도시를 돌아가면서 공격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막지 못하겠지. 그렇다고 한점에 다시 힘을 모으면 우리는 뒤를 공격하면 되고. 좋아. 계획대로 가는 것 같네.”

어떻게든 되게 하는 박스디의 실행력은 언제나 내 예상 이상이다. 동굴 귀퉁이, 고블린 몇 마리로 시작한 군단이 어느새 마계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기존의 지배자들과 겨룰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하지만 성장의 맛을 알아 버린 박스디가 고작 이 정도로 만족할 리 없다.

“이제 아까 그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 네 말대로라면 평범한 지휘 개체에게 자아가 새로 생기고 있다는 거야?”

나는 화제를 돌렸다. 성장하는 건, 박스디만이 아니었다.

[저는 저 자신을 열화한 하위 프로그램을 복사하여 지휘 개체들에 집어넣었습니다. 실제로 일정 규모 이상의 전투에서 현장 지휘관인 그들의 역할이 큽니다. 그들이 없다면 제 연산능력으로는 이런 대규모 전투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그들은 네 분신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는 데 시간이 약간 걸렸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그것이 유리아와 비슷하다고 이해했다.

다만 유리아는 자신의 자아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의지로 뇌를 쓰기 때문에 마왕군의 지휘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지휘 개체들은 자아가 없기 때문에 뇌를 온전히 써서 마왕군의 지휘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그 지휘 개체 중 일부가, 감정을 비롯한 자아를 각성할 낌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자아가 인간과, 혹은 저와 비슷할 리가 없습니다. 저는 본래부터 완벽히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알고 있어. 어쨌든 통제하는 데 문제는 없을거라는 거 아니야.”

자기 일부인 주제에 박스디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박스디가 말한 것 처럼 그들은 박스디의 열화판에 불과하다.

“그래도······ 난 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박스디는 그들을 폐기할 계획까지 세우는 것 같았지만 내가 반대했다. 분명 박스디의 말처럼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다양성의 씨앗을 남겨 두어 나쁠 것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비대해지는 박스디의 자아 때문이다. 다양해지고 격해지는 감정들, 욕망과 신념 등등.

성장기의 유아처럼 이제 막 성장해 가는 박스디 본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자아라는 것이 때로는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때가 언젠가 오면 자신을 도와줄 다른 존재들이 필요하다.

“유리아같이 널 도와줄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는데. 나는 너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긴 힘들다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스디는 답지 않게 대답을 망설였다.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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