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균형의 붕괴(4)
34화-균형의 붕괴(4)
자신의 분신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 너무나 당연한 이유였으며, 유리아에게 말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그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떠나가 분산될 것이니까.
“그, 그래서 그것을 제게 묻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휘 개체들을 폐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방법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위 프로그램들과 차별될 수 있는 방법이.]
“마왕께서는 충분히 특별하십니다.”
대규모 전투 이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리아는 마왕의 말에 당황하여 가까스로 대답했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인공지능이 감정과 자아를 갖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감을 잘 잡지 못한 그녀에게는 마왕의 말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겨질 뿐이었다.
[물론 지금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제가 미처 발전하지 못할 때, 그들은 제가 확보해 둔 데이터들을 모두 학습하여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것입니다.]
본인도 인공지능이기에 마왕은 인공지능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직 자신만이 줄 수 있는 변수를 주지 못한다면 금방 따라잡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오직 마왕께서만 가지실 수 있는 특별함.”
어쨌든 목숨값과 복수의 기회라는 대가를 받고 마왕에게 충성하는 충신이 된 유리아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유리아는 인간의 사고방식과 마음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그와 직접 소통할 수 없는, 마왕의 손아귀 안에 있는 존재.
마왕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도 떠올릴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곧 자신이 있던 둥지 전체를 멍하니 둘러보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무언가 보기라도 한듯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몸을 만들라는 말입니까? 나만의 몸을?]
“마왕께서 이 거대한 집단을 이끄시는 일종의 정신체임은 알고 있습니다.”
유리아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과연 자신은 상상조차 못했던 변칙적인 의견 제시에 마왕은 흥미를 보였다.
“거대한 돌격병도, 검을 휘두르는 특수병도 만드시는 것이 마왕님입니다. 몸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요?”
[비효율적이기에 굳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입니다.]
둥지가, 마왕군이 곧 마왕의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마왕은 굳이 자신의 몸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비효율의 극치였으니까.
“마왕님이 오직 전쟁만을 위해 설계된 몸이 아니라 마신께서 원하시는 몸으로 그분을 부르신다면, 그분께선 분명 마왕님께 계속되는 관심을 가지실 것입니다.”
‘빛의 여신은 단호하고 동시에 따뜻한 면모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신께선 냉혹함 속에 연민을 가진 것이 분명해.’
소문을 통해 대성녀 이벨리아를 조종하는 여신에 대해 들었던 유리아는 마신에 대해, 즉 그에 대해 살짝 오해를 가졌다.
유리아는 일단 그가 굉장히 냉혹하다고 생각했다. 마왕과 함께 언제나 상식을 벗어나는 전술을 시도하고 전쟁에 망설임이 없으며, 평소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왕의 증언과 태도등으로 그가 가진 애정을 알 수 있었으니 냉혹함 속에 정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런 존재라면 마왕이 자신 취향의 몸으로 나타난다면 좋아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 바로 유리아의 계산이었다.
[일리 있는 주장 같습니다.]
결국 마왕은 유리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유리아는 모르고 있지만 마왕은 유리아에게 마신이라 불리는 그가 평범한 인간 남성임을 알고 있었다.
물론 비효율적인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의 마왕에게 이것은 오히려 효율을 위한 투자에 불과했다.
“······뭐라고?”
또한 굳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왕은 그 즉시, 그에게 준비한 질문을 시작했다.
“내 이상형? 갑,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지?”
[현재 병력 충원 58%. 시간은 충분합니다.]
조금 단도직입적으로 묻긴 했지만 마왕은 당연히 진실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는 상상도 못한 질문에 당황해서 말을 잃었다.
[유리아의 얼굴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어떻습니까.]
마왕은 현재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인간 여자의 데이터 중 가장 멀쩡한 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유리아 정도면 탈 일반인이지.’
새로운 전술 연구인가 싶었던 그는 일단 답해 주었다. 물론 마왕의 질문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집요하게 캐묻는 마왕에게 그는 딱히 별 생각 없이 정보를 알려 주었다.
[설령 더 많은 인간들의 데이터를 원한다고 한다 해도, 사용자님은 결코 그러지 않으실 겁니다.]
부족한 데이터는 연결을 통해 충분히 수급할 수 있었다. 하지말 이미 이계의 괴물 하나를 넘겨 받아 죽인 마왕도 이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고작 이런 일을 위해서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리가 없다고 확신한 탓이었다.
[잘 조합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남은 수단은 가진 모든 데이터를 잘 조합하고 활용하여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몸을 만드는 것.
마왕은 그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
“별 해괴한 소리를.”
나는 박스디의 목소리가 사라진 휴대폰을 내려다 보았다. 화면은 꺼졌지만 여전히 뇌리에 기억이 선명하다.
그 거대하고 웅장하던 전투의 모습과 승리를 거둔 모습이.
비록 그 결과는 동귀어진이었지만 아군의 장점이 발휘된다면 빠르게 피해를 복구하고 아직 제정신을 못 차리는 적들을 연달아 공격할 수도 있었다.
‘······이제 내 차례다.’
오히려 박스디 쪽보다 내가 더 걱정이었다. 이전에는 행운에 행운이 겹쳐 수월하게 박스디에게 무리에서 떨어진 침략종 이각수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스디에게 새로운 데이터를 계속 넣어주기 위해서는 지금 신분으로는 어렵다. 이전과 같은 행운을 계속 기대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게이트 발생률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안 됩니다. 각성자들의 숙련도가 쌓이지 않으면 무의미한 희생만 나옵니다!”
뉴스 속에, 누군가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서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각성자였으며 동시에 각성자들의 권한을 더 늘려 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것을. 희생을 줄이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빠른 결단이. 부디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마치 이래도 버틸 수 있겠냐는 표정. 실제로 지금 여론은 최악이다. 시도 때도 없이 군대를 동원해서 게이트를 막으려다 보니 사상자와 피해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현재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겠지만 현재의 정치권은 각성자들의 활동을 어떻게든 규제하고 제약하려고만 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들은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각성자들의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나도?’
나는 슬쩍 휴대폰을 내려다 보았다.
이미 박스디와 연결된 휴대폰을 통해 박스디가 쓰는 마법의 위력을 목격했다. 침략종들을 상대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하던 그것을 잘만 사용하면 나도 각성자 흉내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이트 경보: 통제 구역 탈출>
그리고 뉴스 속보 하나가 인터넷에 떠오른 것이 그때였다. 게이트를 넘어 온 괴물이 주변을 통제하던 구역을 벗어났다는 속보로 인근 주민들이 서둘러 대피하고 있다는 소식.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들었다. 내 집과 가깝진 않지만 그리 멀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 이동 중이야. 어쩌면 탈출한 놈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들려?”
[들립니다, 김창현 님.]
“화면은 왜 안 켜줘?”
현장 근처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면서 박스디에게 내 즉흥적인 계획을 알려 주었는데, 평소와 달리 박스디는 화면을 켜주지 않고 목소리만 들려왔다.
[잠시 조정중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화면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조정?”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 대신 택시는 빠르게 달려 1시간이 좀 되지 않아 현장 근처에 도착했다.
나는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기겁한 택시 기사에게 현금을 쥐여 주고 빠르게 차에서 내렸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시도해 보려고. 대신 유사시에 쓸 수 있는 네 마법이 필요해.”
[물론입니다. 최적의 상황, 최적의 구도에서 정밀하고 치밀한 마법 지원을···.]
“이쪽이다.”
어째 말이 많은 박스디는 물론 혼비백산해서 대피하는 사람들과 호루라기를 부는 경찰들을 무시하고 역방향으로 달렸다. 어떤 괴물인지 미처 보지 못했지만 박스디의 지원이 있다면 빠져나갈 수는 있다고 확신했다.
“······.”
슬슬 사람들이 없어지는 지점, 저 멀리서는 총성과 폭음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지점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더 깊게 올렸다.
동시에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괴물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아악!”
그리고 그때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근처에서 함께 들려왔다. 순간 느껴지는 익숙함. 그러고보니 내가 처음 나섰을 때도, 누군가를 공격하려던 적을 가로막았던 때였다.
나는 곧장 그곳으로 뛰었다. 상태창이 제시하는 퀘스트를 깨야 하는 각성자도 아니었고, 반드시 사람을 구해야하느니 어쩌니 하는 영웅적이고 거창한 마음도 아니었다.
그냥 어서 빨리 원하는 목적을 이루려는 본능에 가까웠다.
[제게도 상황이 보입니다.]
“어디지? 이 근처인데?!”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박스디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난장판이 된 상가 단지 주변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박살 난 외벽이나 바닥재, 핏자국과 부서진 자동차 등등.
보도블록에 선명한 발톱 자국 등은 적어도 사람이 아닌 무언가가 이곳에 돌아다니고 있음을 명확히 하는 증거였다.
[마력 탐지를 시도, 반경 100m 이내의 마력들이 탐지되었습니다.]
그때 박스디가 뭔가를 시도했다. 동시에 휴대폰에 무언가 떠올랐다. 나를 중심으로 일정하게 퍼져 나가는 파동.
그리고 그 파동에 감지되고 있는 다른 점들.
“지금 거기로 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 같았다. 나는 일단 그곳으로 뛰었다.
“······으로!”
“안 돼!”
가까이 근접할수록 사람들의 아우성이 조금씩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상가 건물 안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을 위협하던 괴물은, 마치 흩날리는 검은 연기 혹은 증기처럼 생긴 무언가. 그 앞에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정해진 형체라고는 흉부에 두른 검은 갑옷뿐인 그놈은 마찬가지로 증기로 이루어진 손을 겁에 질린 사람들을 향해 뻗었다.
희생자들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 다수와 그 아이들을 데리고 있던 교사 하나였다.
“박스디, 빨리!”
[여파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뇌전ㆍ10 중첩.]
다급해진 내 외침에 손에 든 휴대폰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것저것 잴 필요 없이 나는 휴대폰을 뻗어, 그곳에서 튀어나온 파직거리는 전격을 괴물을 향해 뿜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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