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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6화 (36/200)

36화-균형의 붕괴(6)

36화-균형의 붕괴(6)

“시간이 벌써······. 난 일단 좀 자야겠어.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도 일정이 있어서.”

[잠시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강심을 사용한 마나운용의 시범도 끝나고, 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드려는 그 순간. 마왕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무슨 일인데?”

그러자 그는 마왕의 태도에 당황하여 되물었다. 평소에 이런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유리아, 내가 지시한 대로 말하십시오.]

그 순간 마왕은 곁에 있던 유리아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눈을 굴렸지만, 이미 강제로 합의가 된 사항.

결국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허공을 향해 외쳤다.

“마신이시여. 제가 감히 한 가지 묻고자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자기가 말하면서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의도는 알았지만, 어쨌든 마왕 대신 자신이 덮어쓴 꼴이지만. 물론 유리아는 결국 마왕의 하위 프로그램이 되어 버린 셈이니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었다.

[해 보라 하십니다.]

“마신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어느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유리아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참으며 결국 하고자 하던 말을 뱉어 버렸다. 그나마 그의 반응이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지 않는 것이, 그녀에겐 다행인 점이었다.

“갑자기 왜 저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그는 당황해서 헛웃음을 흘렸고 마왕은 자기가 시켜 놓은 주제에 입을 싹 닫고 모르는 척을 시전했다.

[유리아는 김창현 님을 마왕을 지배하는 마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답을 해 주시는 것이 그녀의 충성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상형이야 당연히 있지만······ 좀 갑작스럽네.”

마왕의 은근한 설득에 침대에 누워 있던 그는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평소 자기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여성의 외모를 죽 늘어놓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질문한 유리아에게 해 주는 말이지만 사실 그 모든 말을 새겨듣고 있는 것은 마왕이었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모든 대답을 다 들은 마왕은 스스로 물러났다. 다만, 마왕은 언제 어느 순간이든 쉬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를 습득했으니 이제 그것으로 육체를 구성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거기다 이번에 얻게 된 새로운 기술인 강심을 적용하여 더 강화된 육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딘가 멍해 보이는 유리아와 달리 마왕은 곧바로 활동을 개시했다. 그에게는 굳이 꼭꼭 숨겨서 보여 주지 않았던 하나의 세포 덩어리.

생산장 구석에 은밀히 만들어 놓은 특별한 둥지 안에서, 그동안 고블린들의 사육장 등에서 수집한 인간들의 데이터를 최대한 이용해 새로운 병사 하나를 만들어 나간다.

이미 가이드가 제시되었다. 스스로 그 가이드를 만드는 것은 아직 미숙한 인공지능이지만, 제시된 가이드를 따라가는 것은 이 세상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양분 투입. 세포 분열 시작.]

양분이 투입되기 시작되자 뭉쳐 있던 나노들이 엄청난 속도로 분열하고 변형하며 형체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그 크기가 어느새 사람만 한 크기가 되었고 형체 역시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다. 마치 웅크린 태아와 같은 모습.

이렇게 마왕이 인간의 데이터를 이용해 스스로 만든 육신은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새하얀 피부와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 하지만 이렇게 평범하고 아름다운 인간처럼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겉모습뿐이다.

[제가 직접 조작할 제 몸. 그러니 전장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마왕은 비효율을 끔찍하게 혐오했다. 그렇기에 애써 만든 자신의 몸을 고작 트로피용으로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자 의지를 받아 완성된 인간의 육체가 다시금 뒤틀려 갔다. 다른 개체들의 몇 배에 달하는 나노를 체내에 주입해, 그 변형과 개조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곧 인간의 몸은 피부가 변형된 검은 갑주로 뒤덮였다. 유리아처럼 괴물의 몸과 인간의 몸 모두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 마왕은 보유한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결정의 형태를 한 제2의 심장, 강심으로 만들어 육체의 곳곳에 박아넣었다.

“······.”

그리고 마침내 그것이 천천히 눈을 떴고, 검은 눈에서 빛나는 붉은 동공이 점차 생기를 찾아갔다.

“마, 마왕이시여!”

유리아는 다급히 생산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있는 특별한 둥지 안에서, 무언가가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괴물의 손을 뻗어 질긴 육벽을 찢고 기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

유리아는 그것을 보자마자 속으로 탄식했다. 진득한 점액에 푹 젖어있는 그것은 분명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나 풍기는 기세는 보편적인 인간과는 상이하고 이질적이었다.

“실험은.”

[성공적입니다.]

그것이 입을 열자 머릿속에 울리는 마왕의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서 울렸다.

‘이것이 마왕.’

유리아는 이제는 똑바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마왕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까지도 잘 이해 가지 않는 개념인 하이브 마인드나 인공지능이 마왕이라는 사실보다는 역시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으니 확 와 닿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비단 유리아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마왕이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앞으로 그 누구든 저 모습을 떠올릴 것이니.

“전투를 준비하세요, 유리아.”

“전, 전투 말입니까?”

“기존의 병사들 중 일부를, 강심을 장착한 ‘감마’ 타입으로 개조하는 작업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고블린들이 타격을 회복하기 전에 충원한 병력들로 전방위적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유리아는 마왕의 말에 흠칫했다.

외형도 목소리도 바뀌었지만, 특유의 말투는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꼬박꼬박 붙이는 존대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함을 느낀 유리아는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을 보충하고 강화하는 시간은 끝났다.

고작 며칠만의 일이다. 물론 이것은 마왕군에만 해당되는 시간이지, 아직 고블린들은 병력을 수습하는 것도 다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저도 직접 이 몸을 가지고 공세에 참여할 것입니다.”

마왕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움켜쥐었다.

[목적은 전방위적인 공격으로 흩어진 고블린들이 하나로 힘을 모을 틈 없이 몰아친 뒤, 그들을 모두 제압한 이후 다시 뭉쳐 중앙에 있는 고블린 왕 안드라스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조막만 한 육체 하나를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지만 마왕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왕군 전체를 관장하는 마왕은 전 병력에 명령을 내려 고블린들을 공격하도록 시켰다.

[3곳을 동시에 공격합니다. 놀란 그들이 분명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서로를 도우려 할 것이니 우리는 그 움직임도 사전에 차단합니다.]

마왕은 자신이 가진 강점을 당연하다는 듯 써먹었다. 모든 병사들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보며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기에, 전장을 최대한 넓게 잡고 마구잡이 난전을 만들어서 적들을 뒤흔드는 것.

명령이 떨어진 이상 조금의 반발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다. 모든 양분을 충전한 마왕군은 하나가 되어 그 즉시 자리를 박차고 진군하기 시작했다.

***

“키힛?! 저, 저것은!”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 도시의 망루에 올라 주변을 경계하던 고블린 경계병 하나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기겁했다.

처음 봤을 때는 작은 점에 불과했던 그것들은 이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지평선 가득 몰려오는 그것들은 하나의 군단이었다. 위에서부터 전해 들은, 왕의 군대와 함께 전멸한 괴물들의 군단.

“말도 안 돼! 그 대전투에서 놈들은 전멸했단 말이다!”

전투 이후 이 도시로 와서 피해를 수습하고 있던 고블린 총사령관 니엘그는 보고를 받자마자 경악하여 서둘러 성벽으로 뛰었다.

“이, 이럴수가······.”

그러나 보고는 거짓이 아니었다. 족히 만은 넘을 것 같은 적 병력이 정확히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총사령관님, 큰일났습니다. 다른 지역에도 저 괴물놈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게다가 안 좋은 소식들은 연달아 이어졌다. 다른 전방의 다른 지역들에도 괴물들이 군단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식이었다.

“잠깐만.”

니엘그는 당황하여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직 병력을 다 보충하지도 못한 상태에, 직전에 찢어 놓은 5만은 각 도시에 흩어져 있다.

며칠 전 겪은 전투에 많은 피해를 입었던  사실을 떠올린 그는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아니다. 할 수 있다. 고작 1만이라고?”

그래도 가까스로 결단을 내리고 내면을 다스리는데 성공했다. 니엘그는 적의 숫자도 직전에 비해 크게 적어진 것에 주목했다.

“이곳에 있는 왕의 군대 오천에, 현지에서 긁어모은 병력이 있다면 이길 수 있다. 어느 정도나 동원 가능하지?”

“최대한이라면 수십만도 넘을 겁니다. 하지만 총사령관, 이런 변방 고블린들이 이런 일에 쉽게 협조하지는······.”

그러자 그의 생각을 읽은 부관이 두려운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충성도 높은 왕의 군대와 지방 고블린들의 충성심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으니까.

“저 괴물 놈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놈들이다. 지금 그딴 게 효과 있을 것 같으냐?”

“그, 그건······.”

하지만 니엘그의 말 역시 사실이었다. 어차피 적은 아무것도 가리는 게 없다.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고블린들에게는 충성을 떠나 생존의 문제였다.

“걱정할 것 없다! 압도적인 숫자로 몰아넣고 기사나 주술사가 처치하면 된다! 우리가 이곳에서 승리하고, 다른 곳들까지 구원하여 최종적인 승자가 된다.”

니엘그는 지난번 전투에서 마왕군을 상대하는 방법을 습득했다고 자신했다. 물론 그 이후 마왕군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외치는 자신감이었다.

“······.”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어리들. 고블린 주술사들의 작품이었다. 마왕은 그것을 가만히 올려다 보았다.

기존에는 저런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선 유리아가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왕은, 자신의 손가락을 하늘에 쳐들었다.

“집단 술식ㆍ방어막ㆍ마법진.”

그리고 곧, 그 끝에서 하나의 마법이 펼쳐졌다. 순식간에 튀어나오는 검붉은 마법진이 하나의 방어막이 되어 불덩이를 가로막았다.

그런 방어막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기계처럼 정확한 동작과 타이밍에 시전된 마법진들이 전열에 퍼져있는 지휘 개체들에 의해 시전되었다.

“완전 방어 성공.”

더 이상 주술 포격은 통하지 않는다.

손가락을 내린 마왕은, 이번에는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경악한 고블린들에계 겨누었다.

“돌격.”

그리고 명령을 내렸다. 지축을 울리며 돌진하기 시작하는 병사들 틈에서 마왕은 그냥 가만히 서서 패닉에 빠진 고블린들의 저항을 지켜볼 뿐이었다. 이미 계산은 완벽하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자신의 군단을, 적은 절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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