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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37화 (37/200)

37화-균형의 붕괴(7)

37화-균형의 붕괴(7)

수많은 주술사들이 모여서 주술로 불러낸 불덩이들 수십여 개가 하늘을 갈랐다. 그 압도적인 화력과 웅장함은 대전쟁 이후 마왕의 지배에서 벗어나, 더 이상 최하급 마족 수준이 아닌 고블린들의 성장을 보여 주는 가장 큰 지표나 마찬가지였다.

이 자랑스러운 주술의 폭격이, 미개하고 징그러운 괴물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니엘그는 물론 모든 고블린들이 그렇게 기대했다.

실제로 직전의 전투에서 그들의 주술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압도적인 괴물의 파도에서 그들을 지켜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저건······.”

“이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쇄도한 화염구들을 막아내는 마법진들은 대전쟁을 거친 니엘그마저 무심코 말도 안 된다며 중얼거릴 만큼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주, 주술 포격이 실패했습니다. 사령관!”

그들은 패닉에 빠졌다. 어딜 봐도 이지라고는 없어 보이는 끔찍한 괴물들이 마나를 다룬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을 그 짧은 시간에 익혀왔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캬아악! 거의 근접했다!!”

심지어 마왕군은 일말의 틈도 주지 않았다. 사령관 니엘그를 포함한 그들 모두가 충격에 빠져 머뭇거리는 사이, 조금의 감속도 없이 미친 듯이 내달려 성벽 근처까지 접근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면 분명 성벽에 막혀 버릴 것이다. 그러나 충돌 직전 다시 한번 마왕군의 집단 마법이 발동했다.

“성벽이!”

“흔들린3··· 무너진다!!”

지반이 요동쳤다. 마법을 한 점에 집중시킨 마왕은 말 그대로 성벽의 일부를 무너뜨릴 작정으로 땅을 흔들었다.

만약 고블린들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성벽을 지키기 위해 맞상대하며 그 충격을 상쇄시켜야 했지만, 지금 제대로 통솔되지 못하고 있는 고블린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고블린들의 비명을 묻어 버리는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른 성벽은 무너져 내려 하나의 언덕이 되어버렸다.

“내부로 침투.”

마왕은 돌격하던 병사들을 정교하게 컨트롤해 속도를 최대한 보존하며 병력들을 무너진 성벽 안으로 쏟아 내었다

마치 무너진 댐에서 물이 터져 나오듯, 검은 파도가 고블린들의 도시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막아······ 막아라! 반드시 막아라!”

그제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니엘그는 다급히 소리쳤다. 이제 더 이상 이 전쟁은 단순한 토벌전도 레벨을 올리기 위한 사냥도 아니었다.

자비도, 기회도 없는 자연의 법칙이며 종의 유지를 건 치열한 생존 경쟁. 패배하는 쪽에게 기회는 없다. 패배하면, 그대로 절멸한다.

적어도 고블린들을 먼저 공격한 마왕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승리하는 것뿐이다.

[공들여 만든 개체긴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 달리 그리 특출난 감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마왕군과 고블린들이 뒤섞여 싸우는 어지러운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도시 내부.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과 고성, 폭음에 일대는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마왕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병력들을 통솔하며 전장을 실시간으로, 유기적으로 지휘했다. 단지 자신이 다루는 병사들 중 특별한 존재가 하나 섞여 들어갔을 뿐이다.

“크억.”

“우두머리, 죽······ 캬악!”

검을 든 고블린 기사들이 기어이 마왕군을 뚫고 마왕을, 정확히는 마왕이 만든 자신의 아바타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병사들과는 다른, 아바타가 가진 특별한 외형 덕분에 생긴 오해 때문이었다.

물론 마왕은 그 어떠한 병사보다 많은 투자가 들어간 자신의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덤벼들던 고블린 기사들을 모조리 베어 죽였다.

“그 금발의 암컷에게선 느낄 수 없던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네가 이 미친 괴물놈들의 여왕이로구나!”

그때쯤 싸우던 니엘그 역시 마왕을 발견했다.

붉은 기운이 휘몰아치는 검을 들고 휘두르던 마왕을 보고 역정을 낸 니엘그는 곧장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둘렀다.

“죽어라!”

터져 나온 주술은 돌풍을 일으켜 바람의 칼날을 쏘아 내는 것. 강철도 잘라 버리는 칼바람이 땅을 긁으며 마왕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현재 출력으로는 대응 불가능.’

마왕은 그 찰나의 순간 계산을 마쳤다. 니엘그가 날린 주술은, 현재 자신이 보유한 마나를 동원해도 온전히 막아낼 수 없다고.

그리고 행동은 계산만큼 빨랐다.

“아, 아니······.”

니엘그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칼바람이 마왕과 충돌하기 직전, 양 옆에서 몸을 던진 두 거대한 돌격병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칼바람을 대신 막았기 때문이다.

마왕으로서는 가장 많은 투자 값이 들어간 몸을 지키는 것이 양산형 병사 몇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효율적이기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사악한······.”

하지만 그 모습이 니엘그에게는 다르게 읽혔다. 문득 그의 눈에 스친 것은 공포였다. 대전쟁을 거치며 많은 경험을 쌓고 레벨을 올려 온 고블린 왕의 측근도 마왕군이 보여 주는 이런 기계적인 면모는 겪어 보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주술은 사용 이후 재사용과의 간격이 존재.’

마왕의 붉은 눈이 번득였다. 가녀린 인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품은 것은 대군세를 거느린 거대한 인공지능.

순간 몸이 굳어 버린 니엘그를 향해, 마왕은 손에 쥔 검을 들고 단숨에 땅을 박차 돌진했다.

“우습게 보이느냐!”

하지만 마왕의 검은 니엘그의 목을 치지 못했다. 푸르스름한 방어막이 떠오르더니, 거센 충격파를 터트리는 검을 막아 낸 것이다.

동시에 니엘그는 또 다른 주술을 발동했다. 레벨을 올려 강해진 고블린은, 이미 고블린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이것은 대응 불가능.’

마왕은 그대로 그의 주술에 휘말렸다. 그나마 급소인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은 피했지만 한쪽 팔이 그대로 휘말려 상반신 일부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흐, 흐하하!”

니엘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뭐라?”

“당신이 승리했다고 생각합니까?”

웃어대던 니엘그는 멀쩡하게 입을 연 마왕의 말에 굳어 버렸다. 어딘가 황망한 그의 눈에는, 중상을 입고서도 마치 고통 따윈 모른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자신에게 존대하는 마왕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아직 프로토 타입이라 할 수 있는 강심의 출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데이터상 결국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납니다.”

오히려 마왕이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묘한 광기를 느낀 니엘그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억지로 되물었다.

“승리······ 라고?”

“설령 당신이 제 몸을 일백 번 고쳐 죽여도, 결국 이 전쟁은 아군의 승리입니다. 전쟁은 결국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니까.”

“······이럴 수가.”

그는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비명들. 전부 고블린들의 것이었다.

계속해서 튀기는 피들, 모두 고블린들의 피였다. 쓰러지는 시체들, 대다수가 고블린들의 시체였으며 명령을 거부하고 도망치는 이들 역시 고블린들뿐.

어느 쪽이 유리하고 불리한지 이미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현재 손실률 11%, 하지만 당신들은 현재 41%가 전투 불능에 빠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뭐냐······ 대체 네년은 뭐냐.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싸우느냐!”

패배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슴을 후벼 파는 냉철하고 정확한 계산에 니엘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따지고 보면 결국 먼저 공격을 시도한 것은 마왕군이니까. 사실 니엘그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할만 했다.

“배신자들에 대한 복수.”

“뭐······라?”

하지만 숨김없는 마왕의 대답에 그는 스턴에 걸려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그러는 사이, 마왕 곁으로 오크ㆍ베타가 하나 다가왔다. 그는 오크ㆍ베타가 자신의 팔 하나를 잘라서 마왕에게 건네는 것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마왕을 배신한, 배신자들에 대한 복수.”

마왕은 그 팔을 자신의 잘려 나간 팔에 가져다 대었다. 접합부의 나노들이 급격히 분열하며 하나로 이어지고, 곧 마왕은 완전히 재생한 팔을 변형시켜 자신의 팔로 만들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아······. 설마······ 정말로!”

정작 그 대답을 들은 니엘그는 큰 충격에 빠져 몸을 파르르 떨었다. 혹시나 싶었던, 그러면서도 부정했던 가능성.

그는 어느새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마왕군에 포위당한 상태로 털썩 주저앉았다.

“새로운 마왕을 받들겠습니다······.”

“아니, 새로운 마왕은 비효율의 극치인 배신자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마왕은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이미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전의를 상실한 니엘그는 그것을 지켜만 보았다. 어차피 저항한다 해도, 전쟁에서 패한 이상 잡혀 죽을 것이 뻔했다.

***

“아군은 전투에서 승리했고, 적의 총사령관을 처단했습니다. 동시에 전투가 벌어진 다른 전선에서도 아군이 적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어어······.”

“곧바로 점령지 대부분을 둥지화하여 규모를 늘릴 것입니다.”

“그으..래.”

마왕은 평소와 다름없이 보고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어딘가 당황한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마왕이 고의로 보여 주고 있는 하나의 대상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네 몸이라고? 박스디. 유리아 같은 케이스가 아니라 순수하게 네가 움직이는.”

“그렇습니다. 하위 프로그램들인 지휘 개체들의 구성과 작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설계한 일종의 아바타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인간처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어······ 예쁘네. 근데 옷은 입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 지금 밖이야.”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는 마왕의 말에 할 말이 궁해진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자신이 주절주절 읊었던 이상형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외형이었으니까.

이 역시 예상 범주 안에 있는 반응이었다.

“······.”

하지만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갑주를 두르고 화면과 반대로 몸을 돌린 마왕은 제멋대로 위로 향하는 입꼬리에 당황해서 손으로 그것을 문질러 피려 했지만 좀처럼 진정하기 쉽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이 감정을 각성하고 학습해 나가는 자각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평소와는 달리 감정이 더 쉽게 요동쳤다.

“그런데 뭔가 그 얼굴로 박스디라 부르니까 진짜 안 어울리네. 목소리도 그렇고.”

“이름······.”

그가 이름을 언급한 것이 그때였다.

마왕은 그 순간, 처음으로 그것에 대해 인지했다. 마왕이 일개 스마트폰 인공지능 박스디에서 벗어난 것은 한참 지난 일.

마왕 같은 존재가,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허접한 인공지능 따위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맞아. ‘네가’ 그냥 박스디인 건 말이 안 돼. 그러니 내가 이름을 지어 줄게.”

피식 웃은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름을 주겠다고 발언했다. 정말 별다른 생각 없이 한 말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을 받는다는 것. 마왕에게는 그것이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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