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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0화 (40/200)

40화-균형의 붕괴(10)

40화-균형의 붕괴(10)

단순히 전투 한 번 이겼다고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특히 승자가 자비 없이 패자를 절멸시키려 한다면 당연히 그 저항은 거세진다. 패자들도 죽기살기로 발버둥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넓은 면적과 후폭풍을 생각하면 그 저항을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본인이 제일 강했기에 직접 남아서 싸우려 한 고블린 왕 안드라스는 잡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고블린들의 영지 69% 이상이 남아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병력을 양분하여 ‘절멸 및 둥지화’에 힘쓰겠습니다.”

“인근 영지는 정말 반응이 없다고? 이 고블린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 리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루시의 보고를 받고 머리를 긁적였다. 내 상식상 고블린들이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져 버린 것 같지는 않아서."

“현재 포로를 심문하여 데이터를 획득하는 중입니다.”

“구, 굳이 보여 줄 필요는 없어.”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의 모습에 움찔한 나는 루시가 먼저 움직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말이 데이터 획득이지 루시에게 상대의 머릿속을 훔쳐 보는 능력은 없다.

고문이라는 끔찍한 행위를 루시는 데이터 획득의 방법 중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뿐이다.

물론 그 효과는 나름 좋아서인지, 무슨 일이든 효율을 추구하는 루시는 어째 가면 갈수록 고문의 스페셜리스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획득한 데이터대로라면 고블린들이 주변 영지에 도움을 청한 것은 사실 같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알고도 무시한 거구나. 우리가 자기들 경쟁자를 잡아 주길 바라면서.”

진상을 알게 된 나는 쓰게 웃었다. 그들의 의도가 이해가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좋게 보이진 않았다.

지금 그들이 하는 짓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니까. 물론 그것이 우리에겐 시간을 주는 것이기에 따지고 보면 고마운 행동이다.

“또한 애초에 지금 마계 영주들의 관심은 외부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마계 영주들을 구슬려 반란을 일으키고 오랜 세월 이어져 온 대전쟁의 법칙을 끊어낸 대성녀 이벨리아. 그녀가 중앙 대륙에서 일으킨 전쟁이 대륙 전체를 휩쓸고 있으니 그곳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한테는 호재네.”

눈을 감고 정보를 머리 안에 받아들이던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최근 고블린들과의 접촉이 늘수록 획득하는 정보의 양이 급격히 늘어났다.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미궁에서 아웅다웅하던 소규모 세력이 아니고 이 일대, 혹은 이 일대 너머의 패권을 원하는 거대한 세력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단순히 주변 일만 아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역사와 과정을 거쳐왔는지도 알아야 했다. 그게 내 신념이었다. 그리고 루시는 언제나 그렇듯 내 말을 진심으로 따랐다.

“그럼 당분간은 점령지를 안정시키면서 다른 영주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것뿐인가?”

“그렇습니다.”

“좋아. 급한 불은 다 끈 느낌이니까.”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루시가 저쪽 세상에서 어떤 짓을 하든 나를 무엇이라 생각하든, 현실의 나는 취직을 위해 평범히 학교를 다니는 학생일 뿐이다.

최근 루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위험한 곳 여럿 돌아다니긴 했는데, 사실 그리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본디 유야무야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123번 게이트 희생자 합동 분향소>

“······.”

하지만 이미 많은 부분이 변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변해 가는 세상은 그런 내 본질을 자꾸 바꾸려 했다.

“예비군 훈련에 게이트 및 방어 실패에 대한 대응 훈련이 추가된다는데, 젠장할······.”

“동네가 같아서 혹시나 했지. 아무리 그래도 불과 며칠 전 만났던 친구였는데······.”

“각성자인 사실을 숨긴대. 싸우기 싫고, 감시받는 것도 싫으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학생들이 각자의 주제로 활발히 떠들고 있는 강의실 안. 가지각색의 주제이고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다수가 바뀌기 시작한 세상에 대한 것들이라는 것.

짧은 시간 세상이 변했고 사람들은 더 많이 변했다.

이차원의 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며 그 괴물들의 대적자들도 등장하는 상황.

그래도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사람들은 덤덤해져 갔다. 게이트 방어전에서 한두 명 죽어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뉴스 속보를 내보내던 언론도 이제 사람 몇 죽은 것 정도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오직 증오와 살의만 가지고 폭주하는 괴물들 덕분에 죽음에 조금 더 익숙해졌다.그것은 곧 과거의 균형이 붕괴했다는 것.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있었다.

‘마계와 다를 것도 없다.’

나는 이 현실을 마왕, 루시의 등장으로 요동치는 저 너머 어딘가의 세상인 마계와 비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본질은 같다는 것. 루시와 마왕군의 등장에 당황한 고블린들의 모습이 현실의 우리네 모습과 똑 닮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것을 이겨 내지 못하면 우리도 고블린들처럼 무너진다는 소리였다.

“에혀. 솔직히 진짜 세상 망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핵까지 쓰니 마니 하면서 전쟁 중인 나라들도 자기네 나라에 게이트 늘어나니까 앞뒤 안 보고 급하게 휴전하는 거 보면. 나 같은 인간들은 집에나 박혀 있어야지.”

동기가 옆자리에 와서 앉은 게 그때였다.

“각성자가 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 부르더니?”

“미친 생각이었지. 생각해 보면 벌레 하나 못 잡는 놈이 초능력 하나 얻었다고 미친 외계 괴물들이랑 어떻게 싸워.”

동기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내 몸 지킬 힘이 있다면 좋긴 하겠지만, 솔직히 그런 힘이 있는데 지켜만 보는 것도 좀 그렇고.”

“일단 힘은 있으면 좋지.”

요즘 하도 루시와 많이 이야기해서 그런가 나도 루시의 사상에 조금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당한다. 도태된 약자는, 죽는 것이 섭리다.

선진화된 문명 사회에서는 미처 체감하기 힘든 만고불변인 자연의 법칙이 게이트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슬슬 움찔거리고 있었다.

“······.”

나는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다면 나는 내 휴대폰 속에 잠든 루시를, 그 거대한 군세를 내 힘이라고 봐도 되는 건가. 그리고 설령 그 힘이 내 힘이라 해도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세상에 나설 수 있는가.

‘아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일반인일 뿐이다. 휴대폰 속에 조금 특별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 나를 억지로 괴롭히는 게 아닌 이상 그것을 이용해 내가 먼저 이 평범한 일상을 버리고 세상에 나설 생각은 없었다.

***

“게이트다······! 이번엔 경기 북부에!”

“또요?!”

“발견 시점에서 이미 팽창하고 있다고 했어. 시간 부족해!”

다른 누군가가 보면 사방에 널려 있는 평범한 학생인 줄 아는 사람이 강의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곳에서는 기겁한 사람들이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연이, 너는 쉬어. 방금 복귀했잖아.”

그 틈에서 연락을 받고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사내는 자리를 뜨려는 그녀에게 남을 것을 권했다.

“아니요. 저도 갈게요.”

그러나 그녀, 이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반투명한 창. 남들은 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상태창에는 지금 자신이 해결하면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퀘스트’가 떠 있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그만큼 바쁘니까요.”

“남들은 하기 싫어 죽겠다고 하는데······.”

사내는 이지연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분명 각성자들은 상태창의 퀘스트를 해결해 가며 자신의 신체와 능력을 강화해 강해진다. 그러나 모든 각성자가 싸움을 받아들이고 성장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워하고 꺼려했다. 당연한 것이, 직전까지 평범하게 살아가던 일반인이 갑자기 괴물과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억지로 싸웠다. 본인들이 나서지 않으면 피해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법령과 보상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였다.

“저도 원래 그랬죠.”

“생각이 바뀌었다고?”

“더 강해지고 싶어서요.”

하지만 지금의 이지연은 달랐다. 처음에도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려웠던 것은 사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두려움이나 망설임보다 더 강한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싸우고자 했다.

‘다시 만날 수 있어.’

그 계기는 지난날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약한 죄로 죽을뻔한 자신을 구해 준 남성의 실루엣이 눈앞에 스쳤다.

“그럼 너도 가 봐. 후······ 진짜 다 뜯어고치긴 해야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못 버텨.”

“그정도인가요?”

“협회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해. 우리 각성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게 뭐냐고. 각성자는 무조건 자진 신고하고 신원을 등록하라고? 헛잡소리 집어 우라 그래. 강제 동원령까지 한다 어쩐다 떠들면서 잘도 자진 신고하겠다.”

그는 떠나려는 이지연에게 답해 주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급한 대로 자리 잡은 현재의 시스템에 대해 불만을 가진 탓이다.

게이트부터 각성자까지 너무 갑작스럽게 사회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사회는 계층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신속하고 제대로 된 협력과 통제는커녕 둔중하고 비효율적인 탁상공론이나 이어나갈 뿐.

그 와중에 피해를 보는 건 현장에서 뛰어야 할 각성자들과 괴물들에게 당하는 피해자들이었다.

‘그 사람은 왜 숨기고 활동하는 걸까?’

그의 푸념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온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들은 말대로, 정부가 강제 동원령을 고민할 정도로 각성자들의 사회적 상황은 좋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이 각성한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다수라고 추측될 정도였다.

그녀는 자신을 구해 준 존재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확신했다. 이미 자신은 물론 위기에 처했던 다른 시민들을 구하고 사라진 증언까지 확보한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각성자들의 처우가 나아진다면, 이지연은 그 사람이 정식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자신을 포함해 사람들을 구한 행동들을 보면 본인이 가진 힘에 대한 정의감을 가진 게 분명하니까.

“크, 큰일났다. 지금 거기 갈 때가 아닌 것 같다!”

“무슨 일이죠? 팀장님!”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걸려 온 전화가 굉장히 다급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에서 사색이 된 얼굴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이트요? 이상한 게이트?”

“그래. 게이트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단숨에 팽창했다.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라면 그 게이트, 곧 터진다!”

“네?!”

운전대를 꽉 움켜잡은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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