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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1화 (41/200)

41화-자연의 법칙(1)

41화-자연의 법칙(1)

게이트니 괴물이나 하는 괴이하고 갑작스러운 현실의 변화가 생겨난 이후 고작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사람들은 가까스로 현실에 적응해 갔다. 막말로 이계 혹은 외계의 존재들이 침공해 오는 것, 상상조차 해 보지 못한 일들은 아니었으니까. 문제도 많고 삐걱거린다 해도 사람들은 이제 나름 안정을 찾아 갔다.

하지만 변화는 마치 사람들의 적응도를 체크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듯 연속적으로 불어 닥쳤다.

“아, 안 돼······!”

함께 뭉쳐 각성자 팀으로 활동하는 팀장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핸들을 돌린 이지현은 현장에 도착해 창백해진 얼굴로 경악했다.

거대한 빌딩들이 밀집한 발달한 시가지.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규환이 된 현장에서 서둘러 대피하는 중이다.

다급히 달려 온 경찰들이 호루라기든 확성기든 동원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넓은 사거리 한복판에 생성된 거대한 게이트 하나.

그런데 게이트의 상태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 상으로, 게이트는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에는 얌전히 존재하기만 하며 힘을 모은다. 그 상태로 점차 크기를 키워 가고 격렬히 움직이며 절정의 상태에 다다랐을 때 한 번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사거리에 나타난 게이트는 사람들이 정립한 그런 상식을 단번에 부숴 버리며 나타난 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급격하게 몸을 키워 가며 격렬하게 요동쳤다. 마치 금방이라도 내부에 있는 괴물들을 뱉어 낼 것처럼.

“애초에 색깔부터 다르잖아요!”

이지연은 기존의 게이트와는 달리 짙은 적색을 띄고 있는 게이트를 보고 전화기 너머의 팀장에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너 혼자잖아. 군대도 없고, 동료들도 없어. 그냥 도망쳐라, 지연아!”

“그, 그건······.”

뉴스 속보로 이 소식을 보고 있는 팀장은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냥 도망치라 명령했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 그 공포를 이겨내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는 다른 사람들.

그들을 두고 도망칠 수 없었다.

성장에 대한 욕구보다도 우선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괴, 괴물이다······!”

“벌써.”

채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점.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위주로 대피시키던 이지연은 곁에 있던 누군가의 외침에 이를 악물고 게이트를 노려보았다.

‘온다.’

일렁이는 공간의 균열을 열고 나오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을 보는 그녀의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 쿵쿵거렸다.

지금 그 끔찍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괴물들과 전혀 다른 종.

마치 악어 가죽 같은 거친 가죽으로 몸을 두르고 억세고 두꺼운 팔과 손에, 상대적으로 작고 짧은 뒷다리. 긴 목 끝에는 징그럽게도 칠성장어를 닮은 원추형의 입만 가득 달려있다.

‘내, 내가 막아야 해.’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억지로 이를 악물었다. 긴급 대피야 사실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방어 대책이다.

방어 대책 없이 대피만 해 봤자 시가지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괴물들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해칠 것이니까.

그러니 방어선이 갖춰지고 저 괴물들을 다 사냥할 수 있을 만한 여건이 맞춰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위, 위험합니다!”

“시선이라도 끌어 볼게요. 그러니 피하세요. 그 권총으로는 못 이겨요.”

그녀는 앞으로 나섰다. 현실적으로 모든 적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해야 하니까. 곁에 있던 경찰관이 위험하다며 반사적으로 그녀를 말렸지만, 이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경찰의 창백한 손에 들려 있는 작은 권총이 유독 애처롭게 떨렸다.

‘대체 왜.’

그렇게 이지연이 앞으로 걸어가는 순간, 그녀는 두려움을 누르기 위해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적들을 노려보았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해서 드는 의문이었다. 왜, 어째서 저 괴물들은 사람들을 해치고 증오하는가.

물론 백날 물어 봤자 괴물들은 답하지 않았다.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결국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생존 경쟁. 의미 따윈 없다. 더 강한 자가 경쟁에서 승리하여 살아남을 뿐이다.

[철괴]

그녀는 자신을 발견하고 미친 듯이 아스팔트 바닥을 달려오는 괴물들을 보며 자신의 힘을 발현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면에 품은 갈망을 연료 삼아 투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 투지와 각오에 상태창은 언제나 보상을 주었다.

“크르륵······.”

대형 자동차도 어깨로 부수고 달려든 괴물이 휘두른 팔이, 제자리에 버티고 선 그녀의 몸에 막혔다.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사방으로 흙먼지가 불어 닥쳤다. 보통의 경우라면, 괴물에 비해 훨씬 작은 그녀가 그대로 터져 죽었어야 하는 일격.

하지만 당황한 괴물이 쩍 벌어진 주둥이에서 타액을 흘리는 사이 이를 악문 이지연은 자신의 다리가 바닥을 부수고 파고드는 순간에도 버티고 서서 역으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

“더, 깊은 곳으로······.”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와 비명 소리, 고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지금 거친 숨을 헐떡이는 그녀에겐 이제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 따위 없다. 자신이 대피시킨 시민들이 멀쩡한지 따위도, 신경 쓸 수 없다.

‘조금만······ 더······.’

숨도, 근육도 한계였지만 그녀는 무턱대고 달렸다. 부러진 팔 끝에 괴물의 피가 묻은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크아악!”

뒤에서는 괴상한 울부짖음을 내뱉는 괴물들이 몇 마리 끝까지 따라 붙은 상태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방어막이 되어 괴물들 다수와 전투를 벌이고, 끝내 놈들 중 몇 놈을 제압한 이후 싸울 수 없게 된 이지연의 선택은 자신을 미끼 삼아 분노한 괴물들을 사람들이 대피한 빈 공간으로 유인하는 것.

물론 이 이후 자신이 살아갈 방법 따위는 아직 구상하지 못했다.

“아악!”

최대한 인명 피해가 없을 만한 곳을 찾기 위해 무작정 근처에 있던 산으로 향하던 그녀가, 산의 초입에서 넘어진 것이 그때였다.

이미 체력은 한계. 괴물들은 지치지도 않고 이미 그 뒤를 바짝 쫓아 왔다.

‘끝이다.’

그녀는 자신의 끝을 직감했다. 각오한 일이긴 하지만,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당신······!”

“그아아악!!”

주저앉아 자신에게 다가오는 괴물들을 보던 그녀가 뒤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부릅뜸과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불어 닥쳤다.

[마법은 성공적으로 전송되었습니다].

“살아남은 놈들이 있어. 그놈들을 보내 줄게.”

[전송 시작.]

그가 앞으로 내민 휴대폰에서, 뜨거운 열기를 작렬하는 화염포에 이어서 눈부신 섬광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역시!’

이지연은 억지로 눈을 뜨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너무나 강렬한 빛에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뒤에서 기습당한 괴물들이 죽어 버리고 그 일부는 마치 증발하듯 사라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기, 기다려요. 기다려!”

그녀는 괴물들이 사라지자마자 다치고 지친 몸을 끌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나서지 못한다면 또다시 그를 놓칠 것만 같았으니까.

“진정하시죠. 많이 다치신 것 같은데.”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몸을 피하지 않았다.

“아······.”

덕분에 이지연은 처음으로 그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번에도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지만 옷차림도 분위기도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어떻게? 아니, 이런 질문은 의미 없겠죠. 그쪽도 각성자라면 특이한 능력이 있을 테니까.”

마음을 정리함과 동시에 입을 열어야 했던 이지연은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만나게 되자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정하기가 힘들었다.

“이, 일단 고맙다고 먼저 말할게요.”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녀는 우선 감사 인사부터 전했다. 생각해보면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게 이번이 두 번째였다.

“대단한 건 아니죠.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듯, 나도 당신을 도운 것뿐이니까.”

“아, 그건······.”

“다 봤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자신의 일상은 물론, 목숨까지 버리려 하면서.”

하지만 그는 오히려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그는 진심으로 이지연을 다른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전 그렇게 못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구했습니다. 제가 못하는 것을 해 줄 사람을 구한다면, 결국엔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이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 아니, 아니에요.”

이지연은 고개를 저으려다 이내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싸움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분명 있으니까. 그도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단지 그녀의 입장에서 이해 가지 않는 것은, 괴물들과의 싸움을 꺼리는 것 같은 그는 사실 이미 몇 번이나 스스로 나서서 괴물들과 싸웠다는 사실.

그것을 자신과 비슷한 정의감으로 해석한 그녀에겐 그가 사실은 싸움을 피한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다.

“그건 사실 싸우고 싶어서 싸운 게 아닙니다. 그런 게 있어요.”

“예?”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대답을 피했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다시 물어 봤자 그가 대답해 줄 것 같지가 않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상황이 어떻게든 종료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릴게요. 오늘 있었던 이상한 게이트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당신도 각성자라면, 상태창이 제시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겠죠. 굳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지 않아도 돼요.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희는 싸워야 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조용해진 시가지를 가리키는 그의 말에 비틀거리며 그 옆에 선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정리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모두 그녀의 진심이었다.

“애초에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형태가 어떻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그리고 경쟁. 어쩌면 우리가 안일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죠.”

이지연의 푸념에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말을 잃은 사이, 그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적응하지 못하면 패배하고, 멸망합니다. 제가 당신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더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

기존과는 다른 게이트의 출현과 괴물들의 난동에 그가 다급히 이곳으로 오면서도 생각한 것이었다.

루시가 이끄는 신세력인 마왕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고블린들은 패배하고 같은 영주들의 탐욕 섞인 방관 아래 멸망당해 절멸이 진행 중이니까.

아무리 봐도 고블린들이, 마계 72 영주가 처한 상황이 현재 지구가 처한 상황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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