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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5화 (45/200)

45화-자연의 법칙(5)

45화-자연의 법칙(5)

[역시 직접 수집한 오크들과의 전투 데이터가 있어야 적합한 전술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치뤄야 하는 전투지만 동시에 져야만 하는 전투, 루시는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그것에 집중했다. 그래야만 최소한의 효율이라도 챙길 수 있으니까.

고블린 생존자 등을 심문해서 수집한 정보들도 있긴 했지만 루시는 직접 수집하는 데이터가 더 정확하다고 판단했다.

“제가 알기로도 분명 고블린들은 대다수가 체격이 작은 편이라 최대한 집단으로 뭉쳐 행동하려 하고, 무투기보다는 주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오크들은 다르단 겁니까?]

“갈색오크들은 키는 조금 작지만 단단한 체격을 가진 전사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대기하고 있던 유리아 역시 도움이 될까 싶어 자신이 알던 지식을 루시와 공유했다. 대부분이 자신이 인간 시절 마왕군에 속했던 마족들과 전투했던 경험이 바탕이었다.

“전투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고블린들과의 전투와 똑같은 양상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될지, 그 데이터는 지금부터 수집하면 그만입니다.]

루시는 자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늘 그렇듯 철저하게 현실을 살피고 그것을 활용해 계산을 돌릴 뿐이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거점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 마왕군은 어느새 행군하는 오크군을 시야에 담을 수 있을 정도였다.

[고블린들보다 근접 난전에 강한 것은 분명 아군에 좋은 지표는 아닙니다.]

갈색오크들은 땅의 전사라고 불리는, 오크종 중 전형적인 전사 집단에 속한다. 그리고 현재의 마왕군 역시 고블린들에게는 효과가 상당히 좋았던 근접전을 즐겨 했다.

상성만 보면 큰 유불리 없이 서로 할 만한 것은 사실. 하지만 루시는 더 다양한 전술이 가능한 자신이 상대가 원하는 전투를 해 주는 것 같아 괜히 효율을 계산했다.

“놈들의 움직임은.”

“눈치는 챈 것 같지만, 그리 방어가 튼튼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무렴 저런 놈들이 무슨 대단한 작전이라도 있겠는가.”

루시가 계속해서 계산을 시도하는 사이. 어느새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따라 여기까지 온 갈색오크군은 거점에 자리한 마왕군의 자그마한 둥지를 발견했다.

노동병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소화장과 생산장도 쉴 틈 없이 작동하는 정말 평범한,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인 둥지일 뿐이다.

“단숨에 휘몰아쳐서 제압한다.”

견적을 낸 오크 지휘관은 단숨에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아무리 봐도 마수 개미 수준의 노동병 대다수에, 수비 병력이라 할만한 것들은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마왕군의 전력에 대해서 직접 겪어 보고 싶은 것은 뜨거운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깃발을 올려라. 과연 저놈들이 알아보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자랑스러운 깃발을 보는 순간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라!”

이를 갈며 소리친 그의 지휘에 따라 오크들의 깃발이 높이 올라가며 뿔 나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돌진을 시작한 수많은 오크군이 그 깃발과 나팔 소리에 힘을 얻어 무기를 치켜들고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예정대로 방어 시작.]

하늘에 띄운 정찰병들을 사용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루시 역시 미리 계획한 대로 방어를 시작했다.

[돌격병 500기, 근접병 300기를 동원한 저항 실험. 예상 전멸 시간은 1시간 15분, 예상 피해 수치는 11%입니다.]

루시는 에너지 효율을 위해 생명 활동을 최소화시켜 잠들어 있다가, 그 극도의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진하는 병사들을 보며 예상 값을 계산했다.

하지만 사실 패배 및 전멸은 이미 예상한바. 루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아군을 철저한 실험용으로 써 놓고 동시에 적에게는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 많은 데이터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만에 아군이 전멸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차라리 그게 좋습니다. 아군이 데이터를 얻는 사이 적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전력으로 착각해 오만해지고 기세가 등등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기를 올리고 흐름을 타면서, 더 깊숙한 내륙으로 올수록 우리는 더 유리해집니다]

유리아는 루시의 계산을 듣고 말을 잃었지만, 루시에게 수백 정도는 상대의 패를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던질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인근 동굴 같은 곳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것 같습니다. 놈들이 돌격해 옵니다!”

“역시······!”

진형을 갖추고 돌진하는 갈색오크 중갑 보병대에게 휴면에서 깨어난 마왕군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오직 앞만보고 돌진한다. 그것이 하나의 시스템, 하나의 절대자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마왕군의 특징. 그리고 그 기세를 처음으로 맛보게 된 오크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자리를 지켜라!”

하지만 마왕군과의 전투가 처음인 오크들은 아직 사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 덕에 본인들의 무력을 믿고 자신들의 전술을 펼치는 게 가능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마왕군의 돌격병들. 대부분 강한 근력과 육중한 무게를 가진 대형 마수들을 베이스로 한 병사들 수백이 하나 하나가 전차가 되어, 지면을 울리며 돌진했다.

“땅을 부숴라. 돌진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오크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강한 충격을 대놓고 맞아줄 리가 없다. 대형 마수들과의 전투 경험도 풍부했던 오크들은 본인들의 주술사를 시켜, 마왕군이 한 점으로 돌진해 오는 땅을 군데군데 붕괴시켜 함정을 만들었다.

“효과가 있다. 이제 돌격!”

고블린들의 주술과는 또 다른 결의 땅의 주술은 분명 갈색오크들의 특기.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강점은 주술이 아니다.

일제히 돌격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앞으로 튀어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몸 밖으로 순간적으로 마나를 폭발시키며, 지면을 부수고 허공으로 도약해 손에 쥔 무기를 강하게 휘두르는 이들.

그들은 초월적인 힘으로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마왕군 돌격병들의 단단한 갑주를 부수더기, 자신들에게 덤벼드는 이빨과 촉수를 피하고 베어 내었다.

[이것이 갈색오크들의 전투.]

마왕은 고블린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진 오크 전사들의 힘을 주시했다. 오크들은 해방 이전에도 고블린들보다 우위에 있는 기본값 자체가 다른 종족.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고블린들에 비해 육체도 더 강하고 마나도 더 잘 다루었다.

[예상 전멸 시간을 상향하고 예상 피해 수치는 하향합니다.]

루시는 전투 개시 직후에 계산을 정정했다. 오크들의 힘이 생각 이상인 탓이다. 실제로 오크들은 마왕군의 돌진을 한 번 막아낸 이후 파죽지세로 돌진하며 마왕군을 밀어냈다.

“보아라. 건방진 괴물 놈들, 별 것 아니지 않은가.”

오크 전사 하나가 푸르게 빛나는 큼직한 전투 도끼로 마왕군 근접병 달빛삼눈늑대ㆍ베타의 목을 베어 버리며 중얼거렸다.

[전군 후퇴합니다.]

루시는 예정보다 빨리 병력을 후퇴시키고 땅을 내어 주었다. 적들은 승전에 환호하고 기뻐했지만 딱히 태클을 걸 방법은 없었다.

그냥 계획대로 자리에서 물러나서 다음 계획을 준비할 뿐이다.

“그래서······ 이번 전투로 많은 걸 얻었어?”

당연히 그도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밀리는 건 예정된 결과였으니, 결국 거기서 무엇을 얻었느냐가 더 중요하다.

[고블린들과의 전투에선 진형을 무너트리고 내부를 휘젓게 만들면 아군이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오크들의 근접전 능력이 고블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하니 그에 맞게 전술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루시는 늘 하던 대로 획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움직일 뿐이다.

[모든 데이터를 동원하여 원거리 공격 수단을 확보해 그것을 중심으로 적들을 상대하겠습니다]

“질 거라고 생각은 안해. 우린 할 수 있는 게 많아 보여.”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그리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마왕군이 더 강하다고 확신한 그는 정말로 걱정하지 않았다.

***

“이 괴물들은 대체 뭘 먹고 사는 건지.”

“그런 게 중요한가! 다들 저길 보아라. 우리가 점령할 마지막 거점이다!”

첫 전투가 벌어진 지도 벌써 일주일 가까이 흘렀다. 오크군은 계획대로 착실히, 목표했던 거점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갔다.

“지금 이대로 말입니까? 저희 부대는 아직 피해가 큽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건 아니다. 마왕군은 계속되는 전투를 거치며 조금씩 조금씩 오크들과의 전투에 익숙해져 갔고, 오크들은 점차 피해를 누적해 갔으니까.

“여기까지다. 지원까지 보냈다니 우리가 이곳만 점령하면, 우리의 땅은 훨씬 넓어지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갈색오크 왕 플라우로스는 무리를 해서라도 추가로 병력을 파견했다. 점령한 땅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지켜야 할 병력이 더 많이 필요해졌으니까.

[적 전력 오차 범위 내. 예상 승률 65%.]

물론 애초에 이 구도 자체가 루시가 원했던 구도였다. 결국 학습이 빠른 것은 루시. 경험을 쌓으면 그것을 더 잘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루시였다.

“이제부터 탈환 작전을 진행합니다.”

오크들이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마왕군의 거점. 그곳에,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붉은 눈을 번득이는 루시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오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늘 하던 대로 돌진해왔다. 맞붙어 싸우면 본인들이 이긴다는 안일한 생각이 어느새 심리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상황.

하지만 언제나 근거와 변수를 바탕으로 계산을 시도하는 루시는 이번에는 자신의 효율적인 승리를 예상했다.

“포병대ㆍ알파, 발사 준비.”

검을 뽑아 든 루시가 흘끔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정렬해 있는 새로운 병종의 병사들은 루시가 오크들을 상대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집한 수많은 데이터를 선별하고 조합하여 만들어낸 일종의 생물 병기.

그 생물 병기의 앞부분은 여러 개의 튼실한 다리가 달린 전갈 혹은 갑충을 닮았지만, 전갈의 꼬리처럼 위로 굽어 휘어진 꼬랑지 부분은 울룩불룩 튀어나온 기괴한 살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발사.”

루시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포병대의 꼬랑지가 뜨거운 가스를 체내에서 응축하며 부풀더니, 이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허공을 향해 강하게 뿜어내었다.

허공으로 쇄도해 포물선을 그리며 달려오는 오크들에게 꽂히는 것들은 팔뚝만 한 굵기에 1m가 넘는 크기를 가진 뾰족한 가시 송곳.

마나 작용 없이, 순수한 생물체의 힘만으로 쏘아 낸 이 포격은 적어도 오크들의 강철 갑옷을 부수고 그들의 몸을 뚫어 버릴 정도는 되었다.

“이, 이게 어떻게······.”

“중심을 잡아라!”

처음 당해 보는 공격에 당황한 오크들이 돌격해 오는 힘을 잃었다. 포병대의 포격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순간, 마왕군의 돌격병들이 일제히 오크들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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