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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6화 (46/200)

46화-자연의 법칙(6)

46화-자연의 법칙(6)

“다, 당황하지 마라.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계속해서 내리꽂는 포격에 당황한 오크 지휘관이 소리치며 어떻게든 부하들을 다잡았다.

하지만 패닉은 그 자신도 숨길 수 없었다. 애초에 이런 식의 공격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

본래 독특하기 짝이 없는 마계의 마수들을 베이스로 한 마왕군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포병대ㆍ알파는 루시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종의 합성 병기.

그동안은 몇 가지 추가하는 형식으로 간단하게 이루어진, 다양한 생물종의 특징을 합성해 개조한다는 마왕군의 특징이 극한으로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쌓은 충분한 경험과 풍부한 데이터, 그리고 향상된 효율적인 연산력이 꿈의 영역이었던 ‘효율적인 완전 합성 개조’에 일부분이나마 발 디딜 수 있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전사들을 이끌고 호기롭게 돌진하던 오크 지휘관은 강한 충격과 함께 부러지며, 공기와 접촉하자마자 기체로 기화하는 극독의 체액을 뿌리는 가시 송곳을 보고 치를 떨었다.

기화된 것을 약간 마신다고 오크들을 즉사시킬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행동을 둔하게 만드는 정도는 되었다.

“대전사장!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사, 사방에서 몰려옵니다!”

“병사들을 데리고 버텨라, 울루! 그리고 자신 있는 전사들은 나를 따라라. 저 뒤에 이 미친 가시를 쏴 대는 괴물들이 있다!”

몰려드는 마왕군을 보며 이를 간 그는 자신을 포함한 별동대를 만들었다. 찰나의 순간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인 덩어리들.

일렬로 늘어선 포병대가 가시 송곳을 쏘아 내는 걸 본 그는 본대가 이렇게 계속 포격당하기 전에 빠르게 그것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오크들에겐 저렇게 먼 곳에 있는 상대를 공격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끔찍한 괴물들! 접근만 한다면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다.’

마나를 끌어올린 그는 가장 용맹한 전사들과 함께 정면으로 내달렸다. 거세게 달려드는 돌격병들의 머리를 쪼개고, 몸을 베어 넘기며 어떻게든 길을 뚫었다.

그나마 마왕군이 포위하는 식으로 공격해 온 덕에 한 점 돌파로 순간 포위를 뚫어 내는 건 쉬웠다.

“마나를 다루는 적 상급 개체들이 접근 중.”

물론 실시간으로 전장 전체를 조율하고 있는 루시에게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크들의 사거리 밖에서 포격을 가하고, 모든 병사들에게 독을 장착시켜 공격한다 쳐도 결국 마나를 사용해 육신을 강화한 적 전사들을 잡기 위해서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거지?”

“고블린들을 멸망시키며 흡수한 전체 마나량은 기존의 수천 배에 달합니다.”

루시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오크 전사들을 보며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에게 답했다.

동시에 루시의 몸 곳곳에 박혀 있는 반투명한 광석들이 붉게 빛났다. 순도 높은 마나를 뭉쳐 만든 마왕군의 또 다른 심장 강심. 그 안에 들어있는 마나들은 체내를 순환하며 그 기적 같은 힘으로 육신을 강화하고 마나를 다룰 수 있게 해 준다.

“마나는 보통 타고난다고 들었어. 그 비율에 차이가 있지만 고블린이든, 오크든 모든 개체가 익힐 수는 없다고. 그래서 중요한 전력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르지. 마나를 다루는 병사도 양산이 가능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출력을 늘리고 줄이는 것도 자유자재. 오크 전사들은 평균치로 강심 5개분의 마나를 다루니, 아군도 강심 5개를 장착하고 맞섭니다.”

루시의 주변으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녀보다 머리 두 개씩은 더 큰, 각자 무기를 들고 있는 그들 모두 몸 곳곳에 박힌 광석을 반짝이며 투구 속 안광을 번득였다.

그들 모두 소규모 현장 지휘를 담당하는 지휘 개체들. 동시에 마나를 다루는 적 전사들을 저격할 마왕군의 상위급 개체였다.

[집단 술식 전개.]

루시는 그들을 이끌고 곧바로 돌진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장점 중 하나, 바로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 마법의 존재. 유리아를 통해 습득한 인간의 마법을 바탕으로 한 기초적인 원소 마법이 전부지만, 루시는 특유의 연산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극한까지 개조했다.

“저, 저게 무슨······! 설마!”

전사들과 함께 달려가던 오크 지휘관은 하늘을 보고 경악했다. 수많은 불덩어리들이, 자신들을 향해 내리꽃고 있었으니까.

“마, 마법인가? 주술?!”

거대한 충격파와 열기가 스쳐 간 자리.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가까스로 버텨 낸 오크 지휘관이 손에 든 도끼를 휘둘러 먼지를 걷어 내었다.

무방비 상태로 일격을 허용한 오크 전사 다수가 차마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중이었다.

‘듣기는 했지만!’

정보가 없던 건 아니었다. 도망친 고블린들은 분명 상대가 괴이한 주술까지 쓴다고 증언한 상태. 단지 그동안의 연전연승으로 그런 사실은 잊어버리고 자만에 빠진 게 독이 되었을 뿐이다.

“전부 일어나라. 이정도의 공격을 또 할 수 있을리는 없······ 크윽?!”

하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부하들을 다그치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동시에 주변에서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며 미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다른 오크들의 비명과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너는!”

그는 자신의 도끼로 겨우 막아 낸 검을 보고 경악했다. 검붉은 기운이 빛나고 있는 검을 휘두른 것은, 얼굴은 아름다운 인간 여인의 얼굴을 한 주제에 딱딱한 갑주로 된 괴물의 몸을 하고 있는 존재.

이 역시 들은 적 있었다. 마치 갑옷을 입은 인간 여인 같은 존재가 괴물들을 지휘하여 고블린 군단을 무너뜨렸다고.

“······좋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 대전사장 바투가 너를 쓰러트리고 이 전투를 승리로 가져가겠다!”

이를 악문 그는 상대를 향해 명예로운 전사의 결투를 선언했다. 혼자서 적의 우두머리를 꺾는다면, 아군의 사기가 올라갈 것은 당연하니까.

‘내가 이까짓 괴물에게 질 리 없다.’

그는 오랜 시간 수련해 온 땅의 무술을 펼치며 도끼를 휘둘렀다. 땅의 주술과 무투기를 혼합한, 대전사장 이상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특수기.

그가 내리친 땅이 갈라지며 파편을 뿌리고, 휘두르는 도끼에 그 파편이 휘감겨 강공을 흩뿌렸다.

‘이긴다!’

이 특수기에 상대는 마나를 끌어올린 방어막으로 가까스로 버틸 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단독으로 결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커헉?!”

그러나 순간 흥분한 그는 미처 뒤를 살피지 못했다. 하늘에서 쇄도한 두 자루 창이 각각 그의 배와 허벅지를 관통했다. 창을 잡고 있는 것은 검은 깃털 날개를 달고 있는 또다른 괴물들.

이 어지러운 난전 속에서 정확히 빈틈을 노려 그를 찌른 것이다.

“이, 이런 비겁한······.”

“비겁이 아니라 효율입니다.”

“!!!”

도끼를 휘둘러 적들을 떼어내고, 구멍 난 신체에서 피를 흘리며 부들거린 그는 어느새 앞으로 달려 온 상대의 말에 기겁했다.

검붉은 마나가 휘몰아치는 일격. 미처 방어하지 못한 그의 몸이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반으로 갈라지며 그대로 절단되었다.

***

[첫 전투는 예측한 대로 끝날 것 같습니다.]

“상대가 좀 방심한 것 같던데.”

[그들의 전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이네.”

화면을 보던 나는 쓰게 웃었다. 지금 내게는 두 명의 루시가 보이고, 들렸다. 화면 속에서 검은색 검을 휘두르며 당황한 적들을 베어 내는 루시와 지금 내게 보고해 주는 루시.

화면 속 루시는 전투 때문인지 입을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루시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린다. 애초에 저 육신은 일종의 단말기 비슷한 것이니까.

루시의 본질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마왕군 그 자체다.

[오크들이 점령한 모든 점령지. 그동안 준비한 군세를 동원해 동시 타격합니다.]

“계획대로라면 오크들은 자신들의 땅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병사들을 파견하겠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소모전. 하지만 우리는 소모전에선 지지 않아.”

루시는 전쟁을 최대한 확대했다. 적들이 과민하게 반응하여 자원과 병력을 쏟아붓도록. 결국 소모전을 유도하는 것이고, 빠르게 자원과 병력을 순환시켜야 하는 소모전에서는 결코 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어간 전략이었다.

전쟁, 전쟁, 전쟁. 화면 어디를 넘겨도, 태양의 높이가 달라질 만큼 떨어져 있는 다른 지역을 봐도 오직 전쟁뿐이다.

하지만 루시에겐 그것이 호재다. 루시는 전쟁을 거칠수록 성장하고 진화한다. 지치지도 질려 하지도 않는다.

“이번에 던전에 들어가 보기로 했거든. 잘하면 새로운 표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루시 네 힘이 필요해.”

[저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도 루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있었지만.

***

“게이트, 돌발 게이트, 그리고 던전. 사실 앞으로 뭐가 더 생길지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이지연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던전은 지난 일주일 사이 새롭게 등장한 기믹. 아직 돌발 게이트에도 다 적응하지 못했는데, 새로운 폭풍이 연달아 몰아쳤다.

“던전이 정확히 뭐죠? 기사로 나온 게 정확한 겁니까?”

“게이트가 괴물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라면, 던전은 저희가 괴물들을 찾아가는 거예요.”

현역 각성자인 이지연은 던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만 들으면 괜히 던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닐 정도로 창작물 속 던전과 똑같았다.

“미쳐 돌아가는군요.”

“각성자들의 비율도 그만큼 늘고 있으니까 억지는 아니죠. 다른 게 문제일 뿐.”

엿 같은 현상들이 늘어날수록 사실 각성자 숫자도 유의미하게 늘어간다. 하지만 그녀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린 것처럼, 모든 각성자가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튼 정말로 던전에 들어가 볼 생각인가요? 싸우기 싫다면서요.”

“싫은 건 여전하지만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여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 온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럴 때 써먹으려고 그녀와의 연락을 유지한 나는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평범한 일반인으로 지내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지 상황이 이따위니까 어쩔 수 없는 것 뿐.

“저희 팀에 보고 된 던전이 하나 있어요. 철저히 관리해야 하지만 뭐······. 늘 그렇듯 개판이죠. 대충 잘 넘어갈 수 있을걸요.”

“좋습니다.”

“근데 정말 괜찮을까요? 저희 둘이서?”

망설임 없이 사람들을 위해 몸을 던지던 이지연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긴 이건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니 그럴만하다.

“하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나오죠.”

피식 웃은 나는 그녀의 눈망울을 피했다. 둘이라, 따지고 보면 둘만 가는 건 아니다. 장담컨대, 우리 중 가장 강한 존재가 내 휴대폰 속에서 함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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