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자연의 법칙(7)
47화-자연의 법칙(7)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요. 군대는 안 그래도 여기저기 많이 불려 다니고, 각성자들은 부족하죠. 그래서 약간 방치되는 느낌도 있어요. 어쨌든 던전은 먼저 들어가지 않는 이상 괴물들과 싸울 필요 없으니까.”
게이트만으로 버겁다. 군대의 주적은 게이트가 아니니 언제까지고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현대의 군대는 움직이는 순간부터 돈을 미친듯이 잡아먹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나마 동원할 수 있는 군대라도 충분해서 다행인 것이다. 국방력에 투자하지 않은, 혹은 약한 이들은 그마저도 불가능해 징집이니 계엄이니 여전히 시끄럽다.
“체계적인 각성자법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마저도 힘들고. 자꾸 떠넘기거나 통제하려 하고.”
초기 단계인 각성자들 관리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는 곳이 드물다. 함께 협력하면 그나마 다행. 그들을 악마로 몰아가다 게이트를 막지 못해 수만 명의 희생자를 만들고, 태도를 싹 바꾸어 각성자들을 신이 보낸 사자라고 포장하는 어처구니없는 곳도 등장한 판이다.
“그렇게 늦어지면 사람들이 다치는데.”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죠.”
앞장서서 걷던 이지연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애써 그녀를 달랬다. 현재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인적 없는 야산. 그러나 이곳에 벌목 작업을 실시하던 이들이 발견한, 우리가 던전이라 부르게 된 곳이 있다.
“잠깐, 누구십니까? 이곳은 통제구역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들이 시원하게 베여 나가 휑한 산 중턱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임도를 통제하던 경찰 하나가 걸어 올라온 우리를 보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이지연이 앞으로 나서서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각성자입니다. 조사를 위해 저희 팀이 이 던전을 배정받았는데, 사전 조사를 하려고요.”
“사, 사전 조사요?”
신분을 확인하고 호루라기를 내려놓은 경찰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뒤를 흘끔거렸다. 조사하라지만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다, 다들 다른 일이 바빠 언제 조사할지 모르는 명목상의 일이었으니까 설마 진짜로 사람이 찾아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보셨죠?”
결국 갈등하던 경찰은 우리를 그냥 보내 주었다. 그리고 이지연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과연 그리 빡빡하지 않다. 제대로 된 제도와 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여기저기 빈틈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덕을 봤지만 그리 좋은 건 아니라 생각해요. 역시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는데.”
“돈을 더 받아야 한다던가.”
“······보상이 없다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희생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저기, 저곳에 던전이 있어요.”
곧 산길을 걷던 우리 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말을 끊은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은 게이트와는 또 다른 투명한 공간의 균열. 마치 찰랑거리는 수면이 똑바로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들어가면 됩니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녀는 그리 동요하지 않는 내 태도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물론 나 역시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일단 나는 직접 싸우는 입장은 아니니까.
“이거 챙기시죠.”
나는 거기서 이지연에게 품에서 꺼낸 그것을 건네 주었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그것을 받았다. 주먹만 한 크기의 불그스름한 광석. 나는 하나를 더 챙겨서 손에 들었다.
“이게······ 뭐죠?”
“몸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마스크 속에서 피식 웃은 나는 굳이 정확한 답을 해 주진 않았다. 어차피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루시는 분명 자기가 전송해 준 강심에 보호 주문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반드시 챙겨 다니라고 신신당부한, 내게 위해가 들어오는 순간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방어막이다.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이미 여러 번 봤다.
이지연은 일단 받아 챙기면서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지만 어차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좋아요. 이쪽으로.”
던전 앞에 선 그녀가 심호흡을 하더니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잠시 그 하얀 손을 바라본 나는 일단 그 손을 잡았다.
굉장히 오랜만에 잡아보는 여자의 손. 그러나 그것에서 무언가 느낄 새도 없이 우리의 몸은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공간의 균열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 던전은 종류가 다양하다 했어요. 규모도, 환경도 제각각이라고. 일단 한 가지 확인된 사실은 던전의 규모는 입구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 정도.”
“여긴 무슨 동굴 같군요.”
그리 큰 던전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지연이 단 둘이 가자는 말에 동의한 것이다. 벽이나 천장등에 박혀 있는 희미한 발광석으로는 부족해 휴대폰으로 플래시를 킨 그녀가 비추는 이 던전은 음습하고 어둑한, 어딘지 모를 동굴 같은 곳이었다.
“상태창을 봐요. 이 던전의 이름은 잊힌 미궁 2―1이라고 떠요.”
“아. 예.”
이지연은 허공을 보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는 대충 보이는 척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상태창 같은 게 없으니까.
“들었어요?!”
하지만 여유롭게 상태창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지만 일반인을 초월한 감각을 가진 그녀는 무언가 들었는지 귀를 쫑긋거리며 황급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거미······!”
곧 그녀가 감지한 기척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우리가 있는 이 공동으로 통하는 검은 토굴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소형 자동차에 맞먹는 크기를 가진 거미.
벌레를 싫어하는지 질색을 하는 이지연의 가느다란 목덜미에 소름이 돋는 게 보였다. 정작 나는 그리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루시의 개조를 받은 별 해괴한 마왕군을 많이 봐서 그런가.
“제, 제가 막을게요. 창현 씨가 공격하세요.”
이지연은 당연하다는 듯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몸으로 내 앞을 막아섰다. 물론 미리 합의한 전술이긴 하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 시간을 더 끌기 전에 나는 박스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휴대폰을 전방을 향해 겨누었다.
[좁은 통로로 몰려오는 거미형 마수 다수. 그렇다면 퍼져 가며 연격이 가능한 전격 마법을 전개하겠습니다.]
내가 루시를 볼 수 있듯 루시도 나를 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현장을 살핀 루시는 채 1초가 걸리지 않아, 상황에 필요한 마법을 선정하고 그 즉시 발현했다.
“으읏!”
휴대폰에서 뿜어지는 굉음과 섬광. 이지연은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는 푸른 뇌전에 움츠러들었다.
뇌전은 효과적으로 적들의 몸에 틀어박히고, 태워 버리며 놈들의 몸을 타고 번져갔다. 그렇게, 몰려오던 십 수 마리의 거미가 채 10초가 되지 않아 전멸했다.
“몇 번이나 봤지만 굉장한 위력이네요.”
"인터넷 보니 저보다 괴물 같은 사람들 많던데."
“그런 것이 흔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휴대폰을 내리자 그녀가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각성자들의 능력은 가지각색. 그나마 최근에서야 체계가 잡힌 분류법에 따르면 각성자들의 절대 다수가 육체 강화 계열이다.
게다가 그 육체 강화 중에서도 그녀처럼 전신을 강화하는 것은 또 소수. 즉 루시가 펼치는 마법 같은 능력은 그 자체로 귀하다.
“안으로 들어가죠. 던전 내부를 전부 청소하면 상태창에 알림이 온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아직 멀쩡하니까 이 안에 다른 괴물들이 있다는 뜻이에요.”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탐색은 끝나지 않는다. 이지연은 거미들의 시체 너머,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둑한 통로 너머를 가리켰다. 우리는 이제 그곳으로 가야한다.
***
“저희 계획대로 오크들과의 전투가 잘 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마왕님?”
“······기분이 안 좋다? 유리아,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압니까?”
아군의 시체는 물론 오크들의 시체가 끝도 없이 풍덩 풍덩 들어가고 있는 소화장이 근처. 멍하니 서 있던 루시에게, 양분 공급을 마친 유리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표정이 굳어 계십니다.”
“······.”
유리아는 어딘가 굳어 있는 루시의 얼굴을 보고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을 뿐이다. 정작 루시 본인은 놀랐는지, 스스로 얼굴을 만지며 쪼물거렸다.
“역시 인간의 육신은 비효율적입니다.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을 이리 쉽게 드러내다니.”
“혹시 그분께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러고선 투덜거렸다. 유리아는 감정 따위는 조절하면 된다고 큰소리치던 루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쓰게 웃었다.
물론 루시는 자신의 의도대로 감정을 이용할 줄 알았지만 유독 특정한 경우에서는 그 조절 능력이 무너져 내렸고, 유리아는 그 특정한 경우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마왕을 창조하고 마왕이 받들어 모시는 존재.
적에겐 조금의 자비도 없는 냉혹한 마왕도 그 앞에서는 미숙한 어린애로 변한다.
“지금 그분께서 싸우고 계십니다.”
“싸, 싸움 말입니까? 하지만 마신께선 강인한······.”
“적들의 수준도 일개 마수 수준이고 제가 도울 테니 그분이 다치는 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분은!”
머리를 움켜쥔 루시가 잠시 버퍼링이 걸린 듯 입을 달싹거렸다.
자아와 습관이 충돌한 것이다. 평소대로, 무의식적으로 인간 여성이라고 말하려던 것을 끓어오르는 질투심이 가로막았다.
“인간 암컷과 단 둘이서.”
붉은 동공을 번득인 루시가 결국 이를 드러내고 말을 내뱉었다.
이 정도로 적의를 드러내는 건 배신자들을 처단할 때를 제외하면 처음. 그리고 한때 인간이 창조한 인간의 가치관과 상식을 가지고 있던 자신이 이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완전히 인정하고 확인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 강렬한 감정에 사실상 루시의 지배하에 놓인 유리아까지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
“진정하십시오. 마신께서 고작 인간 여자 따위에게 정을 주실 리 없지 않습니까.”
“유리아, 당신은 모릅니다.”
유리아가 애써 달래보려 했지만 루시는 고개를 떨궜다.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낸 대단한 존재지만 사실 평범한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전공을 세우고 있는 당신이 있는데, 마신께서 다른 이에게 신경을 쓰실 리가요.”
하지만 유리아는 포기하지 않고 루시를 달랬다. 루시의 귀가 움찔한 것도 그때였다.
“정말입니까? 정말로 제가 압도적인 전공을 세우면 그분이 계속 저를, 저만을 봐 주십니까?”
“당연합니다.”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아이 수준, 어르고 달래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루시는 한때 인간이었던 유리아가 자신보다는 인간에 대해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둘 생각은 없었습니다. 나의 의무니까. 이리 오십시오, 유리아······.”
단번에 기세를 바꾼 루시는 호위 삼아 데리고 다니는 오크ㆍ감마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무언가를 유리아에게 내밀었다.
유리아는 불안한 눈으로 명령에 따라, 루시의 앞에 무릎 꿇었다.
“허으윽!”
루시는 그대로 그녀의 가슴팍에 새로운 강심을 박아 넣었다. 그것으로 총 7개. 유리아는 전신에서 공명해 끓어오르는 강력한 마나의 파동에 전율했다.
“오크군에 그들이 대장군이라 부르는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이 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루시는 부르르 떠는 그녀에게 무심하게 명령했다.
‘이거야······ 거부할 수 없어······!’
유리아는 터져 나오는 쾌감에 몸을 움찔거릴 뿐. 눈이 풀린 그 얼굴은 쾌락에 녹아 흐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자신을 배신한 인간들에 대한 복수보다도 그녀가 더 갈망하게 된 것이 바로 강심을 통한 신체 개조.
실시간으로 급격히 강해지는 이 감각에 중독된 그녀는, 이제 증오와 분노는 물론 세상에 다시 없을 이 쾌락을 위해 루시에게 충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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