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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48화 (48/200)

48화-자연의 법칙(8)

48화-자연의 법칙(8)

“이럴 수가······ 놈들이 너무 많아요!”

“침착하고 천천히.”

어두컴컴한 통로 내부, 그 통로의 끝에 펼쳐진 것은 수많은 거미들과 그 둥지였다. 이 던전은 말 그대로 거미 둥지. 족히 백 마리는 넘어갈 것 같은 거미 떼에 기겁한 이지연이 비틀거렸다.

지금까지 게이트에서 넘어오던 괴물들은 평균적으로 몇십 마리 내외. 이렇게 많은 괴물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는 광경은 거의 초창기부터 각성자로 활동해 온 그녀도 처음 보는 광경인 것이다.

물론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도 나는 내성이 조금 있었다. 그동안 루시의 행동을 보며 함께 고민하고 행동을 지시했던 습관이 몸에 남은 것인지, 나는 저 괴물 거미 무리를 보고 도망칠 궁리를 하기보다는 어떻게 상대할지를 본능적으로 떠올리고 계산했다.

일개 학생이던 놈이 할 만한 생각은 분명 아니었다.

“천천히 물러서면서 싸우면 됩니다.”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거미들을 겨누고 다시 한번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뿜어지는 화염 마법이 작렬하며 선두에 있던 거미들을 쓸어버렸고, 루시는 그것을 확인하고 마법을 연달아 계속 쏘아 댔다.

압도적인 연산력과 마력을 추출하여 자유롭게 저장이 가능하다는 능력이 서로 결합되어 발휘하는 일종의 시너지, 마법의 약점이라고 말하던 낮은 연사력과 급격한 마력 소모를 루시는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 완벽히 상쇄했다.

[놈들이 학습했는지 사정권 이내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던 거미들은 자신들의 숫자로는 이 좁은 통로에서 루시의 마법 난사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몇십 마리를 희생한 이후 뒤로 물러나 우리를 위협할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목적 없이 이곳에 온 게 아니다. 놈들을 ‘죽이러’ 이곳에 왔다. 마치 게이트를 열고 우리를 공격하던 저 괴물들처럼.

‘공수 교대.’

우리를 경계하며 뒷걸음질 치는 거미들을 보며 내 머리에 떠오른 단어가 이것이었다. 역시 이 ‘던전’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스템은 단순한 기믹이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우리는 방어자가 아닌 공격자가 되어, 복수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복수······.”

“제 해석이 틀렸을 수도 있죠. 하지만 결국 행위 자체는 맞지 않습니까?”

이지연은 내 말을 듣고 살짝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마치 생각도 못 했다는 듯이.

“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입을 달싹거리는 사이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들어, 정확히는 루시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잊을 만하면 떠오르던 고민이다. 앞으로 나는,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 고민은 루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어지러워질수록 더 심화되었다. 지금 내 가장 큰 목적은 기존의 세력들과 위태위태하고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루시를 최대한 돕는 것. 하지만 그것은 결국 과정일 뿐이다.

내 목표가 성공한다는 것은 결국 루시가 최후의 승자가 되어 그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마왕이 된다는 뜻. 그렇게 마왕이 된 루시는 그것으로 끝인가? 과연 더 이상 잡아먹을 게 없어진 거대한 군체 그 자체인 루시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평범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내 마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흔들렸다. 동시에 이건 루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우리가 ‘공격’을 가할 수 있다면 더더욱.

루시의 힘을 방어에 쓰는 건 힘들지만 공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루시의 마왕군은 태생부터가 상대를 잡아먹고 짓밟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그 압도적인 잠재력을 완전히 개화하고 그 힘으로 나를 도울 수 있다면 어쩌면 지금 지구에 만연한 이 문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현 씨 말이 맞아요. 이렇게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 저희의 공격이라면 곧 기회가 될 수 있겠죠.”

“얼마 안 남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목표는 저 깊은 둥지 속에 있는 거대한 여왕 거미. 그러자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거미들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번 우리에게 독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

“······그분께서 저와 함께 싸우시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

서서히 마음이 바뀌기 시작한 그가 이지연과 함께 거미들의 둥지를 공격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 그를 마법으로 보조하는 루시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는 중이기도 했다.

“결국 저희는 더 성장해야 합니다. 적어도 마계의 방해꾼들은 전부 치워 버릴 정도는 되어야.”

“그렇습니다, 마왕님.”

“허접한 마수 거미들을 상대하고 계시는 그분은 곧 승리하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도 승리해야 합니다.”

그의 의지는 당연히 루시를 자극했다. 그의 의지에 보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관념이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렬한 의지는 마왕군 전체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은 곁에 있던 유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 더 많고 빠른 성장과 진화가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무한정 공급되어야 할 양분과 성장의 동력을 불어넣어 줄 끝없는 전쟁. 자신들에게 익숙한 전쟁을 통해 마왕군을 제압하려 하는 마계 영주들의 짧은 생각은 틀렸다.

마왕군은 전쟁 그 자체를 먹고 자란다. 상대가 흘리는 피와 시체를 먹고 자신들은 더욱 강해진다.

고양감에 여전히 몸이 뜨겁던 유리아는 마왕의 그 감정에 동화되어 스스로를 전의로 불태웠다.

“이제 전면전입니다. 가서 오크들을 공격하십시오. 그들이 대장군이라 부르는 자의 수준을 확인하고, 타격을 입히십시오.”

루시는 유리아에게 특명을 내려 적을 공격하게 시켰다. 그 입에서 나온 전면전 선언. 그리고 마왕군의 전면전은, 다른 이들과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식으로 싸우는데, 오크들이 이길 수 있을까.’

그 방식은 유리아가 알게 된 이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혹하고 어지러웠다.

“보급 부대가 방금 떠났습니다, 족장.”

“부담이 되긴 하는군. 분명 짧게 끝날 전쟁이라고 호언장담하더니······.”

영지 서쪽 변경 근처의 갈색오크 마을. 이곳의 족장은 부하의 보고에 괜히 툴툴거렸다. 최근 벌어진 전쟁을 위해 전사들을 차출해 가고 계속해서 보급품을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개체 중 상당수가 덜 성장한 고블린들에 비하면 갈색오크들은 기본 종족값도 높고 왕을 중심으로 잘 단합되어 있는 편이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수많은 부족들이 모여 있는 연합체 성격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 즉 부족들이 모여 불만은 가지면 갈색오크 왕 플라우로스도 마냥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크, 큰일났소, 족장!”

하지만 슬슬 부담이 되는 물자 지원보다도 더 급박한 소식이 그 순간 부족에 휘몰아쳤다. 다급히 뛰어온 부하의 말에 기겁한 족장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괴, 괴물! 그 괴물 놈들이 이곳을 습격했다!”

저 멀리서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도망치는 이들이 보였다. 자신들에게서 약속된 보급품을 가져가던 왕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고, 그것을 본 족장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저놈들이 대체 왜 여기까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치는 보급 부대를 맹렬하게 뒤쫓는 괴물들을 본 족장이 기함했다. 바글바글하게 몰려오는 검은 갑주의 괴물들은 저 멀리 전방에서 점령지를 지키는 아군과 싸우고 있어야 하지, 이런 후방까지 들이닥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막, 막아라! 싸워라!”

족장은 스스로 무기를 들고 다른 전사들과 함께 서둘러 마왕군을 막으러 땅을 박찼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다.

이미 전사들을 차출당한 그의 부족에 남은 전사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은 건 늙은이들과 부상을 입은 이들뿐. 반면 대체 어디서 저렇게 몰려온 것인지 마왕군의 숫자는 적어도 천 단위는 되어 보였다.

‘저놈은 설마······!’

이를 악문 족장의 눈에 돌격하는 돌격병들 위에 떠서 날아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소문으로나 전해 들었던 마왕군의 지휘 개체. 그는 저 괴물이 자신을 비롯한 오크종의 유전 데이터를 섞어 베이스로 삼았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4―14 부대 적 조우.]

반면 마왕군은 당황한 오크들과 달리 늘 그렇듯, 조금의 당황 없이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움직였다. 지금 이곳을 공격하는 이들도 대대적인 침공을 시도한 전체 병력의 극히 일부일 뿐.

이미 수많은 마왕군이 소규모의 부대로 나누어져 오크들의 영지를 역으로 공격해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상대하던 이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전략. 애초에 루시가 자신의 강점을 내버려 두고 상대가 예상할 법한 방식으로만 공세를 취할 리는 없다. 그것이 곧 비효율이었으니까.

그동안 정석적인 방법으로 대응해 온 루시의 행동에 마왕군에 대해서 착각을 가진 오크들은, 그 근원부터가 기존의 생물들과는 판이한 마왕군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격을 허용했다.

[양분은 현지 조달. 오크 영지 전체를 전장으로 확대.]

“크아악!”

“이놈들······.”

마왕군은 습격한 이들을 모조리 살육했다. 함께 따라 온 노동병들을 통해 간이 소화장과 생산장이 지어지면, 시체를 포함해 주변의 모든 생물체를 초토화 시켜 양분을 보충하고 병력을 새롭게 생산했다.

점령지 자체가 단기간에 마왕군의 땅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 오크들이 기껏 점령한 지역을 안정화시키지 못하고 병력과 자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전쟁.]

루시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전쟁을 시도했다.

단순히 전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들로 그 승패를 겨루는 지성체의 전쟁이 아닌, 종의 생존 전체를 걸고 벌어지는 생태계에서의 진정한 전쟁. 수단과 방법 따위는 가리지 않는다. 지는 쪽은 절멸하고 승자는 그것을 독식한다. 오크들이 전쟁에서 승리하려 할 때 루시는 그 생존경쟁 자체에서 승리하기를 노렸다.

“이 미친, 악랄한 놈들.”

연륜과 경력으로 그것을 어렴풋이 깨달은 족장은 멍하니 탄식했다.

주변을 둘러보자니, 바닥에 수북한 것은 대다수가 숫적 우위를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진 아군의 시체 뿐.

검을 맞대고 있던 오크·감마가 순간 출력을 올려 검을 휘두르자 그의 검이 부러지고, 몸을 길게 베인 족장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이런 결과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예측률을 계산한 루시는 날이 갈수록 정확해지는 자신의 예측률에 만족해하며, 변수가 없다면 자신이 이 경쟁에서 승리할 것임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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