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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52화 (52/200)

52화-새로운 질서(2)

52화-새로운 질서(2)

[예상 승률은 45%지만, 패배해도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저들의 생태적 특성상 지치고 망가진 군대만으로 생산성을 보존하진 못합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이상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군에 유리합니다]

"45%..."

나는 루시의 보고를 받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현재 화면 속에 보이는 것은 비행종 몇과 함께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 유리아.

분명 루시에게서 예상 승률을 전해들었을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결연해 보였다.

한 점의 감정도 들어가지 않는 루시의 계산이 나름 정확하다는 것은 그녀도 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계산이 결과로서 완벽한가 말하면 그건 아니다. 애초에 루시도 확률을 계산할 뿐이니까.

"45%는 충분해. 0.01%의 확률을 바라며 도박을 하거나 뽑기를 돌리는 사람들도 많고, 결국 성공하는 이들은 반드시 나오니까."

[하지만 그런 식의 기적은 제 계산에서 배제됩니다. 물론 낮은 확률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 이득은 예상치를 아득히 뛰어넘겠지만 그것을 고려해 계산하면 결국 결과가 틀어집니다.]

"네가 틀렸다는 게 아니야. 그냥 현실을 말한 것 뿐이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루시는 언제나 기계적으로 계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밀한 계획을 짠다. 그 계산에 '변수'는 최대한 제거된다. 당연한 일이다. 루시는 그 근본부터가 변수와는 거리가 먼 존재니까.

그러나 나는 그 변수가 없을 수가 없다고,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까지 봐 온 모든 것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불가능한 것을 향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든,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든. 그들이 보여주는 변수가 곧 기적이야. 널 상대하게 될 적들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런 것에 당하지 않으려면 너에게도 변수가 필요해."

[하지만 저는 그런 변수를 만들어낼 없습니다]

"네가 힘들다면 그런 게 가능한 이들을 영입하면 돼. 유리아처럼."

루시에게 계산을 극복하라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극복하면 안 된다. 그건 루시의 정체성이자 최대 강점이니까.

그러니까 대신 나서줄 이들을 데려오면 되는 것이다.

[...유리아가 적 우두머리와 조우합니다]

그 순간 화면 속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격 받고 있는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오크들의 주력군과 최대한 그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려는 아군의 전투다.

"큭..."

마법을 펼치려던 유리아는 이를 악물더니 서둘러 몸을 피했다. 땅에서 쏘아진 강력한 참격. 수십 미터 위에 있던 그녀에게도 영향을 끼칠 정도였다.

[아무리 우두머리라지만 평균치를 한참 벗어나는 존재입니다. 저 갈색 오크 역시 성녀가 하사한다는 그 '권능'을 하사 받은 게 분명합니다]

"정말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네. 하긴 그정도이니 불가능이라 여겨지던 반란을 끝내 성공한 것인가?"

긴장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늑대인간이나 오크들은 그 기본값부터가 고블린과는 비교 불가능한 이들. 그러니 강자들의 수준 또한 차원이 달랐다.

[아직까지는 예상치 만큼의 모습입니다]

"보여줄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녀에게 달렸지."

루시는 유리아가 밀리는 모습이 당연하다 보는지 태연했지만 나는 달랐다. 필사의 각오로 자신보다 강한 적에게 덤벼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순간 이지연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적어도 무언가를 위해서 불리한 전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공통된 점이니까.

나는 루시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보았다.

***

"차라리 잘 되었다. 이참에 저놈들을 깨부수고, 돌아가서 나머지 놈들도 다 정리하겠다!"

오크 대장군 나르, 그는 마법을 시전하려는 유리아를 보고 이를 갈았다.

결국 몰려 온 마왕군과의 일전을 선택한 그는 자신의 무기인 도끼를 들고 직접 유리아를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다른 오크들도 마찬가지다. 몸을 돌려서, 무기를 들고 마왕군을 겨누었다.

"싹 쓸어버려라!"

곧 만 단위를 가뿐히 넘기는 양쪽 군세가 동시에 충돌했다.

이런 와중에도 오크들은 자신이 있었다. 마왕군이 까다로운 이유는 우월한 기동력과 회전력, 그리고 원거리 포격이지 지금까지 근접전을 피하던 이들이 이렇게 근접해서 싸우면 본인들이 이길 것이라 확신한 탓이다.

[광폭화 가동]

하지만 흥분한 오크들이 미처 구분하지 못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마왕군의 병력 구성이 평소와 조금 달라졌다는 것.

마왕군은 그동안 병력의 다수를 적은 생산값에 준수한 전투력을 보여주는 마수형 병사들을 대량으로 생산해 운용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고블린, 오크, 웨어울프등 지성을 가진 마족 군대와 전투를 반복하며 착실히 쌓아올린 전투 데이터는 비효율이었던 마족형 병사들의 효율을 급상승 시켰으니까.

"이놈들 대체 어떻...끄아악!"

마구 도끼를 휘두르던 오크 전사 하나가 역으로 당해 잘려나간 팔에서 피를 뿜으며 비명을 질렀다.

마수형 병사들의 틈에서 광폭화를 발현한 일부 베타급 마족형 병사들의 힘과 기술은 이제 더 이상 정예 오크 전사에 밀리지 않는다.

그토록 자신있어하던 근접전에서 오히려 마왕군에게 밀리기 시작하니, 숫적으로 병력 구성으로도 불리하던 오크군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 짧은 시간에 우리의 기술을 그대로 가져간 것이냐. 네놈들은 결코 내버려 둬선 안 되겠구나."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부하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대장군, 나르가 분노를 억누르고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네놈들이 승리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네놈들을 전부 죽여버릴 테니까! 불량한   재주로 어디 이것도 가져가 보아라!"

나르는 마력이 타오르는 도끼를 쳐들고, 그대로 지면을 내리찍었다.

그 이후 벌어진 광경은 상식을 벗어나는 광경이었다.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며 땅이 뒤흔들리고 갈라지며, 그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굉음이 울려퍼졌다.

[저것이 대전쟁 시절 마왕을 상대로 승리한, 권능을 받은 대장군 급 오크]

어느정도 데이터가 있었던 루시는 그 광경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승률을 45%로 예측하는 중이다.

휘말린 마왕군 다수를 광폭화고 뭐고 그대로 으깨고 짓눌러버리는 그의 일격은 파괴적. 이것이 단신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경지라 불리는 강자의 힘이었다.

"대장군!"

"그렇지...! 대장군이 있으니 우리가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던 오크들에겐 승리의 희망이 되었다. 말 그대로 전장의 영웅.

영웅은 단순히 본인의 강함만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주변에 희망과 힘을 준다.

[아군의 사기가 떨어질 일은 없지만 떨어졌던 적들의 사기가 다시 보충되어 아군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까 유리아? 당신이 대장군을 잡으면 적들의 사기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꺾이고, 아군의 기대승률은 90% 이상 치솟습니다]

루시는 유리아에게 그런 영웅을 꺾을 수 있냐고 물었다.

객관적인 수치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지 오래지만 말 그대로 유리아라는 변수를 믿어보는 것이다.

"해내겠습니다."

얼굴을 굳힌 유리아는 대장군의 공격에 수북히 쌓인 마왕군의 시체 위에 내려앉았다.

둘은 물론 그 주변에 있던 이들까지 본능적으로 그들의 싸움을 알아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자리를 만들 정도였다.

"마치 역겨운 인간을 닮은 얼굴이구나 괴물!"

'오크...대장군.'

날개를 집어 넣은 유리아는 자신을 보며 도발하는 나르를 노려보았다.

오크종에서 대장군이라 추앙 받는 이들. 사실 그들은 굉장한 강자들이다. 인간 시절 일개 마법사였던 그녀는 감히 상대조차 불가능한 그런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불리하긴 해도 그런 괴물과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 그 사실이 그녀에게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

[집단 술식ㆍ화염창]

순간 앞으로 뻗은 그녀의 손에서, 엄청난 속도로 연산이 끝난 마법이 시전되어 나르의 면전을 향해 쇄도했다.

"이까짓!"

그는 당연하다는 듯 도끼를 휘둘러 화염창을 쳐냈다.

하지만 그것은 맛보기에 불과할 뿐, 마왕군에 합류한 이후 초인적인 육체를 갖게 된 그녀는 루시와 함께 개발한 마왕식 마법을 아낌 없이 난사했다.

허공을 가르는 수십 발의 화염창. 그것 모두를 쳐낼 순 없었던 나르가 강한 힘을 모아 터트리는 강공을 다시 한번 펼쳤다.

[출력도, 상성도, 전투 경험도 모두 상대의 우위입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오크 대장군을 이길 수 있습니까?]

루시의 물음이 쿵쿵거리는 그녀의 심장을 더 세게 자극했다.

"제가 더 간절합니다."

무엇으로 훨씬 강한 적을 이겨서 이 전장의 변수가 되겠느냐는 물음. 하지만 유리아는 지금 당장 답할 수 있는 게 이것 하나 뿐이었다.

"네년을 죽이면, 너희도 버틸 수 없겠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힌 나르가 유리아가 쏘아낸 뇌전을 도끼로 받아내었다.

뒤로 물러서려던 그녀는 차마 물러서지 못하고 최대 한도로 끌어낸 방어막으로 그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었다.

단숨에 방어막에 금이 쩍 하고 갈 정도로 강한 일격. 그때 입술을 깨문 유리아는 강심의 출력을 최대한 끌어낸 마법을 시전했다.

"...이건!"

당황한 나르가 움찔거렸다. 단숨에 진창으로 변했던 땅바닥이 육중한 그의 몸을 발목 까지 삼켰고, 그대로 굳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주춤하는 사이 유리아는 거리를 벌리는 대신 빠르게 연산한 마법 하나를 텅 빈 그의 가슴에 추가로 시전했다.

"크하."

터져나온 에너지 파동이 그의 가슴에 적중해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르는 전신에 푸른 마력을 불태우며 피를 토한 입꼬리를 비틀었다.

유리아는 자신의 최대 화력으로 지근거리에서 꽂아넣은 공격이 별 타격을 주지 못하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젠 내 차례다 괴물년."

동시에 그는 온 힘을 다해 땅 속에 빨려들어간 다리를 뽑아내더니 전력을 담은 도끼를 휘둘렀다.

터져나온 일격이 그대로 유리아를 덮쳤고, 한계였던 방어막은 완전히 부숴졌으며 몸에 두른 갑주가 으깨지고 체액을 흩뿌릴 정도였다.

"끝이다! 우리가 이겼다!"

나르는 조각나서 떨어지는 유리아의 팔과 몸 조각들을 보며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유리아는 끝내 버티지 못한 몸이 조각나면서도 그 눈을 나르에게 고정해 떼지 않았다.

[당신의 의지대로 마무리는 제가 짓겠습니다]

"무슨...!"

유리아의 몸에 박혀 있는 강심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마법이 하나 또다시 시전된 것이 그때였다.

나르는 그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몸이 으깨진 시체가 마법을 시전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그가 유리아의 몸도 결국은 마왕인 루시가 컨트롤하는 나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마력포ㆍ중첩]

쏘아진 강력한 광선포가 다시 한번 나르의 몸에 적중했다. 마지막 공격에 마력을 끌어 쓰느라 잠시 육체를 강화하던 힘이 약해져 있던 그 몸에.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한쪽 팔을 포함 좌측 상반신 전체가 사라진 나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몸은 유리아처럼 반 시체 상태에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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