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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57화 (57/200)

57화-새로운 질서(7)

57화-새로운 질서(7)

[갈색 오크 주력의 패퇴를 확인. 그들을 전멸시키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군의 승리입니다]

"도망쳤다고?"

루시의 보고를 받은 나는 살짝 놀랐다. 설마하니 상대가 자기네 땅을 버리고 도망칠 줄은 생각 못한 탓이다. 애초에 도망칠 곳도 없었을 텐데.

[그들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마계영주 그레모리의 영지로 도망쳤습니다]

"그럼 싸움날텐데?"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이민족에 밀려 도망친 이민족이 그곳에 있던 애먼 토착민들을 도륙하고 땅을 차지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었으니까.

마계 영주들의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수백 정도도 아니고 수십 만은 되어보이는 주민들을 이끌고 도망친 이들을 기존의 영주가 받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그레모리가 이끄는 음마들은 특성상 개체수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지 내에 빈 땅이 있다고? 그렇다 해도 납득하기 쉽지 않을 게 뻔한데...어쨌든 지금 당장은 공격하지 않을거지?"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은 웨어울프들과의 전투에 전력을 집중할 생각입니다]

갈색 오크들을 패퇴시킨 이후 루시는 진격을 멈추었다. 이제 고블린들의 땅을 파먹은 것처럼, 새로 얻은 땅을 먹어치우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차례다.

하지만 나는 그 점에서 살짝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지금 루시 너는 살아있는 생물체를 닥치는대로 먹어치우고 그것에서 양분을 얻고 있어. 마치 육식동물처럼. 그런데 내 상식으로는, 그게 그리 효율적인 양분 획득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육식동물은 당연히 초식동물보다 숫자가 적다. 먹이의 숫자도 더 제한적이고 얻는 방법도 더 어려우니까.

설령 획득한 생물들의 모든 데이터를 활용해 말 그대로 식물이든 동물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먹어치울 수 있다 해도, 효율을 중시하는 루시에게는 그리 어울리는 방법은 아니었다.

[맞습니다. 현재 에너지 효율은 50% 미만. 이 효율로는 최대로 생산 가능한 전투 병력이 100만을 넘을 수 없습니다]

루시는 내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먹이를 채취하고, 운반하고, 소화하고. 그 과정에서도 노동력과 양분이 소비된다. 결과적으로 루시가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양분은 50% 미만.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다.

[하지만 현재 대안책이 없습니다]

루시가 그것을 용납하는 것은 그것을 대신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몸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만능세포 나노도 엽록소를 비롯한 식물의 세포는 될 수 없었다.

나야 그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루시의 분석 및 복제능력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이건...나도 방법을 찾아볼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심해 보기로 결정했다. 현재 루시와 나는 깊은 협력관계이자 동반자. 서로가 잘 되어야 서로에게 이득이니까.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론상 루시의 군단은 안 그래도 그리 적지 않은 그 숫자를 계속해서 증폭하는 게 가능해진다.

지금도 잘 작동하는 특유의 성장력과 그 압도적인 숫자가 겹친다면 정말 마계 전체를 상대로 싸우는 것 역시 할만할지도 모른다.

[실마리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실 나도 잘 몰라. 하지만 계속 활동하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네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루시의 물음에는 확답할 수 없었다.

단지 단순한 괴물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침략종들의 종류와 특성을 보면서, 그것들의 데이터가 루시에게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여기에요."

그날 오후. 나는 온라인으로 매일 같이 대화를 나누던 이지연을 직접 만났다.

사적인 일로 만난 것은 아니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의 차림새에서 볼 수 있듯 그녀는 이제 함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유명인이 되었다.

혼돈과 격변의 시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괴물들과 싸우는 초인들은 말 그대로 영웅이라 불렸으니까.

"바쁘시던데."

"어쩔 수 없죠. 애초에 모두가 쉴 틈이 없어요. 붉은여왕 가설이고 아시나요? 저희가 달리는만큼, 놈들도 달리는 것 같을 정도죠. 멈추면 그대로 따라잡히거나 뒤쳐져요."

쓰게 웃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 말대로 우리가 강해지고 익숙해지는 만큼 게이트와 던전등으로 침략을 시도하는 적들 역시 계속해서 강해지고 많아졌다.

"사실상 텅텅 비어있던 대응 시스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서, 이제 저희 둘이 몰래 던전을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고."

"예상은 했습니다. 그래도 슬쩍 들어가 보는 것도 불가능한가요? 굳이 싸울 필요까지는 없는데."

나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정식으로 각성자 등록을 안 했기에 민간인 신분인 나는 그녀와 함께 돌아다니는데 슬슬 제약이 생기는 참이었다.

루시의 힘을 이용하기로 결정한 이상 언젠가는 해야 했지만 아직 시스템이 불안정한 이상 귀찮은 일 생기지 않게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다.

"...며칠 뒤에 대형으로 분류되는 던전 하나를, 몇 개 회사가 연합해서 해결하기로 했어요. 군대까지 함께 동원되는데 그때 회사 소속 민간인 몇도 함께 들어가거든요. 그러면 이참에 정식으로 취업할래요? 제 매니저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시 머리를 굴리던 이지연은 곧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하나 제시했다.

나름 획기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현역 대학생인 내가 그게 되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회사의 창립 멤버인 자기 권한이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결국 나는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어쨌든 그녀를 따라다니며 최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내 진정한 목적을 위해 착실히 힘을 기르는 단계인 것이다.

"그리고 할 말이 하나 더 있어요."

하지만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도 한껏 휘며 웃은 이지연은 내게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

"이게 뭐냐?"

"그, 던전 코어 있잖아요. 그걸 쓸 수 있게 가공한 거라던데. 전 잘 모르니까 대표님이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이지연이 창현을 만나기 며칠 전.

그녀는 한때 함께 싸우던 각성자 팀의 팀장이자, 현재 속한 회사의 대표이며, 각성자 협회의 초대 협회장인 백승철에게 그것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가공? 쓸 수 있게? 그게 가능해?"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그녀에게서 호두알만한 광석 하나를 받아든 그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시큰둥한 눈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설마 네가 했다고?"

"아니요. 아는 사람에게."

"너 속은 거 아니냐?"

이 광석을 아는 사람에게 받았다는 그녀의 말에 백승철은 헛웃음을 흘렸다.

던전 코어는 말 그대로 던전을 공략할 경우  주어지는 일종의 부산물. 그 내면에 알 수 없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것까지는 확인 되었지만 전 세계의 연구자들이 무슨 과학적 기술을 동원해도 내부에 잠든 에너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

결국 던전 코어는 아직까진 그냥 빛나는 돌덩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지연이, 대뜸 그것을 활성화 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얘도 이제 겨우 스물 다섯 아닌가. 싸울때는 무서워도 현대 사회에선 아직 어린애지.'

이지연을 바라 본 그는 일단 알았다며 그것을 받아 챙기면서도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 그녀가 어디 가서 사기당하지 않게 단단히 교육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성공! 성공했단 말입니다! 그것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 광석을 연구실로 보낸지 채 이틀만에, 그는 환호성 섞인 연락을 받고 어벙하게 되물었다.

"실험에 성공했다라. 민간에 발표는 아직 안 했나보네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표님도 굉장히 좋아하시던데."

이지연은 웃으며 그날의 기억을 말해주었다. 정작 창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건넨 또 다른 던전 코어를 만지작 거릴 뿐.

[마나에 대한 이해 없이 던전 코어를 활성화 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즉 이 기술, 저희가 독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가 슬쩍 본 휴대폰에서는 루시가 띄운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애초에 그가 이지연에게 건네준 것은 던전 코어가 아니라 루시가 가공한 강심의 파편이었다.

"말하신대로 창현씨 이야긴 하나도 안 했더니, 대표님이 제게 전국에서 올라오는 던전 코어들을 몰아주신대요. 그걸 가공할 수 있게."

"좋습니다. 전부 처리해 드리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지연에게 던전 코어 활용의 어려움에 대해 전해들은 그와 루시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한 끝에 계산한 의도된 상황이었다.

강심의 파편을 제공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던전 코어에서 추출하는 에너지의 30% 미만 수준. 즉 70%에 달하는 에너지는 루시가 고스란히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직접 가공이 불가능한 이상 그에게 던전 코어를 몰아줄 수밖에 없으니 그는 앉은 자리에서 전국에서 몰려오는, 어쩌면 전세계적인 코어의 에너지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계산 결과 전체 강심 전력은 600% 이상 강화 가능합니다]

그 모든 에너지는 고스란히 마왕군의 강화에 쓰였다. 그렇게 강화된 전력으로 마계 영주들을 공격하고, 거기서 발생한 자원으로 또다시 강해지는 이중성장.

안 그래도 빠른 마왕군의 성장 속도는 더욱 급증했다.

"세계 경제는 불황이야. 평화롭지 못하니까. 그러니 망하지 않으려면 대체재를 찾아야지. 이 일이 잘 풀리면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우리에게 코어를 맡길지도 몰라."

[그런식으로 외부에서 수급되는 마나량이 늘어난다면, 아군의 전략 자체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지연과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 그는 통화를 하듯 이어폰을 꽂고 태연하게 루시와 대화했다.

[현재 그레모리의 영지를 중심으로 마계 영주 일부가 연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갈색 오크왕 플라우로스의 주도가 분명합니다]

"그들 전체와 싸울 경우 승률은?"

[예상 승률은 60%이나 데이터 부족으로 인해 오차범위가 너무 큽니다]

"그럼 굳이 싸워 줄 이유가 없겠네."

그는 루시와 함께 고민했다. 최적의, 최고의 효율을 찾아서.

"이간질 시킬 방법은 없나? 우리 때문에 억지로 뭉친거잖아."

[그레모리등은 분명 영지를 무단 점거한 플라우로스에게 불만이 있을겁니다]

"만약에 그들과 싸워주지 않으면?"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불만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면 차라리 웨어울프들만 공격하는 게 어때."

[웨어울프들은 그들에게 지원을 요청하겠지만 그들은 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서로의 의중을 의심하고 분열할 것입니다]

대응 방법은 의외로 금방 튀어나왔다. 이제는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보강하는데 도가 튼 그와 루시는 주고 받는 문답만으로 방법을 찾아내었다.

"이렇게 하자."

[지금부터 서쪽 전선은 철저히 무시하겠습니다]

루시는 즉시 움직임을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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