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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59화 (59/200)

59화-새로운 질서(9)

59화-새로운 질서(9)

"놈들은 크게 마수형과 마족형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우리가 분석한 바, 같은 형태의 괴물들도 조금씩 다른 종류로 나누어진 것을 확인했다."

마계 연합군 출병 전. 플라우로스는 심복들과 함께 자신이 직접 연합군의 수뇌부에게 그동안 수집한 마왕군에 대한 정보를 설명했다.

직접 겪고 싸우며 수많은 희생자를 낸만큼 그의 분석은 꽤 정확한 편이었다.

"놈들의 공통된 특징은 단단한 갑각이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흡집 내는 것조차 힘들다."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괴물들이 혼잡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보이는 놈들만 보이게 되었습니다. 마치 효율적이고 쓸만한 형태의 병종을 골라내는 것 처럼. 심지어 토착 마수들과 닮은 형태에서 점점 더 기괴하고 괴악한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놈들도 여럿 확인되었습니다."

유리아와의 동귀어진으로 한쪽 팔을 포함해 전투능력을 잃어버린 대장군 나르가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설명을 보충해 주었다.

"마수형 중 유독 육중하고 단단하며 거대한 몸집을 가진 놈들은 돌격병으로 써먹습니다. 그 이후 날렵한 몸을 가진 근접병들이 무너진 전열에 침투하여 난전을 일으키는 것이 놈들의 기본 전술입니다."

"결국 집단으로 다니는 마수놈들이란 것 아닙니까?"

그때 설명을 들으며 혓바닥을 낼름거린 보라색 비늘의 리자드맨 하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정작 그 말을 들은 플라우로스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 쉽게 이길 줄 알았던 적이 있었지. 하지만 놈들의 전략은 그게 전부가 아니야. 마족형 개체들은 우리와 맞먹는 전투력을 가졌다. 듣도보도 못한 마법도 쓴단 말이다."

"마법을 쓴다는 건..."

"가장 거슬리는 놈들이 바로 마나를 다루는 상위급들이다. 놈들은 모두 마족형 개체들이고, 겉보기엔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강함은 상상 이상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그것이 현실이지."

다른 무엇보다 마나를 사용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적들이 단순한 괴물 집단이라면 마나를 써서는 안 된다. 마나는 지성체와 몇몇 영물들의 자격이었으니까.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그 지휘개체들이 휘하 병사들을 부리며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다. 놈들의 징그러운 둥지가 펼쳐지면 그 일대는 살아남는 생물 없이 초토화되고 황폐해지지."

"뭐야 그럼. 우리가 기껏 땅을 얻어도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 아니야?!"

"그러니 놈들이 완전히 땅을 파먹기 전에 막아야지."

그는 기겁한 그레모리를 비웃었다. 땅을 노리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졸지에 타임어택이 걸린 셈이었으니 농땡이 피우는 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다. 놈들은 배울줄 알고 성장할 줄 아는 놈들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놈들이 더, 많이 강해지기 전에."

플라우로스는 본능적으로 루시와의 싸움을 단기접전으로 끝내야 함을 깨달았다. 안 그래도 빠른 증식력과 진득한 목숨줄을 가졌는데,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장점을 배워 성장하는 루시의 특성상 시간이 끌리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당부하건데 욕심 부리지 말라. 너희들 모두 모종의 명령을 받고 왔을 것이나...지금 당장은 전쟁에 집중해라. 마왕과 싸울때처럼."

마족들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그는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당부가 실제로 통하는지는 그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주군께선 더 많은 전공과 보상을 원하신다. 바람의 자식인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느릿하게 움직이며 손해를 봐야 하느냐?"

"아닙니다 단장."

"그러니 먼저 움직인다. 듣자니 놈들의 비행전력은 형편없다!"

플라우로스의 당부가 있었던 회의 직후. 히죽 웃은 푸른 피부의 사내가 자신의 부하들에게 돌아가 히죽였다.

양 팔이 깃털 날개로 되어 있는 그들은 하피족을 다스리는 그들의 왕이 파견한 일종의 근위대. 그들은 애초부터 다른 이들과 협력할 생각이 없었다.

"가자! 우리가 가서 압도적인 전공으로 기선제압을 한다면 그것이 곧 본대에 도움이 된다. 주군의 명령이니 뭐라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주군을 든든한 방패막이로 삼은 하피 근위대장은 날개를 퍼덕여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 수백에 달하는 하피들이 그 뒤를 따라 하늘로 날아오르니, 플라우로스는 그 모습을 보고 탄식했다.

'혹시나 했거늘 역시나.'

제대로 된 협력과 단결. 아직 그것을 이루기엔 그들에겐 절박함이 부족했다.

[적 움직임 감지]

그리고 하피들이 주둔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주변 정찰에 공을 들이던 루시 역시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비행종 강화의 기회입니다]

루시는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하피들을 보고 오히려 기회로 여겼다. 지상군에 비해 부족한 비행전력. 그것을 강화할 소재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왜 지상군과 함께 오지 않지? 그정도 판단도 못할리는 없는데."

[게릴라로 소모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독단 같습니다]

감정을 배제하고 계산을 우선하는 루시는 의외로 단숨에 하피들의 움직임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고 사실 그 의도가 어쨌든 하피들 단독으로 먼저 쳐들어 온다면 맞받아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존의 비행종을 투입하여 데이터를 수집하겠습니다]

루시는 하피들을 상대로 보유하고 있던 비행종들을 먼저 투입했다. 유리아처럼 날개에 투자하지 않는 이상 상위급조차 자유롭게 날아다니지 못하니, 현재 마왕군의 비행전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찰나의 문제일 뿐이다.

"이 괴물놈들이 듣던 놈들이군!"

하피 근위대장이 자신들을 향해 덤벼드는 수많은 비행종들을 향해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날카로운 맹금류의 발톱이 달린 두껍고 강인한 발을 쭉 뻗으며 그 발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그러자 뛰어난 비행능력과 강인한 신체가 합쳐져, 비행을 위해 방어력을 희생한 비행종 마왕군의 갑각은 단숨에 박살나고 갈라지며 체액을 흩뿌렸다.

루시의 계산대로 아직 마왕군의 비행전력은 하피들을 이길 수 있을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활용 가능한 모든 대응책 작동]

물론 이 전투는 처음부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전투다. 바로 지금까지 미흡했던 공중전에 대한 귀중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마수형 날짐승들과의 전투 정도가 전부였던 마왕군은 지금 모든 데이터를 닥치는대로 흡수해 분석하며 자신들의 힘을 늘려가는 중이었다.

"큭...이건 뭐지 이 비열한 놈들!"

기세가 등등해지더니 직접 나서 싸우던 하피 근위대장이 격렬한 전투의 와중, 흩뿌려진 체액 에 섞여 자신의 날개를 타고 기어오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마치 검은 기생충 같이 꿈틀거리고 있는 그것은 그의 몸을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육체 내부로 침투하려 시도하였고, 마나를 끌어올린 그는 손도 대지 않고 단숨에 몸 표면을 강화하여 그것을 사멸시켰다.

[뇌아귀ㆍ알파 사망. 딱히 상관은 없습니다]

루시는 그의 몸을 차지할 뻔한 기생충의 연결이 끊기는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사실 마수에 기생하는 마수 기생충을 베이스로 만든 뇌아귀ㆍ알파는 어차피 제대로 된 방어력이 전무. 살짝만 눌러도 터질만큼 약하다.

본래라면 뇌를 파먹으며 그 신체를 조종하는 끔찍한 괴물이지만 마나를 사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이들에게는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역으로 잡혀버린다.

"끄...아아악!"

"이, 이럴수가!"

하지만 만약 마나를 포함한 자기방어 수단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피 근위대장은 눈코입으로 피를 쏟으며 발작하는 몇몇 부하들의 모습에 경악했다. 비명을 지르며 날뛰더니 주변에 있던 아군을 닥치는대로 공격하기 시작하는 그들의 귀에, 깊게 파고든 검은 무언가가 꼬랑지만 내밀고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포격 준비]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혼란에 빠진 사이. 루시는 지상에서 하늘을 요격하기 위해 육중한 몸 전체를 화력에 집중시킨 포병대를 대기시켰다.

[포격 시작]

루시는 고의로 마법을 쓰지 않았다. 마법 같은 특수전력 없이 순수한 부대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할 데이터를 위해서.

"후, 후퇴! 후퇴해라!"

포병대가 쏘아보낸 큼직한 가시가 자신의 방어력을 뚫고 얼굴 옆을 스치니 기겁한 하피 근위대장은 이제서야 병사들을 후퇴시켰다.

그러나 이 짧은 충돌만으로 그들은 꽤 많은 전력을 잃었다. 반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던 모든 데이터를 손에 넣었으니, 똑같이 소모전을 했다 쳐도 이득이었다.

"원하던 건 다 얻은건가?"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지만, 앞으로 그들이 이렇게 방심하진 않을 것이니 더 큰 이득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시체와 피가 흥건한 처참한 전장.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루시는 자신의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하피 시체의 머리채를 잡고 들어올렸다.

이제 이 시체를 먹고 그 데이터를 조합하여 새로운 병종을 만들게 된다면 마왕군의 비행종은 더더욱 강화된다.

"기생충 타입의 병사는 어때. 대량으로 만든다면 쓸모 있을 것 같은데. 기생충을 넘어 세균이나 바이러스까지 간다면."

"기대하는 값은 높지만 효율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연산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마왕군에겐 불리한 지형인 하늘에서 벌어진 이번 전투는 그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병사도 동원되었다.

하지만 루시는 기생충을 베이스로 만든 뇌아귀ㆍ알파를 비효율적이라 판단했다.

"소형이면 소형일수록 뇌용적, 즉 최대 용량이 작아져 하위프로그램을 넣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게다가 초소형종의 특성상 운용되는 숫자는 대량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연산력의 부담이 급증합니다."

"으음, 물리적 한계란 소리인가."

"뇌아귀를 비롯한 초소형종은 주력이 될 수 없고 지금처럼 국지적인 전투에서 특수 병기로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루시는 공을 들은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이미 비효율로 판단된 것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비효율. 루시가 그것을 용납할리는 없으니까.

"하피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비행종을 강화하고, 그들을 사용한 새로운 전략으로 연합한 적들을 상대하겠습니다."

대신 루시는 다른 곳에 집중했다. 하피들과의 전투로 얻은 성과를 사용해 강화된 새로운 비행 전력으로, 이제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일 상대를 상대하겠다는 것.

상대가 강할수록 그것을 학습한 본인도 강해진다는 특성덕에 겨우 뭉친 마계 연합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루시에게 지고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루시는 전쟁을 서둘렀다.

비대해진 군체는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유지비용이 들어간다. 새로운 양분보급체계를 갖추지 않는 이상 그것을 보충하고 원하는 성장까지 이루려면 루시는 끝없이 싸우고 먹어치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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