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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60화 (60/200)

60화-새로운 질서(10)

60화-새로운 질서(10)

"멍청한 놈들."

차가운 냉소. 마치 미천한 벌레를 보는듯한 비웃음이다.

"큭..."

그러나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플라우로스는 물론 그레모리를 비롯한 다른 세력의 지휘부도 패퇴하고 헐떡이는 하피들을 보며 혀를 차거나 탄식하는 중이었다.

"네놈은 나를 무시하느냐? 정말로 그놈들이 이지 없는 괴물 집단인 줄 알았느냐? 마계 영주 두 명의 영지를 완전히 점령한 심연의 괴물들이 고작 네놈들 몇이 몰려가서 이길 줄 알았느냐?"

비웃음을 거둔 플라우로스는 이제 사실만을 이야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었다. 그덕에 차마 반박하지 못한 하피 근위대장은 그대로 이를 악물고 고개를 떨궜다.

"이제 다들 알았을 것이다. 놈들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으니 이제 다들 준비하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휘권을 잡았다. 분명 연합군의 가장 큰 전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대규모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제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건 복수자가 된 갈색 오크들.

하지만 그 입지는 조금 불안한 것이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패퇴했고 연합군에 참여한 각 세력의 병사들은 마왕군의 전력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플라우로스는 하피들의 독단적 행동과 처참한 패배를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으로 좋은 기회라 판단했다.

"마침 놈들이 기존의 전략과는 달리 하나로 뭉쳐서 이곳으로 진격하고 있다. 우리는! 놈들과 전쟁을 벌여 힘으로 깨부순다!"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가져 온 그는 작전을 주도했다. 그레모리등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았으나 일종의 투자자인 그들은 종족의 명운 자체를 걸어버린 플라우로스를 말릴 명분이 딱히 없었다.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오크종 특유의 우렁찬 나팔소리. 곧 수많은 군세가 일시에 움직였다. 대전쟁을 겪은 이들이 보는 눈에는 분명 어딘가 어설프고 빈틈이 보였지만, 어쨌든 대전쟁 이후 거의 처음 모인 연합군이다.

자신도 직접 출전한 플라우로스는 그 웅장한 광경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없다. 승리하고 땅과 미래를 되찾는 길 뿐이다.

"오크왕이시여. 약속이 정말인지 다시 확인합니다. 세운 전공에 따라 더 큰 땅을 주시는 겁니까?"

"그렇다고 이미 확실하게 말했다. 그러니 전공을 욕심내어 독단으로 활동하지 말라!"

그때 곁으로 다가 온 리자드맨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열었다. 미간을 찌푸린 플라우로스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싸움에 집중하라 말했으나 사실 이게 현실이었다.

연합군의 다른 병사들에게 이 전쟁은 복수와 수복을 위한 설욕전이 아닌, 더 큰 보상과 전공을 챙기기 위한 약탈전.

그들에게는 아무래도 마왕군과의 전투보다도 전공이 더 중요했다.

'그래도 전면전으로 붙는다면.'

그런 모습들에 불안함을 느낀 그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도 마왕군은 지금처럼 소규모로 잘게잘게 찢어져 영지 전역을 침략하는 수법을 쓰지 않고 하나로 뭉친 군대가 되어 전진중.

기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버린 후 그 생태계 자체를 박살내고 짓이겨, 자신보다 상위 포식자였던 오크들을 완전히 도태시켜버린 기괴하고 괴랄한 전력에 크게 당했던 그는 차라리 이렇게 전쟁을 벌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대체 왜 그놈들은 자신들의 전략을 바꾼 것이지?'

물론 완전히 의심이 떠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마왕군과 지겹게 싸우고 끝내 패배까지 한 입장에서, 그들의 모습에 공포심까지 느낀 플라우로스는 끝까지 마왕군을 경계했으니까.

"놈들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 앞 평원에서! 우리와 제대로 붙을 생각입니다. 적어도 십 만 이상!"

이 순간이 올 때까지 출병 이후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마침내 서로를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가까워지던 두 군세가 서서히 근접해가던 그 순간.

'놈들은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그 무엇보다도 악랄하다.'

플라우로스는 서둘러 진형을 잡아가는 아군을 바라보면서도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일단 숫자 자체는 아군이 적어도 몇 배에 달한다.

'...설마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의 의심이 극으로 치닫던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주변의 그 누구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그만이 놀라서 움찔거릴 정도였다.

"왕이시여. 놈들은 우리보다 적고 우리보다 약할 것입니다. 전처럼 숲과 산에 숨어들지 않고 이렇게 정면으로 덤비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서는 오히려 기세를 끌어올리며 척 보기엔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 마왕군을 상대하기 위해 씩씩거렸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마왕'을 끝장낸 진정한 마계의 주인들이 우리입니다. 이 땅! 이 하늘! 이 모든 것이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시 그 누구에게도 질 수 없습니다 왕이시여!"

함께 대전쟁을 겪었던, 지금은 큰 부상을 입고 전력에서 제외된 전 대장군 나르가 어딘가 굳어있는 그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그 외침이 무의식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던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말이 맞다. 우리는 '마왕'을 끌어내린 진정한 이 마계의 주인이다.'

이내 대전쟁 시절 그 어떤 것보다 격동적이고 격렬했던 마왕군과의 전투를 떠올린 플라우로스는 마음을 다잡고 눈을 번득였다. 마왕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확고하게 정해져 있던 세상의 법칙에 대해 저항하고, 끝내 그것을 뒤엎는데 성공한 대혁명.

그것마저 해냈는데 무엇이든 못할까라는 생각과 끓어오르는 자부심이 그의 머리를 지배했다.

"가자. 설마 저 괴물놈들과 싸우는 것이 '마왕군'과 전쟁하는 것보다 어렵겠느냐!"

그는 결국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축을 뒤흔드는 이들의 돌격.

대전쟁 이후 지금까지 잘 흘러가고 있던 세상의 질서를 뒤틀어버릴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

"적들의 행동은 예상대로 정면으로 돌격하여 힘으로 정면을 부수는 것."

공기의 흐름이, 대지의 울림이 바뀐다.

루시 역시 알고 있다. 상대가 제대로 된 연합군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전투로 인해 자신과 이 세상의 운명은 크게 바뀔 것이라는 것을.

"적절한 대응 활성화."

하지만 루시는 근거가 없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즉 루시의 모든 움직임은 데이터를 기반으로한 철저한 계산이 동반된다.

싸운다면 이길 자신이 분명 있어서 싸우는 것이다.

그것이 인공지능에 근본을 두고 탄생한 <새로운 마왕>의 싸움 방식.

[집단술식ㆍ방어막ㆍ최대출력 중첩전개]

루시는 자신의 몸을 포함 배치된 모든 지휘개체의 강심을 코어로 병사들이 뒤덮은 이 드넓은 면적 전부를 방어할 수 있는 에너지 방어막을 수백 개 이상 허공에 펼쳐보였다.

"이, 이럴수가!"

"우리의 포격이..."

주술과 마법등을 동원해 기선제압을 위한 일제 포격을 날린 연합군이 주춤했다. 방어막에 상쇄된 대규모 포격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고 당황한 그들 앞에 튼튼한 갑주와 질량을 앞세워 지축을 울리며 돌진하는 마왕군의 돌격병들이 나타났다.

[충돌]

그 직후는 당연히 거대한 충돌과 함께 터져나오는 강한 충격파.

양측이 단숨에 뒤섞인 복잡하고 치열한 전장에서,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막대한 연산력에 순간 루시의 몸 전체에서 검붉은 스파크가 번쩍일 정도였다.

[견딜...수 있..]

이 과정에서 본인의 예상치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연산력이 동원되었다. 그동안 대규모 전투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루시는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다.

성장과 진화를 반복하여 더 복잡하고, 많고, 혼란스러운 존재가 된 루시는 그만큼 더 많은 연산력을 필요로 했기에 사실상 처음 겪어보는 변수 덩어리 그 자체인 난전에 적응하느라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봐라. 별것 아니지 않나!"

그리고 그 흔들림은 병사들의 움직임 자체에서 티나게 되었다.

"죽어라!"

몸 크기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트롤 전사가 손에 움켜 쥔 삼각뿔소ㆍ베타의 머리를 향해 반대 손으로 쥔 커다란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단단한 갑각도 단숨에 파괴해 버리는 강한 힘.

그러나 근처에 있던 상위급, 오크ㆍ감마가 쏜 마법은 강인한 항마력에 막려 트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그대로 밀어버려라!"

플라우로스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전장의 양상을 보고 의심을 접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어딘가 움직임이 둔중해진 마왕군의 약화와 연합군의 시너지가 상충하여 우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길 수 있다!'

그는 서서히 상대쪽으로 밀리기 시작하는 전선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저기 보십시오!"

물론 끋까지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그의 부하 중 하나가, 저 먼 하늘 위를 가리키며 기겁했다.

그곳을 바라 본 그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 뿐.

[비행종 강습]

마계 특유의 불그스름한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생명체들. 날짐승들을 최대한 활용한 기존의 비행종들과는 다른, 새롭게 개량되고 강해진 비행종들이 지상으로 쇄도하며 기세를 잡아가던 연합군의 머리 위를 가차 없이 공격했다.

"캬악! 하늘! 하늘을 공격해라!"

적어도 만 단위는 넘을 것 같은 비행종들의 습격에 당황한 연합군이 흔들렸다. 하늘을 공격할 수 있는 이들이 다급히 하늘을 향해 공세를 퍼부었지만, 이제 마왕군의 비행종들은 눈 먼 화살이나 투창 정도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저 건방진 놈들이...!"

그리고 그 광경을 본 하피 근위대장이 대노하여 이를 갈았다. 새롭게 개량되어 탄생한 마왕군의 비행종이 가진 생김새를 보면 자신들이 잃은 동족의 시체들이 어떤 쓰임새로 쓰였는지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피ㆍ감마]

그것의 외형은 분명 하피와 달랐다.

그러나 동시에 하피를 닲았다. 팔 대신 달린 큼직한 날개와 강인한 발. 다만 하피와는 달리 깃털 대신 피막이 달린 날개는 박쥐와 비슷하고 마치 전갈의 꼬리 같은 길고 휘어지는 꼬리 하나가 달려있었다.

"마수를 의태하는 괴물놈들! 이제는 감히 그 끔찍한 모습으로 우리를 따라하는 것이냐!"

하피 근위대장은 고함치며 하피ㆍ감마에게 달려들었다. 하피ㆍ감마도 피하지 않고 달려들어, 마나를 뿜어내는 두 존재가 공중에서 제대로 충돌했다.

'이딴 괴물놈들이, 우리의 전투법을 따라올 수 있을리 없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강력한 발차기를 날렸다. 마나를 활용해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피종 특유의 공중 격투술.

강화된 발톱은 두꺼운 강철도 단번에 잘라버린다. 그 발톱이, 강한 충격과 함께 하피ㆍ감마의 몸으로 쇄도했다.

"어떻게!"

하지만 그것은 끝내 빗나갔다. 그는 예상조차 못했지만 기존에 있었던 하피들과의 전투를 통해 데이터를 얻었던 마왕군은 그것을 학습하고 분석하여 적어도 눈에 보이는 뻔한 공격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크학..."

그리고 그는 하피ㆍ감마처럼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내지 못했다. 데이터를 통해 학습을 시작한 마왕군과는 달리, 그에게는 상대에 대한 데이터도, 그것을 찰나의 순간 분석하고 학습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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