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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61화 (61/200)

61화-질서의 붕괴(1)

61화-질서의 붕괴(1)

"역시 네놈들은...더 이상 놔두어선 안 되는 놈들이다...!"

하피들과 싸우는 마왕군 비행종들을 본 플라우로스가 진심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그 누구도 여기까지 상상하지 못했다.

이 마계에서, 마왕이라는 하나의 법칙을 몰아내고 새로운 법칙이자 지배자가 된 자신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사실 말이 안 되는 것이니까.

마계 72영주는 마왕을 증오하고 외부의 도움까지 받은 대혁명을 일으켜 가까스로 마왕을 몰아낸 만큼 지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마왕이 가진 모든 마족에 대한 지배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득권에 등극한 그들이 가장 먼저 시도한 작업이 '또 다른 자신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에게 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실제로 대혁명 이후 이어진 대숙청이 끝나고 그들은 마계 전체를 자신들의 지배하에 넣어 그 지배를 최대한 공고히 만들었다.

그 작업이 되어있는 이상, 이제 이곳에서 그들과 전쟁을 벌일 세력은 있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모든 기술과 자원과 인력을 독점하고 있던 것이 그들이었으니까.

"좌측이 무너지려 한다!"

"놈들이 우회 기동을 실시한다. 서둘러 막아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당연해야만 하는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플라우로스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현장 지휘관들의 악소리에 넋이 나갔다. 과거 마왕군도 이겼던 연합군이 방심도 여유도 부리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이 모습은 말 그대로 전쟁.

마법과, 주술등이 전략적으로 쓰이며 부대 단위 전술적 움직임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그들이 대전쟁 시절 지겹게 겪어 온 이 시대의 전쟁과 완전히 흡사한 진짜 전쟁이었다.

"저 놈...!"

그때 전장을 둘러보던 플라우로스의 눈에 누군가 보였다. 격렬해진 전장 덕에 모습을 드러낸 채 적들 한복판에 고고히 서 있는 존재.

머리갑주 속에서 빛나는 붉은 안광처럼 하나 같이 생물이 아닌 것 같은 검은 갑각의 괴물들 틈에 검은 머리칼을 찰랑이는, 유독 튀는 외모를 가진 적이 하나 있었다.

'여왕. 끝장을 내야 한다!'

플라우로스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마왕군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그들이 가진 잠재력과 성장력을 두려워한 그는 루시를 마왕군의 우두머리, 여왕으로 판단하고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확신한 것이다.

"전부 나를 따라라. 이번엔 반드시 놈들의 여왕을 잡아야 한다!"

"와, 왕이시여!"

적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에 몸이 급해진 플라우로스 본인이 직접 움직였다. 그의 친위대는 물론, 전공을 세우기 위한 연합군의 수뇌부 역시 덩달아 그를 쫓아 전장을 가로질러 달렸다.

전쟁을 지휘해야 하는 수뇌부가 전선으로 달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틀린 판단. 하지만 플라우로스는 그것을 감수하고도 이번에 반드시 루시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옥으로 돌아가라 심연의 괴물아!"

[갈색 오크왕 플라우로스ㆍ2차 각성ㆍ81]

플라우로스는 달려드는 마왕군 틈으로 손에 쥔 창을 힘껏 던졌다.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갈색 오크 최강의 전사인 그가 던진 창은, 순간적으로 푸른 불꽃을 터트리며 한 줄기 유성이 되어 루시를 향해 쇄도했다.

"..."

루시는 그것이 자신의 목을 관통하기 직전 손으로 잡아챘다. 충돌 직전에 생성한 중첩된 방어막 십여 개를 단숨에 부순 창날은, 그럼에도 루시의 목을 살짝 찔러 검은색에 가까운 체액을 한 줄기 흘리게 만들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너만큼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과격한 돌격 이후 전술이나 작전 없는 난전이 벌어진 주변을 무시하고, 오직 루시만 노려보는 플라우로스가 몇 십 미터 뒤에서 꺼내든 대검을 겨누고 콧김을 내뿜었다.

"돕겠습니다!"

"헛소리 말고 다른 녀석들이나 막아라 치르가!"

루시를 향해 달려간 플라우로스는 슬쩍 숟가락을 올리려는 리자드맨 기사단장에게 엄포를 놓고 홀로 달렸다.

그래도 다른 이들이 루시 주변의 마왕군을 순간적으로 막아준 덕분에, 그의 무식한 육탄돌격은 의외로 효과를 보았다.

"난 알아볼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네놈들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것!"

땅의 기운을 휘감은 그의 검이 휘둘러지자, 뒤틀린 땅에서 부채꼴 모양의 뾰족한 바위송곳들이 튀어나와 루시를 덮쳤다.

루시는 허공으로 도약해 그것을 피했지만 그는 자신이 불러낸 바위송곳을 박차고 루시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감히 우리에게 도전한 것! 후회하게 될 것이다!"

기동이 자유롭지 못한 허공에서 루시는 끌어올린 출력으로 방어막을 펼쳐 그의 검을 막았다. 그러나 전체적인 출력도, 경험도, 기술도 플라우로스의 우위.

대전쟁을 겪어내고 승리까지 거머쥐었던 대혁명의 주역은 아직 루시가 단기접전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극강의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 마왕에게 도전한 것입니까."

"죽...!"

그러나 땅에 추락한 루시의 말 한 마디에 루시를 마무리 지으려던 플라우로스는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

[연산량이 아슬아슬한 것은 사실]

루시는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도 버티고 또 버텼다. 이를 악문다는 행위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이를 악물지는 않았지만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나 턱관절이 부러질 지경으로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는 그 상태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상한 일임은 분명했다. 본래의 루시라면 제대로 된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순간 손실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과감하게 후퇴했을 테니까.

사실 루시 본인도 왜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는지 확신하지 못할 정도였다.

[...도망치고 싶지, 않다]

루시는 스스로를 검진하여 일단 그 원인을 추렸다. 자신의 본능마저 억제하는 강렬한 의지, 루시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판단했다.

유리아가 또는 자신에 맞서는 상대들이 보여주었던 기적의 편린이자 불가능에 맞서는 미련하고 비효율적인 도전. 자신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그 개념에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가까워진 셈이다.

플라우로스를 중심으로 한 마계 연합군을 본 이후 타오르기 시작한 알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그 원동력이었다.

"마, 말을 한다고. 우리의 말을!"

"당신들도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시도해 그것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그 입장이 뒤바뀌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한 일."

루시는 크게 당황한 플라우로스를 향해 자신의 검을 겨누었다. 연산력의 한계로 둔중해진 병력들의 움직임.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바로 연결된 루시를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감정이었다.

감정이 실린 공격은 더 거칠고 무겁다. 적어도 연산력의 한계로 무거워진 몸을 도와줄 정도는 되었다. 크게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지만 이제 기세라는 것을 공유하게 된 마왕군은 연합군의 기세에 밀리는 대신, 역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것이 근거 없는 폭주는 아니었다.

루시는 애초에 확률 없는 기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고 행동하면 진정한 기적의 영역에는 닿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평소의 자신답게, 그 기적으로 향하는 과정마저 확률을 계산하고 이용할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계산 결과가 바로 '기적 따위'는 지금 필요하지 않다는 것.

"결국 과거와 똑같습니다. 기존의 질서는 새로운 경쟁자에 의해 붕괴하고 패자는 도태합니다."

"닥쳐...닥쳐라! 네년 따위가 무엇을 안다고 그렇게 말하느냐!"

플라우로스는 루시에게 근본적인 대답을 듣고 발작하듯 격분했다. 자신들의 행동은 옳은 것이며 그 반대는 틀린 것이라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무엇을 아느냐라. 그렇다면 말을 바꾸겠습니다."

그의 반응에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루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계산은 끝났다. 루시는 조금씩 자신의 승률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많은 변수들을 집어넣어 즉석에서 만든 일종의 공식을 통해 예지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 행동이 당신들이 저지른 '대혁명'과 다르다면, 이렇게 생각해도 됩니다. 이것은 정당한 '복수'라고."

"무, 뭐라?"

"타인을 죽였다면 죽임당할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크게 놀란 플라우로스는 잠시 굳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이 안 된 탓이다. 대체 왜 루시가 복수라는 거슬리는 단어를 운운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하지만 거슬리는 단어라는 건 그만큼 걸리는 게 있다는 뜻. 그는 무심코 마계 영주들이 모인 회의에서, 바알이 보여준 마정을 떠올렸다.

마왕은 살아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다시 잡아 죽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모두가 그 소식을 무시하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 그들의 지배 아래에선 마왕은 자신의 세력을 모을 수 없으니까.

"아...아아아..."

그러나 마왕이 사실 살아있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군단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 군단에 마족들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배신자들을 처단합니다. 이제 이 마계에, 마족이란 종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니."

사실상 본인이 전대 마왕의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새로운 마왕임을 밝힌 루시는 총공세 명령을 내렸다. 정보는 숨기는 게 당연히 이득이나 딱히 밝혀도 상관은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부 살인멸구하면 그만이다.

"이, 이놈들...어떻게!"

아주 약간의 균열. 마왕군은 그것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죽음이나 고통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연합군은 그 균열 한 번에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트롤 기사가 자신의 배를 관통한 창을 붙잡아 뽑더니 등을 타고 올라 물어뜯는 동굴거미ㆍ베타를 잡아 던지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몸은 결국 기우뚱 기울더니 쓰러졌다.

마침내 연합군의 기세가 꺾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기세가 꺾인 순간, 심리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전투력은 급감했다.

애초에 그들의 전투 동기는 약탈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욕망. 자신들의 땅을 되찾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던 갈색 오크들을 제외한 다른 연합군은 기세고 뭐고 없이 몸부터 들이박는 마왕군에 급격히 무너져내렸다.

"마음...때로는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위대한 것. 그러나 그 마음이란 양날의 검을, 당신들은 역으로 베이지 않으며 제대로 다룰 수 있습니까?"

루시는 자신의 계산을 믿고 불리함을 억누른 채 끝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승기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비웃었다.

마음에서도, 전술에서도 급조된 연합군은 마왕군에 패배했다.

"으, 으아아아!!"

이제 더 이상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진 플라우로스는 자신의 친위대가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을 보더니 고함을 치며 루시에게 덤벼들었다.

"너만은! 네년만은 내가 죽인다! 마왕!!!"

달려드는 마왕군을 순간적으로 폭발시킨 힘으로 쳐낸 그는 이를 갈며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우리는 다시는! 마왕에게 지지 않는다!'

기적을 만들 수 있는 마음. 이미 그것을 다루지 못하고 역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플라우로스는 그것에 모든 것을 걸고 루시에게 검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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