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질서의 붕괴(6)
66화-질서의 붕괴(6)
"그 괴물놈들 위치는?!"
"이제 완전히 멀어졌습니다. 더 이상 아군을 쫓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
던전 입구 근처, 베이스를 지키던 군 지휘관은 힘이 쫙 빠진 채 의자에 주저앉았다. 차마 버티지 못한 각성자들의 패퇴를 뒤쫓던 적들이 끝내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간 덕이다.
이제 각성자들은 안전히 베이스로 복귀하고 있었다.
"애초에 너무 어설프고 어리석었어. 최대한 안전을 도모해도 부족할 판에..."
그는 모자를 벗고 한숨을 내쉬었다. 군 지휘관인 그가 보기에 이번 작전은 너무나 위험하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아무리 군 병력이나 장비 투입에 제한이 있다지만, 괴물들을 '경험치 삼아'야 하는 각성자들에게 싸움의 기회를 줘야 한다지만 요즘 시대에 화력지원과 장비지원도 없이 미성년자까지 섞인 부대를 단독으로 보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그래도 이런 실패를 겪은 덕분에 말이 나오긴 할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지만 이제 이런 식으로는 못하죠.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왜 늘 사람이 죽고 다쳐야지만 바뀌냔 말이야."
부관의 말에 허탈히 중얼거린 그는 지휘실로 사용하는 천막을 나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후퇴해오는 각성자들이 아군의 엄호를 받으며 이곳으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보통 괴물놈들이 아니었죠. 함께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우선 몸부터 추스릴 수 있게 자리를."
복귀한 각성자들 대부분이 퍼져버렸다. 이제 어느정도 괴물들과 싸우는데 익숙해지고 자신의 힘을 다루는데도 익숙해진 그들이 처음 출정할 때 보였던 자신감, 혹은 자신감을 넘어선 오만함은 이제 온데간데 없다.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이들이 스스로 자원해서 모였지만 그 힘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최근들어 빠르게 성장하던 그들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몸을 묻는 게 아니야."
그런 와중에, 찢기고 뜯겨진 옷을 채 갈아입지도 않은 이지연은 망가진 방패를 내려놓더니 어딘가 멍해보이는 오진혁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몸이 멀쩡한 것을 묻는 게 아니란 말에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미성년자지만 전투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처음으로 나선 것은 돌발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물들에게서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때. 그 뒤로 여러 괴물들과 싸우며 나름 경험을 쌓았다.
사실 승승장구였다. 뛰어난 재능에 더해 언론과 주위에선 희망이 될 어린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니 그는 지금까지의 싸움에서 공포와 절망보다는 희열과 기쁨을 느껴왔다.
"어른들도 힘들어해. 나도 마찬가지지. 그러니 숨길 필요 없어.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해."
그런 그의 마음을 이지연의 말이 관통했다.
처음으로 겪은 대규모 전투와 패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처절함, 끔찍함 등등.
알게 모르게 그를 부추긴 영웅적 이야기는 끝나고 진짜 현실을 마주한 오진혁은 자신을 보는 그녀의 눈을 보며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역시 말해야 하나?'
동시에 그는 속으로 갈등했다. 무사히 돌아온 이후 아직 그 누구에도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으니까.
말해야 한다는 건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자신이 마주친 존재의 이질감 때문이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적들을 대신 처리해준 그 존재가 단순한 적이 아님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보고를 위해 인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중입니다. 괜찮으신게 맞으신지."
그런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지연이 부상을 치료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 틈이었다.
"예. 전 괜찮아요. 딱히 다친 곳은 없어서."
"그럼 그렇게 알죠.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는 오진혁을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얼핏 들으면 단순한 격려나 응원 같겠지만 오진혁은 자신도 모르는 묘한 무언가를 감지했다.
"하지만 저희가 이기지 못하면 그 괴물들이 사람들을 죽이겠죠."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죠. 방법은 그 이후에 생길테니 몸을 살피세요."
오진혁은 결국 입을 열어 그에게 묻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며 이 대화를 일축했다.
그 여유에 가까운 차분함과 마치 무언가를 안다는 듯한, 확신에 가까운 믿음 등등. 요즘 들어 자신감이 충만하던 오직혁은 차마 그가 자신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오진혁은 다른 각성자에게 다가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전 그에게서 느낀 것은 출정 직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불현듯 감지한 묘한 감각임과 동시에 차마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았지만 오진혁은 거기서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다른 일에 신경쓰기도 벅찼다.
"이쪽 일은 일단 일차적으로 마무리 되는 것 같은데. 넌 어떻지 루시?"
그리고 그런 그는 오진혁의 시선이 거두어진 이후에도 계속 자신의 일을 하는 한편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다른 누군가와 통화했다.
***
"표본은 모두 받아내었고, 그것을 분해하여 분석하는데도 문제 없습니다."
자그마한 화면 너머 펼쳐진 또다른, 드넓은 세계. 이곳에서도 생존을 위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루시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긍정했다. 넓게 펼쳐진 이곳은 군체의 소화장으로 말 그대로 살아있는 것은 그 무엇이든 소화시켜 양분으로 만드는 곳.
지면 위에 넓게 펼쳐진 그곳 안에서 펄펄 끓는 것 같은 소화액 속에 노동을 담당한 병사들이 지금도 외부에서 지급된 표본들을 던져넣고 있었다.
[취해야 할 핵심 특성은 새로운 소화체계]
루시는 동시에 연산력을 동원하여 소화된 데이터를 해석하고 분석했다. 분석력 자체도 경험이 쌓이는 만큼 상승하고, 이제 그 분석력은 처음 접하는 종류의 생물이라도 금방 그 구조와 데이터를 해석하는 게 가능해질 정도였다.
눈을 감은 루시의 눈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보지 못할 거대한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어둑한 우주공간에 펼쳐진 무수한 은하수 같은 이것은 수많은 데이터가 저장되어 있는 일종의 데이터서버. 이 모든 것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루시는 엄청난 속도로 그것들을 조작할 수 있다.
[화염포식자의 유전 데이터에서, 기존 생물종에게서 발견할 수 없었던 데이터를 확인]
화염포식자는 불을 먹어치우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역이용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고 화염포식자를 잡으려는 의도는 그 특성을 얻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루시는 새롭게 습득한 화염포식자의 데이터에서 해당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의 정보를 알아내었다.
"그걸 이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단순히 원형 그대로 사용하면 효율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기관을 독립시켜 거대화하고 따로 조작하게 된다면 그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이용하는 게 전부라면 루시는 여기까지 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루시의 강점은 습득한 데이터들을 자유롭게 합성하거나 탈락시키고 더 나아가 완전히 개조하여 새로운 것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 이런 순간을 위해 완전합성으로 만든 키메라들을 작은 생물들부터 꾸준히 생산해 왔다.
[설계 진행 중ㆍㆍㆍ]
루시는 신체 기관의 일부였던 그것을 극대화시키고 오히려 다른 보조기관들을 붙여주며 하나의 생물체로 만들어 내었다.
[만약 설계대로 합성 및 배양이 이루어진다면 아군은 뜨거운 열을, 예컨데 화산이나 마그마의 열기를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좋은데?"
그는 루시의 보고를 듣고 감탄했다.
생물체의 특성만을 이용해 만들게 된 일종의 지열 발전. 비록 프로토타입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원하던, 새로운 양분보급체계가 탄생했다.
[점령지 전역에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생산효율은 30% 이상 증가할 것입니다]
"그정도면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거고?"
[새로운 체계가 적용된다면 북부연합과의 예상승률은 65%로 상승합니다]
하나의 과제를 끝낸 루시는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름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곳.
갈색 오크왕 플라우로스가 사망한 이후 적지 않은 영지가 마왕군의 손에 떨어지자 이제 욕심만 그득했던 북방의 마계 영주들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이다.
[연합군이 역습을 가하려는 때 그에 맞춰서 새롭게 보충한 병력으로 받아치겠습니다]
루시는 그들이 소모전을 때려치고 제대로 된 반격을 준비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있었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알고도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지만, 알맞은 타이밍에 습득한 새로운 기술로 마왕군은 또다시 진화했다.
[서큐버스 여왕 그레모리, 웨어울프 대족장 안드로말리우스, 습지 도마뱀 왕 발라크, 푸른 하피왕 말파스 등의 영주들이 연합한 북부 연합이 아군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전황현황입니다]
"...나는 이렇게 많은 멀티태스킹은 못해. 네가 도와줘야 하지."
루시는 지금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는 전장의 모든 정보를 지도 위에 축소하여 보여주었지만 그는 붉은 점들이 빼곡한 지도를 보고 쓰게 웃었다.
초단위로, 수십 만 이상의 군세가, 거대한 땅덩이 위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변수들을 동시에 체크하고 컨트롤하는 것은 이 땅에서 그 근본부터가 다른, 오직 루시만이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제가 도와드릴 겁니다]
루시는 예상했다는 듯 정보를 정리하여 다시 보여주었다. 동시에 희미하게 웃었다.
[앞으로도 모든 것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지휘, 전투, 운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제가...함께]
루시는 이미 생각을 바꾼지 오래다.
아무래도 거리가 떨어져 있고 아직 그에게 큰 힘을 투사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그에게 접근해 마음을 얻겠다는 것이 루시가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아주 작은, 사소한 일부터 하나하나 도와주고 개입하여 자신의 존재감과 역할을 각인시킨다는 계획. 어찌보면 굉장히 단순하지만 그것을 실행시킬 존재가 범상치 않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군데로 뭉치기 보다는 각 지역에 있는 우리 둥지를 공격하겠다는 거 아니야? 하긴 당연히 둥지가 우리 약점인 걸 알아차렸겠지."
[그렇습니다만 유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마왕군이 가진 강점 중 하나가 지형과 지역에 구애받지 않는 넓은 활동량이라지만 양분보급등을 위한 둥지라는 거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상대도 고정되어 있는 둥지를 파괴하면 마왕군의 게릴라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이미 파악한 상태.
그러나 루시는 여기까지 온 이상 그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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