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71화 (71/200)

71화-전쟁의 이유(1)

71화-전쟁의 이유(1)

"시간이라도 벌어야 합니다. 뚫리면 피해는 더 커집니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 평화롭던 해안도시는 순식간에 괴물들이 날뛰는 지옥도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긴급히 출격한 전투기들은 차마 미사일을 쏘지 못하고 하늘을 빙빙 돌기만 했다.

지금 당장은 괴물들에게 쏴봤자 통하지 않으니까. 일부 개체들이 시전하고 있는, 마력으로 된 에너지 방어막은 건재하다.

그렇다고 아직 사람들이 대피하지 않은 도시를 폭격할 수도 없으니 사면초가나 마찬가지였다.

"각성자들! 각성자들이 저 특수종들을 제거해 줘야 한다...!"

사람들은 이제서야 어떻게 저 괴물집단과 싸워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힘의 종류가 다른 이상 군대의 화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싸움이다. 반드시 상대의 마력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각성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현재 이곳엔 전세계에서 찾아 온 급있는 각성자들이 많았다는 것.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니 분명 적들의 진격 속도는 늦어지고 그 구성에도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 조심하세요."

"반드시 내 뒤에 있어. 이쪽으로."

급한대로 단 둘이 움직이던 이지연과 오진혁이 도심 한복판에서 도망치던 사람들을 쫓던 한 무리의 적들을 마주친 것이 그때였다.

'익숙해.'

방패를 들어올린 이지연은 오진혁을 뒤에 두고 자신에게 덤벼드는 괴물들을 상대했다. 단 둘이 싸우면서 앞에 버티고 서는 것도, 뒤에 누군가를 두고 싸우는 것도 그녀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그리고 화염을 뿜어내는 오진혁의 화력은 화염포식자 같은 특수한 적이 없다면 충분한 위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잘했어."

이지연은 자신을 공격하려다, 새까맣게 타 죽은 괴물의 시체를 밀어내었다. 두턱아귀라는 이름을 가진 이 괴물은 쩍 갈라지는 두 개의 턱을 벌린 그 상태로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

"하지만..."

"맞아. 아직 안 끝났어. 이쪽으로!"

얼결에 벌어진 첫 전투는 쉽게 승리했지만 그건 결국 단 한 번의 전투일 뿐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소리, 그리고 괴물의 울음소리들.

너무나 급박한 상황에 있으나 마나였던 상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그들은 일단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다음 상대는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군인들과 그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다가오려는 괴물들.

시민들을 지켜야 하기에 차마 물러설 수 없었던 그들을 지키기 위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오른 이지연은, 눈을 질끈 감은 군인 하나를 물어죽이려던 적을 방패로 찍어 단숨에 죽여버렸다.

"같이 싸워요."

괴물의 시체를 짓밟고 선 이지연이 그들에게 말했다.

휘둥그레진 눈들에 다시 차오르기 시작하는 희망과 투지를 본다면,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각성자님! 탄약, 탄약이 다 떨어졌습니다. 시민들도 대피했으니 이제 저희도 후퇴해야 합니다!"

그들이 함께 싸운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았지만 함께 싸우기 시작한 이후, 그들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만 앞선다고 무한하게 싸울 수는 없는 법. 급한대로 자신의 소대를 이끌던 소대장은 자기 소총의 탄창을 두드리며 이지연에게 외쳤다.

"총알이 떨어졌다는 것 같은데요?"

"그럼 이 사람들은 뒤로 가는게 좋겠어."

힘을 난사한 탓에 얼굴이 약간 창백해진 오진혁은 말은 못알아 들어도 그 제스쳐는 알아들었고,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수가! 또 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피하기 전, 또 다시 한 무리의 적들이 그들을 향해 돌진해왔다. 그것도 지금의 몇 배는 될 것 같은 숫자다.

동시에 이지연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의 능력은 다수의 적을 상대할 만큼 화력이 강하지 않다. 오진혁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고, 군인들의 지원도 못 받는다.

"진혁이 너까지 이 사람들이랑 같이 후방으로 후퇴해."

"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망설임 없이 선택을 내렸다. 당황한 오진혁이 되물었으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것이 그녀가 싸우는 이유였으니까.

"이건!"

그런데 그 순간. 족히 일 백은 될 것 같은 적들에게 번쩍이는 푸른 섬광 하나가 쇄도하여 대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야!"

"오폭인가?!"

사람들은 터져나온 충격파에 기겁하며 비틀거리거나 아예 땅에 넘어져 뒹굴었다. 최선두에 있던 이지연 역시 눈을 찌푸리며 방패를 들어올려 그 충격을 상쇄해 주는데도 몸이 슬쩍 밀릴정도였다.

"리, 리암 앤더슨."

그때 그녀의 방패 뒤에서 몸을 피한 오진혁이 충격의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변 기물들은 물론 적들까지 일격에 몰살한 존재는 번쩍이는 은갑을 입은 채 손에 푸른 기운이 타오르는 검을 들고 있는 건장한 사내, 리암 앤더슨이었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을 뿐이니 빨리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피식 웃은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애초에 자신의 목적은 단 하나였으니까. 단지 이렇게 중간에 들른 것은 귀에 꽃은 통신기에서 닦달하는 상부의 명령 때문이었다.

"지나가던 길이라니요? 어딜 가신단 말입니까?"

"이 괴물놈들을 품고 온 놈들을 죽이러."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지연을 바라보던 그는 누군가의 질문에 손으로 해변가 너머, 모든 괴물들을 풀어놓은 이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베헤모스들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혼비백산 하는 사이 베헤모스들은 꾸준히 접근하는 중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같이 싸워줄 수 없어요. 차라리 함께 이곳을 정리하고 그 이후에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건 방패를 든 당신이 신경써야지. 검을 든 사람은, 적을 죽이는 게 할 일이고."

영어로 입을 연 이지연의 말에 눈썹을 까딱거린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검으로 망가진 그녀의 방패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이지연은 굳이 그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 보다도, 적을 죽이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싸가지 없죠."

"틀린 말은 아니야. 내가 더 강했다면 모를까."

그는 곧 자리를 떠나버렸다. 순간 어색해진 자리에서 오진혁이 뚱한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지만, 그녀는 쓰게 웃을 뿐 동조하진 않았다.

***

'그 동양인 여자. 한 번 알아봐야 겠는데.'

모든 침략종들이 도시로 침투하여 난동을 부리고 있을 때. 덕분에 텅 빈 해변가를 가로질러 파손된 전함들이 가득한 앞바다를 마치 땅처럼 밟으며 달리던 리암은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일정 수준을 돌파한 이후 그는 볼 수 있는 힘을 각성한 상태다.

그 눈에 이지연은 나름 단단함을 갖추고 있는 전사였다. 그것을 완전히 개화한다면 어쩌면 자신과 비슷한 경지에 오를지도 모르는 씨앗.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지만 그는 자신과 동류가 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사실 그렇게 싫어하진 않았다. 오히려 관심을 가지는 편이었다.

"정말 혼자서 처리 가능한가? 이렇게 큰데."

"이만한 크기의 무생물, 그러니까 전함이었다면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결국 생물체라며? 생물에겐 다 약점이 있다고. 아무리 끔찍한 이계의 괴물이라지만 지금까지 한 두번 죽여본 것도 아니야."

단숨에 허공을 박차고 물에 둥둥 떠 헤엄치던 베헤모스의 등 위에 내려앉은 그는 통신기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코웃음을 치더니 손에 쥔 검을 역수로 쥐었다.

괜히 성검이라 불리는 물건이 아니다. 한 세상에서, 이제 슬슬 초월자에 근접하고 있는 대성녀의 힘이 고스란히 들어간 검은 투박하고 거친 그의 마력을 더욱 더 증폭시키고 극대화시켰다.

"뒤져라 미친 괴물놈아!"

그는 푸른 마력이 넘실거리는 그 검을 넓직한 등판 한가운데 그대로 손잡이 까지 꽂아넣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분명히 보이고 있다.

그가 검을 꽂은 이 부분은 다름아닌 베헤모스의 경추에 해당하는 부분. 검에서 뻗어나간 힘은, 두께만 수미터에 달하는 가죽과 근육을 뚫고 베헤모스의 급소를 정확히 타격했다.

"그렇지!"

리암은 사방에 울려퍼지는 짐승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며 희열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검을 뽑아낸 순간, 거대한 몸이 요동치더니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부글거렸다.

'아직이다. 더 독점할 수 있다.'

동시에 그는 몸에 흘러드는 막대한 힘에 취해 몸을 떨었다. 상태창이 베헤모스를 잡은 업적을 고스란히 그의 것으로 인정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그가 싸우는 이유였다. 더 강한 힘,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것.

"아직 남았다. 나머지 놈들도..."

"나도 안다고!"

그는 다른 베헤모스들에게도 덤벼들었다. 덩치만 크고 방어력만 높은 베헤모스들은 자신들에 비하면 진드기 수준인 리암을 처리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처리당해 그대로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마지막!"

어느새 베헤모스는 단 하나 남았다. 그러나 자신의 완벽한 승리를 확신한 그가 한껏 웃으며 마지막 남은 베헤모스의 등 위로 올라탄 그때.

"...넌 누구지?"

리암은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맞이했다. 생김새는 인간과 비슷하나 그 전신을 움찔거리는 검은 무언가로 뒤덮고 있는 존재.

얼굴 역시 매끈한 가운데 가슴팍에 달린 큼직한  외눈이 꿈벅거리며 리암을 직시했다.

"그래. 아무렴 이놈들을 지키고 있는 놈이 없을리가 없지."

리암은 상대를 베헤모스를 지키는 침략종의 일부라고 판단했다. 상대의 외형이 이런 편견이 생길만큼 기괴했기 때문이다.

"앤더슨, 그냥 후퇴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정보가 전혀 없는 괴물이다."

"이제 하나 남았는데 그게 무슨 헛소리야."

리암은 안전하게 후퇴할 것을 권하는 상부의 명령도 거부하고 검을 들어올렸다. 오히려 그의 마음에는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중이다.

"너도 검을 쓰나?"

피식 웃은 그는 상대가 손에 들고 있는, 갑각으로 만든 독특한 외날검을 보고 피식거렸다.

'이길 수 있다.'

리암은 이번에도 자신의 눈을 믿었다. 본능과도 가까운 그의 눈은, 상대가 보유한 마력을 얼추 짐작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 눈에 비치는 상대의 힘은 명백히 자신보다 약하다.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우위를 확신한 그는 마력을 터트리더니 망설임 없이 상대에게 돌진하여 검을 휘둘렀다.

안 그래도 거친 힘이 성검과 만나 그 힘을 극대화. 그 검에는 강철도 베어버린 푸른 불꽃이 마구잡이로 넘실거린다.

"...!"

하지만 그 검이 상대를 단숨에 베어버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검은 불꽃을 불태우기 시작한 상대 그의 검을 충격파를 터트리며 막아내더니 오히려 빠른 움직임으로 그를 향해 강한 발차기를 날렸다.

[전투 실행]

"다짜고짜 선빵을...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은데, 일단 이길 수 있지?"

[단순한 출력만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음을, 지난 전쟁들을 반복하며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게 당연합니다]

제대로 걷어차인 리암이 바닥에 나동그라진 사이 검은 생물체 안에서는 두 존재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목소리 중 하나인 루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계산을 끝내고, 승리를 이 전투의 결과로 도출했다.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