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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73화 (73/200)

< 73화-전쟁의 이유(3) (유료연재 첫 화입니다) >

73화-전쟁의 이유(3)

[침략종 베헤모스는 육중하고 단단하지만 느리고 유연하지 못해 그 자체로는 효율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따라서 그대로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

루시는 습득한 베헤모스의 데이터를 그대로 복사해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원본 데이터는 투입되는 자원도, 그 용도도, 활용도도 루시의 의도와는 상이하니까.

단지 상식 이상으로 ‘거대한’ 생물체에 대한 생체 데이터를 얻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루시는 완전히 새로운 생물종을 스스로 합성해 내었다.

애초에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합성 및 개조 능력을 길러 온 것이다.

[첫 번째 초거대종 프로젝트의 병종은, 트롤들마저 한 발로 짓밟아 죽일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무거운, 오직 앞만 보며 돌진하는 돌격병.]

루시는 우선 너무 큰 몸 크기를 줄였다. 하지만 그렇게 줄어든 몸 크기도 어지간한 대형 트럭 이상의, 어깨높이 10미터 이상에 몸길이 수십 미터의 거대하고 육중한 몸이다.

거친 가죽 위에 전신을 마왕군 특유의 검은 갑주로 둘러싸고, 거대하게 발달한 머리는 그 갑주의 두께만 미터 단위로 설계해 원본 베헤모스 이상의 방어력을 갖추었다.

거기다 그 머리에 달린 사슴벌레를 닮은 거대한 집게턱은, 양면이 날카로운 칼날로 이루어져 지면을 쓸어버릴 수 있게 만들어졌다.

번식, 섭식, 생존 등 생물종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대신 오직 돌진해서 적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 이것이 바로 초거대종, 타입 베헤모스ㆍ베타.

골격과 근력의 문제 등 생물적 한계와 물리 법칙을 무시한 이런 설계를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베헤모스ㆍ베타들의 심장 부근에 삽입된 큼직한 강심이다.

[단언컨대, 이 마계에 이보다 거대한 생물은 없습니다.]

루시는 개체당 어마어마한 자원을 투자해 우선적으로 만들어 낸 10기의 베헤모스ㆍ베타를 출격시키며 승리를 확신했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마족들의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거대 원시 마수들은 이미 원시 마족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이 땅에서 멸종한 지 오래.

외부 자원을 빌려 그 먼 과거의 모습을 재현해 낸 루시는 지금의 마족들이, 이것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계산했다.

“도, 도망쳐! 도망쳐라!”

그리고 그 확신에 찬 계산은 결국 정확히 들어맞았다.

처음으로 마왕군의 초거대종을 목격한 트롤들은, 차마 이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닉에 빠져 버렸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저런 게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단 말이냐!’

승리 후 오만하게 굴던 용맹한 트롤 전사 바쿠는 가장 먼저 도망치며 몸을 덜덜 떨었다. 아무리 뛰어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한계는 분명 존재하니까.

강하고 수준 높은 전사이기에 그는 지금 자신이 가진 힘으로 지축을 울리며 돌진해 오는 저 거대한 괴물들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길목 방해 실시.]

다만 루시는 그런 그들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둥지에 남아있던 노동병을 포함, 모든 마왕군이 달려들어 등을 돌려 도망치려는 트롤 부대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런 미친! 당장 꺼져라!”

다급해진 바쿠는 온 힘을 다해 쇠곤봉을 휘둘러 자신에게 덤벼드는 적들을 밀어내었다. 분명 풍압만으로 마수 개미의 모습을 한 노동병의 갑각을 부수는 등, 십수 마리를 일격에 처리할 강한 힘.

그러나 그런 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여드는 적들을 모조리 처치하는 데는, 아무리 그여도 시간이 필요했다.

“이 미친 괴물 놈들이 설마······.”

안 그래도 창백한 피부를 가진 바쿠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 없다는 듯 그저 몸을 던져 그들의 퇴각을 가로막는 마왕군의 모습에 소름이 돋은 것이다.

“네놈들에겐 감정, 아니 살고자 하는 본능마저도 없느냐?! 명령에 그저 몸을 던지는 그 행위가 대체 마왕의 지배를 받는 과거의 우리와 다를 게 뭐냔 말이다!”

더욱 거세지는 진동과 주변 부하들의 고함 등으로 가속도가 붙은 초거대종의 돌진이 이제 바로 등 뒤에 근접했다는 것을 깨달은 바쿠는 악다구니를 쓰며 자신에게 들러붙는 마왕군을 쳐내고 짓밟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외침에도 마왕군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그 태도가 마왕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 지배에 불만을 품어 온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바쿠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너희는 살아있는 생물이긴 한 것인가?”

그는 외마디 탄식을 내뱉었다. 마침내 깨달은 그것은 마왕군과 직접 싸워 본 이들만이 느끼고 알아챌 수 있는 것.

[적장 제거.]

그리고 그 직후, 트롤 대전사 바쿠의 큼직한 몸은 돌진해 오는 거대한 발에 그대로 짓밟혀 그 존재가 일격에 사라져 버렸다. 마력을 사용한 육체 강화든 뭐든 다 무시해 버리는 압도적인 질량.

초거대종이 대열을 갖추고 휩쓸고 간 자리에는 짓이겨진 육편과 뒤틀린 땅, 흩날리는 흙먼지 뿐.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 무엇도 살아남지 못했다.

[초거대종 프로젝트는 성공입니다. 타입 베헤모스를 바탕으로, 개조를 시도하거나 다른 종류의 초거대종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 돌진을 막아 낼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회전은 우리가 무조건 이기겠는데.”

[설령 방법을 찾아내도 상관없습니다. 발전과 진화 역시 저희가 더 빠릅니다.]

루시는 전투 결과를 보고하며 여전히 자신이 유리함을 확신했다. 게다가 초거대종의 정보가 곧 마계 전체로 퍼지겠지만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어차피 서로 싸우면 싸울수록 그 경험을 온전히 흡수하고 개조하여 강해지는 건 본인이었으니까.

[이제 서큐버스 여왕 그레모리의 영지를 완전히 삼키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들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막으려 하겠지만, 초거대종이 있는 이상 그들은 들판에서 저희를 이길 수 없습니다.]

“좋아. 그렇게 진행해.”

모든 전장을 실시간으로, 유기적으로 자신이 조율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루시의 강점 중 하나다.

거기다 쌓이고 쌓인 전투 경험에서 비롯된 전략과 전술은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물린다.

연합군이 이것을 극복하고 이겨 내려면 오직 하나만을 생각하고 움직이는 루시보다 더 빨리 행동하고 결단을 내려야 했지만, 결국 그들의 욕망은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순 없습니다. 그들이 품고 있는 미지의 변수가 분명 있기에 그 변수들이 각기 다르게 작용한다면 구축한 제 함수식에 문제가······.]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으로 생각해 보면 마족들은 너보다는 나와, 인간과 더 가까운 면모가 있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 그 변수가 꼭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진 않으니까. 너처럼 모든 면에서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그는 루시가 무엇을 염두하고 신경 쓰는지 알고 그것을 위로해 주었다.

사고 회로의 근본부터 다른 루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 주는 것이 그의 역할.

그것으로 루시가 쓸데없는 곳에 자신의 연산력을 낭비하지 않게 해 주는 것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을 만족해했다.

‘이제 성장기인가?’

그리고 그는 현재 루시의 모습에서 명백한 정신적 성장을 확인했다.

모든 판단과 방향의 결정을 자신에게 의존하던 유아기를 거쳐 이제 자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잣대로 자신의 길을 정하는 일종의 사춘기.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생성된 유대감은 상당하다. 이미 자신의 신념마저 루시의 영향으로 뒤틀었던 그는 서로가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현실의 문제는 잘 해결되셨습니까?]

그때 루시가 이번에는 역으로 그에게 질문을 날렸다.

***

“잘 해결되었지. 피해도 엄청나고, 손실도 엄청나고. 하지만 어쨌든 이겼으니까.”

태연히 통화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던 나는 루시의 질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말 그대로 어쨌든 우리는 이겼다. 도시로 침투한 수많은 괴물들을 전부 처리하고, 땅에 오르려던 베헤모스들을 전부 처리했다.

하지만 승리가 상처를 치유해 주진 않는다.

실려 가는 부상자들의 신음 소리, 소중한 이를 잃은 이들의 울음소리가 고함과 괴성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했다.

한순간에 뒤바뀐 세상과 무너진 평화. 그 어떠한 이해도 대화도 불가능한 괴물들의 침공은 서로 투닥거리던 인간들끼리의 전쟁이나 다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무차별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 그들이 왜, 어째서 나타나서 우리를 공격했는지. 그런데 그 결과는 여전히 미지수야.”

침략종들도 자신들만의 원한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전대 마왕의 원한을 계승한 루시처럼.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루시와 마계 영주들의 싸움에서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남는 것.

내가 루시와의 만남을 계기로, 세상에 묻어 가자는 신념을 바꾸어 싸우는 길을 택한 것도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른다.

“괜찮으십니까? 둘 다.”

나는 치료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그길로 이지연과 오진혁을 찾았다. 두 사람 모두 전면에 나서서 싸웠지만 가벼운 부상만 입었을 뿐,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어요.”

“상부의 연락을 받았는데, 일단 귀국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지 사정이 복잡해서 제대로 된 케어가 힘들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하죠.”

이지연은 어딘가 지쳐보였다. 싸울 때보다 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가 싸우는 이유는 지키기 위한 것이니까. 전투가 끝나고 희생자들과 폐허만 남게 되면 그녀의 마음은 싸울 때보다 더 크게 흔들릴 것이다.

“혼자서 베헤모스들을 모두 처치한 리암 앤더슨도 부상을 입었다던데요. 진짜인가요?”

“그렇지. 그런데 큰 부상은 아닐걸?”

오진혁이 내게 리암에 대해 물은 게 그때였다. 사실 그의 마지막을 본 것이 나이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둘러대었다.

현재 리암은 자신의 상태를 비공개로 두고 있는 상태다. 분명 크게 다치진 않았을 텐데.

“그 사람이 굳이 가지 않고 조금만 더 도왔다면 더 많이 구하고 살아남았을걸요.”

이지연이 통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진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는 리암이 독단으로 행동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괜히 리암과 충돌해서 여지를 남겨 버렸으니 오진혁의 의견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은 어째서 이 일에 자원했죠? 듣기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끔찍하고 힘든 일에.”

하지만 그 순간 오진혁은 뜬금없이 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반사적으로 희미하게 웃었지만 살짝 당황한 나는 대답을 고르느라 살짝 망설였다.

침략종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바라고 있는 내 진짜 의도는 이지연만 알고 있으니까.

“······너도 알겠지만 내게는 이지연 씨나, 너처럼 싸울 수 있는 힘이 없어.”

결국 나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었다. 원론적이지만, 내 본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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