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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78화 (78/200)

< 78화-전쟁의 이유(8) >

78화-전쟁의 이유(8)

"시기상, 다른 놈들보다도 깊숙히 들어오는 저놈들을 먼저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현재 대응할 병력을 증강시키는 중입니다]

"저놈은 영주 아니야? 설마 직접 올 줄이야."

나는 화면에 보이는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들창코에 창백한 피부의 유독 못생긴 동굴트롤. 그러나 갑주를 차려입은 그놈은 동굴트롤들을 이끄는 왕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적이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동굴트롤들의 왕 오리아스와 하피왕 말파스는 본인들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내부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방심한 건가? 별 거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향하는 중심부, 과거 고블린 왕 안드라스의 영지였던 그곳에는 루시의 둥지가 있다.

다만 보통 둥지는 아니었다. 신ㆍ마왕군의 발원지인 그곳에는 루시의 두뇌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들이 그 사실을 알 턱이 없으니, 다른 목적으로 접근해오다 루시의 두뇌가 공격 받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들의 병력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마음먹고 쳐들어 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기회지만, 지금의 네가 저놈들을 포위해서 잡는 게 가능해?"

[쫓아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멸시킬 확률은 50% 미만입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적들은 분명 방심하고 있었고 적은 병력을 이끌고 우리의 영역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병사들로 포위 공격을 시도한다 해도 적들을, 특히 적장인 오리아스와 말파스를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만큼 강한 힘을 갖추고 있으며 애초에 지금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에겐 병력의 여유도 부족했다. 그들이 대놓고 초거대종의 발에 밟혀줄리도 없으니까.

"뭔가, 뭔가 방법이 필요해."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루시는 답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뭔가 아이디어를 줘야 한다. 스스로 함정으로 기어들어 온 적장을 처단할, 루시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무기 제작자요?"

그리고 회사를 통해 한 가지 소식이 들려온게 그때였다. 어쩌면 내 고민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소식이었다.

"지난 번 베헤모스 토벌전에서, 리암 앤더슨이 입고 휘두르던 갑옷과 검이 보통 물건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그럼 대체 무슨 물건이었죠?"

"사용자의 힘을 강화 시켜주는 조금 특별한 물건이었죠."

나는 이지연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이상함을 눈치채긴 했지만 그날 차마 빼앗지 못한 리암의 무구에 대한 이야기. 놀랍게도 이 이야기를 폭로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리암의 무구에 새겨진 하나의 회로를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는 무구를 제작하는 게 가능하다 했죠."

"리암은 해명을 했나요?"

"자신들의 극비 기술이며 아직 온전치 않은 기술이라 말했으니 부정한 건 아니죠."

각성자들의 능력은 천차만별이다. 가끔은 전혀 예상 못한 능력도 등장하여 활약하기도 한다.

자신을 제작자라 칭한 그 각성자는,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활용해 세상 모든 각성자들을 도울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라의 외교부를 통해 세계 각국에 자신이 만든 무기의 샘플을 보냈다. 그리고 그 무기 중 하나가 국내에도 들어온 상태다.

만약 그것을 루시에게 보내줄 수 있다면.

"그걸 보고 싶은거죠?"

"...그렇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지연은 내 생각을 읽어내었다. 내 정체와 목적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녀에게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었다.

"제가 도와줄게요. 사익을 위해서 그러는 건 아닌게 확실하니까."

그러자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돕겠다고 말했다.

흔들림 없이 똑바로 나를 쳐다 보는 그 눈에서 느껴지는 것은 부담이 느껴질 정도의 순수한 호의. 그러나 그것을 거절할 만큼 내가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루시를 도와야 하니까.

"도와주신다면."

결국 나는 이지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협회장님. 더 피곤해 보이시네요."

"...각성자의 체력으로도 버티지 못할만큼 일이 많아. 그러는 너도 바쁠텐데 어째 쌩쌩해 보인다?"

처음부터 함께한 같은 각성자지만 이지연과 달리 일찍 현장에서 손을 뗀 협회장 백승철.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지연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실제로 며칠을 밤새워 일한 그는 핏기도 없고 눈도 퀭해,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조금 안정되려 하면 또 새로운 일이 터지지. 이 변화가 대체 언제쯤 끝나게 될지 감도 못잡겠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어. 어떤 막장이 될 줄 알고?"

그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지만, 물론 우리의 진짜 목적은 그가 얼마나 힘드냐 마나갸 아니다.

"최근엔 그것 때문에 바쁜거죠? 바다 건너서 온 무기."

이지연이 은근슬쩍 본론을 꺼냈다. 그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 우리에게 떠넘겼다. 효율과 효과를 계산하고 증명해서 알려달라고. 말은 쉽지."

"저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되나요?"

그런 그에게, 이지연은 태연히 그것을 보여달라고 말을 꺼냈다. 국내에서 손꼽는 유명 각성자이자 협회장 백승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뻔뻔한 요구였다.

"뭐, 그러든지."

옆에 서 있던 나를 흘끔거린 백승철은 그리 깊은 고민 없이 어렵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는 회사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협회 본부 지하. 한국엔 흔치 않은, 실탄으로 무장한 경비가 상주하는 등 나름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봐 루시. 어때 보여?"

[리암 앤더슨이 가진 무구에 비하면 그 마력의 흔적이 매우 옅으나, 분명 마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경계는 삼엄하지만 시설 내부는 여러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덕에 조금 부산스럽다. 그 틈에 나는 루시와 대화할 수 있었다.

루시는 저 멀리 보이는 검을 보고 과연 리암이 사용하던 무구와 비슷한 계열의 물건임을 확신했다.

"도움이 될 것 같아?"

[정확한 효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 효과는 있을 것입니다]

내 옷으로 위장한 나노ㆍ오메가의 눈으로 물건을 확인한 루시는 저 물건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 밤, 루시를 위해 저 물건을 살짝 빌려야 할 것 같았다.

"이걸로 된 건가요?"

"네. 충분합니다. 그리고 오늘 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너무 놀라진 마세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하긴 했지만 맹세하건데 사람들과 이 사회에 해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자리를 만들어준 이지연에게 이제 돌아가도 된다고 언질했다.

그녀에게 속삭이느라 딱 붙어 있는 우리를 바라보는 백승철의 눈이 조금 따가웠지만, 굳이 반응하지는 않았다.

***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내일 보자."

늦은 심야 시간. 북적거리던 시설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퇴근하니 적막을 넘어 스산해질 정도였다.

그때 이곳의 경비를 맡은 무장 경찰들이 일제히 교대했다. 일반적인 중요 시설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지만, 이 나라에서 실탄까지 들고 경계를 서는 일이 흔하지 않기에 그들은 항상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제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러시아 특수부대가 던전이랑 게이트 관련 물자를 훔치기 위해 움직였다가 발각되었다던데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기 있는 것들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2인1조로 지정된 위치를 지키던 두 경찰은 텅 빈 전방 복도를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긴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겁먹은 건 아니니까. 애초에 긴장의 원인도 누군가 이곳에 침투할지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보다는 그저 손에 실탄이 든 총을 들고 있어서였다.

[침투성공 확률 98% 이상]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서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은 누군가 자신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무시하고 지나치겠습니다]

복도 한가운데, 실시간으로 피부 표면을 바꿔가는 완벽한 위장 능력으로 모습을 숨긴 누군가가 집중하지 않으면 듣지 못할 소리만 내며 스르륵 움직였다.

곧 몸을 변형시킨 촉수가 천장과 벽을 짚으며 서 있는 경찰들을 그대로 지나쳐 지점을 통과했다.

[물건을 습득하는 순간엔 위장을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곳엔 각종 센서와 감지기가 존재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그건 정면으로 돌파한다."

경계 인원과 감시장치가 없는 곳에서 그는 위장을 풀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매끄러운 갑피 혹은 비늘 같은 피부 표면을 자유자재로 꿈틀거리는 그 모습은, 처음 보는 누구라도 침략종으로 오해할 괴물 같은 생김새.

그렇게 도달한 곳에는 낮에 미리 봐두었던 '무기'가 특수하게 만들어진 방탄 유리 케이스 안에 놓여 있다.

"부숴버려. 루시."

[개량형 연산마법ㆍ파동형 화염탄]

루시는 그의 가슴팍에 위치한 휴대폰을 통해 자신이 완전히 새롭게 정립한 자신만의 마법을 뿜어내었다.

뛰어난 연산력을 극대화해 동시에 시전한 수십번의 마법을, 극히 짧은 시간에 연달아 쏘아내 그 파괴력을 극대화한 마법.

"비, 비상! 비상!"

"실제 상황이다! 적이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유리방벽이 산산히 부숴지며 동시에 미친듯이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송해."

위에서 들려오는 경비대의 고함소리에 그는 루시에게 검을 전송할 것을 지시했다. 곧 검이 자신의 가슴으로 빨려들어오듯 사라지자, 그는 몸을 돌려 땅을 박차고 뛰었다.

"괴, 괴물!"

"으아아...쏴버려!!"

문을 부수고 나온 그의 앞에 무장 경찰들 다수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지휘관조차 패닉에 빠진 그들은,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턱대고 총탄을 난사했다.

[피격지점 경질화]

양 손을 들어 가드를 올린 그의 피부를 덮고 있는 나노ㆍ오메가는 총탄의 피격지점을 순간적으로 경질화하는 방식으로 무수한 총탄을 튕겨냈다.

"미친 범죄까지 저지르고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다치게 해선 안 돼. 그들은 우리 편이야."

[비살상 전투.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공격 받으면서도 사람들을 해치지 말라고 루시에게 당부했다. 그 이유는 리암과의 전투에서 쓰러진 리암을 건드리지 않은 것과 같다.

[매혹의 마안, 발동]

그리고 루시는 그런 그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경악한 그들의 총격이 잠시 멈춘 사이, 가드를 치운 그의 가슴팍에 박힌 큼직한 외눈이 마력을 번득이며 강렬한 기운을 사방에 흩뿌렸다.

루시가 마계 영주들과 전투하며 습득한 각종 기술과 술법들. 대다수는 효율 문제로 차용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있었지만, 한 번 저장한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루시의 두뇌는 분명 그것들을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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