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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79화 (79/200)

< 79화-전쟁의 이유(9) >

79화-전쟁의 이유(9)

“크흑······?!”

“으아아······.”

꼼짝없이 당해 버린 경찰 병력들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내가 듣기로 매혹의 마안은 마력으로 상대의 신경을 장악하여 그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서큐버스들은 이것을 이용해 상대의 정신력을 약화시켜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용한다고 했지만 루시는 굳이 거기까지 하지도 않았다.

[특출난 정신력, 혹은 강한 마력 저항력을 갖추지 않았다면 당분간 스턴 상태가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지나쳤다. 다시 은신할 틈만 잡는다면 굳이 충돌하지 않고서도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앗! 저기 있다!”

“자, 잡아라!”

하지만 그런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몰려오는 경계 병력들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정면 돌파를 택했다. 일단 하늘이 보이기만 한다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으니까.

[각성자로 추정되는 개체입니다.]

그런 내 앞에, 이를 악물고선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거구의 사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현직 경찰의 신분으로 각성자가 된 사람으로, 경찰청이 작정하고 밀어주며 여러 매체에도 나왔던 그는, 특수 경찰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죽어라! 괴물!”

그 능력은 전신을 단단한 암석 재질로 만들어 무게와 근력을 폭증시키는 것. 그의 묵직한 주먹이 정확히 내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비살상 근접 전투 프로그램 가동.]

“무슨!”

내장된 강심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순간 마력이 타오른 내 손이 오히려 그의 손을 잡아챘다.

자신이 힘에서 밀릴 것이라 생각 못 했는지 당황한 그에게 틈을 주지 않고, 내 몸은 격렬히 움직이며 과격하고 거친 근접 난타전을 시전했다.

“큭, 커헉······.”

바닥을 부수는 발디딤과, 순간 공기를 찢는 주먹질. 루시가 지금까지 정립한 경험은 인공지능 특유의 학습 능력을 바탕으로 ‘모든’ 마왕군 개체가 겪었던 수많은 전투 경험을 직접 분석하고 응축한 것이다.

이제 경험 많고 숙련된 마족 전사들도 감당하기 힘든 그 실력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절대 고수의 주먹질이라 봐도 무방할 난타에, 나름 무술을 배웠을 그는 대응하지 못하고 두들겨 맞아 비틀거렸다.

[출력은 상대의 28% 수준, 그 결과 근소한 차이로 우세를 점해 효율적으로 제압 완료했습니다.]

그 결과가 상대보다 현격히 적은 출력으로 거둔 승리다. 거칠게 밀려난 그가 허공을 날아 바닥을 구르고 신음하는 순간, 루시는 당연한 결과라는 듯 평온한 어조로 상황을 보고했다.

“막아!”

가장 큰 장애물도 치워 버린 나는 맹렬히 앞으로 돌진했다.

그를 따라 온 경찰들은 권총을 꺼내 들고 어떻게든 나를 막으려 했지만, 날개를 꺼낸 나는 경질화한 날개로 그 총탄들을 다 튕겨 내며 그들을 밀치고 지나쳐 마침내 1층으로 올라섰다.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습니다. 인간 50개체 이상, 각성자 2개체 이상.]

“그들과 싸우는 게 목적이 아니야.”

정문과 옆문에서 밀고 들어오는 병력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곧장 날아올라 1층 로비 창문을 몸으로 들이박아 깨부쉈다.

빗발치는 총성과 고함을 뒤로하고 빠르게 하늘로 올라섰다. 이후 짙은 구름이 내 몸을 휘감는 순간에서야, 은신을 시도해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싸울 일 없을 거야. 돌려주는 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네 일을 해, 루시.”

[알겠습니다.]

발 밑에 깔린 도시의 야경을 보니 흥분한 가슴이 점차 가라앉는다. 점점 상승하는 내 행동의 수위에 스스로 놀라면서도 나는 루시에게 꼭 결과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지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바꿔 줘. 알고는 있지만 크게 다친 사람 없다는 건 알려 줘야지.”

이제 남은 건 연기뿐이다.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란 평범한 일반인 연기.

***

“동굴트롤의 왕 오리아스와 하피왕  말파스는 어느새 이 지척까지 도달. 길목에 있던 아군 둥지를 고의로 지나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아무래도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 될 물건입니다.”

그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루시 자신의 몫. 루시는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분명 평범한 롱소드지만 가드의 가운데 박힌 푸른 보석은 특별하다.

활성화된 던전 코어를 에너지 삼아 무기 전체에 마력을 공급하고 외부의 힘에 공명하는 힘. 루시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힘이었다.

“오리아스와 말파스,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이곳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보이니 그들을 꾀어내고 찢어지게 만들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걸 어떻게 하려고?”

“그만큼 강한 미끼를 주면 됩니다.”

둥지에서 누군가 루시에게 걸어왔다. 루시는 그것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유리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알기로 마지막 남은 최상위 지휘 개체인 유리아가 미끼가 되어, 그들을 갈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루시는 유리아를 당당히 보여 주었다. 그리고 루시의 예상대로 그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인 유리아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럼 그렇게 해. 검을 분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지?”

“분석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그 이후 루시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보여지는 화면을 바꾸었다. 결국, 그는 텅 빈 공허 같은 유리아의 눈동자는 끝내 보지 못했다.

“저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심의 효율을 올려 보유 마력량을 늘리는 것.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지금 다른 방식으로 출력을 늘려야 합니다.”

루시는 자신이 마계 영주들을 잡을 수 있는 특출난 개체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로 출력의 한계를 뽑았다.

탈착식, 빠른 충전, 자유로운 설계 등 많은 강점을 가진, 마왕군의 동력원이 되는 강심의 문제는 한계 자체가 명확하다는 것.

루시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새로운 기술을 들여왔다.

생명체의 유전 데이터를 해독하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의 기술이지만 루시에게 학습이란 과정 자체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빠른 시간 안에 수천, 수만 번의 계산 시도로 학습량을 늘린 루시에게 새로운 기술 자체를 습득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던전 코어 부분을 강심으로 대체한다면 이 특수한 마력 회로를 적용하고 변형시켜 양산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실제로 루시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비밀을 알아내었다. 극히 일부긴 하지만 ‘시스템’이 각성자들에게 부여한 능력의 코드 일부를 해석해 낸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재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걸로 충분해?”

“아닙니다. 이것을 더, 활용도 있게 이용할 수 있다면.”

루시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그 상태로 마왕군에 적용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루시의 손에 들어간 기술은 오직 루시만이 사용할 수 있는 타입의 기술이 되어 원주인들의 숨통을 끊는 무기로 쓰인다. 보통 마족들의 기술이 그랬다.

“하지만 계산 결과 목표치의 출력을 위해서는 소요되는 자원이 상당합니다.”

“어느 정도인데?”

“정확한 추산은 불가능하지만 강심을 보유한 감마, 델타 타입 수백여 기와 맞먹습니다.”

다만 루시가 결정을 망설인 이유는 단 하나로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자원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아직 루시는 양분을 마력으로 치환하는 기술은 갖지 못했다. 모든 마력은 전투 과정 등에서 흡수한 것. 그만큼 함부로 쓸 수 없는 자원이 마력이었다.

“그래도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쩔 수 없잖아. 해.”

그때 그 마음을 잡아 준 것이 그의 결단. 아무리 정체성이 늘어났다 해도 결국 중요한 순간, 루시는 그의 판단에 따르게 되었다.

“기본적인 원리는 작은 동력원으로 무기 전체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구조상 비효율적입니다. 무기에 쓰이는 동력원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증폭력은 폭증합니다.”

“아니, 무기에 다는 거라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설마 무기를 엄청 크게 만들 생각은 아니지?”

“그것은 폐기한 가설입니다.”

이곳으로 진격하고 있는 적들을 혼란시킬 부대를 파견한 루시는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현재 루시가 가지고 있던 단점을 단번에 채워 넣을, 어마어마한 자원을 투자해 만드는 결전병기를.

“병기의 거대한 몸 전체를 강심으로 만들겠습니다.”

“허.”

루시는 설계도면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길이는 5m에 근접하며 날폭은 루시의 몸통과 비슷한 거대한 쌍날검. 그 몸체와 양쪽으로 뻗은 칼날 전부가 광택이 나는 검붉은 강심으로 되어 있다.

그 무식한 크기와 무시무시한 외형에 그가 무심코 탄식할 정도였다.

“이거 들고 휘두를 수 있어?”

“내장된 자체 에너지의 출력이 제 몸의 몇 배는 되는 진정한 병기로, 완성된다면 본체는 오히려 이것이 될 것입니다.”

백문불여일견. 루시는 결정이 내려진 이상 망설이거나 후회하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했다. 저장한 마력을 쏟아부어 강심을 만드는 강심 생산장에서 거대한 원석이 만들어지고, 루시는 직접 그것을 깎아 자신이 원하는 병기를 만들어 내었다.

“힘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루시의 몸에 있던 강심들이, 그 무기와 은은히 공명하며 마력을 뿜어내었다. 루시 본인도 단일 개체의 몸을 움직일 때는 처음 느껴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에너지였다.

“혹시 생각한 이름이 있다거나.”

가녀린 여인의 몸을 한 루시가 자기 몸보다 훨씬 거대한 무기를 들고 있으니 그것을 흥미롭게 본 그는 넌지시 이름을 물었다.

“승리를 가져오는 성창, 롱기누스.”

자신이 만들어 낸 병기를 보며 묘한 희열에 차 있던 루시는 그의 예상을 깨고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루시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신화에 대한 집착을 그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이것으로 저희에게 진정한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답지 않게 서두른 루시는 무기를 들고 곧바로 날아올랐다. 유리아가 두 마계 영주 중 하나를 꾀어낸 사이, 남은 하나를 자신이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

“말파스, 네가 쫓아라. 저 귀찮은 잔당들을 전부 죽여라!”

“네놈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갈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루시의 계획은 잘 먹혀들고 있었다.

“마지막! 진짜 마지막이다. 놈들의 근원지로 알려진 이 앞에 뭐가 있는 건 분명하다!”

말파스는 부하 하피들 다수를 이끌고 마법으로 귀찮게 하던 유리아와 비행종들을 추격했다. 그들은 이미 고블린 생존자 등을 통해 마왕군이 어디서 처음 나타났는지 알고 있었고, 그곳을 공격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유리아의 등장을 그 가설의 증거라고 여긴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왕이시여. 혹시 이것이 유인책이라면 어찌합니까!”

“유인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 하지만 대다수의 병력을 밖으로 돌린 이놈들이 정녕 자신이 있었다면 진즉에 나왔어야지. 이건 유인이 아니다. 발악이다!”

말파스는 사력을 다해 유리아를 뒤쫓았다.

순간 마력을 폭발시켜 거리를 좁힌 그는, 비행종들을 쳐 내고 유리아를 따라잡았다.

“죽어라, 인간도 마족도 아닌 끔찍한 괴물 년!”

몸을 뒤튼 그는 마력에 휘감긴 발을 휘둘러 발톱에서 갈라지는 세 갈래의 참격을 뿜어내었다. 그것에 휘말린 유리아는 방어막이 깨지며 그대로 세 토막이 나 피를 흩뿌리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이걸로 끝인가? 정말로?’

말파스는 토막난 그녀의 시체를 내려다 보며 히죽였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 남은 찜찜함. 그것 때문에, 그는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오리아스.”

그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섬광과 폭발하는 충격파. 하늘로 치솟은 강렬한 에너지는, 수십 km 떨어진 이곳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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