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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80화 (80/200)

< 80화-전쟁의 이유 (10) >

80화-전쟁의 이유 (10)

“이 틈에 들이치면 끝나겠군.”

말파스가 유리아를 쫓아갔을 때, 히죽 웃은 오리아스는 굳이 기다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이려 했다.

그들의 예상대로라면 이제 더 이상 적에게 남은 저항력은 없을 테니까.

“가자. 이 앞에 무엇이 있든 우리가 다 부수고,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한다!”

그는 병사들을 독려했다. 결국 그의 진정한 목적은 혹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전리품이었다. 특유의 강철 같은 체력으로 쉬지 않고 행군하여 여기까지 직접 왔으면 그에 맞는 보상은 있어야 하니까.

“······저건.”

그러나 그런 그들의 앞을 하늘을 날아 온 누군가가 단신으로 가로막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였고, 그들의 상식대로라면 이곳에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어떻게!”

“이겼다고 생각했습니까. 이 몸의 목을 베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여겼습니까?”

루시는 경악한 오리아스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감정이 요동칠 만큼 경악한 그의 얼굴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트롤. 나는 고작 그 정도로 죽지 않습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이지?! 네년의 몸은 불태웠고 잘린 목은 지금도 장대에 걸려 썩어가고 있다!”

패닉에 빠진 오리아스는 움찔거렸다. 그 역시 부활에 가까운 뛰어난 재생력이나 언데드로 되살아나는 흑마술 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기존의 몸은 버리고 완벽히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경우는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감도 잡지 못했다.

“설마 분신이었나?”

“당신의 두뇌로는 그 정도 추측이 한계로 보입니다.”

오리아스는 겨우 비슷한 해답을 내놓았지만 루시는 그것을 비웃었다. 어차피 진실을 알려 줄 생각은 없었으니까.

만의 하나를 대비해서라도 불필요한 정보는 흘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큭, 건방지군.”

그 비웃음에 정곡을 찔린 오리아스는 손에 쉰 대검을 더 세게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기기묘묘한 술법으로 되살아난 건 대단하다 인정해 주지. 하지만 그게 전부다. 말파스를 유인해서 따돌렸다 해도 감히 혼자서 나를 막아서느냐.”

오리아스의 말과 함께 곁에 있던 수백의 트롤 병사들이 콧김을 뿜으며 으르렁거렸다.

애초에 이미 한 번 루시와 싸워 보고 패배시켰던 오리아스는 1 대 1 대결도 자신 있었다.

‘저 거대한 무기는 뭐지? 말끔하게 정제된 마력이 느껴진다.’

물론 그도 루시가 들고 있는, 마치 검붉은 수정으로 만든 듯한 거창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것을 빼앗으면 되겠군.’

단지 그것을 보고 전리품 삼을 생각이 앞설 정도로 승리에 대한 확신은 확고했다. 히죽 웃은 오리아스는, 어느새 얼굴이 굳은 루시를 향해 자신의 병사들을 돌진시켰다.

“네년의 실력은 내가 잘 안다. 굳이 내가 나설 것도 없이, 내 병사들의 손에 죽어라!”

그래 봤자 무기에 불과하다. 그의 상식에 이정도의 격차를 뒤집을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는 무기 따위는 없었다.

“크아악!”

“찢어 죽여라!”

수백의 트롤들이 쿵쿵거리며 루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트롤은 태생적으로 강인한 몸과 항마력을 타고나는 전투에 특화된 종족.

분명 기존의 루시는 이렇게 다수의 트롤들을 상대할 출력이 부족했다.

[롱기누스ㆍ최대 출력 전개.]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육체가 담을 수 없는 수준의 마력을 외부에서 끌어 쓸 수 있으니까. 그것에 담긴 마력량은 최소한의 마력을 타고나는 수많은 마족들의 목숨을 대가로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쩌면 지역 단위로 헤아려야 할 정도로 많은 것.

그 개념부터가 지금까지 이 마계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상 최악의 결전 병기다. 그것이 눈부신 섬광을 터트리더니 압축되어 있던 내재된 마력을 전방을 향해 순수한 에너지의 형태로 그대로 뿜어내었다.

“이게 무슨.”

복잡하게 얽혀있는 마법도, 검술도 아니다. 말 그대로 단순히 에너지를 폭사하는 것뿐인 간단하기 짝이 없는 공격.

그러나 자신의 병사들을 모조리 휘감아 버리는 그 대폭발에 오리아스는 외마디 탄식과 함께 넋을 잃고 그대로 후폭풍에 휘말려 버렸다.

“커허억. 허윽······.”

“역시 후폭풍만으로는 죽이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화력 자체는 충분합니다.”

몇십 미터 이상을 튕겨나간 오리아스가 피를 토하고 부들거리더니 눈을 부릅뜨고 루시를 노려보았다.

수백의 트롤을 일격사시킨 거대한 폭발로 생성된 깊은 크레이터 위에, 무심한 표정으로 떠 있는 루시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롱기누스를 들어 그를 겨누었다.

거친 바람에 그녀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어째서.’

오리아스는 그 모습을 보고 심장이 철렁함을 느꼈다. 본인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루시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그 압도적인 힘에 어딘가 익숙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왕······!’

이 감정은 분명 과거 마왕에게 지배당하던 시절에나 느꼈던 감정이었다. 인정하기 싫었던 굴종, 하지만 지금이 그때와 다른 것은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모든 걸 포기하고 머리 숙여 바닥을 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몸이 되었다.

“자만하지 마라. 고작 그까짓 무기 하나 손에 넣었다고. 무기가 싸움을 대신 해 주진 않는다.”

“저는 자만하지도, 당신을 얕보지도 않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계산. 오직 그것만으로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무, 뭐라······.”

“그리고 현재 계산된 확률은 84%,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말파스가 오기 전 당신의 목을 벨 확률입니다.”

루시에게 감정을 이용한 도발은 거의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가운 대답에 발끈한 것은 먼저 도발을 시전한 오리아스다. 그는 이를 박박 갈더니 대검을 쥐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전장을 구르는 전사가 계산 따위를 믿겠느냐!”

그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루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전사였던 그에게 전장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었다. 한 끗으로 생사가 갈리는 투지와 기적의 공간이 바로 그가 겪어 온 전장이다.

그러나 그와의 전투를 경험해 본 루시에게 그와의 전투는 이미 계산의 영역에 들어섰다. 출력만 충분하다면, 이미 분석이 끝난 그의 경험과 실력은 자신이 앞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이 나보다 앞서는 건 그저, 오랜 시간 쌓아 온 마력량 하나뿐. 실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 생각했습니까. 오히려 실력은 지금껏 쌓아 온 모든 전투 데이터를 집대성한 제가 더 강합니다.”

“이건 말도······.”

찰나의 순간 주고받은 수십 번의 일격에, 오리아스는 끝내 출력이 상승해 더 빠르고 강해진 루시의 검격을 따라가지 못하고 부러진 대검을 놓쳤다.

붉은 눈을 번득이며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루시에게 경악한 그는 뿜어진 거대한 참격에 땅과 함께 반으로 갈려 그대로 쓰러져 바닥을 굴렀다.

“말파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유리아의 ‘껍질’로 꾀어낸, 지금 다급히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는 말파스와 하피들. 그들도 처리해야 했다.

마침 롱기누스의 재장전이 거의 끝나갔다.

오리아스의 시체를 밟고 선 루시는 출력 전개가 가능해진 롱기누스를 들어, 검은 점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적들을 향해 다시 그것을 겨누었다.

***

[이쪽 일은 잘 끝났으니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십시오. 돌아와도 되는 때를 언질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마계에서 벌어진 전투가 끝으로 가고 있을 때쯤, 루시의 명령으로 며칠 전부터 마계를 벗어나, 인간 세상에 나와 있는 유리아는 루시의 연락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인형이니 뭐니 할 때는 놀라긴 했지만.’

그녀에겐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특히 루시가 자신의 육체 데이터를 사용해 자신과 똑같은 인형을 하나 만들었다는 말에는 차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쨌든 일은 무사히 끝났다. 이제 그녀에겐 지금 당장 눈앞의 일이 제일 중요해 졌다.

“저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전쟁중이라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하지만 이 지역은 후방에 위치한 곳이라 혼란이 덜합니다.”

[계획은 변함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로오렌 왕국 마법사 학회를 습격하여 그들 중 일부를 납치해 가겠습니다.”

은신한 상태로 숲속에 모습을 숨긴 유리아는 저 앞에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곳을 보는 그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 도시는 다름 아닌 그녀의 고향이었으며, 그녀를 배신한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끔찍한 시간을 겪으며 복수와 증오의 화신이 된 그녀에겐 이제 저 도시 전체가 공격 대상이 되었다.

“위장을 꿰뚫어 볼 마법사들이 다수이니, 모습을 숨기진 않고 대놓고 정탐하겠습니다.”

유리아는 미리 준비해 둔 큼직한 검은 망토를 몸에 둘러, 목 아래 괴물의 몸을 가렸다. 얼굴은 드러내니 이 세상의 여성치고 키가 좀 크다는 것 빼고는 영락없는 인간 여인이 된 유리아는 함께 온 마왕군은 대기시키고 홀로 도시를 향해 걸어갔다.

부산스러운 분위기 덕에 분위기에 섞여 스며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도시에 들어온 그녀는 후드 속에서 눈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창창한 십대의 혈기로 전쟁에 참전한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도시는 과거의 모습과 변화한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도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유독 감회가 새로웠다.

[오래 머물수록 손해입니다. 어서 목표를 찾으십시오.]

다만 루시는 그녀를 재촉했다. 이 작전 자체가 루시의 주도로 몰래 벌이고 있는 것이라, 루시는 최대한 빠르게 결과를 보고 싶어 했다.

“마법사 학회에 다양한 계파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을 겁니다. 늦은 밤, 그들을 노려 기습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골목길에 모습을 숨긴 유리아는 손 위에서 꿈틀거리는 기생충들을 움켜쥐었다. 숙주의 뇌를 장악할 수 있는 기생충 타입의 병사인 뇌아귀ㆍ알파.

이것을 사용해 마법사들을 무력화시킨 후 납치할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밤까지 대기하십시오.]

그 계획이 시작되려면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을 노려야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제 얌전히 아무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뿐.

“어이, 거기.”

그러나 재수 없게도 그것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뒷골목에는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잊고 있었던 인간 세상의 상식을 이제 서야 떠올린 유리아는 혀를 차며 뒤를 돌아보았다.그녀를 불러 세운 건, 누가 봐도 껄렁해 보이는 세 명의 불량배였다.

[거슬린다면 처리하십시오.]

“아, 아닙니다. 잘 둘러대겠습니다.”

“뭐야,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지?”

루시의 명령에 움찔한 그녀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 모습은 되려 그들의 이목을 끌었을 뿐이다.

결국 탄식한 유리아는 일단 후드를 벗어 그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었다.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니, 서로 갈 길 갔으면 좋겠다만.”

“어······.”

그녀의 얼굴을 본 그들은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놀라서 움찔했다. 수려하고 말끔한 외모와 머릿결이, 결코 낮은 신분 같아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적습이다!”

하지만 진정한 이변은 고작 불량배들 따위가 아니었다. 성벽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고함 소리에 모두가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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