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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81화 (81/200)

< 81화-지배자 (1) >

81화-지배자 (1)

“명백히 존재하는 신을 따르지 않는, 사악한 이교도들을 죽여라!”

검을 빼든 성기사가 외치자, 병사들이 광기와 비슷한 고함 소리로 화답했다.

도시를 공격해 온 그들은, 교단이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 파견한 부대.

몸을 숨기고 몰래 방어선을 넘어와서 그 본색을 드러낸 그들의 생환 확률은 0에 수렴하지만, 신의 기적을 맛보고 이미 광신도가 된 그들에게 죽음의 공포 따위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마, 막아라! 성문! 성문을 닫아라!”

난데없이 기습을 당한 도시는 허둥거리면서도 서둘러 맞설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교단 측 병력들이 시전한 마법에 성문 밑바닥이 파이고 균열이 가자, 성문조차 채 닫지 못했다.

본래 상시 대기하는 마법사가 이런 걸 막아 줘야 하지만, 그저 후방에 있다고 너무 방심하고 있던 탓이다.

“히, 히익!”

“쳐라! 죽여라!”

대체 성녀가, 여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광기의 병사들이 눈을 번득이며 그대로 성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일순간 도시 내부에서는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어디 더 해 보아라. 신께선 용맹하게 싸운 우리에게 또 다른 안식을 약속하셨다!”

덤벼들던 병사 셋을 단숨에 베어 버린 성기사는 핏물이 튄 얼굴로 오히려 웃으며 그 광기에 방점을 찍었다.

“전쟁이라고······?”

“일단 튀자고 잭! 빨리!”

그리고 당연히 이 여파는 빠르게 퍼져, 도시 뒷골목까지 요동치게 만들었다.

***

“교단 측 세력이 이곳을 공격한 모양입니다.”

[현재 상공에서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유리아는 갑작스런 소란에 놀라 도망가는 불량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 루시는 이미 정찰병을 하늘에 띄워 무슨 일인지 살피는 중이었다.

[약 800명 정도로 추정되는 병력이 성문이 열린 틈을 타 내부에 침투,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단순 병력은 도시 측이 더 많아 보이지만 침입자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비행 정찰에 능숙한 루시는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형태로 모든 정보를 수집하며 그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했고, 덕분에 전장의 ‘기세’가 상대에게 있음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 혼돈,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기존의 플랜이 망가졌지만, 세상만사가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루시가 옛적부터 깨달은 것이다.

곧바로 새로운 계획을 생각해 낸 루시는 유리아에게 그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학회의 마법사들이 싸우는 틈에 그들을 납치하란 말씀이십니까?”

[밤까지 기다리는 건 불가능하고, 그들이 맞서기 위해 움직이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루시는 목표물인 학회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전장으로 향하는 것도 이미 확인했다.

그들이 쳐들어온 교단 세력과 싸우는 틈에 납치하겠다는 것이 오직 자신의 계획만을 우선해 계산을 완료한 루시의 계획이었다.

“······알겠습니다.”

유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외출로 순간 잊어버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도시가 멸망하든 말든 사실 이제 그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자신의 진정한 임무를 다하겠다는 다짐을 새긴 유리아는 망토를 벗어던지곤 혼란을 틈타 은신해 루시가 알려 주는 지점으로 향했다.

“물러서지 말고 자리를 지키게.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진법이 깨지니까!”

그곳에, 다급한 목소리로 떠들며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는 한 중년의 마법사가 보였다.

“대체 교단 놈들은 무슨······!”

고위 마법사 파르체. 그는 수염을 파르르 떨며 움찔거렸다. 자신이 마법으로 지원한 아군과 싸우는 적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군에 공격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광인의 군대였다.

“계속 싸워라. 신께서 너희를 보고 계신다!”

특히 가장 거슬리는 것이 바로 갑옷 안에 사제복을 입은 사제. 황금빛 신성력을 폭발시키는 사제는 부상 입은 이들을 빠르게 치유시키며 계속 싸우게 만들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라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해도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망설이고 주춤거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교단의 병사들은 그것을 감수하고 오히려 죽기를 각오한 듯 미친 듯이 몰아쳤다.

“망설이지 마라. 죽음이란 곧 너희가 죄를 용서받고 그분과 함께할 수 있음이니, 장렬히 순교해라!”

“아무래도 저 미친 사제부터 잡아야겠다.”

질려 버린 파르체는 이를 악물고서는 지팡이로 독전하는 사제를 겨누었다. 화력이 강한 마법으로 한 번에 폭사시킬 생각이었다.

“아니······!”

그러나 쏘아진 마법은 사제에게 닿기 전 폭발하며 무산되었다. 검을 들고 마법을 막아 낸 존재는 성기사로 보이는 기사.

그 성기사는 오히려 도시 측 병사들을 베어 버리곤 곧장 파르체를 향해 돌진해 왔다.

‘끝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천천히 왔어야 하거늘.’

파르체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같은 인간임에도 일말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는 상대의 검이 단숨에 자신을 베어 버릴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이, 이게 무슨······.”

하지만 그의 몸이 베이는 일은 없었다. 파르체가 희미하게 눈을 뜨니, 반투명한 방어막을 불러내 기사의 검을 막아낸 누군가가 그를 보며 서 있었다.

현장의 모두가 경악한 이때 파르체는 코앞에 나타난 그녀를 보며 그녀가 순간 검은 갑옷을 걸친 기사인 줄 알았다.

‘기사가 아니다.’

다만 조금 집중해서 본 순간 그것이 몸에 걸친 갑옷이 아닌, 피부 조직이 변형되어 생성된 일종의 갑각임을 깨닫고 경악했다.

[목표물을 제외한 현장의 46개체, 모두 살인멸구하십시오.]

유리아가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루시는 그것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곧 루시의 명령에 따라, 유리아는 몸을 돌려 마법을 시전했다.

인간의 마법과는 사뭇 다른, 오직 루시만이 사용 가능한 특수한 마법. 일반적인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개량된 뇌를 가지고 있는 유리아 역시 가까스로 사용하는 그 마법이 당황한 교단 측 병사들을 향해 뿜어졌다.

[계량형 연산 마법ㆍ분산형 뇌전]

“끄아아악!”

“아아악!”

찰나의 순간 강심이 빛나며 뿜어낸 마력이 푸른 뇌전이 되어 부채꼴로 퍼져 나갔다. 빠른 시전 속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적들은 그대로 뇌전에 휩쓸려 산채로 타죽거나 터져 버렸다.

“이게 대체······.”

파르체는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이건 분명 자신이 알던 마법의 상식을 깨부수는 일이었다.

“대체 넌 누구냐.”

“알 것 없다.”

그는 조심스레 유리아에게 말을 걸었지만, 다시 등을 돌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의 목적은 그를 적들에게서 구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법사님!”

“으아악!”

곧 사방에서 은신을 풀고 스르륵 나타난 마왕군들이 파르체와 함께 온 이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단번에 그를 포위했다.

유리아에 비하면 훨씬 괴물 같은 그들의 생김새에 기겁한 파르체는 말도 잃은 채 허둥거리며 주춤거렸다.

“잠깐! 잠······.”

그가 다급히 소리쳤지만 유리아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쥔 뇌아귀ㆍ알파를 곧바로 그의 얼굴에 처박았다.

[이제 다음 목표를 향해 가십시오.]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아직 납치해야 할 마법사들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

“동쪽은 거의 정리되었고, 북동쪽 성문 근처 빈민가에서 벌어지는 전투가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그곳에서 벌어지는 놈들의 저항이······.”

“어쩔 수 없지. 최대한 빠르게 진압해야 하네.”

자폭 테러에 가까운 일방적인 습격, 하지만 당하긴 했어도 그것 하나만으로 무너질 만큼 인구 수십만의 도시는 약하지 않다.

상대는 미친 기세를 보여 주는 광신도로 구성된 부대지만, 결국 그리 오래 끌리지 않고 하나둘 진압되어 갔다.

이제 남은 건 빈민가로 숨어들어 항전하는 이들 뿐.

도시 측은 병력을 움직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계획한 11인 중 8인은 생포, 2인은 사망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 남은 대상은 고위 마법사이자 이 지역의 유지라던 알프레드 그리제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모습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는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알프레드······.”

유리아는 루시에게 그 이름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알프레드는 자신이 속한 의용대의 지휘관 중 하나였던 사람이자, 정의와 인정에 호소하며 그녀를 포함한 과거의 동료들을 설득해 의용대에 합류하게 만든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알프레드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그녀가 속한 의용군을 배신해 전공을 올릴 미끼로 써먹었고 그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유리아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

[그가 소수 병력과 함께 적들과 맞붙었습니다. 이것이 곧 기회이니 가서 대상을 잡아 오십시오.]

“지금 가겠습니다.”

덕분에 움직이기 시작한 유리아의 몸이 가볍다.

지금의 그녀에겐 오직 복수할 생각 뿐. 게다가 이제는 그 대단하다는 고위 마법사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저기 있다.’

괜히 기척을 냈다가 감지되지 않게 천천히 접근하는 유리아의 눈에 마침내 빈민가의 폐허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기서 그들 중 다른 이들의 보호를 받으며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사내가 하나 보였고, 그  익숙한 모습에 유리아의 눈이 번득였다.

“놀랐느냐. 여신께서 주신 힘이니라!”

그러나 그들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고함을 치며 최후의 발악을 시전하는 성기사의 돌진에, 그를 상대하던 기사가 결국 밀쳐져 뚫려 버린 것이다.

[알프레드가 죽기 전에 그를 데려오십시오.]

루시는 대상을 생포하기 위해 위기에 처한 알프레드를 구하라 명령했다. 당연히 유리아는 함께하던 병력들과 함께 다급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저건.’

하지만 그 순간, 유리아는 무언가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성기사에게 밀려 넘어진 젊은 기사의 얼굴은 그녀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비상 동작 실행.]

루시는 유리아의 마음이 강하게 고동치는 그 찰나의 순간 플랜을 수정해, 곁에 있던 마족형 베타와 감마 타입 병사들을 직접 움직였다.

그리고 유리아가 멍하니 굳어서 젊은 기사의 얼굴을 보고 있는 사이 병사들은 각각 모습을 드러내고 성기사를 포함한 이들을 기습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큭.”

직후 루시는 유리아의 뇌를 자극해 그녀를 강제로 각성시켰다.

그때서야 유리아는 위장을 풀고 앞으로 달려가, 마법을 폭사하여 오크ㆍ감마와 혈전을 벌이던 성기사를 산채로 태워 죽인 후 저항하던 알프레드의 면상에 뇌아귀를 박아넣어 잠재웠다.

“······!”

그때 결국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유리아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죽어 가는 사람들 틈에서 눈을 휘둥그레 뜬 젊은 기사의 눈이.

“마왕이시여, 부탁드립니다. 그는 살려 주십시오. 그는······ 제가 이곳에 두고 온 동생입니다.”

이를 악문 유리아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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