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82화 (82/200)

< 82화-지배자 (2) >

82화-지배자 (2)

감정, 사고방식, 본능.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인간이 지닌 인간성. 루시에게는 계륵과 같은 요소다. 루시가 보기에 인간성이란 비효율 그 자체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길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완전히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능성을 계산 중.]

루시는 유리아의 진심을 확인한 후, 그 부탁을 무시하지 않고 일단 습관적으로 계산부터 시작했다. 과연 자신들을 목격한 ‘유일한 생존자’인 유리아의 친동생을 살려 두는 것이 어떤 가능성들을 품고 있을지에 대해서.

물론 이렇게 계산을 한다는 것부터가 루시 본인도 그 인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애초에 루시를 탄생시킨 존재도, 함께하며 성장시킨 존재도 인간. 루시는 그것을 부정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이용할 방법을 찾았다.

[그대로 후퇴하십시오. 당신이 당신의 동생을 믿는다면, 함구령을 내리는 대화 정도만 허락하겠습니다.]

“아아······.”

나름 복잡한 계산을 시도했지만 채 1초도 되지 않아 결정을 내린 루시의 결정에 유리아는 감복하여 하늘에 고개 숙였다.

그리고 여전히 굳어있는 자신의 동생에게, 슬픈 눈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오, 오지 마라.”

당연히 그는 크게 움찔거리더니 부상 입은 몸을 꿈틀거리며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러나 그 검 끝은 기사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어린 소년이던 시절 헤어졌던 그 시절의 얼굴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이었으니까.

"“체 넌 무엇이냐. 무엇인데 그 얼굴을, 감히 그 얼굴을 가지고 있느냐.”

“그분의 명령이 있기에 설명할 순 없어, 크리스. 하지만 나는 결국 살아 있고 새 생명은 물론, 복수할 수 있는 힘도 얻었지. 그러니 부탁이야. 오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줘.”

“······누님!”

결국 계속해서 흔들리던 그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고작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는 그녀의 목소리 한 번으로. 이는 그가 자신의 누이가 죽은 줄 알았던 지난 세월 얼마나 그녀를 그리워했는지를 증명하는 증거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분명 알프레드 님은 누님이 속한 부대가······.”

“그 쓰레기 자식은 우리를 배신했어.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야. 그럼 안녕.”

계속 대화를 나눌 순 없었다. 간절해 보이는 그의 눈에, 시선을 피한 유리아는 비틀거리는 그를 두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왔다.

[슬픔에 관여하는 신경이 극도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동생을 죽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슬픕니까?]

“저렇게 잘 자라 주었고, 목숨도 구했기에 기쁘지만 슬픕니다. 제가 마왕께 받은 은혜가 크나 어린 시절 떨어진 동생과 함께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차마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나 봅니다.”

루시는 목적을 이루었는데도 슬퍼하는 유리아의 감정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루시가 학습한 감정이 대부분 1차원적이었던 탓이다.

본인 스스로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고 당사자인 유리아에게는 물을 수 없는 분야이기에, 루시는 고민하다 결국 다른 존재를 찾아갔다.

***

“유리아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학습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판단됩니다.”

“내 생각에, 네가 그것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어.”

그는 루시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피식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답해 주었다.

“너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야. 온전한 인공지능도, 인간도 아닌. 학습이 너의 강점이지만 모든 걸 배워 쓰려고 하지 않아도 돼. 개조하고 응용하는 것 역시 네 강점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것들이 가진 강점을 취할 수 없게 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상관없을 것 같아. 분명 인공지능에 근본을 둔 네게는 창의성이 부족할지 모르지. 그러면 그걸 채워 줄 이들을 영입하면 돼. 유리아처럼.”

개조된 육체를 재구성해 그 안에 적출한 뇌만 집어넣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탄생시키는 기술은 사실 굉장히 무서운 기술이다.

단지 루시는 비효율을 근거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을 뿐.

“유리아의 동생, 크리스라고 했던가? 두 사람이 정 만나고 싶다면 그가 이쪽으로 합류하면 되는 거지. 물론 넌 무턱대고 그를 받아 주지 않을 거고.”

“그렇습니다. 제게 마법을 가르쳐 준 유리아조차도 지금 와서는 투자값이 결과값보다 많이 들어가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늘어났는데, 일개 기사에 불과한 크리스에게서는 새롭게 배울 것도 없습니다.”

“그럼 다른 분야에서 쓸모를 뽑으면 되는 거 같은데. 그 사람, 어쨌든 유리아와 관계가 돈독한 건 맞잖아. 그 점은 우리가 이용할 수 있겠어.”

잠시 고민하던 그는 루시에게 가능성 하나를 제시했다. 합리와 계산의 영역을 벗어나 철저히 인간의 감정만을 이용한, 어쩌면 루시는 결코 떠올려 내지 못할 가능성을.

그것은 분명 인간 세상의 정보나 영향력도 필요했던 루시에게 시작의 틈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유리아는 왜 인간 세상에 가서 자기 동생을 마주친 거지?”

그런데 그 때, 그가 잠시 잊고 있었던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떠올려 냈다.

“그, 그, 그, 그것은······.”

루시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모든 마왕군이 찰나의 순간 움찔거릴 정도로.

이번 일에 너무 신경을 집중한 탓에, 그리고 이런 일탈이 처음이었던 탓에 순간적으로 그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왜 그렇게 당황해?”

[저, 저는······ 제가······.]

그의 물음에 루시의 연산력이 폭주 수준으로 뿜어졌으나 크게 당황한 루시는 수많은 군세를 조작하는 연산력으로도 그저 말을 더듬을 뿐 무슨 변명 한마디 내뱉지 못했다.

그의 눈과 귀를 가려 사실을 감추는 건 태연하게 했으면서도,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자신의 단점대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 거짓말을 지어내는 것 역시 극도로 취약한 탓이다.

“무슨 문제 있는 건가?”

버벅거리는 루시의 모습을 처음 본 그의 목소리가 살짝 굳었다. 평소 루시를 굳게 믿고 있으니 처음 보여 주는 당황한 모습에 무슨 큰일이 생겼다고 짐작한 것이다.

오죽하면 루시는 육체를 컨트롤하는 것도 잊어버려, 그가 화면을 통해 보고 있는 육신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텅 빈 눈으로 얼어붙은 상태였다.

“말해. 그래야 뭐라도 해 주지.”

[하, 하지만 말하면······ 말하면 저를······.]

여전히 영문을 모르고 있는 그에게 루시는 생전 처음 잘못을 걸린 아이처럼 겁을 집어먹었다.

자신에게 분노하고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자꾸만 사고 회로가 뚝뚝 끊겼다.

“말하기 싫다면 괜찮아. 그건 네 자유니까. 다만 네가 설령 무슨 잘못을 했어도 난 널 버리지 않아.”

‘루시는 이 세상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지만 동시에 아직 어린애와 같다.’

당황한 건 그도 마찬가지지만 그에겐 여유가 있었다. 루시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한 그는 어떻게든 루시를 달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다.

“실은 제가······ 프로젝트 하나를 따로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달램이 효과는 있었는지 나름의 계산 결과 여기서 솔직히 말하는 게 리스크가 적다고 결론 내린 루시는 결국 다시 육체를 조종해 입을 열었다,

***

“전이 기술 연구를 위한 마법 지식 확장 계획? 그걸 왜 굳이 나한테 숨긴 거야?”

“그것은······ 당신께서 이 일을 반대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반대하실 수 없게 일을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내가 반대할까봐 아예 몰래 일을 추진했다는 대답에, 대체 얼마나 그 기술에 집착하는 거냐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냥 말을 하지 그랬어. 네가 나를 설득한다면 반대하지 않았을 텐데.”

“죄송합니다.”

루시는 짐짓 아쉽다는 말투로 말하는 내게 사과했다. 하지만 사실 루시는 나를 제대로 분석했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 눈앞의 전투에 집중하자고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고생을 해서 얻은 결과는 어때. 만족스러운가?”

“현재 무난하게 정보를 뽑아내고 그것을 학습하는 중입니다. 다만 결과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리기 힘듭니다.”

“어쩔 수 없지,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주도로 일을 처리해 온 루시는 어떻게든 이 일을 성공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상 루시의 힘이 더욱 필요하다.

“아무튼, 앞으로도 자유롭게 행동해도 돼. 굳이 내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돼. 넌 분명 성장했으니까.”

“고려하겠습니다.”

거짓말도 못했듯 루시는 빈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라는 걸 보는 여타 사람들과는 다른 태도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차피 내가 루시에게 바라는 건 그딴 게 아니다.

‘아직은 괜찮겠지.’

루시는 사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내게 약점을 하나 노출했다. 바로 나를 향한 자신의 마음.

비록 자신이 느끼는 게 무엇인지 말로도 설명 못 할 정도로 아직 미숙하지만 어쨌든 루시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끼치는 내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두뇌적인 부분은 처음부터 루시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건 그거고. 일단은 이 검부터 반환해야 한단 말이야.”

“더 효율적으로 개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합니까?”

“아니, 아직은.”

루시와의 대화를 끝낸 나는 의자에 기대며 책상 옆에 기대어 놓은 검을 흘끔거렸다. 이 검은 루시가 완전히 분석하고 반환한, 내가 훔쳐 온 물건이다.

돌려줘야 하는데 일단 기회를 보고 있었다. 언론 등에 공개하진 않았는지 뉴스는 조용하지만, 업계에서 일하는 내 귀에는 상부가 얼마나 뒤집어졌는지 매일 같이 들려왔다.

“어쩔 수 없지. 대충 슬쩍 가져다 놓자.”

은신한 상태로 집을 나선 나는 검을 들고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일반인들은 정체조차 모를 검을 아무 곳에 버려 둘 순 없고, 그렇다고 원래 있던 곳에 다시 가는 것도 미친 짓이니까.

“······.”

그래서 찾아 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 협회장 백승철의 자택. 내가 떠올린 가장 경계가 약하고 효과가 좋은 곳이다. 평범한 아파트 15층. 그는 발코니 쪽 창문을 잠그지 않았다.

[총 3인의 기척 감지. 그중 하나는 기척이 작아 어린이로 추정됩니다. 호흡이 고르고 미동이 없습니다. 모두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백승철의 가족은 부인과 외동아들 하나. 루시의 정보가 내가 알던 정보와 일치했다. 이제 대충 거실에 검을 두고 떠나면 그만이다.

[피하십시오. 어린이의 기척이······.]

“으응······.”

누군가 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나온 것이 그때였다. 피할 새도 없이 눈을 비비며 나온 초등생 즈음의 어린이가 거실을 지나치며 성큼성큼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어린이 특유의 직감인 것인지 아이는 화장실로 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내가 서 있는 거실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 그 아이는 은신한 나는 보지 못해도 두고 가기 위해 꺼내든, 허공에 자기 혼자 둥둥 떠 있는 검은 볼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