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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83화 (83/200)

< 83화-지배자(3) >

83화-지배자(3)

“은성아!”

“이, 이게 대체 무슨...”

당연하게도 백승철과 그 부인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내가 검을 거실 바닥에 던져놓고 창문으로 몸을 던진 그 순간에.

[그래도 성공하긴 한 것 같습니다]

“던지고 오려면 대낮에도 가능했지. 물론 네 말대로 큰 상관은 없어.”

부부가 티끌 하나 다치지 않은 아이를 얼싸안는 모습을 본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내 행동으로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는 내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소식 들었어요. 잘 돌려주셨다고.”

“잘이요? 글쎄요.”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해서 이지연을 만난 나는 어제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잘 돌려줬다고 표현하는 그녀의 태연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과연 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사람답게 평소 성격도 어딘가 비범한 면이 있었다.

“제게도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진 않았지만 많이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럴 수밖에요.”

백승철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쓰게 웃었다. 확실히 역으로 생각하면 당황스러울 만 하다. 무력으로 시설을 습격해서 물건을 가져간 주제에 며칠 되지 않아 다시 자신의 집에 돌려주었으니.

물론 정체불명의 괴물이 가족들도 사는 집에 침입했으니 공포심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그가 두려움을 가지고, 나를 수색하거나 추적하는 걸 포기하길 바라며 그걸 노린 것이다.

“그런데...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오늘 알게 된 소식이지만 실은 그 검이 탈취 당하던 때 이 소식을 들은 미국정보부에서, 먼저 협회장님에게 다가왔다던데.”

“그들이 어째서.”

하지만 일은 내 예상과 살짝 다른 부분으로 흘렀다. 생각해보니 내가 모습을 노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리암 앤더슨, 분명 그가 내 모습을 봤었다. 그렇다면 관심을 가지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특히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전 분명 아무도 해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군요. 당분간은 모습을 숨겨야겠습니다. 일단은, 오늘 일부터 해치우죠.”

혀를 차고 차량의 시동을 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들은 날 찾을 수 없을 테니 별 상관은 없었지만 활동하는데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건 조금 거슬렸다.

***

“정말 당신도 공격 받았단 말입니까? 이, 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단순한 괴물은 아니지...대체 그 검에 무슨 볼일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놈에게 명확한 목적이 있다는 게 밝혀졌으니까.”

세상사람 대부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시작할 이른 아침. 그러나 보안 등급을 끌어올린 이곳에서는 어둑하고 진중한 분위기에서, 화면을 사이에 두고 다른 대륙에 떨어져 있는 이들이 소통하고 있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크흠, 걱정 마시죠 협회장님, 저희가 적극 협력할 것입니다.”

헛기침을 한 정보부의 요원이, 화면 속 리암의 말을 보충하며 백승철을 안심시켰다.

사실 그들도 딱히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식을 전해들은 리암의 의지가 너무 강했다.

“한국 정부는 우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니 오히려 당황한 모양이지. 대체 왜 그리 그 괴물에 집착하는 거지?”

대륙과 시차를 뛰어넘은 통신이 종료된 이후. 리암과 함께 본국의 기지에 있던 넬슨은 다소 피곤한 얼굴을 한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럼 내가 그 치욕을 당하고도 가만있어야 한단 겁니까?”

“그때 자네는 그 괴물과의 충돌을 예상하지 못하고 베헤모스들을 잡느라 무리해서 큰 힘을 썼다 하지 않았나.”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혀를 차며 선글라스를 내린 리암의 눈이 번득였다. 순간 기세에서 밀린 넬슨이 움찔할 정도로 그 기운을 숨기지 않았다.

‘그놈도 더 강해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행을 벌이며 돌아다니는 것이겠지.’

그날, 베헤모스 위에서 전투를 벌였던 그 순간. 리암은 자신이 오히려 출력에서 앞서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처절하게 깨져버린 것은 정말 순수한 실력의 차이. 몸을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 무기를 휘두르는 동작 하나하나 전부 차이가 극심했다. 마치 처음 싸워보는 초등학생과 베테랑 용병처럼.

“어디 가나?”

“머리 식히러 갑니다.”

리암은 결국 그 길로 기지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급하다 위기다 하면서 막상 여유들은 넘치는 군.’

밖으로 나온 리암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과속을 하며 내달리면서도, 막상 기분은 잘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마음이 풀리지 않아.’

지금 누리는 모든 영광, 모든 권리, 모든 재산. 모두 힘없고 불우하던 어린 시절 꿈에서나 그리던 것들이다. 하지만 리암은 막상 그것들을 모두 손에 넣은 지금도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 속마음에 강한 의문을 가졌다.

[알고 있지 않나? 지금의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그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구는, 미상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려 퍼진 게 그때였다.

“무슨 헛소리지?”

[내가 괜히 너와 연결된 게 아니다. 우리 사이를 이어준‘의지’는, 너의 본질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의지가 대체 누구냐고. 대체 누구기에 이 모든 일에 관여하고 있다는 듯 구냔 말이야.”

리암은 운전을 멈추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이 목소리의 정체는 그의 성좌를 자처한 존재. 하지만 리암은 이 목소리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영 탐탁찮아했다.

[이 모든 시스템을 지켜보며 동시에 다루고 조율하는 존재. 그 존재는 다른 이들에 비해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주시하고 있으며 그중엔 너 역시 포함된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넌 모르겠지. 그러니 넌 그냥 시키는 대로 따르고, 네가 원하는 걸 얻어 가면 그만이다]

“당신이 제안하는 그 미친 방식으로? 사람을 죽여서 말인가?”

[난 거짓을 말하지 않아. 넌 더 강해질 수 있다 리암 앤더슨. 피를 통해서]

리암은 코웃음을 쳤지만 상대는 늘 그렇듯 진지했고 결국 리암의 표정도 굳었다. 어차피 그가 원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고,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사실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너와 내가 맺어진 이후, 나는 다른 녀석과도 맺어졌었다. 그리고 그는 너와 달리 과감한 남자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지 보고 판단해라]

목소리는 태연하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리암은 그 말이 살인이 발생한다는 뜻임을 알았지만 굳이 막으려 들지는 않았다.

“다른 성좌들도 다 당신 같은가?”

[성향에 따라 다른 성좌가 맺어진다. 사실 우리는 너희를 도울 수많은 기능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

“대체 무엇을 위해서?”

[세상의 명운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달렸다고 거창하고 무슨 대단한 명분과 대의를 기대하진 마라. 누군가에게 이 상황은 그저 즐거운‘게임’일 수 있으니. 그 사실에 저항하고 불만을 가진다 해도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너는 그저 네 현실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다]

성좌랍시고 나온 존재가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리암은 그 말을 듣고 알 수 없는 눈으로 입을 닫았다.

‘진실이 무엇이든 바뀌는 건 없다는 건가.’

다만 분명 어지럽던 본인의 마음을 정돈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말이었다.

“변하는 건 없습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이 세상이 어떤 태도를 보이든 저는 오직, 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마계 전체를 청소하고 성장하여 그분을 돕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리고 여기, 리암보다 훨씬 이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움직이던 존재가 있었다.

“마왕님.”

“유리아. 그분께선 당신의 동생을 인간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다시 한 번 그에게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육신을 가지고.”

마계, 루시는 다소 심란한 상태로 복귀한 유리아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마신께서 직접 지시를...!”

“당신의 데이터를 이용해 생산한 인간의 육신. 앞으로 인간 세상에 다녀올 때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당신의 동생 크리스에게 접촉하십시오.”

루시가 유리아에게 보여준 것은, 목 아래로만 존재하는 한 나신의 여체로 해괴하지만 루시가 조종하는 다른 마왕군 개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루시는 이 육체에 유리아의 목만 바꿔 인간 세상에 침투시킬 생각이었다.

“그동안 저희가 인간 세상에 대해 수집하던 정보는 모두 다른 마족들을 통해 얻은 정보들 뿐. 가서 모든 정보를 수집해 오십시오. 안전을 위해 위장형 만능세포 군집체 나노·오메가를 당신에게도 주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유리아는 자기 목을 잘라서 몸을 바꾸겠다는 말 정도에는 이제 흔들리지도 않았다. 단지 루시의 의도에 놀랐을 뿐이다.

‘역시 마왕, 아니 마신께서는 마계의 배신자들  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는가.’

유리아는 그동안 마계에만 집중하던 루시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인간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마신, 즉 창현의 의지라고 생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왕으로 대표되는 마가 인간계를 침략하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법칙과 같았다.

동시에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에게 일부 인간들은 분명 복수의 대상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한때 진심으로 증오하고 싸웠던 마왕군의 첨병이 된 셈이니까.

“마왕님. 혹시 마법사들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셨습니까?”

그리고 그때서야 유리아는 이번 일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물을 수 있었다.

“분명 수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합니다.”

루시는 찰나의 순간 스캔한 데이터들을 정리하며 고개를 저었다. 특유의 기억력으로, 루시는 자신이 마법사들을 심문하던 광경을 티끌 하나 놓치지 않고 되돌려가며 분석하는 게 가능했다.

“이 기억은 유리아 당신이 보면 즐거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루시는 유리아의 원수였던 알프레드를 심문하던 데이터를 돌려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알프레드 그리제, 이제부터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주겠습니다.”

“히, 히이익!”

루시가 포로들을 고문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지하둥지 깊은 곳, 모든 마나를 빨려버린 상태로 꿈틀거리는 육벽에 파묻힌 알프레드는 자신에게 다가 온 루시의 모습에 기겁했다.

그 눈에 두려움만큼 혼란스러움이 넘쳐흘렀다. 마계의 마족들과 마찬가지로, 루시와 마왕군은 그의 상식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혹시 당신은, 마법적 지식을 활용해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그게 대체 무슨! 그게 애초에 말이 되는...끄아악...!!”

“당신의 뇌에 들어있는 뇌아귀를 통해 나는 당신의 신경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전부 알 수 있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마십시오.”

모든 서론을 생략한 단도직입적인 질문. 그가 대답을 망설이자 뇌에 잠든 기생충이 꿈틀거리고, 신경이 갉아 먹히는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고통에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그는 몸을 덜덜 떨었다.

유리아와 달리 루시는 그에게 원한이 없다. 유리아의 증오와 분노를 굳이 대신 이해하지도, 알아주지도 않았다.

단지 이렇게 그를 고통 주는 것은 효율을 추구한 결과일 뿐이었다.

“이, 잊힌 마법이 하나 있다고 들었다. 아니 들었습니다. 차원의 문을 여는 균열이동진이라는 마법이...하지만 그 마법은 그 사용법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럼 정말로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까?”

“어, 없는 건 아닙니다. 만약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오래된 종족이라면 어쩌면 누군가는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알프레드는 한 번 고통당한 이후 자신이 아는 모든 내용을 술술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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