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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88화 (88/200)

< 88화-지배자(8) >

88화-지배자(8)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누구보다 크게 놀란 것은 이 계획을 주도해 온 백승철과 국가 정보원 측이다. 상대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미리 받고 계획을 짠 만큼, 계획이 간파 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던 것이다.

“정말 별 일에 다 휘말리는군요.”

“나설 필요 없어요.”

이지연은 사태를 파악하고 얼굴을 굳히더니, 문을 열기 전에 그에게 몸을 숨기라고 전했다. 그가 다시 은신하는 순간 그녀는 문을 열고 다급히 뛰어 온 요원들을 마주했다.

“피하시죠.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단순한 상대가 아닌가 보네요.”

“가, 각성자가 섞여 있습니다.”

손에 권총을 들고 자꾸 뒤를 흘끔거리던 요원은 그녀의 직감에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성자란 말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괴물들과 맞서기 위해 부여된 힘을 꼭 괴물들을 향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데도 그것을 이용해 또 다른 이득을 보려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녀의 적은 괴물들만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 역시 그녀의 적이었다.

“지원이 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뒤에 비상구가 있으니 물건을 가지고 그리로 가십시오. 그곳엔 아무도 오지 않은 걸보니 상대는 그곳을 모르고 있습니다.”

[잠깐, 그들이 말하는 뒤쪽 비상구. 지금 그곳에도 미약한 마력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극소량이지만 이렇게 정적인 환경에서 나타난 변화는 분명 이질적입니다]

그때, 이지연에게 비상구로 탈출할 것을 권하는 요원의 말을 들은 루시는 자신이 감지한 사실을 그에게 보고했다. 루시의 말대로라면 비상구로 향하는 것은 상대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내가 가야겠는데.’

결단을 내린 그는 자신이 직접 먼저 뒤쪽 비상구로 향했다. 적어도 이지연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기습당하지 않도록.

‘...어디 있지?’

하지만 모습을 숨긴 상태로 조심스럽게 비상구로 향한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무런 기척도 없는 어둑한 공간뿐이었다.

[저희처럼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찾을 수 있습니다]

탐지 마법으로도 감지 불가능한 매우 미세한 마력이지만 상관없다. 루시는 상대를 감지하기 위해 나노·오메가의 몸을 약간 변형시켰다. 그동안 루시가 수집한 생체 데이터에는 수많은 종류의 감지 및 감각 기관들 역시 포함된다.

공기 중에 발산되는 미세한 마력을 감지하는 마수종의 기관 역시 마찬가지, 곧 나노·오메가는 해당 기관을 이용해 마력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탐색 완료]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은신한 상태로 몸을 숨기고 있는 상대를 찾아내었다. 정작 상대는 자신처럼 몸을 숨긴 창현을 찾지 못하고 문을 넘어 올 이지연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즉시 처리합니까?]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해.”

“!!!”

결국 루시의 질문에 그가 대답하는 순간.

모습을 드러낸 그는 갑작스레 허공에 울리는 자신의 대답소리를 듣고 기겁한 상대를 향해 곧장 강한 전격 마법을 뿜어내었다.

“아아악!!”

정말 최소한의 전깃불만 들어오고 있는 어둑한 공간에 섬광과도 같은 전격이 터지며, 단번에 은신이 풀린 상대는 감전당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생각보다 타격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가진 미상의 힘에 의해 마법이 상쇄된 것 같습니다]

“상관없잖아. 가자.”

최소 기절을 상정하고 쏘아낸 공격인데 나름 수준이 있다는 듯 상대는 고통스러워 할 뿐 견뎌내었다. 물론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 전에 추가타를 먹여, 제압하면 그만이니까.

“누, 누구야. 흐아악!”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상대는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는 듯 본능적으로 주먹을 질렀으나, 어둠속에서 꿈벅이는 큼직한 외눈을 보고 움츠러드는 바람에 주먹을 맞추지 못했다.

그 틈을 노린 그가 텅 빈 몸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정강이에 얻어맞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터진 몸은 수 미터를 날아가 땅에 처박혀 몇 바퀴를 굴렀다.

“됐어. 이제 다시 숨자.”

[은신하겠습니다]

이 소란을 듣고 뒤에서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다시 모습을 숨겼다. 달려 온 요원들과 이지연은 찰나의 순간 생겨난 전투의 흔적들과, 신음하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외국인의 모습에 경악했다.

‘오늘은 틀렸다.’

거기까지 본 그는 그냥 자리를 떴다. 그가 벙커 밖으로 나온 순간, 다급히 달려온 지원 병력들이 그를 지나쳐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마력 출력을 기반으로 한 제 계산대로라면 방금 전 그 습격자 하나로는 이지연을 이기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왜 그런 선택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슨 수를 쓰거나, 아니면 계산을 실수했을 수도 있지. 보통 사람들은 너처럼 정확하게 계산하려 하지 않고, 하는 것도 불가능해. 네가 짧은 시간 쌓아 온 경험은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니까. 넌 모든 경험이 다 네 것이잖아.”

은신을 풀고 몸에 두른 나노·오메가도 풀어버린 채 바로 옆에 있던 도시에 돌아 온 그는, 공용 벤치에 주저앉았다.

바로 근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도시의 시민들은 그저 태연히 자기들 일을 할 뿐이다.

“예상은 했는데 벌써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까딱 잘못하면 더 귀찮아지겠는데?”

이지연을 통해 루시의 힘을 일부분 풀어 세상에 공개한 순간, 이지연에게 세상의 이목이 집중될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이목에 불순한 것이 섞이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괜히 미안해지네. 이건 그냥 나 편하자고 한 일인데.”

[하지만 저희가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루시는 당연히 그를 감싸며 이지연을 방패삼는 게 맞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냥 힘없이 웃었다.

[...역시 하루 빨리 세상의 벽을 넘을 방법을]

그런 모습을 본 루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면의 열망을 더 강하게 불태웠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넘어간다면 그의 적들을 자신이 전부 다 죽이고 먹어치울 수 있을 테니까.

[엘프 영웅 라온]

“그렇습니다. 크리스가 말하길 라온이 머지않아 연합군 병력과 함께 이 근방을 지난다는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를 공격하기 위해 교단도 이곳과 가장 가까운 자신들의 영토로 병력을 보냈다고 합니다.”

마침 유리아에게서 한 가지 정보가 들려온 것이 그때였다. 유리아를 미리 보내놓지 않았더라면 놓쳐버렸을 정보였다.

***

“분명 알프레드는 엘프 같은 오래 된 이종족이 제가 원하는 해답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루시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계산을 돌렸다. 대전쟁에서는 성녀와 함께 싸운 영웅 중 하나인 라온은 현재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성녀에 반대해 연합군으로 싸우는 상태.

그리고 그는 현재 인간계에서 활동하는,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엘프다. 실마리를 잡기 위한 유일한 단서란 뜻이었다.

“하지만 현재 중부 지역 영주들과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데...”

루시는 순간 갈등했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병력 일부를 빼서 인간세상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계산 결과 중부지역 영주들과의 전쟁으로도 전력이 빠듯했으니까.

게다가 인간세상으로 자신의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를 전 세상에, 특히 교단 세력에게도 노출한다는 뜻.

루시는 차마 계산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자신의 욕망과 효율적인 자원 운용 등이 변수 그 자체가 되어 루시를 괴롭혔다.

“난 괜찮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이제 슬슬 널 만나는 게 중요해진 것 같아서.”

결국 루시는 이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았고, 그는 의외의 답을 해주었다.

“네가 라온을 납치함과 동시에 교단 세력도 공격하면 균형을 맞출 수 있겠지. 마계 영주들을 포함한 연합군이 타격을 입겠지만 네가 교단을 공격해서 그 균형을 맞춰주는 거야. 말했듯 그들의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이득을 보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희 쪽 전력도 약화됩니다. 일단 대산맥 부근, 그들의‘장벽’을 넘는 것부터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장벽은 오랜 세월 마계와 다퉈온 이들이 만든 거대한 요새. 지금의 마계영주들이야 연합군의 일원이니 그 장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대전쟁 이전만 해도 마족들은 그 벽을 넘는 것을 숙원으로 삼았다.

“...결국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장벽을 넘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그것도 지금처럼 소규모가 몰래 넘나드는 게 아니라 대규모의 병력이. 하지만 루시의 마왕군에는 아직 그런 기술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지금까지 그 어떤 마왕도 장벽을 공격하지 않고 넘은 적이 없었다.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데이터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는 루시는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가 자신이 나서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자신도 확신하지만 못했지만 어차피 이런 비슷한 상황을 계속해서 겪으며 지금까지 온 것이니까. 이것이 그가 루시를 위해 하는 일이었다.

“거대 부유생물체 아일랜드라. 결국 이것도 부탁하는 수밖에 없는 거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인터넷을 뒤지던 그는, 마침 자신의 의도에 딱 맞는 소식 하나를 발견했다.

[하늘을 나는 초거대 비행종]

“이번에 공략에 실패한 대형 던전에서 발견된 아일랜드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섬과 같은 생물체라고 써있네. 영상도 있어. 크긴 크군. 베헤모스와 비슷해. km급 괴물이야.”

그는 루시에게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알려주었다. 루시는 하늘을 나는 거북, 혹은 게와 비슷한 그 생물체를 보며 이내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저 생물체를 베이스로 개조한 초거대종에 병력을 실어간다면 장벽 자체를 넘어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봐야지. 설마 저런 거대종이 하늘을 날아 병력을 실어올 줄은 아마 상상도 못하겠지?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우리 정체를 모르는 사이 최대한 움직여야겠어.”

베헤모스를 통한 초거대종의 실험은 이미 완벽하게 끝났다. 그는 루시에게 어떻게든 표본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루시가 그것을 바탕으로 또 한 번의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다.

“충분히 가능할 거 같아요.”

“미안합니다. 아직 수습이 안 끝났는데 이게 시간제한이 있는 일이라...”

하지만 전적으로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다시 이지연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표면상 창현도 모르게 진행된 던전 코어 활성화 작업 및 테러 사건이, 아직도 수습이 끝나지 않고 질질 끌리는 와중이었다.

“침략해오는 끔찍한 괴물들을 처단하는 일, 그리고 창현씨를 돕는 일 모두 제가 원하는 일이니 괜찮아요.”

그러나 이지연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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