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91화 (91/200)

< 91화-난입(1) >

91화-난입(1)

“본대가 지금 적들과 충돌한 것 같습니다.”

“놈이 옵니다! 북서쪽 하늘에!”

차량에서 다급히 내린 사람들이 모두 저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순간은 다른 곳에서 어떤 싸움이 벌어지든,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든 다 잊을 수밖에 없다.

하늘을 갈로질러 날아오는 거대한 무언가. 전설 속에나 나오는 천공섬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지느러미나 튀어나온 얼굴 등 살아있는 생물체라는 점을 알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군대의 포격이 몇 발 날아가 꽂혔지만 그 거대한 몸집에 걸맞게, 침략종 아일랜드는 조금의 타격도 없이 그대로 전진만 할 뿐이다.

“저놈은 아직까지 게이트 등에서 나타난 적이 없지만, 만약 밖에서 나타난다면 피해가 엄청나겠죠. 그러니 저희는 저런 놈들이 현실에도 등장하기 전에, 어떻게든 더 힘을 쌓아야 합니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간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무력하게 당하는 것이야말로 제일 억울한 일 아니겠습니까.”

데릭은 멍하니 아일랜드를 바라보는 이지연을 흘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드넓은 자연과 괴물들, 눈앞에 펼쳐진 압도적이고 위압적인 광경에 어느 정도는 그 본심이 드러난 말이었다.

“...”

정작 이지연은 그 말에 별로 반응이 없고, 곁에 있던 오진혁만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 볼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저 괴물에게 다가가죠?”

“방법이 있죠. 헬기 따위보다 더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

눈앞의 적에만 집중하려는 이지연의 물음에 씩 웃은 그는, 자신의 부하 하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오비, 이 녀석이 가진 능력으로 우리 모두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비라는 이름의 왜소한 사내는 씩 웃어 보이며 자신의 힘을 끌어내었다. 일정 지대를 덮는 가벼운 힘이 퍼져나가더니, 그 안에 있는 이들의 몸이 일제히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아일랜드의 등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제물을 수확할 것이다.’

깜짝 놀라 서로 붙잡은 채 불안한 눈으로 점점 멀어지는 땅을 바라보는 이지연과 오진혁을 바라본 데릭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이지연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던 그 누구도, 지금 자신들의 뒤에 위장술을 펼친 누군가가 날개를 펼친 채 쫓아오고 있음은 눈치 채지 못했다.

“아일랜드가 본대를 급습할 때까지 남은 시간, 30여 분!”

“오비, 가장 가까운 위치에 착지해. 시간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다가가니 만나게 되는 그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동시에 뿌연 연기 같은 괴물 다수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그들을 요격하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은 몸 대부분이 영체로 이루어진 괴물 스팀고스트 다수, 아일랜드 역시 자신에게 오는 적을 인식한 것이다.

“이, 이 상태로는 못 싸워요!”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요. 내려앉을 때까지 버틴다!”

이지연은 뭐 하나 디딜 수 없는 다리를 버둥거리며 외쳤지만 데릭 역시 다급한 건 마찬가지. 그나마 그들은 오비의 힘이 다하기 전에 가까스로 아일랜드의 끝자락에 상륙할 수 있었다.

km급 생물의 등갑 위는 마치 하늘에 맞닿은 평평한 황무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런 광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일단은! 싸웁시다! 물자를 지켜야 하니까!”

몰려오는 괴물들을 막기 위해 최대한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고 싶었던 그들은 앞으로 달려 나갔고, 당연히 곧바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오직 앞에서 오는 괴물들만 상대하느라 다른 곳은 신경 쓰지 못할 그런 치열한 전투였다.

‘아직이다. 지금은 놈들이 너무 많아. 놈들이 좀 줄어든 이후에, 조금 더 완벽한 때를.’

자신의 무기로 선택한, 가드에 붉은 광석 하나가 붙은 큼직한 대검을 든 데릭은 이지연과 함께 전열에서 싸우며 타이밍을 쟀다.

적들을 쳐내고 밀어내며 때로는 찍어버리는 그녀의 방패는 분명 든든한 철벽이었으나 그만큼 그 뒤는 텅 비어있다. 아차하는 순간 단번에 그 목을, 등을 공격해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놈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방심하진 맙시다. 분명 중심부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놈들이 있으니. 그리고 그 중심부에 위치한, 아일랜드의 진짜 입 속에 가져 온 폭약을 넣어 터트리는 게 우리 임무니까.”

그리고 그 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륙한 그들을 쳐내기 위해 몰려들던 괴물들이 그들의 수비에 막혀 한 발 물러선 순간.

데릭은 그 순간을 자신의 기회로 보았다.

“무슨 짓이죠?”

“이럴 수가. 그래도 설마 이걸 반응하다니.”

강한 바람을 동반한 충격파에 저릿거리는 손을 움찔거린 데릭은 히죽 웃었다. 이지연이 전력을 다해 휘두른 그의 공격을 감지하고, 방패를 들어 방어한 것은 사실 운에 가까웠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타이밍이 그가 검을 들어 올린 때와 겹친 덕이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이야. 앞으로 이 세상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고. 그런데 사실, 원래 이 세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항상 그래왔어. 약하면 그저 당할 뿐이지. 강한 힘이 있어야만 위협에 저항할 수 있다고. 저항조차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것처럼 비참한 게 없거든.”

“그, 그게 대체 이거랑 무슨 상관이죠!?”

“원리는 간단해. 당신 같이 강한 각성자를 죽여서 나는 강해질 수 있다. 그것이 내 성좌랍시고 찾아 온 존재가 내게 준 기회니까. 그런 기회를 걷어차면 천하의 멍청이지.”

당황한 이지연에게 웃으며 답해 준 데릭은 대검을 들어, 그녀가 아니라 옆에 있는 오진혁을 겨누었다.

이미 오진혁은 그의 부하들이 겨눈 무기들에 휘감겨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성좌가 그런 존재였다고요? 그럴 리가, 성좌는 분명 각성자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내게는 아주 큰 도움이니 맞는 말이군. 물론 다른 이들도 그럴지는 나도 모르지. 어쨌든 저항을 포기한다면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줄 테니까, 무기 버려.”

데릭은 항복을 권했고, 이를 악문 그녀의 눈은 격하게 흔들렸다. 생전 처음 당해보는 상상조차 못했던 배신이었다.

“당신과 함께 싸우다 죽은 동료들. 그들도 결국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내 손에 죽었지. 그리고 그 피를 값으로 치뤄, 그 이상의 괴물들을 쳐 죽였고. 오늘도 마찬가지야. 너희 둘을 죽이고 대신 이 던전은 내가 확실히 끝내주도록 하지.”

부들거리는 그녀를 보며 태양을 등진 데릭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이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지금, 흔들리던 이지연은 어느새 감정을 다스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눈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분노로 떨리던 몸도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분명 미리 예측했었어.’

희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데릭 패거리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며 수상하다고 전했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승리를 확신하며 자신을 보는 그들의 눈빛에, 이지연은 정면으로 맞섰다.

“이런, 결국 끝까지 싸울 생각이라면 너무 냉철한 거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은 데릭은 큰 충격으로 얼어버린 오진혁을 흘끔거렸다.

그러나 그 순간.

“어?”

그들을 향해, 분명 아무것도 없는 뒤쪽 허공에서 강렬한 전격 마법을 뿜어져 내렸다.

***

“진혁이가 다치면 안 돼!”

[전류 각개 조작 및 계산 실행]

급한 대로 마법을 사용한 순간, 나는 그들에게 인질로 잡힌 오진혁을 떠올리고 경악했다. 그러나 루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뿜어낸 전격을 하나하나 조작하여 오직 적들만 타격할 수 있게 바꾸었다.

“무슨...!”

“으아아!”

감전되어 타죽지 않은 이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패닉에 빠졌고, 이지연은 나를 보자마자 앞으로 내달려 당황한 데릭에게 덤벼들었다.

“커헉...”

그녀의 방패가 데릭의 검을 쳐내고, 그 몸을 강타해 넘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내지른 발차기에 그녀 역시 배를 얻어맞아 피를 토하며 바닥을 굴러버렸다.

“괴, 괴물...!”

“루시, 그냥 이 상태로 네게 전송시키는 게 낫겠다.”

나는 날개까지 펼친 내 모습을 보고 기겁하는 용병들을 제압하며 계획을 바꾸자고 루시에게 통보했다. 이지연과 오진혁이 더 다치기 전에 그들을 구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일랜드 위에 있는 이들은 까마득한 지상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두 사람만 구하면 그만이야.”

[그렇다면, 전송 실행]

루시는 내 말대로 곧바로 전송을 시작했다. 너무 커서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동안 버티면 그만.

나는 이지연이 비틀거리며 오진혁을 감싸 안는 것을 보고, 아직 정신이 붙어있는 적들에게 덤벼들어 손에 든 검을 휘둘렀다.

강심에서 터져 나오는 마력이 휘감긴 검은 각성자의 이능력을 뚫어 부수고 베어낼 수 있다.

“이 미친 괴물놈이...!”

곧 자리에서 일어난 데릭도 고함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과연, 사람을 잡아먹고 강해진다는 말답게 그의 검은 파괴적이다. 각성자가 되기 이전부터 전장을 구른 용병이라더니 힘만 세지 기본조차 없던 리암에 비해 검을 다루는 것도 나름 날카로웠다.

[그래봤자 하급 오크 기사 수준입니다]

그러나 루시는 그의 검술에 귀엽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단 3합 만에 그의 검을 쳐내고 반으로 베어버렸다.

“잠...끄악..”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손에 든 검을 투척하여 그의 다리를 깊게 베어버렸다. 본래라면 다리가 통째로 잘려나가야겠지만 그 강인한 신체 덕에 베이는 것으로 끝났다.

“자, 잡아 죽여. 멍청하게 자기 무기를 던졌으니 곧...”

그는 고통에 끙끙거리며 자기 부하들에게 나를 잡으라고 명령했다. 실제로 적들은 아직 여럿이 남아있었지만 나는 그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이지연과 오진혁을 향해 뛰었다.

그들은 내 이런 행동을 보고 내가 도망간다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도망간다! 잡아!”

“어딜...어?”

[전송 완료]

그 순간, 나도 그들도 딛고 있는 땅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 거대한 생물인 아일랜드가 루시가 있는 마계로 전송된 것이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마치 세상이 꺼지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아...”

마찬가지로 그 감각을 느꼈는지 추락 직전 내 손아귀에 목덜미를 잡힌 이지연이 외마디 탄식을 내뱉더니, 비명을 지르며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저 밑으로 추락하는 데릭의 용병단과 괴물들을 바라보며 자기가 붙잡은 오진혁을 더 세게 품에 끌어안았다.

아무리 각성자라도, 아무리 튼튼해도 여기서 추락했는데 멀쩡할리가 없다. 심지어 저 아래는 적들의 소굴이나 마찬가지니까.

[표본으로 삼을 아일랜드가 이곳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계획대로, 사냥을 시작합니다]

“일단 우리 멀쩡한 곳에 내려주고.”

동시에 루시는 이곳에서 전송한 아일랜드를 받게 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