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난입(8) >
98화-난입(8)
“이런 미친, 급하게 부르던 이유가 있었구만.”
아직 찬 공기가 다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그날 오후 있을 작전을 위해 일찍 출근해 모였다가 비상 연락을 받고 뛰어 온 고준혁과 그 팀원들은 통제 구역 내부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총성, 괴물의 울음소리 등을 듣고 기겁했다.
“정지! 지금 이곳에······.”
“도우러 온 거니 들여보내 주쇼, 빨리!”
고준혁은 패닉 상태로 실탄이 든 총을 들고 뛰어 온 군인에게 신분증을 보여 주며 어서 길을 비켜 달라 요청했다.
“어서 이쪽으로!”
군인은 그와 함께 온 이들의 신원이 각성자임을 파악하고 곧바로 길을 비켜 통제 구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미 예비대까지 나서서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다들 들었죠? 다들, 무리하지 맙시다.”
중사 계급장을 붙이고 있던 그 군인은 멀어져 가는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백미러 너머로 보이는 그 모습을 보며, 긴장한 얼굴로 차량에 탑승해 있는 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현실은 창작물과 다르니, 각성하여 초인이 되었다 한들 이지연처럼 신념과 사명감을 가지고 앞장서서 싸우는 각성자는 극소수였다.
설령 막대한 보수를 준다 해도 거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나마 타협하여 싸워 본다 해도, 당연히 거부감과 두려움을 가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장님 말이 맞아. 최대한 막으면서, 지원 기다리는 쪽으로 갑시다.”
그들의 리더를 맡고 있는 중년 사내 한 명이 차량에서 하차하기 직전 고준혁의 말에 동조하여 입을 열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들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정말 최소한의 의무만 다하며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할 생각이었다.
‘하, 할 수 있어. 적당히 보조만 하면서······.’
당장 어제 그들에게 합류한 신입, 김서윤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소녀 가장으로 살아오며 몸이 아픈 동생을 부양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도움이 되기 위해 싸움을 택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죽거나 다치면 본말전도다. 반드시 무사히 살아남아야 했다.
“놈들이 온다! 다들 자리 잡아!”
통제 구역은 도시 교외 지역으로, 도로와 건물 몇 개가 전부인 곳. 그런 곳에 나타난 끔찍한 괴물들은 두턱아귀라는 이름이 붙은 괴물들로, 기존에 있던 각성자들과 군인들을 공격하던 놈들중 일부가 쩍 벌어지는 이중 턱을 딱딱거리며 새롭게 합류한 그들에게도 덤벼들었다.
‘진짜 괴물.’
그 모습을 본 김서윤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도 몸을 덜덜 떨었다. 직전까지, 아니 어제까지 회사에서 받은 계약금으로 생전 처음 비싼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며 보내던 시간이 마치 꿈과 같았다.
저 멀리 보이는, 분명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도심지의 마천루와 타액을 질질 흘리며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지옥의 괴물들이 공존하는 광경은 가히 기이함 그 자체.
“정신 차려!”
순간 멍한 상태로 얼어 버린 그녀는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를 내리쳐서야 가까스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네 힘을 써. 네가 정신 못 차리면 누군가 죽고 다친다!”
그녀의 뒤통수를 가격한 사람은 팀의 리더였다. 그의 호통에 그녀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현했다.
[봉인·행동]
그녀의 마력이 꿈틀거리는 순간 달려오던 두턱아귀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키 2m에 달하는 근육질 괴물들이, 달려오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린 해괴한 광경.
하지만 김서윤의 팀원들은 그 즉시 놈들을 공격하여 무력화시켰다.
“잘했습니다. 그, 뒤통수 때린 건 미안하고.”
“아니에요. 덕분에 정신 차렸어요.”
리더는 행동을 봉인당한 적들이 수월하게 처리되자 한숨을 내쉬며 김서윤에게 사과했다. 여전히 뒤통수가 얼얼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녀의 역할이 막중함은 사실이니까 그만큼 책임도 크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여기서 시간 끌고 싶지만 일단 다른 이들에게 합류하죠.”
리더는 팀원들을 데리고 아직 싸우고 있는 다른 이들과의 합류를 시도했다. 전투의 흥분으로 두려움을 억누른 팀원들은 그 명령대로 이동을 시작하며, 김서윤을 둘러싸고 그녀를 지키는 모습으로 진형을 짰다.
“다시 온다!”
“이대로만 하면 돼. 자리 지키고 긴장 풀지 마.”
그리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전투가 벌어졌다. 두려운 만큼 신중한 그들은 어쨌든 침착하게 싸워가며 괴물들을 쓰러트렸다. 이렇게만 계속 싸운다면 다른 지원이 없어도 게이트를 무사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건 뭐지?”
두턱아귀 이외의 괴물이 등장한 게 그때였다.
“사, 사람인가?”
그것도 지금까지 세상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이.
김서윤과 팀원들은 눈앞에 나타난 적을 보고 긴장을 끌어올렸다. 전신을 마치 갑옷과 같은 암갈색 갑주로 두르고 날카로운 가시와 칼날이 달린 4개의 갈고리 발을 가지고 있는 그것은, 이족보행을 하는 투구벌레나 딱정벌레를 닮았다.
“상태창이······.”
“저놈을 잡으면 S급 보상을 준다고 떠. 다들 그래?”
상태창을 확인한 이들이 하나같이 기겁했다. 새롭게 갱신된 임무는 바로 눈앞의 적을 처치하라는 내용. 그러나 그 보상이 최고 등급이었다. 즉, 지금 그들 앞에 나타난 저 괴물이 그 보상에 맞먹는 난이도를 가진 적이라는 뜻이다.
“진정하고 다들 뒤로 물러나자.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이3···.”
그들의 리더 역시 당황하여 일단 팀원들을 뒤로 물리려 했다. 그러나 그는, 미처 말을 끝내지 못했다.
“팀장님.”
김서윤은 얼굴에 튄 핏방울에 눈을 깜빡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물러나자 권한 그의 목을 관통한 큼직한 가시. 일격에 숨이 끊어진 그가 뜬눈으로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순간 김서윤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
“······아악!!”
먹먹해진 귓가에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퍼지며 적이 땅을 부수며 달려오는 모습이 눈앞에 천천히 펼쳐졌다. 갑각 사이에서 번득이는 붉은 안광에는 일말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으며, 거침없이 동료들의 몸을 베고 갈라 버리기 시작한 갈고리 팔에는 오직 살의, 증오, 분노만이 담겨있었다.
***
“신종 마물이라고요?”
“네, 전 세계 그 어디서도 보고되지 않은, 그리고 강력한.”
이지연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 긁히고 베여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 그리고 전투가 벌어졌던 일대는 말 그대로 반파되었다.
아스팔트 바닥은 전부 뒤집어지고, 카페 건물은 반 이상이 무너져 내린 데다 두꺼운 가로수들은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고 쓰러져 있었다.
“보통 강력이 아닌데, 이 정도는. 제가 상대했던 그 어떤 괴물 놈들보다 강했어요. 그리고 조금 달랐죠.”
그때 근처에서 기자들과 이야기하다 다가 온 젊은 청년이 우리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서창혁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이지연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손에 꼽는 각성자. 그런 그가 이지연과 함께 싸워 가까스로 막아선 적은 쓰러트리지도 못하고 게이트 너머로 도주했다.
“조금 달랐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음, 지금까지 막무가내로 이빨만 들이미는 괴물 놈들과는 달리, 수 싸움을 시도하는 게 마치 사람과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거.”
그는 내 질문에 피식 웃으며 답해 주었다. 사람과 싸우는 것 같다라, 꽤 오묘한 답변이다. 주변 눈치를 보는 바람에 이지연을 따라가지 못하고 후방에서 대기하느라 미처 직접 보지 못한 게 실수다.
“돌발 게이트와 던전 이후로 사람들이 슬슬 적응한다고 생각한 걸까요? 이 미친 게이트가 지금까지 하던 대로 또 난이도를 올리려 하는 것 같은데. 저런 놈들이 빈번하게 등장하면 진짜 큰일인데요.”
“그, 그러면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을 텐데.”
그의 추측에 이지연이 기겁했다. 덩달아 내 얼굴도 굳었다. 물론 내 얼굴이 굳은 이유는,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목표물인 김서윤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생각을······ 좀 해 보고.”
잠시 그들에게서 멀어진 나는 루시와 통화했다. 우리 목표였던 김서윤은 죽지 않았다. 비록 그녀의 팀원들은 몰살당했지만, 비록 한쪽 다리와 양 팔을 모두 잃고 과다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아직 살아서 병원에 있다.
하지만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미 의사는 그녀의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선택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어. 루시, 네 계산 결과는 어때. 이미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김서윤을 유리아처럼 완전한 아군으로 포섭하면 그 가성비는 효율인가 비효율인가.”
[계산 중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를 이용할 방법을 생각하는 나는 미친 건지 아닌지 이제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다.
[계산 결과, 54%의 결과로 김서윤의 포섭이 의미를 가진다는 가설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자, 병원으로.”
그리고 결국 결과가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김서윤의 의사는 묻지 않은 일방적인 결과가.
***
“······.”
이곳은 서울에 위치한 한 대형 병원. 나는 이 늦은 밤에 홀로 이곳을 찾았다. 당연히 정식으로 방문한 것이 아니다. 나노·오메가로 몸을 덮은 채, 은신한 상태로 담을 넘어 당직을 서던 의사 곁을 딱 붙어 내부로 침입했다.
이미 그녀가 있는 위치는 알고 있다. 그 누구도 모르게 중환자실에 침입한 나는 문 앞에서 울다 지쳐 잠든 그녀의 어머니를 슬쩍 지나쳐 그녀의 침대 앞에 섰다.
실물을 처음 보는 김서윤은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은, 왜소한 체격의 여인이다.
“전송해.”
그녀를 내려다본 순간 마음이 살짝 흔들렸지만 망설임 없이 루시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점은 루시를 본받아, 한 번 결정한 사항은 멈칫거리는 일 없이 밀고 나가고자 한 것이다.
[전송 시작.]
동시에 루시가 힘을 움직였다. 거대한 괴수인 베헤모스나 아일랜드도 전송하는 루시가 고작 160cm 짜리 사람 하나 못 옮길리는 없으니, 곧 김서윤은 몸에 부착한 의료 기기들을 내버려 두고 어딘가로 슉 사라져 버렸다.
“무, 무슨 일이죠!?”
“이런 미친! 환자가 사라졌어!”
당연히 주인 잃은 의료 기기들이 내뱉는 경보음을 들은 의료진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구석에 은신한 나를 보지 못하고, 휑해진 침대를 보고 경악하며 혼돈에 빠졌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어쩔 줄 모르는 김서윤의 어머니도 있다. 차마 그 얼굴을 보지 못한 나는, 그대로 문을 빠져나와 그대로 병원을 탈출했다.
“과연 그녀의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라도 딸이 살아남길 바라려나.”
[모성애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데이터가 부족한 거 같네. 하긴, 나도 잘 모르는데 너도 아직은 모르겠지.”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루시의 어설픈 학습의 결과를 듣고 피식 웃은 나는 그대로 집으로 복귀했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났고, 바톤은 저쪽 세상에 있을 루시가 이어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