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군단 (1) >
101화-군단 (1)
“불가능한 추론은 아닌가?”
모습을 숨긴 나는 잠시 행동을 멈췄다. 생각해보면 저들이 여기서 대기하는 것이, 개연성 없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이지연은 국가와도 긴밀하게 협력하는 협회장 백승철을 통해 국가 기관은 물론 외국 세력까지 나노·오메가를 착용한 내 정체를 캐고 다닌다고 했다.
검 하나 잘 쓰고 다시 가져다줬는데 왜 이렇게까지 캐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김서윤의 실종 사건을 내 짓이라고 찍었고, 실제로 그게 들어맞은 것이다.
[처리하겠습니다.]
“일을 더 키우는 짓이야. 어차피 제대로는 모르고 있을 게 뻔해. 이번에도 그냥 한 번 찍어보고, 김서윤 씨 주변 사람들 옆을 지키고 있어 보는 것뿐이니까. 얼마나 저렇게 버티고 있을까? 한 일주일? 나중에 다시 오면 그만이야.”
혀를 찬 나는 몸을 돌렸다. 들키지 않을 자신도, 설령 충돌이 벌어지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까지도 있었지만 괜히 구실을 주기 싫었다.
그들이 밥 먹고 나만 쫓아다니는 것도 아닐 테니 적당히 잠적하면 제풀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이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시간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살짝 거슬리는 것도 사실. 할 일 많은 양반들이 왜 이런 무의미한 일에 집착하고 시간을 낭비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제길, 동이 트는데? 아무래도 사각지대에 잠시 노출된 각성자 같아.”
“오늘도 허탕인가? 애초에 너무 근거 없는 작전이라고.”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녘. 자신들이 찾던 목표물이 이미 자신들을 탐지하고 그냥 집에 가 버렸다는 것을 모르는 채, 차에 몸을 숨기고 대기하던 요원들은 그 여명을 보고 탄식했다.
명확한 단서와 근거 없이 그저 죽치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답답한 임무였으니까.
“철수하고 교대하자. 설마 이 짓을 계속 시키겠나? 상부가 허탕친 게 분명해.”
그들 중 한명인 히스패닉계 사내가 하품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의 흔한 각성자 중 하나인 김서윤이 실종된 소식을 접한 직후 상부는 이 사건을 그들이 코드 x라고 이름붙인 정체불명의 괴물의 짓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을 파견했다.
철저한 극비사항으로 침략종인지 각성자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인지, 그 정체도, 목적도, 능력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괴물.
하지만 아무리 전 세계에 정보망을 뻗어 놓은 그들의 조직이라 할지라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존재를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는 구성원인 그들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욱이 당장 다른 나라의 정보국들과 치열한 물밑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마력 탐지 장치, 몇 없는 귀한 물건이라고 하더니 고작 이런 불투명한 임무에 투자하고.”
“내가 들은 소문으로는 괜히 상부가 이 바쁜 와중에 이 일에 매달리는 게 아니야. 리암 앤더슨의 강한 요구가 있었다는데. 그 괴물을 찾으라는.”
주먹만 한 수정구를 들어서 문질거리는 그의 말에 동료가 자신이 들은 소문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소문의 내용은 지금 조직이 매달리고 있는 코드 x 수색 작전의 중추가 요즘 들어 최고의 이목을 끌고 다니는 리암이라는 것.
그는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대체 왜?”
“그건 모르지. 애초에 그 사람, 자기 멋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차량을 출발시킨 그들은 리암을 비롯,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감시 대상의 주변은 다른 요원들이 교대로 붙어서 24시간 감시하니까.
그들은 식당에서 일하는 감시 대상이 활동을 끝내고 다시 반지하 방에 돌아오는 밤에서부터 감시를 이어나갈 것이다.
“마지막 보고는 내가 하지.”
그는 자신이 직접 통신을 걸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다고 통신을 보냈다. 보고 내용은 당연히 아무 이상 없음. 이 보고를 받고, 어서 빨리 상부가 이 무식한 임무를 접길 바랐다.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코빼기도 비치치 않았다더군요. 언제까지 아무것도 없는 외국의 빈민층을 감시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면 선택지가 더 줄어드는데.”
그리고 태평양 건너에서 그 보고를 전해 받은 리암은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없다니, 그건 틀린 말이지.”
“하지만 김서윤의 아버지 김철훈과 어머니 안희숙, 동생 김지민은 정말로 특별한 것 하나 없는······.”
“왜 특별하지 않아. 그들의 가족인 김서윤이 놈에게 당해서 실종 당했는데.”
리암은 자신에게 소식을 전해주던, 밝은 금발을 가진 미녀인 정보국 요원을 비웃었다. 그는 이미, 김서윤의 실종이 코드 x의 짓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기존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도 코드 x가 큰 부상을 입은 김서윤을 데려갈 연관성이 없습니다.”
“당신 같이 똑똑한 사람들은 그렇게 분석하려고 하는 게 문제야. 놈은 분석해선 안 돼. 애초에 우리는 놈의 진짜 목적도 몰라.”
그의 눈이 반짝였다. 사실 그가 가진 확신의 지분 절반 이상은 그저 직감.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각성자가 된 이후 숱한 전투를 거쳐 오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도움을 준 것이 그 직감이었으니까.
“분명한 목적이 있지만 그 목적을 모르니 놈의 행동이 해괴한 짓거리로 보이는 것이지. 훔쳐간 마력검을 다시 한국 협회장의 집에 돌려놓은 것도 그렇고, 분명 놈은 그 주변에 다시 나타날 거야.”
“왜······ 그렇게 놈에게 집착하십니까?”
“이제 나도 몰라.”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은 요원의 말에, 그는 채워 넣은 술을 다시 들이켰다. 그러나 취기가 오른 몸에도 그 눈은 여전히 또렷했다.
***
[그렇게 찾기만 해서 되겠느냐? 막상 다시 만났을 때, 이길 자신은 있느냐?]
“시끄럽다.”
요원이 떠나가고, 홀로 집에 남은 리암의 머릿속에 남들은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울렸다.
마치 자신을 비웃는 듯한 그 목소리에 리암은 미간을 찌푸리고 허공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데릭 크레이브는 비록 중간에 실패하고 자신이 역으로 잡아먹힌 듯 보이지만, 넌 다르지 않나.]
“그놈이 멍청한 것도 있긴 하지만 족히 수십 명은 죽이고도 고작 그 정도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같거든.”
그의 성좌는 계속해서 살인을 통한 힘의 흡수를 종용했다. 성좌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알려준 존재가 바로 데릭 크레이브. 데릭의 성장세를 보며, 그를 부추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리암은 그걸 보고도 여전히 성좌를 거부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최강인데 굳이 리스크를 져 가며 힘을 추구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여유를 부릴 수 있겠지. 하지만 너희가 코드 x라고 부르는 그 괴물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번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종들은 너도 알다시피 기존의 양산형 개체들과 전혀 다른 이들. 그들을 이길 수 있나?]
“······별 것도 없더만.”
신종 침략종, 그들을 언급하는 성좌의 말에 그가 움찔했다. 이미 북미 대륙에도 나타난 신종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강한 힘과 뛰어난 전투력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리암은 아직 신종과 싸워 보지 못했다. 그는 지금 서부에 있는 저택에 있지만, 신종은 동부에 출몰했기 때문이다.
[확신할 수 있나? 넌 잘 알고 있을 텐데. 급한 상황에서 힘을 찾아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다 안다는 듯 말하지 마라.”
그는 자꾸 자신을 유혹하려는 목소리를 머리를 흔들어 떨쳐 버렸다.
[나는 네게 해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아. 내 말은 사실이다. 너는, 아니, 너희는 대비해야 할 것이다.]
“뭐를.”
[몰려 올 괴물들에 대해서.]
성좌는 제대로 듣지 않는 그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그를 나무라며,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들은 군단이다. 단순한 짐승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했느냐? 이미 대형 던전들에서, 너희는 하나로 뭉친 침략종들의 시너지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대지와 창공을 뒤덮고 이 땅을 유린하기 시작하면 너희는 무슨 수로 이 문명과 생명을 지킬 것이냐.]
“지금처럼 찔끔찔끔 쳐들어오는 게 아니라 대규모로 넘어온다?”
[상상은 자유지만 가능성은 늘 열어 두어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있었던 결과를 다시 말해 주는 것 뿐. 네 적들이 지금까지 강해지면 강해졌지, 약해진 적 있던가?]
성좌는 모호하게 말을 끝냈지만 눈치라는 게 있다면 그 속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덕분에 리암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성좌가 지금까지 거짓을 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설령 그렇다한들, 나는 꼭 내 힘으로 그놈을 잡아야겠다.”
결국 리암은 잔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성좌가 경고한 대규모 침공은 그가 틀어 두고 보지도 않던 티비 속 뉴스에서 이미 그 전조를 보이고 있었다.
***
“게이트 발생, 크기는 중대형입니다.”
“자, 여러분! 모두 천천히 안전하게 대피하십시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평범하기 짝이 없던 평일 날, 이제는 사람들도 태연하다. 이 도심지에서 가장 높은 빌딩 옥상보다 더 높은 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도 그렇다. 사람들은 빠르게 출동한 경찰들의 통제에 맞춰 게이트에서 먼 곳으로 대피하고, 출동한 군대 병력들은 오히려 역으로 게이트를 향해 몰려들었다.
“이곳에 나타난, 중대형으로 분류할 게이트는 전 세계 3번째로······.”
언론사의 기자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와서 현장을 중계했다. 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대처는 이제 지겹도록 나타난 게이트에 대응하는 대응 체계가 상당히 발달했다는 증거였다.
“게이트가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빠르군요.”
“이미 대피와 대비는 완벽합니다. 공중에 열린 것이 우려할 점이긴 합니다만, 충분히 대비할 수 있습니다.”
저 안에서 튀어나올 괴물들을 막기 위해 모여 든 모두가 긴장은 유지하되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 온 많은 데이터들이 그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게이트가 반응합니다! 놈들이 튀어나옵니다!”
곧 요동치기 시작한 공간의 균열이 내부에 잠든 무언가를 뱉어 낼 준비를 시작했다. 동시에 그곳을 겨누고 있던 수많은 대포와 전투 헬기의 미사일들이 장전을 끝내고 안에서 튀어나올 괴물들에게 뜨거운 화력을 보여주기 위해 대기했다.
“나온다······!”
“쏴 버려라! 한 번에 최대한 떨궈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직후, 상관의 명령 한 마디에 도심 하늘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불꽃들이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것’에 적중해 거대한 폭발과 자욱한 연기를 만들어 내었다.
“얼마나 떨어트렸지?”
매캐한 연기로 순간 시야가 가려진 순간에도, 작전을 지휘하던 군 장성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
“움직임이 관측됩니다. 그런데 적이······.”
하지만 그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연기를 뚫고 그대로 전투 헬기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지금까지 다른 세상으로 분류한 던전 속에서나 관측되던, 하늘을 부유하는 초거대 생물체. 그리고 그 생물체의 머리 부분에 창과 비슷한 무기를 든, 사람과 비슷한 무언가가 서 있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