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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03화 (103/200)

< 103화-군단(3) >

103화-군단(3)

“용은 먼 옛날에나 실존했던, 이제는 환상이 되어버린 종족.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남아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알지.”

“정말 그걸 원한다는 겁니까? 누님에게 지시를 내리는 그 존재가.”

“...그냥 정보를 원하실 뿐이야.”

유리아는 동생인 크리스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굳이 루시의 정확한 의도는 언급하지 않았다. 루시가 분명 군대를 보내어 그것을 가로채려 들 것인데, 너무 대놓고 말하면 사실상 자신이 루시와 연관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셈이니까.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비슷한 소문을 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물론 크리스는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쨌든 연합군 소속의 기사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의 상관 등 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뭐라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제가 주워들은 소문으로 용의 심장은 너무나 단단하고 많은 양의 마나가 응축된 물건이라 지금 우리 수준으로는 제대로 다루는 게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대체 왜 적들도, 아군도 그걸 노리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다만 그는 떠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의 기술로는 용의 심장이 담은 힘을 그 일부나 겨우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고작 그것을 위해서, 전투까지 불사할 정도라는 게 그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야. 강심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을 축적한 마왕님은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가공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유리아도 그 의견에 동조했다. 루시가 용의 심장을 탐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금까지 별 반응 보이지 않았던 이들도 갑자기 이렇게 열을 내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들의 뒤에 어떤 곳이 있는지 생각하면 나름의 확신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용의 심장이라는 전략 자산을 가져가기 전에 우리가 빼앗아야 합니다]

루시 역시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애초에 현재 전쟁의 중심에 있는 대성녀와 교단 뒤에 어떤 세력이 붙어있는지 알기 때문에 더더욱.

“교단이 헛짓거리를 하는 게 하루 이틀일은 아니지.”

“용의 심장을 노린다는 소리는...”

“하지만 그 헛짓거리들을 방치했다가 되돌아오는 것은 상상도 못한 폭렬마법이 대부분이었다.”

기사단 정기 보고 시간. 간략한 보고가 끝나고 다들 다시 흩어지는 사이, 크리스는 자신의 상관이자 기사단의 부단장인 사내에게 다가가 자신이 들은 소문에 대해 물었다.

예상대로 그는 단순히 소문만 주워들은 크리스에 비해 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반드시 그것을 지키려고 하겠지. 하지만 계속 그곳에 보관할 수는 없을 테니 더 안전한 내륙으로 이동시키려 할 거야.”

부단장은 분명 용의 심장 수송 작전이 시작될 것이라 말했다. 현재 용의 심장은 교단 세력과 연합군이 충돌하는 경계선 바로 근처, 한 남작령의 개인 사유지에 존재하는 상태.

그곳을 기점으로 양측 병력이 모이고 있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연합군이 굳이 심장을 그곳에 계속 둘리 없다.

“연합군에 마계가 참전하고 교단 역시 이상한 술법들을 동원해가며 균형이 맞아 질질 끌리는 판이다. 어쩌면 대륙이 양분된 이 상태로 굳어버릴지도 몰라. 대전쟁 이전 이 대륙이 나라별 지역별로 조각조각 갈라져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던 그때처럼. 난 이해가 안 가지만, 섣부르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그 고대의 유물이 전장의 균형을 부술 수 있는 물건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크리스의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평소에도 전략과 전술에 관심이 많던 부단장은 이제 자기 혼자 고민에 빠져 중얼거렸다.

크리스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상관의 고민을 방해할 수는 없었으니까.

‘대륙이 두 세력에 의해 양분된다면 결국 어느 한쪽이 무너지기 전까지 계속되는 신경전이 펼쳐질 것이다. 평화는 고작 몇 년 만에 깨지는가.’

다만 본인 스스로도 고민하고 얼굴을 굳혔다.

대전쟁의 당사자였기에 전쟁의 여파가 어떤지 잘 안다. 그 끔찍한 과정을 거쳐서 얻은 평화가 다시 박살나고,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마계와의 평화를 얻었는데도 결국 전처럼 갈라져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가 한데 뭉칠 수 있는 더 강력한, 진정한 지배자가 나타난다면.’

서로의 이권과 권리를 내놓지 않기 위해 전쟁을 치루는 교단과 성녀는 물론 연합군 측 지배자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크리스는 문득 이 균형을 박살낼 존재가 나타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대전쟁은 참혹하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공동의 적과 싸웠으니까. 물론 이제 막 성년이 된 어린 기사의 짧은 생각일 뿐이었다.

***

“그러면 그 용의 심장이라는 걸 손에 넣으면, 네게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고.”

“그렇습니다. 전장의 균형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전략병기 하나가 추가로 생겨날 것입니다.”

“네 계산 결과가 틀리진 않겠지.”

나는 루시를 믿었다. 루시가 리스크 있는 선택을 했다는 건 그만큼 확실한 근거가, 혹은 리스크를 상회하는 이득이 있으니까 계획을 실행한 것이겠지.

교단과 연합군의 싸움에 개입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정체가 노출되고 경계를 사게 되겠지만 루시는 그걸 감수하고 용의 심장을 손에 넣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대가 어디까지 대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을 통한 강습을 또 써먹는다면 이제 정말 안 통할지도 몰라.”

“분명 이 이상 인간들에게 초거대비행종을 보여주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계산됩니다.”

실제로 루시는 나름 생각한 방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미 라온을 납치할 당시, 노출된 아일랜드·알파나 다른 병사들의 모습으로 우리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시도하는 건 위험도가 크다.

아직까지 우리의 의도를 명확히 모르고 있는 적들이 서로 싸우는데 소모하는 신경과 힘을 우리에게 집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인적 없는 곳에 미리 병력을 상륙시킨 이후, 지상에서 그들을 급습할 것입니다. 때는 그들이 용의 심장을 다른 곳으로 수송하는 수송 작전을 실행할 때. 그들을 습격하여 용의 심장을 탈취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게 좋아 보인다.”

나는 루시가 직접 설계한 작전에 동의했다. 어차피 우리가 개입하는 것을 노출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정보를 숨기고 혼란을 줘야 하니까.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아.”

물론 나 역시 루시가 몸을 비틀며 고생하고 있는 걸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평범한 졸업반 대학생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도 이지연과 함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는 순전히 루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내가 도움을 주는 만큼 루시는 내게 의존하게 될 테니까. 루시의 성장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나에 대한 의존이 필요하다면, 내가 할 일이 생긴다면 우리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평범한 던전 공략이지. 크기는 중대형이지만 그곳에 있는 침략종 군대를 제거해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단서들을 손에 넣을 수 있어. 그런데 그 단서들 중에, 네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거든.”

나는 루시에게 그동안 찾아다니던 것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운 만큼, 인터넷이란 수단을 통해 정보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발견한 것은 한 던전에 대한 것.

다른 대형 던전들처럼 당연히 그 안에는 우리의 공격을 방어하는 괴물들이 코어를 지키며 요새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괴물들이 뒤섞여 자리를 지키고 있어.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저것들이 아니지. 저 뒤에 있는 놈들의 요새. 바로 저거야.”

“겉모습을 보기에는 마치 검은 버섯, 혹은 식물 같아 보입니다.”

“던전을 답사한 선발대는 저 검은 것들이 적들에게 싸울 수 있는 동력을 공급하는 일종의 에너지 생산체라고 증언했어. 딱 거기까지라 자세한 건 나도 몰라.”

말 그대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다. 심지어 루시가 ‘모든’생명체를 먹어치우고 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충분해 보입니다. 지금의 양분보급체계에 새로운 시스템을 충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김창현님, 반드시 저것을 제게 주십시오. 그 이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루시는 당연히 그것만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그저 무미건조한 응답만 하는 게 아니라, 화면에 보이는 자기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며 몸을 움찔거렸다.

정말 저 모습이 다른 스타더스트 휴대폰에도 다 들어있는 비서 인공지능인 박스디가 근본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

“무조건 줄게. 반드시.”

이제 단순한 투자의 개념이 아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결과를 바라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듯, 나 역시 루시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보기 위해 무엇이든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려. 지금처럼 국제연합을 통해 공략대에 참가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기한이 조금 남아서.”

“그렇다면 그 사이 저는 기존 계획에 집중하겠습니다.”

“이번 임무에 김서윤씨는 쓰지 않으려고?”

“김서윤은 아직 데이터를 쌓는 중입니다.”

다시 한 번 계획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화제가 김서윤으로 넘어갔다. 루시는 그녀를 적극적으로 써먹으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중이다.

그녀의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어떻게 써야 더 효율적인지 찾아내는 과정.

내가 보기에 김서윤은 나름 잘 적응한 것 같다. 가족들이 잘 지낸다고 소식을 전해주는 게 효과가 있는 건지.

“각성자들이 가진 힘을 강심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강점이 될 수 있겠으나, 그들이 연결된 시스템은 그들의 자아가 없다면 실행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구상하고 있었던 대규모 각성자 군대 육성은 효율성 문제로 폐기하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루시는 각성자들을 강제로 통제하여 새로운 병종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김서윤을 몇 번 써보더니 곧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획을 폐기했다. 무차별적으로 각성자들을 루시에게 보내는 건 내가 거절했을 확률도 높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루시에게 무엇이든 주겠노라 다짐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퍼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자발적으로 저희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은 품어볼 의향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 존재들이 불필요한 비효율이라고 판단했으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니 과거 말씀해주신 대로 그 자체로 변수가 되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지연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이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자.”

나는 이지연을 언급하는 루시의 말을 끊었다.

나 역시 한 번 생각해본 것이긴 하지만 어째 방금 루시가 이지연을 언급한 것이, 순수한 전력 확충의 의미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 루시가 이지연을 견제하거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만약 이지연이 마왕군에 합류하면 필연적으로 몸의 소유권과 제어권을 루시에게 빼앗길 텐데. 어쩌면 그걸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일을 시작하자. 다음 계획은, 지금의 계획을 성공한 이후 결정하고.”

거기서 통신을 끊었다. 차분하게, 천천히. 엇나가려는 것을 바로잡는 것 역시 부모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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