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군단 (4) >
104화-군단 (4)
“나 참, 어이가 없구만.”
“뭐가 말인가?”
“틈틈이 하늘도 감시하라는 말 말이네.”
장벽, 그곳에서 전방을 감시하던 소수 병사들 중 한 명이 투덜거리며 고개를 꺾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청명한 하늘.
그냥 흘러가는 구름 몇 조각이 전부였다.
“자네는 이해가 가나? 거대한 짐승이 하늘을 난다는 게 말이야. 신화시대를 이야기하던 전설에나 들어 본 이야기라고. 용 같은 것.”
“낸들 아나. 하라니까 하는 거지.”
그의 동료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부 명령이긴 하지만 사실 그들은 진지하게 믿지 않았다. 마계 쪽에서 거대한 짐승이 하늘을 날아올지도 모른다거나, 그 짐승이 수많은 괴물들을 뱉어 냈다거나 하는 것들. 직접 보지 않은 이상 믿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그렇게 거대하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겠나?”
그는 하늘을 보며 하품을 했다. 애초에 그리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거나 어둑한 밤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에 하늘 위를 지나가는 거대한 생물체를 보지 못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맞는 말이긴 해. 오늘 저녁에 뭐 마실 텐가?”
“가격이 오르지 않은 걸로 먹어야지. 제길, 전쟁 때문에 슬슬 외부에서 들여오는 물자들 가격이 오르고 있어.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어떻게 먹고 살라는 건지.”
그들은 곧 잡담을 시작하며 시시덕거렸다. 물론 그 와중에도 프로 경계병답게 시선들은 모두 전방과 하늘 등에 고정된 상태로.
혹시라도 무언가 접근한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장벽 통과 중.]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도 허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생물체가 피부 세포를 실시간으로 조작하여, 환경에 완벽히 녹아들어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오히려 이 거대한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평화롭게 하늘을 가로지르던 새 한 마리. 까마귀를 닮은 그 새는 직감적으로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세력을 눈치 채고 기겁하며 파닥거렸다.
[장벽 통과 완료.]
루시는 한 줄기 띠로 보이는 장벽을 내려다보며 가뿐하게 장벽을 통과했다. 몇 시간 후면 해가 지고, 해가 진 이후에는 굳이 위장할 필요도 없다.
위장에 쓰일 에너지까지 추진에 사용해 이대로 쉬지 않고 비행하여 다음 날 해가 질 때쯤이면, 루시는 자신이 원하는 좌표에 도달할 것이다.
***
“저, 각하. 정말 유물의 소유권은······.”
“보장해 주겠다고. 몇 번을 말하나. 그러나 지금 그게 중요한가? 놈들에게 이것을 빼앗기면 어쩌려고 그러나? 아니 애초에 놈들이 이곳을 침공하면?”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했습니다.”
“수송 작전이 곧 시작되니, 자네는 얌전히 성에 있는 게 좋을 걸세. 혹시 모르니 말이야.”
대륙 남부에 위치한 바란 남작령. 이곳의 주인 바란 남작은 엄중히 보호받는 수레에 실려 가는 큼직한 광석을 보고 안타깝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발견하지 말 것을.’
오래된 유물인 용의 심장이 가문의 땅에서 발견된 것은 굉장한 행운이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퍼지는 걸 막을 수 없었던 소문 탓에 주변의 이목이 이곳에 집중되었고, 교단 세력이 이것을 탐내며 별 볼일 없던 남쪽 변방인 이곳을 노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당연히 연합군도 대응했다.
내버려 두면 꼼짝없이 자신의 영지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 같기에 소유권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후방 지역의 보다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로 합의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각하,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좋아. 서둘러 출발하지!”
반면 연합군 사령부로부터 수송 작전의 지휘를 부탁받은 로베르 후작은 서둘러 일을 끝낼 생각만 했다.
본인 스스로도 마법사인 후작은 어서 빨리 용의 심장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출발! 전부 이동하라!”
곧 수송 임무를 맡은 부대가 동시에 움직이며 바란 남작령을 떠나기 시작했다.
고작 수송 임무에 수천에 달하는 병력을 끌고 온건 조금 과하지만, 그 누구나 애초 계획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
“놈들이 움직입니다.”
“우리도 움직인다. 그리고 다들 명심하라 전하라. 우리 목적은 용의 심장을 탈취하는 것이지, 저놈들을 모두 죽이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먼 곳에서 그들을 관측하며 은밀히 몸을 숨기고 있던 그들은, 수송대가 떠남과 동시에 자신들도 자리를 벗어나 그 뒤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효과적인 급습이 가능한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시간대에 공격할 계획이었다.
몰래 경계를 넘어오느라 고생한 그들은 비록 100명을 겨우 넘지만 손에 들고 있는 무기들을 포함, 임무에 실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
“각하! 오늘은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게. 진영을 갖추고 이 평원에서 쉬어 가는 것으로!”
어느새 해가 지고, 인공적인 불빛이 거의 없는 이곳에서는 걷기 힘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다.
당연히 로베르 후작은 휘하 지휘관들의 말에 따라 이곳에서 쉬어갈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병사들이 짐을 내려놓고 임시 진지를 구축하는 사이, 그는 슬쩍 자리를 빠져나와 용의 심장이 담겨 있는 수레에 다가갔다.
“오오······.”
천막이 덮어진 수레에 올라탄 그는 눈앞에서 영롱히 빛나는 이 진귀한 광물을 보고 감탄했다. 마력을 수련하는 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은은히 뿜어내고 있는 기적의 물질.
‘마지막으로 발견된 용의 심장은 고작해야 주먹만 한 크기, 그것도 120년 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대한 원본을 연구하고 그 활용법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탐구열을 가진 마법사라면 누구나 이것을 탐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연구에 성공하여 담겨진 힘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분명 시대에 남을 현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니까.
그는 그것이 자신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기 상반신보다 큼직한 그것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결코 쉽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것의 비밀을 풀어······.’
“습격이다! 스, 습격!”
그러나 그 순간. 이제 막 밥을 지어 먹으려는 수송대를 향해, 어둑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드는 공격이 연달아 떨어져 내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런······.”
다급히 뛰어나온 로베르는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칠 틈도 없었다. 서둘러 마법 방어막을 펼쳐, 어둑한 하늘을 가로질러 착탄하는 포탄들을 막아야만 했으니까.
“이 기묘한 술법은 분명!”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용의 심장을 보호하느라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그는, 여기저기 떨어져 화염과 열을 동반한 폭발을 일으키는 포탄들을 보고 이를 갈았다.
오래 수련한 마법 없이, 마력의 사용 없이 강한 화력을 만들어내는 이 공격은 분명 교단이 사용하는 무기들에서 나오는 것. 즉 지금 이 공격은 그 자체로 공격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뭣들 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놈들을 제압하지 않고!”
“하, 하지만 각하. 지금 그놈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파악할 수가······.”
“저 탄환들이 날아오는 곳에 놈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는 이 이상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기 전에 어서 빨리 적들을 제압하라고 휘하 지휘관들을 닦달했다.
“콜록······ 이, 이게 뭐야······.”
“수,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이 채 활동에 나서기 전. 이번에는 포탄이 터지며 뿌연 증기 비슷한 연기를 사방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흡입한 병사들은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눈과 코 등의 점막에 극심한 통증으로 전투 불능에 빠져 버렸다.
“이 사악한 악마신교 놈들이 기어이! 마법사들은 당장 바람을 불러 연기를 날려 보내라!”
최루가스를 독가스로 오해한 로베르 후작은 마법을 이용해 불러낸 강풍으로 가스를 날려 보내며 분노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흡입하거나 접촉하면 너무나 괴로워,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주문에 집중할 수 없게 되는 위력. 심지어 기사들조차도 예민한 점막의 아픔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많은 병력들이 최루탄 몇 발에 무력화 된 사이, 무장한 교단 병력들이 그대로 들이닥쳤다.
“순순히 용의 심장을 내놓아라. 여신께서 그것을 원하신다!”
“히이익!”
그들은 얼굴에 기묘한 가면을 쓰고 매캐한 최루가스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방어선은 단숨에 뚫려 버렸으며 오직 앞만 보고 돌진하는 이 광신자들의 군대는 어느새 로베르가 지키고 있는 용의 심장 근처까지 다다랐다.
“저기다!”
“이놈들이······.”
마침내 방독면을 뒤집어 쓴 성기사와 로베르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진심으로 혐오하는 눈빛을 교환한 그들은 힘을 끌어올려 서로를 향해 공격을 시도했지만 이미 균형은 제대로 기울었다.
침투한 소규모 적들을 저지하지 못한 순간 병력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하나 둘 쓰러지는 주변 병사들의 모습에 이를 악문 로베르는 아군이 휘말릴까 강한 마법을 쓰지도 못했다.
“기가 차는구나. 악신이 이 귀한 유물 따위를 가질 자격이 있겠느냐! 그 가치를 알아보기나 하겠느냔 말이다!”
“감히 그분을 모욕하지 마라. 그분께선 언제나 우리의 믿음에 보이는 것으로 보상을 주신다.”
로베르는 자신에게 검을 겨눈 성기사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으나, 성기사는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대로 그를 베어 버리고 용의 심장을 가져가기 위해.
‘하필 이딴 놈들에게 빼앗긴다고? 이것을!?’
로베르는 갈등하느라 식은땀을 흘렸다. 자폭이라도 하는 게, 용의 심장을 교단에 넘겨주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신을 믿지 않는 멍청이! 이제 그만 죽······.”
“큭?!”
그러나 그 순간. 그에게 덤벼들던 성기사의 머리가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펑하고 터져 버렸다.
“이게 무슨! 또 다른 적이다!”A
“측면이다. 측면에서 적들이!”
일방적이었던 전장의 판도가 또 한 번 뒤집혔다. 로베르는 갑작스레 난입한 세력에 의해 직전의 자신들처럼 비명을 지르는 교단 사람들을 보며 멍하니, 성기사의 머리를 터트려 버린 존재를 바라보았다.
“넌 또 뭐냐.”
칠흑 같은 검은 갑주, 그리고 그 갑주 사이에서 마치 곤충의 눈처럼 빛나고 있는 여러 개의 안광.
성기사 대신 검을 겨눈 오크·감마가 진이 빠져 멍하니 중얼거린 그에게 다가왔다.
“로베르 후작, 용의 심장은 우리가 가져갑니다.”
“허억!”
그리고 뒷걸음질 치던 그의 등이 딱딱한 무언가에 닿았을 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한 그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신은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그곳에는 이미 수레째로 들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비행종들과, 자신을 보고 있는 루시의 붉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