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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07화 (107/200)

< 107화-군단 (7) >

107화-군단 (7)

코볼트 부족 연합의 요새를 함락하라. 이것이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이다. 그리고 김서윤이 새롭게 하사받은 무장을 들고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하려 할 때.

당연히 코볼트들 역시 전력을 보충하고 요새를 더 단단히 만들고 있었다.

“연합장, 다른 영지의 지원은 아직입니까?”

“그렇소. 애초에 다들 기대도 안 했잖소? 버틸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수많은 코볼트 부족이 연합한 연합의 장이자 마계 영주인 오세는 자신에게 지원에 대해 묻는 다른 부족장들에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버틴다 해도, 우리의 땅이 놈들에게 유린당하는 것은 사실인 것을. 인간계에서의 전쟁에서 아무리 전리품을 모아 오면 뭐한단 말입니까. 우리의 근본이 저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다. 루시가 전면적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는데도 다른 곳에 정신들이 팔린 영주들이 하나로 뭉치는 데 영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북부에서 대피한 이들을 자기네 영지에 받아들인 이들은 그들을 방패막이로 써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북부를 무너뜨렸다는 괴물들이, 고작 그것도 뚫지 못하는 것 같으니 자만하는 게 분명합니다.”

“아마 그렇겠지. 저 괴물들이 지금, 얼마나 많은 이들과 동시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다른 영주들을 성토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오세는 이를 갈았다.

사실 지금 코볼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마왕군에게 점령당한 북부에서 대탈출을 벌인 북부 출신 마족들이 코볼트의 영지에는 거의 오지 않아, 그들과 함께 싸워 손실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곳이나 이곳이나 이도저도 아니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고 있으니 결국 이대로 완전히 버티는 데 성공한다면 인간계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북부로 진군하여 다시 그 땅을 수복할지도 모릅니다. 뭐, 시간이 걸리는 게 거슬리는 점입니다만.”

그러나 그런 그들도 한 가지 동의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버틸 수는 있다는 것이었다. 완전히 그 영토를 점령해 둥지화를 노리던 루시가, 한 점 돌파가 아닌 전방위적 공세를 취한 덕에 전쟁터가 된 영토의 일부가 난장판이 되긴 해도 병력을 끌어 모아 방어하면 마왕군도 그것을 뚫지는 못했다.

마계 영주들은 그것을 보고 인간계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강화한 전력을 사용해 훗날 역으로 치고 올라갈 계획을 세웠다.

“애초에 이곳은 우리 모두의 의지와 정수가 담긴 곳이오. 대전쟁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자리에서 일어난 오세는 다른 부족장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사방을 내려다보았다. 험준하고 거친 암석 산맥 하나 전체가 그들이 구축한 거대한 요새였다. 수십만 이상의 코볼트들이 모여 지키고 있는 그들의 본거지.

결계술에 특출난 재능이 있던 그들은 이곳에 모여든 수많은 동족들을 하나의 코어로 삼아 완벽한 결계식을 만들어 이곳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켰다.

“동족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결계는 단단해지고 우리의 요새도 발전하지. 이곳은 절대 뚫리지 않을 것이오.”

그는 이 풍경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담은 요새다. 이곳의 방어막이 뚫리는 것이 곧 그들의 목숨이 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들은 사력을 다해 이곳을 지킬 것이다. 아주 단단한 방어막 뒤에 숨어서 말이다.

“여, 연합장! 놈들이 다시 공세를 시작했소!”

그리고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적의 공격 소식이 들려왔다.

“대체 어째서지?! 안 된다는 걸 알고 물러난 게 아니었던가!”

“걱정 마십시오.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합니다!”

비상령이 내려진 요새 전체가 분주해졌다. 직감적으로 불길함이 차오른 오세는 당황하여 눈이 흔들렸지만, 휘하 부족장들은 그런 그를 안심시켰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강한 힘으로 두드려도 저희의 결계는 뚫리지 않습니다!”

다급히 불어오는 나팔 소리를 들은 코볼트 주술사들이 서둘러 자리로 이동해 자신들의 마력을 끌어 올렸다.

주술사들은 그저 하나의 매개체가 되는 것뿐이다. 이 거대한 요새를 뒤덮은 결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이곳에 자리한 코볼트종 전체의 힘.

곧 모습을 드러낸 푸르스름한 방어막이 허공에 나타나 요새를 뒤덮었다.

“어리석은 놈들, 여기 쏟을 힘으로 다른 곳을 두드려도 모자랄 텐데.”

오세는 긴장한 얼굴로 방어막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뒤덮은 수많은 괴물들이 정확히 이곳을 노리고 날아오는 중이다.

거칠고 경사가 심한 암석지를 공략하기 위해, 루시는 이곳에 비행이 가능한 병종들을 주로 파견했다.

“저기에 ‘그년’도 있느냐!?”

그 상황에서 그는 다급히 누군가를 찾았다. 이곳에 거대 요새를 구축하기 전, 코볼트 부족들에게 최악의 사신으로 여겨지는 존재.

그 존재는 기묘한 술법으로 코볼트들이 만든 결계를 강제로 해체하고 틈을 만들어 그곳에 마왕군을 쏟아 넣었다. 그 덕에 몰살당한 부락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코볼트들에게 그녀는, 그저 소문만 들었던 루시나 유리아보다 더 끔찍한 철천지원수였다.

“이, 있습니다! 보입니다!”

“큭, 역시나!”

갈색 단발 머리칼이나 갑각을 두른 몸의 굴곡은 전형적인 인간형 여성체를 하고 있지만 얼굴은 다른 마왕군과 비슷한 갑각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존재.

루시에게 명령을 하달 받은 김서윤은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망설임도 없이 똑바로 그들을 향해 직행하는 중이었다.

“자리를 지켜라. 이번에도 결국 우리의 의지를 뚫지 못하고, 추하게 도망이나 칠 것이다.”

복수심과 분노를 불태운 오세는 다른 코볼트들을 다그쳐 반격을 준비시켰다. 적들이 결계를 뚫으려 시도하는 동안 안쪽에서 공격을 가해 내쫓는 것이 그들의 기본적인 전술이었으니까.

‘검은 주술사.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트리겠다.’

다만 반격은 가능해도 추격은 불가능하다. 그는 결계 앞에 멈춰선 김서윤을 보고 언젠가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연합장, 조금 다릅니다.”

“저건······.”

그들이 그녀가 들고 있는 푸르스름한 창, 궁니르를 발견한 것이 그때였다.

그러나 김서윤은 그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채 제대로 살피기 전에, 감히 마왕군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을 향해 그것을 겨누었다.

[궁니르·최대 출력 전개]

동시에 내면에 품고 있는 거대한 힘이 움직이며, 김서윤은 그것을 고스란히 동력으로 때려 박은 자신의 능력을 전방에 뿜어내었다.

[마력 해제]

“커허억!”

“주, 주술이 역류한다! 말도 안 돼! 아군의 결계가 뚫린다!”

궁니르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는 순간 동시에 코볼트 주술사들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나갔다.

‘설마······.’

오세는 순간 굳어 버려 그것을 지켜만 보았다.

그들이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낸 최강의 결계가, 지금 미약하게나마 깨지고 뚫려 나가고 있었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전군 투입하여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적을 사살하십시오.]

루시는 대형 덤프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뚫려 버린 구멍을 보고 그곳을 향해 병력을 투입시켰다. 거대한 크기에 비하면 작은 구멍이지만 어차피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놈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결계를 보수해라. 그리고 반격해라! 당장!”

다급해진 코볼트들이 하늘을 보며 구멍을 향해 모든 화력을 집중시켰다. 마왕군 병사들이 몸을 비집고 들어가면 그 즉시 조각나고 깨져 나갈 정도로 강한 화력.

제대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건 마왕군의 처참한 시체뿐이었다.

사력을 다한 저항에 막히는 상대를 보며 어쩌면 이대로 막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코볼트들의 마음에 꿈틀거린 순간이었다.

[예상 시간 약 4분 21초.]

하지만 루시는 자신의 병사들이 무력하게 갈려 나가는 모습을 보고도 병력 투입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게 시간 초를 잴 뿐이다.

[시간이 다 되면 김서윤 당신이 투입하여, 화력이 떨어진 저들을 제압하고 본격적인 척살 작업을 시작하십시오.]

루시의 계산은 이미 코볼트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한계를 결괏값으로 내놓은 지 오래다. 그들의 힘이 빠지고 방어에 틈이 생기는 그 순간.

루시는 김서윤을 투입하여 그들의 저항을 분쇄할 계획이었다.

“버틸 수 있다. 멍청한 놈들! 좁은 곳으로 몰려오느라 무력하게 죽어가는구나!”

[예상 시간 약 2분 15초.]

희망을 보는 시선과, 현실을 보는 시선이 겹쳤다.

“힘을 더 쏟아라. 승리할 수 있다! 원수를 갚을 기회다!”

[추정 개체 수 51,454개체. 따라서 남은 시간 약 1분 22초.]

차이점은 한쪽은 바라 마지않는 기적을, 한쪽은 근거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것.

“여, 연합장······ 이제 힘이······.”

“안 돼. 놈들이 들어온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코볼트들의 화망에 우직하게 밀고 들어 온 마왕군은 마침내 좁은 틈새를 넘어 결계 내부로 완전히 들어서는 데 성공했다.

[봉인·마력]

동시에 내부로 들어 온 김서윤이 다시 한 번 궁니르와 함께 자신의 능력을 사방에 흩뿌렸다. 마력의 흐름을 강제로 멈추게 만드는 권능이 발산 병기의 강력한 출력과 만나 하나의 파동이 되어 광범위한 영역에 뿜어졌다.

‘몸이 안 움직인다. 내 마력이!’

그 파동은 접촉자의 마력을 봉인하고 망가뜨렸다. 일제히 공격을 이어 가던 코볼트들의 공격이 일제히 멈춘 것도 그때였다.

[처단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남은 건 몰려드는 마왕군의 공격에 더 이상 결계로 몸을 지킬 수 없었던 코볼트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것뿐이다. 마계 영주 오세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서 코피를 흘리며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김서윤을 보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곁에 호위로 머물고 있던 하피 타입들이 겨눈 광선포에서 뿜어진 광선이, 자신의 몸을 덮치는 그 순간에도.

[코볼트 영지 함락. 마계 영주 오세 척살 확인. 기댓값 98% 충족.]

“이제 끝난 건가요?”

[아니라는 걸 알면서 되묻지 마십시오. 아직 남은 마계 영주는 수십에 달합니다.]

전투는 길지 않았고, 승패가 기우는 건 그보다 짧았으며, 모든 코볼트들이 살해당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보다 더 짧았다.

푸슉 소리와 함께 얼굴 피부와 근육을 뚫고 고정되어 있던 가면을 벗은 김서윤은 그리 좋지 않은 얼굴로 사방에 널린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오세의 시체처럼 아무리 인간과 판이하게 생긴 마족이라도 선혈이 낭자한 장면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또다시 마음이 흔들리는군요. 가족을 보고 싶은 마음이 그것 밖에 안 됩니까.]

“그, 그런 게 아니에요.”

[단순히 당신만 돌아간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신 세상을 습격하고 있는 침략종들. 그것들은 언젠가 당신들보다 더 강해져 지구의 문명을 파괴하고 지구인들을 학살할 것입니다. 지금 이 바닥에 쓰레기같이 쓰러져 있는 코볼트들처럼. 그것을 막을 방법은 단 하나, 제가 그분의 곁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김서윤의 감정 상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루시는 틈틈이 그녀를 압박하는 한편 자신의 관점을 주입시켰다.

‘그래. 이건 우리 가족뿐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선택권이 없던, 심지어 거짓말조차 할 수 없었던 김서윤은 루시의 의견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육체의 피로는 쉽게 제거할 수 있으니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이제 다음 전장으로 당신을 보내겠습니다.]

루시는 그렇게 세뇌하고 있는 김서윤을 알차게 부려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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