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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10화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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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군단 (10)

다른 괴물들과는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저 갑각의 틈으로 번득이는 점 같은 안광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 이길 수 있는 거 맞지?”

[가능합니다. 예상 승률 66%.]

결국 루시에게 되묻고 말았다. 하지만 루시는 언제나처럼 계산 결과로만 답할 뿐. 결국 루시가 조종하는 나노·오메가의 움직임에 맞춰 내 몸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적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직접적인 전투 데이터는 물론 그 생체 데이터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물론 상대를 이기고자 덤벼든 건 아니었다. 우리가 상대를 죽이고자 서로 달려들었을 때, 내 가슴팍에 위치한 휴대폰에서 뜨거운 섬광과 함께 마력이 터져 나왔다.

[목표물들, 전체 전송 완료.]

“이제 돌아가자.”

굳이 여기서 내 몸을 움직여 싸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우리의 전력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으니까.

당장 휴대폰을 켜고 화면을 통해 그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시금 하늘로 날아오른 지금은 루시의 실시간 보고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적의 데이터를 추출하기 위해, 미리 대기시킨 10종 100개체의 병력들과 하나하나 전투를 붙여 발생하는 정보를 수집할 예정입니다.]

“······어째 괴물보다 네가 더 무서운걸.”

처음 소식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신종들에게 관심을 보였던 루시는 잡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머리에 그려질 정도다. 무수한 마왕군에 둘러싸인 불쌍한 침략종이, 지쳐 죽을 때까지 강제로 싸우게 되는 그림이.

“이제 이대로 베이스로 복귀해서, 본대를 기다리면 돼. 그런데······.”

긴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침략종들이 먼저 치고 나가 저 앞에서 전투를 벌이는 덕에 손쉽게 목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 내가 상대적으로 쉽게 놈들의 본진에 접근한 만큼,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아군을 습격한 적들의 공세에 아군이 흔들리고 있었다.

[현 상황이 계획과 많이 다릅니다. 전열은 이미 무너졌고 제대로 된 포격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55%의 확률로 아군이 전멸합니다]

내 눈을 통해, 허공에서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을 내려다본 루시가 불길한 예측을 내놓았다.

[혹시 개입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냥 무시하고 갈 수는 없어.”

혀를 찬 나는 비행 경로를 바꾸었다. 저들은 단순한 아군이 아니었다. 저 중에는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

“······그분께서 전장에 개입하시는 바람에, 변수가 늘어나 버렸습니다. 변수가 많으면 위험해지는데도.”

폭음과 폭발에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전장과는 또 다른 전장. 이곳 역시 전장이긴 하지만 조금 달랐다. 비명도, 고함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충직한 병사에게 굳이 발성 기관을 달아 주는 것은 비효율적이니까.

그저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살의만이 가득할 뿐.

“우선 그 최대 출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부터.”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는 루시는 어지럽기 짝이 없는 저쪽 세상에도 신경 씀은 물론 이곳으로 데려온 침략종 맨티스의 스펙을 알아보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대기시킨 병력들을 계획대로 순차 투입하여 적의 출력과 능력, 전투력과 행동 방식 등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추출한다.

상대가 잡아다 고문한다고 자기가 아는 걸 발설할 존재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던 탓이다.

“······.”

“고작 그 정도? 단순 출력은 아군의 개량형 강심 5개 분.”

마법을 발현해 강제로 마력을 끌어올리게 만들고, 그 강도를 시험한 루시는 맨티스가 끌어올린 마력 방어막이 금이 가기 시작하자 마법을 거두며 희미하게 웃었다.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수준이 마왕군에서 가장 급이 떨어지는 상위종인 감마 타입 정도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등장한 신종이, 이제는 자신이 어렵지 않게 뽑아낼 수 있는 병사 수준이란 점을 확인한 루시는 적을 비웃었다.

“개체별 전투력은?”

출력을 확인했으니 이제 전투력을 확인할 차례였다. 고의로 출력이 비슷한 오크·감마 타입 하나를 보내 싸움을 붙인 루시는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다른 마왕군과 함께, 팔짱을 끼고서는 오크·감마와 맨티스의 전투를 흥미롭다는 눈으로 지켜만 보았다.

“······검술로 보입니다.”

양팔에 달린 갈고리 발을 검처럼 휘두르기 시작한 맨티스는 마찬가지로 검을 든 오크·감마를 상대로 상당히 쉽게 싸웠다. 단순히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 아님을 눈치챈 루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곧 오크·감마의 몸이 반으로 갈려 쓰러졌다. 동시에 대기하던 다른 오크·감마가 이어서 달려들었다.

“이것이 진화와 성장을 반복하는 집단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판단 불가.”

미간을 찌푸린 루시는 사실 상급종을 포함한 신종 침략종들이 등장하며 침략종들이 자신과 비슷한 계열의 괴물들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습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강화하고 진화하는. 그렇기에 습득한 기술과 능력을 더 발달시키고 개조하는 것은 그런 존재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나보다, 감히 더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것······.”

루시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쓰러져 가는 마왕군 병사들의 모습에 당황했다. 출력 자체는 비슷하지만 전투력의 차이가 심했다.

루시 같은 존재에게 전투력이란 곧 그동안 쌓아 온 경험 그 자체. 즉 지금 상대에게 루시가 쌓아 온 경험이 밀린다는 것이었다.

“데이터 수집 종료.”

루시는 더 강한 출력을 가진 델타 타입들을 일제히 투입시켜 적을 제압하게 만들었다. 기교와 기술로는 채울 수 없는 출력의 차이에 상대는 얼마 못 가서 잔혹하게 난도질되어 토막 났지만, 그것을 보는 루시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다.

만약 상대의 출력이 더 높다면, 그런 이들이 더 많다면.

직접 상대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저 땅에 발 디디기만 하면 전부 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자신이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에 분노한 루시는 꿈틀거리는 맨티스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 으깨 버렸다.

“더 많은 경험이,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합니다.”

“왜 갑자기 보고가 멈췄어? 무슨 문제 있어?”

분해 및 분석을 위해 맨티스의 파편들을 수거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루시에게,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만만하게 상대를 테스트해 보려다 한 방 먹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통신을 끊어 버린 탓이다.

“데이터 수집은 전부 끝났습니다. 그리고 되도록 상급종들과 마주치지 마십시오. 전송 기능이 재장전 중일 때 공격당하면 극히 위험합니다.”

다시 정신을 차린 루시는 그에게 경고했다. 완벽히 측정하게 된 상대의 실력은 나노·오메가의 출력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그 정도라고?”

“지구인들의 수준으로 제대로 맞서는 건 불가능해 보이니 더 강한 출력으로 찍어 잡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는 사실을 말해 주는 루시의 대답에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루시가 상대보다 실력이 부족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대신 늘 양분과 출력이 모자랐을 뿐이다.

“만약 그런 놈들이 더 강한 출력으로 무장하고 나타면 어떡하지?”

“그러니 그 전에 더 성장해야 합니다. 게이트가 더 위험해지고, 침략종들이 더 강해지기 전에.”

그도 루시가 문제로 삼은 부분을 지적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침략종들이 더 강해져서 등장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최대한 빨리 성장하는 것, 단 하나였다.

“이번에 표본을 습득한 이 정체불명의 에너지 생산체를 분해하고 분석하겠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에너지를 생산하는지 알아낸다면 그것을 이용해 기존의 양분 보급 체계를 한 단계 더 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루시는 곧바로 다음 일을 시작했다. 그가 상급종 맨티스와 함께 전송한 이 검은 버섯 같은 무언가는 단단해 보이는 두꺼운 줄기와 함께 지름 몇 미터는 될 법한, 우산 같이 펼쳐진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식물 아니야? 너 식물은 이용 못 하잖아.”

“······식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루시 본인도 왜 자신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식물과 관련된 데이터는 해독할 수 없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지금 보는 검은 버섯은 식물의 세포를 가지진 않아 보였다.

“일단 여기는, 이지연 씨랑 진혁이 무사한지만 확인할게.”

루시의 경고를 받아들인 그 역시 직접적으로 현장에 난입하지는 않고 목표로 하던 사람들만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적 군단에 섞여 있는 강적들을 막아 내야 했고, 이지연은 그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위험해요!”

“으, 으아악!”

강한 에너지가 응집한 일종의 광선포. 이지연은 망설임 없이 자기 몸을 던져 그 일격을 가로막아, 넘어진 자주포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오던 군인들을 보호했다.

“으읏······.”

특별히 제작한, 무게만 100kg에 근접하는 그녀의 방패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마침내 깨져 나갈 정도의 위력.

비록 지키고자 했던 이들은 지켜 냈지만 큰 화상을 입은 팔에서 방패를 떨어트린 그녀는 흐르는 피에 억지로 뜬 눈으로, 허공에 떠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적을 노려보았다.

‘신종.’

지금까지 전 세계에 보고된 신종 상급종은 갈고리 팔을 검처럼 휘두르는 맨티스 하나. 그러나 지금 나타난 새로운 적은 맨티스와 달랐다.

마치 하늘하늘한 드레스 같은 몸을 가지고 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이 괴물은 길고 가느다란 팔을 흉갑 앞으로 모아, 방금 전 쏘았던 포격을 재장전했다.

흉갑이 쩍 갈라지며 등장한 강렬한 에너지 핵. 그곳에서 응축한 에너지는 이지연의 몸을 그대로 증발시켜 버릴 것이다.

[한 번, 내 도움은 단 한 번이다. 어서 네 몸을 치료하고 자리를 벗어나.]

그녀가 남겨둔 마지막 한 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자신의 힘으로 그녀를 치유할 수 있으니 이대로 후퇴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지연은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뒤를 흘끔거렸다. 아직 뒤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부상 입은 군인들, 싸우고 있는 각성자들, 다른 이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오진혁까지.

“그 힘으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참, 너답구나.]

그녀는 피하는 대신 자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다시 한번 강력한 포격이 뿜어지고, 눈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그녀의 몸에서 신성한 빛이 폭사하여 하나의 방패를 만든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의미 있는 일이었나?’

그 방패로 포격을 다시 한번 견뎌 낸 이지연은 반격할 수 없는 몸 상태에 탄식하며 다시 한번 포격을 장전하는 적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봐. 널 구하러 오는 것 같다. 아니면 단지 저 적을 잡기 위해서일지도.]

그때 성좌의 말대로, 검은 연기만 자욱한 현장을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가로질러 달려오는 게 이지연의 눈에 보였다.

‘리암 앤더슨.’

혹시나 싶었던 검은 슈트의 괴물은 아니었다. 부서진 선글라스를 벗어 던진 리암이 마력이 넘실거리는 검을 들고 부서진 자주포 잔해를 몸으로 밀고 박살 내며 이곳으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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