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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18화 (118/200)

< 118화-군단 (18) >

118화-군단 (18)

“표정이 좋지 않군요. 역시 걱정되어서 그럽니까?”

“아, 예. 그렇죠.”

굳은 얼굴로 휴대폰만 보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모리스 카터, 이 흑인 사내는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최근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지연과 한 팀이 된 각성자의 매니저였으니까.

“이미 몇 번이나 공략에 실패한 곳이지만, 걱정 마시길. 그만큼 이쪽도 단단히 준비했으니까.”

“맞는 말입니다.”

그는 내가 던전에 들어간 각성자들을 걱정하느라 얼굴이 굳어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들을 걱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지만, 사실 방금 전까지 내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쓰게 웃으며 각성자들이 떠나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전과는 달리 강한 이들을 모아 강제로 팀을 꾸려서 실행하게 된 첫 번째 작전.

강제라는 점에서 반발이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결국 각성자들도 이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기에,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사회 전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면 더 나아지겠죠. 싸우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서.”

“카터 씨, 당신은 시스템에 대해서 걱정하시는군요.”

나는 주저리주저리 말을 늘어놓는 그의 말 속에서, 그가 무엇을 진심으로 걱정하는지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케어해야 하는 각성자 자체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시스템이 흔들릴까 그게 걱정인 모양이었다.

“그럼 당신은 어떻습니까. 강제 동원은 분명 말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꼭 필요한 일 아닙니까?”

그는 내 반응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내가 이 강제 동원 시스템을 그리 탐탁잖아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았다.

“그, 전장에 나간 연인을 걱정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시스템 자체를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그가 흘끔 눈치를 보며 꺼낸 내용은 다른 사람들도 흔히 하는 오해. 혀를 찬 나는 고개를 저어 그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걸로 ‘충분한가’를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립니까?”

“이렇게 모든 수를 동원해서 싸우는데도 져 버리면, 뚫려 버리면 우리에게 다른 희망이 있을까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모리스 카터도 그렇고, 사람들이 조금 착각하는 것 같다. 마치 이만큼 하면 충분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듯.

그러나 싸움과 진화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실감하는 중이다.

“비상! 비상!”

“상급종 추가 발견! 어서 공중 지원을!”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가 있던 베이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어느 정도 예상하던 대로, 일이 쉽게만 풀리지는 않는다는 뜻. 나를 보며 놀란 모리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

“현장에서 관측된 상급종을 제외한 새로운 놈이 하나 더 서쪽에서 등장했습니다. 후퇴시킬 순 없습니다. 꼬리가 잡혀 모두 죽을 겁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 현장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해 그룹을 두 개로 나누었습니다. 특별조가 시간을 끄는 사이 기존 작전을 마무리하고, 이후 두 번째 적을 상대합니다.”

현장에서 통신을 받은 군 지휘관은 식은땀을 닦으며 고위 관계자들은 물론 우리 같은 이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설명을 들은 우리가 각 회사에 연락해서 현지 상황을 회사에 알리는 것이다.

나는 물론 옆에 앉은 모리스 카터 역시 서둘러 브리핑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듣기만 하면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데, 특별조에 누가 자원했답니까?”

그때 누군가가 결사대 역할을 할 특별조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이지연의 이름도 그곳에 언급되었다.

“힘드시겠군요.”

“알고는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언제나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니.”

모리스 카터가 난처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내 마음이 그렇게 흔들리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군의 힘이 부족하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침략종들이 자의든 타의든 전력을 숨기고 찔끔찔끔 병력을 보내고 있다는 건 사실로 보인다.

그러니 고작 이 정도에 버거워한다면, 우리는 자력으로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

“저 사람들은, 설마.”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나타났다. 각종 장비들을 가지고 나타난 한 무리의 검은 정장들.

“루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감각 확장, 그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루시를 이용하면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미 정보부의 요원들로, 이 던전 공략이 위기에 처했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병력을 파견했습니다.]

“평범한 병력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진 힘은 특별한 것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저것은 교단에서 쓰이는 물건들 같습니다.]

그들이 저쪽 세상에서 교단과 손잡고 활동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교단에 무기를 비롯한 각종 자원들을 지원하듯, 교단 측에서도 그들에게 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 이런 모든 사실들은 포로로 잡은 교단의 성기사들에게서 알아낸 사실들이다.

[잠깐, 아무래도 교단이 제공한 것이 단순한 장비나 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내 몸에 위장하고 있는 나노·오메가의 일부를 떼어 낸 루시가 따로 정찰병을 운용하여 자신이 보는 시야를 내 휴대폰에 그것을 띄워 주었다.

[목에 건 문장을 보십시오. 검을 파지하는 방법, 걸음걸이 모두 성기사 특유의 습관이 묻어있습니다. 아무래도 교단의 성기사 같습니다.]

“그곳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냈다고? 그게 가능해?”

나도 루시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감도 안 오지만 어쨌든 그들은 다른 세상의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냈다는 뜻이니까.

나와 루시는 이제야 실마리를 잡고 풀어가려는 걸, 그들은 벌써 한 발짝 앞서가는 것이다.

***

“정말 이렇게 바로 투입이 됩니까? 어, 제 기억에 이런 분들은······.”

“이 일은 연합 사령부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니 협조하십시오. 실력은 확실하니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현장 지휘관은 요원들과 함께 온 각성자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요원들과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풍기는 그 분위기부터가 다른 3인의 사람들은 딱딱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서 있을 뿐이다.

‘여신께서 내리신 시련.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지금 그들의 뇌리에는 다른 세상이라는 것도,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일 뿐. 오직 여신의 시련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정말 제 모습을 안 보여 주는 게 맞는 건가요?”

“사실 확신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길. 그렇게 믿고 따르던 여신이 생각보다 평범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면 신비로움이 조금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모습을 멀리 떨어진 차량 안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마리사의 말에, 국장 넬슨은 고개를 저었다.

새롭게 획득한 게임의 기능으로 게임 속 성기사들 일부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마리사의 힘이었지만, 넬슨은 다시 저쪽 세상으로 돌아갈 그들에게 그녀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단지 당황한 그들에게 이것은 여신이 내린 시련이며, 그들이 폭약과 화기를 지원받았듯 이곳에서도 고통받는 다른 인간들을 구원하라는 임무임을 알려 주었을 뿐이다.

“때로는 서로 모르는 것이, 보지 않는 것이 서로의 끈끈함을 더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의 관계가 일방적인 경우가 더 그렇지요. 상대가 나를 맹목적으로 따르는데, 굳이 그 관계에 변수를 줄 필요가 있을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고 보살펴 주는 게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맞는 말이지요. 십 대 소년 소녀의 연애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마리사, 이것은 일개 연애 사업이 아닙니다. 집단과 집단의 생존이 달린 일이죠. 그걸 생각해 주시길.”

국장 넬슨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타일렀다. 그녀가 가진 힘이 곧 희망이자 기적 그 자체라고 믿는 그는, 그 무엇보다 그녀를 신경 썼다. 결국 저 게임 속 세상의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것은 그녀니까.

그녀의 사상과 생각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그녀 자체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길들이고 설득하려는 의도였다.

“그나저나 그쪽 세상일은 어떻습니까. 전쟁이 계속 질질 끌리고 있어 그리 좋지는 않아 보입니다만.”

“쉽지 않아요. 죽는 사람들도 많아지죠. 어디도 물러설 기미가 없어요.”

넌지시 전쟁에 대해 묻는 그의 말에 마리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이야 단순히 게임을 즐기듯 자원을 투자하고 캐릭터들을 성장시켜 싸우는 일을 즐길 수 있었지만, 갈수록 처절해지는 싸움과 커져 가는 희생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 와서 그 게임을 멈추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목숨을 비교해 보시길, 과연 어떤 선택이 그곳과 이곳의 사람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는지.”

당연히 넬슨은 그녀가 게임을 포기하지 않도록 달래는 일도 해야 했다.

“급히 출동하느라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할까요. 이번에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더 많은 무기, 더 많은 장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되었죠.”

“핵폭탄은 별로 의미 없어 보여요.”

“그, 그건 압니다. 그곳은 이곳과 다르니까.”

핵폭탄 이야기를 하는 마리사의 말에 넬슨이 움찔했다. 뭐만 하면 핵폭탄 하나로 끝장을 보려는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쪽은 이곳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핵폭탄의 탄두가 폭발하기 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마법과 주술이 난무하는 세상.

거기다 아직 오갈 수 있는 물건의 무게와 부피에도 제한이 있어, 미사일도 전투기도 없이 탄두만 덜렁 넘겨 주는 것도 비효율적이니 결국 핵폭탄을 쓰자는 의견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마족이라는 이들 때문에 고민을 좀 해야 했습니다. 단순한 화력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그래서 무기는 다른 이들에게 쓰고 교단의 사제나 성기사들이 그들을 상대하게 될 거에요.”

“좋습니다. 역시 그 정도의 전술은 필요하죠.”

기존의 전력과 지급된 무기를 함께 써서 사용하는 전술 등은 모두 이쪽의 엘리트들이 달라붙어 고안해서 제안한 것. 넬슨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끄덕였다.

“그, 흑철충이라는 괴물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연 넬슨에게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 게 그때였다. 몇 차례 나타나 그들은 물론이고 연합군까지 공격하며, 계획된 전쟁에 훼방을 놓은 정체불명의 괴물들.

마리사는 그 괴물들의 언급에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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