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23화 (123/200)

123화 기만과 지배 (3)

“목표물 확인.”

“현재 차량 하차 중.”

주인 없이 비어 있는 집 안, 건물 비상구, 옥상, 그리고 근처 지역까지.

그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대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건물 진입.”

그들이 잡고자 하는 대상은 김창현. 그 자체로는 평범한 젊은 남성일 뿐이다. 딱히 뛰어난 능력자도 아니었으며, 중요한 기술을 알고 있는 연구원도, 중책을 맡고 있는 정부 요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들 같은 이들이 주시할 수밖에 없는 칭호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지연의 측근이라는 것.

심지어 단순한 측근도 아니었다. 이미 일반적인 각성자와 담당자간의 관계라고 하기에는 유독 가까워보이던 두 사람의 관계가 소문대로 조금 더 깊다는 것을, 오늘 낮 창현이 그녀의 집에 홀로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한 이후다.

“멀쩡히 생포하는 게 우선이다.”

“당연한 소리를.”

그들의 상관이자 본국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바로 창현을 공격해 제압하고 그를 인질로 삼아 이지연을 불러내겠다는 다소 과격하고 무차별한 작전.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 세계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그들에게는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여유가 조금도 남지 않았으니까.

본국의 넓은 땅덩어리에서 계속 나와 계속 쌓여 가는 던전 코어들을 외교적·자본적 문제 없이 처리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것 때문에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 우리가 잘못하면 자칫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

이건 그동안 있어 왔던,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벌여 온 각국 정보 기관 간의 신경전 따위가 아니다.

말 그대로 민간인을 상대로 한 범죄이고 테러다. 그 어떤 나라도 묵과할 수 없는 일. 한 번 저지른 이상 모두를 위해서도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일격에 제압한다. 모두 무기 준비.”

“현재 목표물 2층 통과.”

그를 붙잡는 임무를 맡고 집안에 대기하던 이들은 긴장을 끌어올리며 손에 든 테이저 건과 실제 권총 등을 들어 올렸다.

그들은 창현을 평범한 일반인으로 알고 있다. 총으로 겁만 줘도 충분히 굴복시킬 수 있는 그런 일반인. 그렇기에 그 이상을 생각하지는 않고 창현이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

그리고 마침내,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도어락이 열리며 창현이 내부에 들어왔다.

***

[다수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화장실, 작은 방, 큰 방, 부엌, 거실 구석 모든 공간에서.]

문을 닫고 신발장에 선 창현은 어둑한 집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집을 나선 순간과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지금 그가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에서는 루시가 경고하는 내용들이 계속 흘러들고 있었다.

[행동하셔도 됩니다. 방어 준비 완료.]

루시는 이미 그들의 매복을 파악하고 해당 방향으로의 방어 및 공격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로 그에게 보고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겉옷을 벗은 채 천천히 걸어서 거실 한가운데로 향했다.

“정지, 움직이면 쏜다. 김창현, 우리와 대화하지.”

그리고 그 순간, 매복했던 모두가 튀어나와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분명 일반인이라면 놀라서 자빠지거나 겁을 집어먹고 굳어야 하는 상황.

“당신들 누구지?”

그러나 가만히 손을 든 그는 조용히 그들의 정체를 물을 뿐이다. 덕분에 역으로 당황한 것은 창현을 덮치려던 괴한들이었다.

침착해도 너무 침착했다.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아니 알고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처럼.

“우리는 북조선에서 왔다. 이지연과 만나고 싶을 뿐이니 얌전히 따르도록. 그러면 다치는 일 없을 거다.”

[거짓말입니다.]

그들의 리더가 미리 준비한 답변으로 협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예상 못 한 창현의 태연한 대응으로 미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거짓말은, 곧바로 루시에게 적발되었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지? 북한에서 왔다는 거? 지연이를 만나겠다는 거? 아니면 안 다칠 거라는 거?

“지금 무슨 소리를······ 이런, 젠장!”

“직접 알아보면 그만이지.”

“쏴!!”

덕분에 쓰게 웃으며 중얼거린 그가 순간 몸을 움직인 순간. 그들은 기겁하며 테이저 건을 발사했다. 하지만 그들이 반사 신경을 움직여 손가락을 당겨 방아쇠를 당기는 것보다, 루시가 나노·오메가를 움직이는 게 더 빨랐다.

“크윽!?”

“아아악!”

그의 몸이, 정확히는 걸치고 있던 옷이 순간 요동치며 마구잡이로 변형을 일으켰다. 쏘아진 테이저 건의 바늘들은 경질화된 부분으로 모두 막아 내고 역으로 쏘아진 검은 촉수는 그들의 급소를 단번에 관통해 버렸다.

“이 개자식!”

“뭐지? 중국어인데? 북한이라며.”

일순간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분노한 그들 중 하나가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욕설을 하며 달려들었다.

그 언어를 알아들은 창현은, 상대가 뽑아 든 단검이 순간 번득이며 쏘아 보낸 촉수가 단숨에 동강 나는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갑작스러운 마력 반응. 각성자입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 최대한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 정보부가 마력 탐지기를 가지고 있었지.”

루시조차 잡아내지 못할 만큼 잘 위장한 힘을 터트린 상대가 혀를 차는 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 설마······.”

하지만 이미 창현의 전신을 덮고 있는 나노·오메가는 그 정체를 전부 드러내었다. 그의 몸을 서서히 덮어 가는 검은 가죽과 같은 물질.

“코드······.”

“밖에 더 있다.”

너무 당황해서 미처 대응하지 못한 그는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하고 창현이 팔을 변형시켜 휘두른 커다란 검에 깔끔하게 목이 베여 나갔다.

하지만 창현은 집 안에서 덤벼들던 모두를 제거한 와중에도 나노·오메가를 풀지 않고 몸을 은신시켰다.

[그들 중 일부를 이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첫 만남에서는 정보를 얻으려다 때맞춰 전송 주문을 발현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제 문제없습니다.]

“그렇게 할게.”

루시는 그 와중에 그에게 습격자들 중 일부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감히 그를 공격한 이들을 가만둘 순 없으니까.

자신이 발달시켜 온 잔혹한 고문법으로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토설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알파, 알파. 대답해라, 대······.”

“이게 무슨······.”

실제로 은신한 그가 스리슬쩍 다가가 하나둘 루시의 전송 마법으로 날려 버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창현이 그들의 습격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부터가 계획이 꼬인 이유였다.

[전원 청소 완료.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야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결정해야지 뭐.”

곧 이 작전에 투입되었던 이들 모두가 역으로 잡아먹혔다. 그들의 상관들은 오매불망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 이들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 즉시, 그들을 심문하여 데이터를 확보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시체들까지 전송시킨 시점에서 루시는 이미 그들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

“흐, 흐아악!”

“이게 대체, 괴물들이다!”

아무런 정보가 없던 이들에게 갑작스러운 차원 이동은, 특히 그렇게 떨어진 장소가 마왕군이 점령한 둥지라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재앙과 마찬가지.

변변찮은 무기 하나 들지 못한 그들 앞에 나타난 무수한 마왕군은 그저 존재만으로 그들을 짓눌렀으며, 그들 중 일부는 자기들 머리 위 하늘을 가로지르는 함선형 거대 비행종의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굳어 버렸다.

“목숨을 버리는 데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법들을 택하셨습니다. 이 버러지들.”

그리고 루시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다는 것 역시 그들에게 이곳이 지옥으로 바뀌는 증표였다.

루시의 손짓 하나에 그들에게 쇄도한 마왕군은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전원 생포하여 심문을 진행 중입니다.”

“바로바로 알려 줘. 안 자고 기다릴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후 루시는 단숨에 제압한 그들을 둥지로 끌고 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고문하여 모든 정보를 뽑아내었다. 100년 넘게 살며 강도 높은 훈련과 실전을 겪고, 수많은 경험을 겪은 엘프 영웅마저 무너진 게 바로 루시의 고문이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거친 특수 부대원이라도, 뇌세포 하나하나를 헤집고 신경계를 강제로 조작당하는 끔찍한 고문을 당하니 그들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 정신이 붕괴하고 꼭꼭 숨겨야 하는 비밀도 모조리 내뱉기 시작했다.

“목적 자체는 단순하네. 던전 코어. 확실히 문제긴 하지. 아직까지도 처리 방법이 두 군데뿐이니까.”

비참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그들에게서 뽑아낸 정보를 듣게 된 그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던전 코어 따위는 이제 이만큼이나 덩치가 커진 루시에게도, 다른 걱정거리가 태산인 그에게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그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있으니 이번에 그를 공격하려 시도한 적들이 그런 이들이었다.

“제가 반드시, 그곳으로 가 놈들을 응징하겠습니다.”

“아니야.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루시는 그에게 요원들을 보내 해하려 한 그들을 지구의 지도상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쓰게 웃은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침략종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 한때 서로 다투던 모든 이들이 일시적으로 휴전하고 공공의 적에 맞서고 있지. 이런 상황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건 미친 짓이야.”

“그러나 그들은 그 미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만큼 위기에 몰렸다는 거겠지. 역시 때로는 당근이 필요해. 채찍만 쳐서야 악효과야.”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평화이기에 그는 이 사건의 본질을 다른 곳에서 찾았다.

“당근이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뭘 이용해야 지구 사람들이 조금 강해져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머리를 굴리며 단서를 찾았다. 지금까지 루시를 보면서 주워듣고 엿본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마법을 팔아 볼까?”

그런 그의 머리를 순간 스치고 가는 것이 바로 루시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마왕식 마법. 그 근본이 인공지능이 짠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루시의 마법 코드를 지구에 존재하는 단말기에 이식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이 제대로 이용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힘들겠지. 이 세상 그 어떤 인공지능도 지금의 너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 나는 그냥 희망, 그거 하나면 족해서 그래.”

“차라리 제가 직접 넘어가서 대신 쓸어버리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루시는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지만 아직 불완전한 상태로만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생각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이번 일부터 해결하고.”

다만 지금 당장 시작될 일은 어차피 아니다. 이 거대한 사건을 한밤의 해프닝으로 넘겨 버린 창현은 날이 밝자마자 이지연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취했다.

어쨌든 누군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이지연의 연줄인 협회장 백승철이 국정원에 잘 말한다면 그걸로 수습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