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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25화 (125/200)

125화 기만과 지배 (5)

“감염과 변이?”

“그렇습니다. 대응 방법을 찾아야지만 그들, 아니, ‘그것’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 버린 사건 직후. 나는 루시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조사 결과를 들었다.

감염과 변이, 솔직히 그걸 처음 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였다.

“좀비네?”

“심지어 아직 데이터가 적어 그 감염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파악하기 힘듭니다. 만약 저 강한 감염력이 아군의 세포를 잡아먹고 증식하는 데 한계가 없다면, 아주 작은 상처 하나로 초거대종이 침몰당할 수도 있습니다.”

루시는 꽤 무시무시한 보고를 올렸다. 대체 왜 다크엘프들이 산다는 세상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설명만 들으면 적들은 아군의 완전한 천적이었으니까.

루시는 그동안 연산력의 한계로 수행할 수 없는 세포 단위의 전쟁을 적들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게 수행하고 있었다.

“방법은 있어?”

“대응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아군 체내에 대한 세포 단위 공격은 마력 파동을 발산하여 사멸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강심을 가진 병사들만이 가능한 대응이라, 군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병들은 공격에 취약합니다.”

“다른 방법은 어때.”

“맞불을 놓는 것도 가능합니다.”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 내가 다른 방법을 묻자 루시는 자신이 세포 단위 병력을 못 쓰는 게 아님을 설명했다.

이미 다른 곳을 마왕군의 둥지로 만드는 데 사용하는 점액질도, 결국은 나노들을 이용해 만드는 것. 단지 그 작은 세포들은 루시가 통제를 전혀 하지 않는다.

미리 짜인 기본적인 코드대로, 최소한의 명령만 수행하며 무한정 먹어치우고 증식하는 것뿐이다.

“이 방식으로 상대의 감염력에 대항한다면 분명 감염 속도를 늦추거나 역으로 막아 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효율적인 통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결국…… 답이 애매하다 이건가?”

현재 루시가 가진 해결법들은 모두 완벽한 해결법이 아니었다. 어쩌며 당연한 소리기도 했다. 루시는 이 상황과 상대를 처음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그러니까 나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하던 대로 투닥거리다 보면 결국 루시는 답을 찾아낼 것이고, 최후에는 승리할 것이다.

“내 생각에 두 번째 방법은 너무 리스크가 커 보이는데. 첫 번째 방법으로 시간과 데이터를 벌고 다른 대응책을 찾는 게 맞지 않나?”

“저도 그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슬슬 사고방식이 비슷해지는 우리답게 우리는 금방 대응 방법을 떠올렸다.

실제로 루시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나는 그쪽에서 관심을 거두고 따로 옷을 챙겼다.

“이건 일에 관한 일이야. 그러니 방해하지 마.”

“알겠습니다.”

이지연이 이미 우리 집 앞에 와 있다. 루시가 괜히 허튼짓하기 전에 단단히 타이른 나는 집 밖으로 나가, 얼굴이 창백해진 그녀를 만났다.

* * *

“괜찮은 거야!?”

“그래, 당할 리가 없지. 그들은 나를 평범한 일반인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평소보다 많이 흥분한 그녀를 안심시켰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그녀는 연신 내 몸을 살폈다.

“일단 주변에는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몰라. 일단 출발하자.”

“어, 어디로 가지?”

“회사로.”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어쨌든 간밤에 있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결국 적들은 몰살당한 자기 동료들 소식을 듣고 나를 의심할 것이다.

그 의심이 계속 쌓이면 귀찮기만 하다. 이쯤 되서 각성자라고 밝힐까 생각했지만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놈들은 중국에서 넘어왔어. 나를 인질로 잡아 너를 만나고, 네게서 던전 코어 활성화 방법을 캐내기 위해.”

“고작 그딴 것 때문에?”

“돈 몇 푼에도 동족을 죽이는 게 사람이지.”

그녀는 상대방이 고작 던전 코어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른다는 게 잘 이해가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것이 생명체의 본분. 그것에 당하냐 마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행위 자체는 당연하니까.

“침략종들의 강함과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버티지 못하는 곳들도 늘어나, 남은 나라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과거 누렸던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고 지키려 한다면 당연히 과부하가 오겠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차가워.”

“그게 현실인걸.”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나도 이렇게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동안 봐 오고 겪은 게 너무 많다.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휩쓸리려 한다면 모를까, 이 흐름을 바꾸고자 한다면 적어도 현실을 봐야한다고 확신했다.

“협회장님께 만나자고 해 줘. 그리고 그분한테 네가 이렇게 말해. 이번 일 잘 처리해 주는 대가로 새로운 힘을 주겠다고.”

“새, 새로운 힘?”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나는 지난 밤 고민하고 결론 내린 답을 그녀에게 전해 주었다.

루시가 저쪽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개조해서 만든 마왕식 마법. 그것은 일종의 코드로 만들어진 것이라 동력과 프로그램만 갖춰지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

마력을 머금은 공격을 대포 쏘듯이 난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힘은, 장담하건데 지금 전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략종들과의 싸움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당장 놈들의 마력 방어를 뚫기 위해 희생되는 각성자들을 구할 수 있을 테니.

“그런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하지만 만약 믿어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출처에 대해서 물으면?”

“잘 뭉개야지. 여차하면 네 성좌가 알려 줬다 해도 되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를 흘끔거렸다. 이제 생각해 보니 성좌라는 핑계가 참 써먹기 좋다. 오직 계약자에게만 들리는 저 시스템 속 도우미들은 많은 걸 알고 있고 특이한 힘들도 다루니까.

“미친 것 아니냐는데? 그런데 자기가 막을 방법은 없대.”

“그렇겠지.”

그녀가 자기 성좌에게 한소리 들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도 막상 그렇게 말한 것 치고는 딱히 반응이 없으니 나는 그녀의 성좌가 이 계획을 묵인한다고 받아들였다.

“다 왔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이 벌써 회사에 가까워졌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루시는 아직 주변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역시 습젹자들은 간밤의 사태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 * *

“좀 놀랐다. 휴가 중인데 갑자기 보자고 하다니. 설마 일하겠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니죠. 근데 더 큰일이에요.”

이른 아침나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협회장이자 사장 백승철은, 갑자기 찾아 온 우리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그는 내가 따라 온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그를 만날 때 이지연은 굳이 나를 데리고 가지 않고 늘 혼자 갔으니까.

“설마 너희 둘 정식으로 발표, 뭐 그런…….”

“창현이가 어제 밤 습격당했어요. 중국에서 온 공작원들에게.”

“뭐?”

그리고 이지연은 미리 계획한대로 시원하게 정보를 오픈했다. 헛웃음을 흘리던 그는 크게 놀랐는지, 종이컵에 따르던 커피를 쏟아 버렸다.

“진짜에요. 증거도 있죠. 어설프게 북한에서 온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증거까지.”

그녀는 내가 미리 전해 준 물건들을 그의 눈앞에 쏟아 부었다. 습격자들이 사용하던 장비와 의복 등등. 모두 그들을 고문하던 루시가 수거해서 돌려준 것으로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는지, 그들은 자기들이 쓰던 휴대폰들까지 통째로 흘렸다.

“목적은 저를 불러내서 협박해, 던전 코어 활성화 방법을 알아내는 거.”

“자, 자, 잠깐만. 지금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제 의견은 이거 하나에요. 이거, 훗날 말 나올 일없게 잘 처리해 주시라는 거. 저에 대한 위협이나 마찬가지였다고요.”

이지연은 허리를 숙이고 탁자를 짚으며 평소와는 다른 굳은 목소리로 그를 몰아세웠다. 명색의 초대 협회장이지만, 백승철은 진땀을 닦으며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전부 사실이라 치자. 대체 어떻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이런 사실들을 알아낸 거지? 보통 일이 아닌데!?”

“그건 말 못해요.”

그는 연신 알았다고 말하며 얌전히 서 있는 나를 흘끔거렸다. 그러면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점에 대해서 물었지만 문제는 우리는 그걸 답해 줄 수 없다는 점.

이지연은 입을 다물며 여기서 막무가내로 일을 뭉개기 시작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럼 국정원에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겠냐. 중국 측 공작원들이 우리 쪽 감시망을 뚫고 수작질을 부리던 걸 알아서 잘 처리했으니 당신들이 막은 걸로 해 주쇼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아?”

“대가를 드릴게요.”

그녀는 거기서 미리 준비한 카드를 꺼내들었다. 새로운 기술, 어쩌면 전 세계의 전력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신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히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지금 사용하고 계신 휴대폰 수준의 연산능력이라면 가장 저급한 주문을 최대한 빠르게 반복 사용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라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어렵고 복잡하다고? 요즘 시대 스마트폰으로도?”

[과거의 저라면 모를까, 지금의 저는 비교군 자체가 다릅니다.]

내게 자신이 개발한 마왕식 마법에 대해 알려 줄 때, 루시는 지금 내가 쓰는 휴대폰 수준의 연산력이라면 연속성과 연산 속도까지 고려해 고작해야 최하급 마법 하나 겨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엄청난 수준으로 발전해 있는 루시의 수준은 차치하고, 이 마법을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너무 과해서는 안 되니 결국 제약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다수의 병기를 확보한다면 그쪽 수준에서는 유의미한 화력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도움이 크겠지. 너 같은 생체 컴퓨터가 있는 게 아니니까.”

루시는 어차피 자신이 만들어낸 병사들의 뇌와 자신의 뇌를 전부 이용해 연산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

결국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컴퓨터의 성능에 따라 마법의 수준도 달라진다. 다만 슈퍼컴을 들고 다니며 싸울 수는 없으니 결국 그 중간의 효율을 찾는 건 우리 몫이다.

“마법이라고? 일반 군병력도 각성자들 같은 힘을 쓸 수 있다고?”

“네. 확인시켜 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엄청난 떡밥임은 확실하다.

백승철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지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나를 믿으며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이 정도면 거래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체 어떻게?”

“제 성좌가 알려 줬다고 치죠.”

그녀는 태연히 우리가 미리 말했던 핑계로 쐐기를 꽂았다. 성좌라는 말에 입만 벙긋거리던 그가 결국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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