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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공지능이 마왕이 되었다-126화 (126/200)

126화 기만과 지배 (6)

“어려울 것 없어요. 이 휴대폰이 보이시죠? 이 휴대폰의 연산력을 이용해서, 주입된 코드를 발동시키는 것뿐이에요.”

“이해는 전혀 안 간다. 그냥 보고 있을 뿐이야.”

“그럼 지금은 그냥 보세요. 이 휴대폰에, 동력을 주입하면 바로 마법이 발현됩니다.”

회사 지하의 연구 시설. 평소 각성자들의 힘을 측정하거나 연구를 진행하는 이곳에서, 이지연은 백승철 앞에서 마법에 대해 증명해 보였다.

곧 그녀가 손에 든 휴대폰에 그녀가 일으킨 황금빛 빛이 흘러들었다. 차후 계획은 활성화 한 던전 코어를 동력으로 삼을 생각이지만, 지금은 그녀 자신의 마력을 동력으로 흘려 넣은 것이다.

“허.”

그리고 동시에, 마법이 발현하며 터져 나왔다. 허공을 가르는 뜨거운 불덩어리는 반대편 벽까지 날아가 폭발하고, 열기와 충격파를 주변에 흩뿌렸다.

얼핏 보면 일개 수류탄만 못한 위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마법의 진짜 가치는, 수류탄은 물론 핵폭탄도 가지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침략종의 방어막을 부술 수 있다고?”

“부술 수 있죠. 마력을 동력으로 마력을 변환시켜 마력을 쏘아 내는 것이니까.”

이지연은 내가 일러 준 대로 착실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애초에 백승철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다른 건 신경도 못 쓸 정도였다.

지금까지 왜 아군이 적들에게 밀렸나. 바로 마력이라는 미지의 힘을 사용해 화력을 제압하는 특수한 개체들과, 그것을 극한으로 이용하는 상급종들의 등장 때문이었다.

덕분에 각국의 군대는 반드시 각성자들과 함께 싸워야 했다. 각성자들의 힘 역시 마력에 근원하여,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었으니까.

그러니 만약 이 ‘마법 코드’가 제대로 활용된다면 인류는 적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대가로 충분하죠?”

“충분, 충분하지. 당연히!”

그녀의 말에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입이 벌어져 있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이걸로 이득을 얼마나 보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전 세계에 원활하게 보급되어야 할걸요? 어차피 사람끼리의 싸움에는 비효율 그 자체니까 핑계 댈 것도 없죠.”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라고? 그건 쉽지 않아. 엄연히 국익을 생각해야 하니까.”

“국익, 국가, 이념, 사상, 그딴 건 저 괴물들에게 아무 소용없어요.”

그는 이지연의 요구 조건에 망설였으나 그녀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제 조건은 그게 전부에요. 이번 습격 사건을 잘 마무리해 주는 것, 그리고 이 새로운 기술이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 그것들만 지켜 준다면 앞으로 계속 주문들을 알려 줄 수 있겠죠.”

어차피 갑은 그녀였다. 다양한 마법 코드들을 자기 마음대로 풀겠다고 선언한 이상, 다른 사람들에겐 선택지가 없다. 그녀의 비위를 맞춰 주고 얌전히 떡고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다 들어주마! 그러니까 이 이야기, 좀 자세하게 하자.”

결국 백승철은 금세 백기를 들고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겠다 선언했다. 협회장실로 끌려가듯 들어간 그녀가 모든 협상을 끝내고 나온 건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하얗게 불태운 듯 멍하니 앉아 있는 그를 두고 나온 그녀는 잘 풀렸다는 의미인지 나를 보고 피식 웃어 보였다.

* * *

“이렇게 매번 귀찮은 일 맡겨서 미안하네.”

“단순한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결국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 난 아무렇지도 않아.”

이번에도 나를 대신해 얼굴마담으로 나선 이지연에게 쓰게 웃으며 말하니 그녀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내게 생긴 일을 커버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번 일을 계기로 일정 부분 풀기로 결정한 마법 코드에 관한 일이 결국 이 세상과 사람들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 것이다.

“결국 우리끼리 다투게 되면 정말로 파멸이니까. 하지만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그들이 주제넘은 야욕을 드러내면 어쩌지?”

“그때는 어쩔 수 없지.”

이번 일로 호되게 당했는데도 배운 게 없다면 그 이후는 나도 장담 못 한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내 인공지능이 정말로 그들을 지구상에 지워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나도 피곤해진다. 되도록 그런 일 없길 바랄 뿐이다.

“이제 할 일이 없네.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서 일하고 싶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아니야.”

“쉴 때는 쉬어야지.”

큰일을 겪은 것 치고는 꺼내 놓은 패가 커서 그런지 나름 수습이 잘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리미트가 풀린 것인지, 이지연은 이제 자신의 태도와 감정을 굳이 조절하거나 숨기지도 않았다.

“나는 알아. 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거. 언젠가 전장에서 죽을 거라는 것도. 그러니 그 전까지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기로 결정했어.”

그녀는 무서운 이야기를 웃으며 말했다. 하긴, 이런 성격이었으니 지금까지 계속 버텨 오며 싸울 수 있었겠지. 실제로 그녀의 말대로 될 확률이 높았다.

지금처럼 싸워 대는 이상 그녀는 언제 한 번은 패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패배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확률도 높았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운명을 확정하고 그날을 위해 생명을 불태우는 그녀도 모르는 사실이 있으니, 내가 그것을 두고 보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운명마저 비틀어 버리는 힘. 나는 그 힘을 빌려 올 수 있으니까.

* * *

[…….]

“놈들이 아군의 도발에 반응해 안개 밖으로 튀어나왔다. 보고 있나? 대응이 필요해.”

두 남녀가 함께 있을 때, 함께 있다가 다시 강제로 끌려온 루시는 라온의 외침에도 잠시 대답이 없었다. 나노·오메가를 통해 전부 보고 듣는 이지연과 창현의 대화 하나하나가 루시에게는 굉장히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었으니까.

[보고 있습니다. 저들이 저 특수해 보이는 안개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표본 채취를 위해 생포 작전을 진행합니다.]

물론 완전히 정신이 팔린 건 아니다. 단지 때를 기다렸을 뿐.

루시는 병사들의 눈을 통해 자신이 보낸 소수 병력을 뒤쫓아 오는 괴물들을 바라보았다.

분명 본래는 이 세상의 토착 생물들이었을 것 같은 괴물들은, 굉장히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전신이 변형되고 뒤틀린 상태.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이족 보행의 괴물은 2m 가까이 되는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피부색이나 얼굴 등 군데군데 남은 신체 부위를 보면 저들이 한때 어떤 이들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들은 분명 다크엘프들이다. 대체 이 세상의 주인이 되었을 그들이 왜 저런 모습이 되어버린 거지?”

[한 번 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영원한 승자로 군림하는 건 아닙니다. 결국 계속해서 성장하고 진화하지 못하면 패배하고 도태될 뿐.]

라온은 이성도 자아도 없이 날뛰는 괴물이 되어 머리가 하나 더 자란다거나, 팔이 4개라거나 하는 모습으로 변이해 버린 다크엘프들의 모습에 침음했고, 루시는 비웃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한 데이터 뿐.]

루시는 무턱대고 자신의 병사들을 쫓아오는 저 괴물들을 미리 준비한 함정으로 유인했다.

이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뒤틀린 괴물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도주하는 마왕군을 쫓아 그곳에 들어서고, 루시는 매복시켰던 병사들을 시켜 일제 사격을 명령했다.

[마도포 발사.]

체내에 동력원을 내장해 마력을 다룰 수 있는 감마 타입들이 일제히 손에 쥔 광선포에서 포격을 뿜어낸다.

어떤 부분에선 마법보다 효율적인 이 공격을 통해, 루시는 그들의 감염력이 발휘될 수 없는 원거리에서 저격해 그들을 무력화시켰다.

“징그럽기 짝이 없군.”

라온은 팔다리가 잘리고도 몸통만 남아 움찔거리는 괴물들의 모습에 침음했다. 말 그대로 생명 자체를 연료삼아 미쳐 날뛰는 수많은 세포들이 만들어낸 광경.

하지만 잘려 나가고도 쩍 갈라진 턱을 꿈틀거리며 물려고 드는 머리통을 집어 든 루시는, 흥미롭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어떻게 먹이를 먹어치우는지 나도 봤다. 이 끔찍한 괴물들을 대체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지? 내 생각인데, 이놈들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런 괴물들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신 같이 사고하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기괴하든 끔찍하든 아름답든, 무엇이든 먹어치우고 배울 마음을 가져야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라온의 말에 반박한 루시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머리통을 들고 미리 준비한 곳으로 향했다.

작은 구덩이 안에 고여 있는 점액질. 이 안에 무수히 많은 나노들이 들어있다. 마왕군의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그 어떤 형태로든 변할 수 있는 그 만능 세포들에, 루시는 주워 온 머리를 툭 떨어트렸다.

“분석하고 찾아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이상 제 힘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치명적인 감염력에 저항할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루시는 자신의 의식을 한 번 더 확장했다. 이번에는 기존처럼 큼직큼직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 세계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세포 전쟁에 특화된 괴물들입니다. 어지간한 생물체의 면역계 따위는 감히 대항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체계가 필요합니다.]

루시는 이 작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을 보고 탄식했다.

자신들에 비하면 압도적인 숫자를 지닌 마왕군의 나노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한 감염균들이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역으로 자신들의 덩치를 불려 나가기 시작했다.

[데이터 수집 시작.]

루시는 그 상태에서 이 미지의 감염균들에 대한 데이터를 뽑아내기 위해 하나씩 준비한 수단들을 털어놓았다.

우선적으로 시작한 것이 나노들을 무장시켜 감염균들을 공격하게 만든 것, 곧 변이를 일으켜 촉수라는 무기를 장착한 나노들이 감염균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단순히 감염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이후 벌어진 적들의 반격은 루시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폭발적인 감염력을 보여 주는 자신들의 공격에 나노들이 촉수를 뻗어 역공해 오자, 감염균들 역시 자신들을 변이시켰다.

그것도 나노들을 모방해 촉수들을 장착한 모양새였다. 그 엄청난 속도에 루시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배우고 모방하는데 자신보다 강한 적은 보지 못했으니까.

[다음 단계는 독소에 대한 실험입니다.]

루시는 곧장 다음 단계로 전쟁을 진행했다. 촉수로 무장시키는 것은 간파당했으니, 이제는 그동안 축척한 데이터를 조합해 만들어 낸 강한 생체 독소로 적 세포들을 사멸시키려 시도했다.

[적들이 대응합니다.]

하지만 이것마저 적들은 극복해 나갔다. 빠르게 분열과 사멸을 반복하며 내성을 쌓아, 기어이 루시의 공격을 견뎌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감염력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 억제하는 것으로 선회.]

루시는 자신의 열세를 인정하고 전술을 바꿨다. 이기는 게 힘들어도, 붙잡고 늘어지며 시간을 끄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 그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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